5화.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치료다. Ⅱ (1)
김지훈과 최철한의 묘한 관계가 떠올랐다.
“진우야, 역시 선배는 무서운 존재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지훈 선생님이 최철한 선생님을 태우는 것 같은데 눈치 보면 확실히 강도가 약해. 하긴 네가 날 태우는 꼴인데 말이 안 되지. 근데 왜 세컨을 선 내가 맨날 타지?”
장인어른도 태운 김지훈이다.
지금은 맛보기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최철한의 복강경 집도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어쨌든 불과 얼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점점 활기로 가득해지는 일반외과였다. 그럴수록 전공의는 물론 김지훈의 얼굴까지 꺼멓게 변하고 있었다.
다 함께 새까매지는 그날이 바로 구미 일반외과가 반석 위에 오르는 날일 것이다. 개개인의 실력과 능력에 기반 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모두가 잘 알고 있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뎌 낼 수 있을 것이다.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임승민 환자만 아니었다면 고민거리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외래 진료를 마친 김지훈이 부리나케 중환자실로 향했다.
다음 날 시행할 대장암 준비에 필요한 자료를 한 손에 든 채였다.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보호자를 만난 후 환자 앞에 선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수시로 환자를 살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중환자실부터 찾았고 전공의 일과가 끝날 때까지 킵을 마다하지 않았다.
꼭 살리고 싶었다.
송진우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도 곁을 지키고 있었다.
“진우야, 올라가서 쉬어. 눈이 시뻘게, 인마.”
“괜찮습니다. 현철이가 킵할 때 쉬면됩니다.”
“하루 이틀 싸움 아니야. 감당하기 힘들어. 이럴 때일수록 오프 확실히 가. 체력이 있어야 킵도 하지.”
송진우의 눈에 노모와 어머니의 얼굴이 겹치고 있었다. 대답을 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환자 상태는 변함이 없었다.
보호자는 면회 때마다 눈물을 보였다. 대구로 가고 싶어 하는 눈치가 역력했고 말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는 여전히 이송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과장님, 우리 아들 꼭 살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노모의 눈물 어린 당부 뒤로 아내의 불안과 두려움이 보였다. 그런 날이 벌써 6일이나 지났다. 수혈만 중단됐을 뿐 아직도 의식은 혼미했고 바이탈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렸다.
목요일 저녁.
주덕현 과장과 정성호 과장까지 모두 중환자실에 모였다. 번갈아 킵을 하는 전공의들의 두 눈이 시뻘겠다. 밤낮을 잊은 김지훈도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최철한과 당직을 번갈아 선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고경아와의 산책은 꿈도 못 꾸었다.
‘후우! 나도 이제 체력이 예전만 못하네.’
“김 과장, 새벽에 또 나온 거야?”
“아닙니다. 성민이가 있는데 제가 나올 이유가 있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술 이후 단 하루도 거른 날이 없었다. 큰 피로를 느끼는 새벽 시간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단 세 명뿐인 전공의가 중환자실 환자에게만 매달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띠띠띠띠띠띠!
여전히 숨 가쁜 박동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신중하고 세심하게 환자 상태를 살피며 각과 과장들과 치료 방향에 대해 상의했다. 많은 의견이 오고 갔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사소한 변화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대처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면회를 들어온 아내가 울먹였다.
점점이 떨어진 눈물이 남편이 손등을 적셨다.
환자의 안색은 창백하고 손발은 차갑기만 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얼굴과 눈가가 퉁퉁 부어 있다.
눈을 덮은 바세린 거즈와 입술에 물린 젖은 거즈는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였다.
차디찬 손발을 주무르며 하염없이 남편만 바라보았다. 중환자실의 무거운 공기를 통해 전해져 오는 아내의 슬픔과 아픔은 채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도 안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팠다.
무기력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금요일 새벽.
‘당직 바꾸니까 이 시간에 수술이 뜨네.’
일복 사라지지 않았다.
최철한이 일이 있어 당직을 바꿔 주자 어김없이 수술이 떴다. 한밤중에 시작된 응급 수술을 마치고 나온 김지훈이 힐끗 시계를 보고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뻑뻑했지만 방금 수술한 환자 때문에 킵을 할 전공의가 없었다. 조금 있으면 어차피 나왔을 시간이기도 했다.
‘왜 깨어나지 않을까?’
검사 결과와 차트를 보며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송진우가 조심스럽게 석션을 하고는 조용히 옆에 앉았다.
거의 매일 밤 킵을 하는 송진우였다.
온몸에 피로가 가득했다.
조성민은 거의 모든 수술을 들어가야 하고 입원 환자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 김현철은 급격하게 늘어난 병동 일만으로도 허덕이고 있었다.
시간 맞춰 가며 교대하기에는 환자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이상의 감정과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이 더 강한 요인일 것이다.
“선생님, 거의 밤을 새셨는데 오늘은 쉬시죠.”
도리어 김지훈을 걱정했다.
“난 괜찮아. 너희들이 고생이지.”
중환자실의 하루는 상당히 일찍 시작한다.
환자를 보는 사이 간호사들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일일이 수동으로 바이탈을 다시 확인하고 채혈을 시작했다. 환자가 쏟아 낸 오물을 치우고 기저귀를 채우는 일도 간호사 몫이었다.
눈가에 걸린 피로가 눈에 보였다.
교대 근무를 한다지만 밤을 새며 쌓인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병원에 편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디나 사람이 부족했다.
‘환자가 적어도 인원이 부족하니까 힘들기는 마찬가지네. 보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일까?’
잠시 후 드르륵 소리와 함께 포터블이 들어와 흉부 사진을 찍었다. 임승민 환자는 그마저도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끙끙 힘을 쓰며 촬영을 도와준 송진우가 재빨리 비지에이(aBGA)를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
흉부 사진과 혈액 검사 및 비지에이 결과가 차례차례 나왔다. 눈가를 좁힌 채 검사를 확인하던 김지훈이 눈을 반짝였다.
송진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폐 손상으로 허옇게 보였던 폐 곳곳이 짙어졌다. 좀처럼 올라가지 않던 동맥혈 산소 포화도가 95퍼센트로 모니터에 나타나는 수치보다 높았다. 수혈을 중단한지 며칠이 지났지만 적혈구 수는 도리어 증가했다.
무려 일주일 만에 보인 변화였다.
“진우야, 확실하게 차이가 나지?”
“예. 선생님.”
희망이 보이는 걸까?
바이탈만큼 중요한 부분이 의식 상태다. 혼수상태나 혼미한 의식은 환자의 육신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동공반사를 확인한 김지훈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후우! 일단 의식이 돌아와야 하는데 신경외과 과장님은 특별한 말씀 없으셨어?”
“뇌부종을 억제하는 약물을 썼으니까 내일쯤 CT 다시 찍어 보자고 하셨습니다.”
죽은 듯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하는 환자였지만 확인은 해 봐야 했다. 참기 어려운 통증은 곧 강한 자극이다. 볼펜으로 환자의 엄지발가락을 강하게 눌렀다. 창백한 발가락이 새하얗게 변했다.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으면 반응할 것이다.
반복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엇을 놓친 걸까?
수술 전후로 받은 충격과 손상이 너무 심했다.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
온갖 생각이 떠올랐지만 결국 무력함만이 남았다. 의사의 한계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아릴 정도로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환자가 받은 손상은 눈에 보인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몰랐다. 눈가를 찡그리며 고개를 젓는 순간 송진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 흥분이 가득했다.
“선생님, 손가락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뭐? 진짜야? 자극 줘 봐.”
발가락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강하게 압박했다.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순간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환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확실한 반응이다.
죽은 듯 잠자고 있던 뇌가 깨어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사소한 변화라고 해도 어느 한 부분이 좋아지면 희망은 몇 배가 된다.
가슴이 떨렸다.
이제 시작이지만 희망이 보였다.
벅찰 정도로 흥분한 김지훈과 송진우가 훅 숨을 내뱉었다. 오하석이 부스스한 얼굴로 다가왔다. 송진우가 미소를 지으며 반응이 있다고 말하자 마치 자신의 환자인 것처럼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선생님, 검사 결과도 많이 좋아졌네요.”
의아한 일이었다.
“오하석, 이 환자에 대해 잘 알아?”
“아니요. 중환자실에 내과 환자가 있어서 몇 번 봤을 뿐입니다. 안타까워 죽는 줄 알았는데 회복되는 것 같아서 정말 좋네요.”
송진우가 힐끗 시선을 주었다.
“선생님, 사실은 하석이가 우리 수술 들어갔을 때 시간 되면 킵을 했습니다. 내과 환자도 많지만 다른 환자 볼 때 같이 하면 된다고 해서 허락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오하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응급실에 이어 중환자실에서도 한 방 먹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기특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아닌 게 아니라 송진우만큼 피로한 기색에 눈까지 벌겠다.
“고맙다. 하석이 네 노력이 통한 것 같다.”
“헤헤! 선생님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과장님이신데 킵까지 하시잖아요. 저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감동까지 먹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마터면 손이 올라갈 뻔했다. 다 큰 어른인데 안 될 일이다. 헛기침을 하며 환자에게 눈을 돌리는 순간 중환자실 문가가 소란스러워졌다.
보호자 면회가 시작됐다.
노모와 젊은 아내가 다가왔다.
이른 새벽인데 송진우는 물론 오하석에게도 익숙한 눈길을 주었다. 송진우의 말 이상이었다는 의미였다. 자신이 돌고 있는 내과 환자 킵에 열성을 다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선생님, 매일 밤 이렇게 우리 아들 곁을 지켜 줘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떤가요?”
“선생님, 차도가 있나요?”
환자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쏟아졌다.
벌써 일주일 가까이 흐른 시간에 두려움과 절박함은 더욱 심해졌다. 그런 보호자들에게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밖에 못했었다.
이젠 희망을 줄 수 있었다.
아내와 노모의 간절한 눈길에 답할 수 있었다.
“어머니, 아드님이 자극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눈만 껌벅였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노모가 비틀거렸다.
아내는 손을 달달 떨며 입도 열지 못했다.
한참만에야 남편의 손을 잡았다. 차갑기만 한 손에서 온기라도 찾으려는 듯 손을 놓지 않았다. 남편을 부르는 애타는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렸다.
“여보, 나 왔어요. 눈 좀 떠 봐요.”
김지훈의 눈짓에 송진우가 다시 자극을 주었다.
꿈틀! 꿈틀!
손 안에서 느껴지는 작은 움직임에 아내가 갑자기 줄줄 눈물을 흘렸다. 단지 손가락 하나 움직였을 뿐인데 삐져나오는 울음을 막으려 입을 막은 채 어깨만 들썩거렸다.
침상 밑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눈물이 나올까?
“아이구! 이놈아. 아이구! 이놈아.”
노모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했다.
송진우와 오하석이 눈시울을 붉혔다.
절대 마음이 여린 탓이 아니었다.
띠! 띠! 띠! 띠! 띠! 띠!
아내의 온기와 어머니의 존재를 느낀 것일까?
심장 박동 소리가 더욱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아내의 가슴을 헤집은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물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보다 김지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대구······.”
말을 흐렸다.
어느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보다 큰 병원, 보다 좋은 시설을 찾지 않을까?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다.
“아직은 이송이 힘듭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대구로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노모가 며느리를 보며 머뭇거렸다.
조용히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에미야, 네 마음은 알지만 여기 있자. 병원이 아무리 크면 뭐하니? 의사 선생님들이 우리 애를 옆에서 지키고 보살펴 줘야지. 난 여기 계신 선생님들만 믿어.”
“어머니, 그래도 병원 더 크면······.”
“난 단 한시도 아범 곁을 떠나지 않는 선생님들을 더 믿고 싶구나.”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나 아내나 환자를 위한 마음은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김지훈과 송진우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결정은 의사와 보호자 모두의 몫이었다.
“두 분 다 편하게 생각하세요. 우리 역시 아드님, 남편 분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일주일 만에 보인 변화에 금요일 일과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복강경 두 건을 마지막으로 이번 주 정규 수술을 모두 마쳤다.
휴게실 문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게 열렸다.
김지훈의 화력도 두 배는 더 세졌다.
점심 식사 후,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