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53화 (753/1,329)

3화. 반드시 살려야 한다. (2)

모든 의료진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혈압 다시 체크하고 소변 나오나 확인해. 간호사, 마취 시작되면 벤틸레이터(Ventilator:인공호흡기) 바로 연결할 거니까 주사제 준비하고 대기해요. 산소 풀(full)로 유지해.”

응급실보다 더한 급박함에 김지훈이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평정을 잃으면 정작 수술 중 생각지도 못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심장박동 수가 떨어지질 않았다.

심전도 그래프가 미친 듯 날뛰었다.

심장에 무리가 오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여기서 지치면 심장은 한순간에 정지한다.

‘제발 버텨!’

하얗게 탈색된 피부에 입안이 바짝 말라들었다. 환자의 심장을 따라 김지훈의 심장도 거칠게 뛰었다. 그 순간 박동 소리가 느려지는 것 같았다.

환자가 마지막 힘을 냈다.

삶의 몸부림이자 의지였다.

“과장님, 90, 아니 95 이상에서 잡힙니다.”

드디어 마취가 가능해졌다.

단 한 번뿐인 기회가 주어졌다.

“마취 시작하자. 김 과장. 의식이 없어, 바로 시작해.”

인공호흡기가 연결되자마자 호흡 마취가 이어졌다.

고경아가 재빨리 메스를 건넸다.

곧바로 복부를 절개했다.

주우욱! 주우욱!

단번에 복막이 보일 정도로 깊숙하게 열었다. 절개된 복벽은 창백했고 피 한 방울 비치지 않았다. 모든 혈액이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장기에 몰린 것이다.

시간이 끌린 만큼 수술 중 사망 확률은 더욱 높아졌다. 일 초라는 시간마저 아까운 상황이었다. 손을 내밀기가 무섭게 고경아가 필요한 기구를 건넸다.

가위로 복막을 한 번에 잘라 냈다.

배 속을 가득 채운 시뻘건 피만 보였다.

순간 복압이 감소하며 혈압이 다시 떨어졌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삐이익! 삐이익!

모니터가 숨 가쁜 비명을 질렀다.

환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분명한 경고였다.

여기서 멈춘다면 환자를 죽이는 것이다.

김지훈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수술 계속 진행합니다.”

“바이탈은 우리에게 맡기고 계속 진행해.”

이용철 과장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혈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수액 주입 속도는 적당한지, 소변은 나오는지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피를 짜는 인턴들의 손이 하얗게 탈색될 지경이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대기하던 주덕현 과장까지 모든 의료진이 한 명의 환자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석션, 이리게이션.”

벌겋게 물든 물로 가득 찬 석션 통이 출렁거렸다. 수술실 바닥에 피에 젖은 거즈와 탭이 수북하게 쌓여 갔다. 폐출혈까지 생각하면 굵은 호스로 피를 빼고 있는 상황과 다름이 없었다.

피에 잠겼던 장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방울의 혈액도 흐르지 않는 듯 하얗게 변해 있었다. 생각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핵심 부위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무조건 출혈부터 잡아야 한다.

김지훈이 빠르게 장기를 확인했다.

우측 간 손상이 섬뜩할 정도로 심각했다. 여기저기 깊게 갈라진 간 조직 사이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설상가상 대장까지 터져 있었다.

‘간을 자르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 일단 간부터 봉합하고 대장은 흉부 수술 후에 처리하자.’

간 내부 동맥 손상이 있다고 해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봉합을 통한 출혈 부위 압박뿐이었다. 담도 손상은 아예 무시해야 했다.

“간 봉합합니다.”

은빛 바늘을 간 깊숙한 곳까지 찔러 넣었다. 간 내 중요 구조물이 전하는 감촉을 느끼며 가능한 한 빠르고 최대한 깊게 수처했다.

“타이.”

조성민이 입술을 꽉 문 채 빠르게 타이했다.

파열된 간이 단단하게 조여졌다. 간을 파고든 실을 따라 피가 스멀스멀 새 나왔다.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출혈이었고 신경 쓸 때도 아니었다.

“타이 끊어지지 않게 조심해.”

수처와 타이가 반복됐다.

꽉 조여진 굵은 실이 출혈 부위를 압박했지만 손상 부위가 너무 심각하고 광범위했다. 배 속에서 손을 빼낼 때마다 장갑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송진우가 쉬지 않고 피를 닦아 내며 시야 확보에 주력했다. 타이가 끝난 후 이리게이션을 할 때마다 식염수가 붉게 물들었다.

우측 간 전면부가 형체를 잡아 갔다.

‘왜 출혈량이 줄지 않는 것 같지? 혹시?’

간 후면부에 손을 집어넣은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면 못지않은 깊은 손상이 동반돼 있었다.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집도의에게 사각지대로 남는 부위다.

퍼스트도 온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없다.

간은 배 속에서 가장 큰 장기인데다 후면과 상부는 횡격막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공간마저 없어 손을 넣기조차 힘들다. 수처는 물론 타이도 보통 경험이 아니면 정확하게 할 수 없다. 혼자 모든 과정을 진행하면 몇 배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물며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다.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간 후면 깊숙이 손을 집어넣었다. 손상 부위에 바늘을 찔러 넣기도 힘들었다. 언뜻 보이는 바늘 끝과 전해지는 감촉에 의지해 간신히 한 바늘 떴다.

실을 잡던 조성민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타이할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김 과장, 혈압 다시 떨어진다. 서둘러.”

“조성민, 타이할 수 있겠어?”

손을 뻗다 말고 주춤거렸다.

두려움이다.

무리한 진행은 필연적으로 실수를 유발한다. 이런 상태에서 조성민에게 극도로 어려운 타이를 맡길 수 없었다.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상황이기에 탓할 수 없었다.

생각하고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환자를 덮치듯 몸을 기울였다.

곧바로 실을 잡았다. 자세가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실수를 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실수 없이 간을 묶어 내야 했다.

‘후면 출혈을 못 잡으면 끝이다.’

긴장과 두려움이 동시에 다가왔다.

그때 수술실 문이 덜컥 열렸다.

“김 과장.”

최철한의 목소리였다.

본능적으로 소리 질렀다.

“빨리 들어오세요.”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삐이이! 삐이이!

모니터가 비명을 질렀다.

최철한을 기다릴 틈이 없었다.

실매듭을 만들고 그대로 밀었다. 조각나다시피 손상을 입은 간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매듭을 조였다. 가장 적절한 순간에 멈춰야 한다.

눈가를 찡그린 채 집중하던 김지훈이 손을 뺐다. 간을 밑으로 눌러 타이를 확인했다. 매듭이 간신히 보일 지경이었지만 정확하게 간을 조이고 있었다.

일단 첫 난관은 넘었다.

송진우가 이를 악물었다.

‘저런 실력이 있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살릴 수 없어. 수술 방에 올릴 생각도 못했을 거야.’

수술 팀의 잡념은 곧 환자의 사망이었다.

생각도 잠시 곧바로 수술에 집중했다.

최철한이 퍼스트 자리에 섰다.

김지훈이 모든 감각을 동원해 간 후면을 수처했다. 곧바로 손이 들어왔다. 결코 녹슬지 않았다. 급박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확하고 안전하게 타이했다.

“두 바늘만 더 뜨면 됩니다.”

손상 부위는 점점 깊어졌고 간을 통과하는 바늘과 실매듭은 보이지도 않았다. 한계 상황이었다. 지금도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결코 멈출 수 없었다.

단 두 바늘에 땀이 흥건하게 맺혔다.

마침내 파열됐던 간 조직을 모두 봉합했다.

긴장으로 입안은 바짝 마른 지 오래였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출혈을 잡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수술 팀의 시선이 간에 고정됐다.

‘간 동맥 손상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김지훈의 눈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간 속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최악의 경우를 피했고 출혈을 잡았다는 징후였다. 그러나 급박한 모니터 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출혈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남은 부위는 단 하나지만 치명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간 출혈은 어느 정도 잡혔습니다. 폐 쪽은 어때요?”

흉부도관에서 눈에 떼지 못하던 주덕현 과장이 이를 악물었다. 여전히 튜브를 따라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병 하나가 피로 가득 찼다.

“최대한 빨리 열어야 해.”

“알겠습니다. 마취과, 대장 봉합은 폐 수술이 끝난 후 진행하겠습니다. 선생님, 바로 가슴 열죠.”

젖은 천으로 대장과 절개창을 단단히 보호하고 주덕현 과장과 재빨리 자리를 바꿨다. 최철한이 세컨 자리에 서고 조성민이 빠져 나왔다.

눈가를 찌푸리며 얼굴을 피지 못했다.

‘최철한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심한 두려움과 자괴감에 몸을 떨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소장 파열 수술을 하며 잠시나마 느꼈던 미세한 자만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흉부외과 수술이 시작됐다.

바이탈을 다루는 흉부외과 과장답게 주덕현 과장 역시 과감했다.

단번에 가슴을 열었다.

빠르게 갈비뼈 일부를 제거했다.

빠가각! 빠가각!

뼈 잘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갈비뼈 사이에 위치하는 근육을 열었다.

리트랙터를 걸고 힘을 주는 순간 우두둑 우두둑 뼈 어긋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골절 치료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가슴을 벌리자 벌겋게 피멍이 든 폐가 드러났다.

강제 호흡을 따라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골절이 걱정될 정도로 강하게 갈비뼈 사이를 더욱 크게 벌렸다.

출혈 부위가 보였다.

부러진 뼈가 폐를 찌른 것이 원인이었다.

폐를 닦을 때마다 거즈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공기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폐가 심하게 움직였다. 이 상태로는 정확하게 수처할 수 없다.

“마취과, 인공호흡기 멈춰 주세요.”

가뜩이나 산소 포화도가 낮은 상태였다.

일분일초를 다퉈야 했다.

흉부외과 과장이 수처를 하기 무섭게 김지훈이 곧바로 타이했다. 빠른 손놀림을 따라 폐 조직이 강하게 조여졌다. 순식간에 열 바늘을 넘게 꿰맸다.

장갑에 묻은 피가 마를 사이가 없었다.

“호흡 재개해 주십시오.”

슈우욱! 슈우욱!

폐가 팽창하고 줄어들기를 다시 반복했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여전히 심장은 헐떡이고 있었다.

김지훈과 주덕현 과장이 흉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대로 봉합되지 않았거나 출혈이 지속되고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다시 찰 것이다.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멈추지 않으면 환자는 사망이다.

몇 장의 거즈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시 몇 장의 거즈로 흉강을 닦았다.

피가 묻지 않는 부분이 보였다.

마침내 확연하게 양이 줄기 시작했다.

손상 부위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바늘 자국을 따라 새는 공기는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막힐 것이다.

환자가 회복된다면 말이다.

“마취과, 바이탈 어떻습니까?”

“불안정합니다. 최대한 빨리 끝냅시다.”

이용철 과장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흉부를 닫으며 골절 부위를 고정하지도 못했다. 치료 내내 두고두고 문제가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최철한이 있어 빠르게 대장 파열을 해결할 수 있었다.

배 속을 몇 번이나 씻어 냈지만 여전히 벌겋게 물들었다. 혈관에서 빠져나온 피는 감염원으로 작용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배 속에 고인 피는 드레인으로 흉강에 남은 피는 흉부도관을 통해 빠져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송진우, 먼저 나가서 중환자실 베드 준비해.”

길게 난 절개창을 빠르게 닫았다.

할 수 있는 처치는 다 했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대량 수혈을 비롯해 바이탈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치료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버텨 준 것만 해도 천운이었다.

마지막 봉합이 끝나자마자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겼다. 기도에 삽입된 튜브를 뺄 수 없었다. 환자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 중 어느 하나도 제거할 수 없었다.

모두 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장치였다.

드르륵!

“환자 갑니다. 비켜 주세요.”

허투루 소비할 시간은 단 일 초도 없었다.

아내와 노모에게 설명할 여유마저 없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혈압 85에 60, 맥박 135회, 소변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동공반사 미약합니다. 의식 상태는 스투퍼(stupor:혼미 즉 혼수의 전 단계) 내지는 코마(혼수)입니다.”

송진우의 보고에 수술하는 내내 온 신경을 집중시켰던 수술 팀의 긴장이 또다시 치솟았다.

이제 환자의 목숨은 바이탈에 달렸다.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안정돼야 비로소 장기 기능이 유지된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의식도 마찬가지였다.

송진우가 바짝 붙어 사소한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출혈을 잡았건만 변화는 없었다.

몸속 혈액은 여전히 부족했고 호흡은 충분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치료 방법, 해야 하는 치료가 모두 동원됐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약물을 때려 부었다.

“간호사, 라식스 두 개 투여하세요.”

수술 후 부종은 치명적이다. 이 상황에서 뇌와 폐에 물까지 차면 100퍼센트 사망이었다. 단 한 방울의 소변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똑! 똑! 똑!

간간히 한 방울씩 떨어졌다.

유일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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