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54화 (754/1,329)

4화.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치료다. Ⅰ (1)

환자는 여전히 낭떠러지 끝에 매달려 있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장기 기능과 평형 상태가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균형이 깨진 부분을 찾아 어떻게든 최단시간에 교정해야 한다.

냉정과 침착함을 찾아야 할 때였다.

속속 수술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조성민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4000cc가 넘는 수혈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혈액 소견이 최악이었다. 적혈구, 혈소판, 백혈구 수치가 모두 바닥이었다. 대량 수혈이 가져오는 갖가지 합병증에도 불구하고 수혈을 중단할 수 없었다. 혈소판이 없는 적혈구 농축액은 도움이 되질 않는 상황이었다.

“현철아, 빨리 혈액실 가서 전혈(Whole blood)하고 혈소판 농축액 가져와. 앞으로 많이 필요하니까 혈액 본부에 연락해서 수량 충분하게 확보해 달라고 해.”

병원마다 소량만 비치된 혈액이다.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필요한 양을 적절한 때에 수혈할 수 없을 것이다.

김현철이 다급하게 혈액실로 달려갔다.

“진우야, 비지에이는 어때?”

“산소 포화도 90퍼센트입니다. 혈액 산성화가 심해 비본(bicarbonate) 투여하겠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가 재빨리 수액에 약물을 섞었다.

흉부 사진이 나왔다.

답답한 신음이 터졌다.

우측 폐 4분의 1이 찌그러져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좌측 폐까지 상태가 좋지 못했다. 강한 압력으로 호흡을 유지해야 했지만 폐 수술과 다발성 늑골 골절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주덕현 과장이 심각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인공호흡기 모드를 조정했다.

“조성민, 내 허락 없이 절대 호흡기 모드 바꾸지 마. 밤에 문제 생기면 시간에 관계없이 바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조성민이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드레인을 면밀히 살폈다.

대량 수혈과 다발성 손상으로 감염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였다. 지속적인 출혈은 물론 아무리 사소한 염증이라도 패혈증을 유발할 수 있었다.

“선생님, 아직 출혈 양상이 보입니다. 대장 손상까지 받았으니까 3세대 항생제 사용하겠습니다.”

저체온증 또한 언제 무슨 문제를 만들지 몰랐다. 특히 심장과 뇌에 큰 무리를 가져온다. 송진우가 환자의 몸을 만지며 체온을 확인했다.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간호사, 히터 준비합시다.”

외부 공기만이 아니라 몸속으로 투여되는 수액과 혈액의 낮은 온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수액 라인이 따뜻한 물속을 통과하도록 조치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치명적이지 않은 요소가 없었다.

긴박했던 수술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한동안 환자를 지켜보며 자리를 떠나지 않던 김지훈과 주덕현 과장이 보호자를 만났다. 가슴을 열었지만 간 손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주덕현 과장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결코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상태를 설명했다.

피로 범벅이 된 수술복이 보호자에게 더욱 심한 공포를 불러왔다. 수술을 했음에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에 아내와 노모가 온몸을 덜덜 떨었다.

“선생님, 우리 남편······.”

환자의 아내는 눈물만 뚝뚝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노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겁이 질린 어린 아이들의 울음이 더욱 서럽게 들렸다.

김지훈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지만 죽음과의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신이 아닌 이상.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환자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철한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환자 리스트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응급실 상황과 늘어난 정규 수술은 김지훈의 고생을 짐작하게 했다.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받은 것이 아닐 것이다.

눈가에 걸린 피로와 시뻘게진 눈, 이마에 달라붙은 채 떡이 된 머리카락과 힘에 겨워 처진 어깨.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탓으로 느껴졌다.

“늦게 와서 미안해. 그동안 고생 많이 했지?”

“아닙니다. 주중에는 분위기 좋았는데 이 환자가 걱정이네요. 손상이 너무 심해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테이블 데쓰 안 일어난 게 다행이야.”

주덕현 과장의 말에 최철한이 더욱 미안해했다.

“김 과장, 이번 주말은 내게 맡기고 들어가. 그동안 당직만 서서 제수씨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아닙니다. 환자 안정되는 거 보고 들어가겠습니다.”

35세 남자 환자, 임승민.

이제야 환자 이름과 나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너무 젊었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박동 소리는 여전히 급박했다.

슈우욱! 슈우욱!

인공호흡기는 절대적이었다.

뚝뚝뚝! 뚝뚝뚝!

혈액과 수액은 지금도 대량 투여되고 있었다.

조성민이 오더 몇 개를 추가했다.

한 페이지를 넘게 채운 수십 개의 오더는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똑! 똑! 똑!

간간히 떨어지는 소변 한 방울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콩팥만 제 기능을 유지해 준다면 당장은 버틸 여력이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지만 말이다.

수술이 끝난 지 한 시간이 넘었다.

송진우는 병동 환자를 보러 갔고 조성민이 환자 곁을 지켰다. 김지훈과 최철한 역시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은 알지만 내일도 새로운 환자를 봐야 한다.

“김 과장, 이제 들어가.”

“조금만 더 지켜보겠습니다.”

“성민이하고 내가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고 환자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떠밀리다시피 중환자실에서 나온 김지훈이 관사로 향하다 말고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짙어지는 어둠만큼 마음도 무거웠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하늘을 보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이런 상황과 맞닥뜨릴 때마다 한 가지 고민이 끊이질 않았다.

‘후우! 일석이 말대로 외상 치료도 정말 중요하고 누군가 반드시 맡아야 할 부분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담도나 라파로만이 길은 아닌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환자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치명적인 손상을 받으면 골든 타임(golden time)은 몇 분에서 길어야 한두 시간 정도였다.

오늘 수술한 환자들 모두 운이 좋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체계가 아닌 운에 기대야 한다니 어이없는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 시간을 지켜 낼 의사가 있을까?

의료진은 뒷받침이 될까?

그에 따르는 비용을 모두 감당할 병원이 있을까?

책임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람의 목숨이지만 현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민간 병원에 떠넘길 일이 아니었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는 한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마지막 기회조차 잡지 못할 것이다.

심각한 외상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의사의 길은 그 어떤 길보다 가혹할 수밖에 없다.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만 해도 고경아가 관사로 갔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다시 발길을 돌렸다.

송진우가 벌떡 일어났다.

눈가에 피로가 가득했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환자는 지금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정식으로 근무를 시작하는 최철한, 치프인 조성민, 송진우, 김현철을 믿을 뿐이었다. 환자의 의지와 의료진의 땀과 눈물만이 환자를 살릴 것이다.

문득 중환자실을 거쳐 간 수많은 환자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많은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삶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전쟁이다.

이런 전쟁은 결코 원치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 벌어진 싸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사람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은 하늘 아래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고경아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김지훈과 커피 한 잔 나누며 환자 상태만 물어볼 뿐이었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다 불현듯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했던 해운대 밤바다!

임승민 환자를 최철한이 수술했다면 최소한 주말 오프는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집도의는 김지훈 자신이었고 환자가 일주일 안에 회복될 가능성은 없었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두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분간 포기해야 하나?’

씁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경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났다. 환자만큼 중요한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의업의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든든한 후원이자 원동력이다.

지난 한 달간 내리 당직을 섰다.

이제 두 명이 근무한다.

과장도 최철한이 하게 될 것이다.

기계가 아닌 이상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해해 주고 할 만큼 한 고경아였기에 무엇보다도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경아 씨, 다음 주에 꼭 갑시다. 약속할 게요.”

“해운대요? 아쉽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오늘 수술한 환자가 좋아져야 갈 수 있지 않겠어요?”

한 가지 부담과 걱정을 덜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 단점만큼 장점도 많다지만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고경아의 넓은 마음과 이해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철 심장과 얼음처럼 냉정한 머리를 가졌다고 해도 중환자실 환자는 의사에게 막대한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적응되는 일이 아니다.

잠을 설쳤다.

악몽을 꾸다 소스라치게 놀라 깼다. 창밖으로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심장이 뛰었다. 외과 의사 수명 짧다는 소리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월요일 새벽.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에 옷깃을 여며야 했다.

중환자실에 들른 김지훈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킵을 하고 있는 송진우를 보면서 가벼운 미소만 머금었다. 꽤 이른 시간이지만 김현철은 이미 아침 일과를 시작했을 것이다.

“선생님,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잠이 안 와서 일찍 나왔어.”

온갖 기계음 속에서도 임승민 환자의 상태를 알려 주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띠띠띠띠띠!

다행히 심장박동이 조금은 안정됐다.

“드레인은 어때?”

“흉부 쪽은 멈춘 양상이고 복부 드레인으로는 여전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수혈 중이다.

5000cc 가까이 투여했다. 몸속의 피를 한 번 이상 갈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대량 수혈은 심각한 혈소판 저하를 유발한다.

더구나 간이 상당 부분 깨진 이상 한동안 우징(손상 조직에서 피가 새 나오는 양상)이 지속될 것이다. 우징이라고 해도 손상이 크면 출혈량이 만만치 않아 더 문제였다.

인공호흡기로도 호흡이 가쁜지 산소 포화도는 90퍼센트를 간신히 지키고 있었다. 폐 손상과 다발성 늑골 골절이 상당한 기간 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의식은?”

“지금도 코마(coma:혼수) 상태입니다. 혹시 몰라 응급으로 브레인 시티(brain CT)를 다시 촬영했는데 다행히 뇌출혈은 없습니다.”

“파이팅이나 움직임이 전혀 없단 말이지?”

갑갑한 한숨을 내쉬며 말이 없었다.

솔직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손상을 받고 지금까지 버텨 낸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웠다. 심정지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차근차근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바이탈이 흔들렸다.

수술 직후에서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도리어 수술 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코마의 원인이 뭘까?’

머리에 가해진 강한 충격은 뇌출혈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의식을 저하시킬 수 있다. CT로 확인하기 힘든 뇌진탕이나 뇌좌상이 동반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지나친 혈압 저하로 인한 저산소증이 원인이라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간과 폐와 뇌.

외상 환자에게 최악의 경우인 다발성 장기 손상에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의사의 노력보다 환자의 삶에 대한 애착과 의지가 더 필요한 시점일지도 몰랐다.

보호자를 만났다.

지난밤 한잠도 못 잔 얼굴이었다.

설명하는 내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했지만 환자는 사랑하는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였다. 기계와 약물에 의지해 숨을 지탱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을 불러오고 있었다.

“선생님, 대구로 가면 안 될까요?”

눈물 젖은 눈만큼 힘없는 목소리였다.

차마 반대할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지금도 이송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옮길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는 중환자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한동안 환자 곁을 지키던 김지훈이 송진우의 어깨를 툭 치고는 응급실로 향했다. 최철한과 함께 보고를 받고 과장 회의에 참석한 후 회진을 돌았다.

내내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최철한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웃어야 한다. 새로 온 사람에 대한 예의다. 의사의 삶에 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