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52화 (752/1,329)

3화. 반드시 살려야 한다. (1)

최철한이 온다던 그 시간, 11월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할 때 환자 두 명이 앰뷸런스에 실려 들어왔다.

공사장 사고였다.

허술하게 쌓아 놓은 자재가 두 사람을 덮쳤다.

서울보다 이런 종류의 사고가 확실히 많았지만 공장이 많은 구미 지역의 특성만은 아닐 것이다. 예전 산재 처리가 안 돼 고생했던 환자까지 떠올랐다.

‘안전 펜스는 설치 안 하나? 이 환자들 산재 처리는 제대로 처리될까?’

여기저기 골절이 동반됐지만 당장 수술을 요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가장 급한 문제는 일반외과 영역의 손상이었다. 한 명은 비장이 깨지고 남은 한 명은 장 어딘가가 터졌다.

응급 처치와 검사가 동시에 진행됐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보호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먼저 치료 받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우선순위는 분명했다. 골절 부위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목숨이 좌우되는 손상, 비장 파열이 최우선이었다.

대구로 간다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바이탈을 잡자마자 수술실로 직행했다.

주변 손상이 제법 심했지만 핵심은 비장 출혈을 막는 것이다. 눈도 돌리지 않고 비장 동맥을 잡는 과정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

따르륵! 따가각!

“동맥 잡습니다.”

순식간에 동맥을 묶었다.

“바이탈 어떻습니까?”

“안정적입니다.”

“주변 손상 확인하고 끝내겠습니다.”

조성민이 혀를 내둘렀다.

감히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빠르고 깔끔했다. 수술복에 묻은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장 파열 환자를 이어 수술했다.

소장 두 부위가 파열됐다.

주요 장기는 손상을 피했다.

이 와중에도 과장으로서 수련을 잊지 않았다.

“조성민, 시작해.”

수술 내내 긴장에 긴장이 이어졌다. 비록 한 달 언저리에 불과했지만 혹독한 수련을 거친 덕에 만족스러울 정도로 잘 끝냈다.

두 건의 수술이 끝나자 창밖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오프인 김현철이 수술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치프가 챙겨야 할 사람은 환자만이 아니다.

“현철아, 오늘 분위기 심상치 않다. 오프 빨리 가.”

“수술 기록도 다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송진우가 손을 저었다.

“내가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성민 선생님 마음 변하시거나 환자 한 명 더 뜨면 너 오늘 중에 못 간다.”

찜찜한 표정을 짓던 김현철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부리나케 사라졌다. 일주일 내내 고생했다. 1년차 평일 오프는 오프라고 할 수도 없었다. 주말 오프를 맞아 숙소 구석에 숨어 잠부터 잘 것이다.

“진우야, 이 환자 보고 있어. 성민아, 비장 파열 환자 보러 가자. 주변 손상이 꽤 심했는데 드레인이 어떨지 모르겠다.”

오늘은 타지 않는 날인 모양이었다.

연이어진 환자에 김지훈도 조성민과 단독 면담을 곧바로 갖지 못했다. 한숨 돌리며 회복을 지켜보던 중 또 다시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내과, 소아과 환자들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던 응급실이 잠잠해지는 시간도 잠시였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피 더 갖고 와요. 일반외과 선생님은 연락 안 됐어요? 흉부외과도 빨리 연락해 주세요.”

쉬지 않고 들리는 심박동 소리만큼 응급실 인턴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이미 기관 내 삽관까지 한 상태였다. 튜브를 통해 석션할 때마다 울컥울컥 피가 딸려 나왔다. 수액과 혈액을 연결하는 간호사의 손이 급했다.

응급실에 상주하는 의료진이 모두 달려들었다. 인원이 부족한 탓에 다른 환자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지만 간호사까지 피를 짜야 했다.

“어레스트(arrest) 대비합시다.”

삐이이이!

제세동기 충전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송진우가 다급하게 처치실로 달려갔다.

조성민이 곧바로 차트와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35세 남자 환자, 임승민.

또 안전사고다.

오늘만 세 번째 환자다.

운전 중 중앙선을 넘은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가해 차량은 음주 운전이었다. 가족이 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얼마나 다쳤는지, 어느 병원으로 이송됐는지 모르지만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강바닥에 떨어져도 고쳐지지 않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구성원 모두의 안전 불감증이 만들어내 상처다. 더구나 음주 운전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범죄행위다.

안전을 등한히 한 사람이 준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머리가 깨지고 여기저기 찢어져 피가 줄줄 흘렀다. 상처를 단단히 동여맨 압박 붕대가 뻘겋게 물들었다. 보호자들이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 정도는 문제 축에도 못 들었다.

우측 갈비뼈가 줄줄이 부러졌다.

구멍 난 폐는 찌그러져 환자의 호흡을 가쁘게 했고 출혈까지 유발해 흉강에 피가 잔뜩 고였다.

복부 시티를 거는 순간 답답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간까지 깨졌다.

흉강과 배 속을 가득 채운 피는 시시각각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외과 의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다발성 장기 손상이었다. 그것도 간과 폐다. 수술 방은 올라가지도 못하고 응급실에서 사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퍼졌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혈압 80, 박동 수 145회입니다. 의식 없습니다.”

“인턴 선생, 피 더 시켜. 송진우, 흉부 도관 박아. 조성민, 브레인 CT 확인하고 어떻게든 혈압 올려. 간호사, 빨리 수술 준비합니다. 보호자는 어디 있어요?”

초비상이다.

치명적인 상태다.

설명을 듣던 환자의 아내가 주저앉았다. 노모는 사망 가능성 언급에 넋을 놓았고 어린 아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겁에 질려 울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이었다.

보호자들을 진정시킬 여유가 없었다.

“바이탈 어때?”

“혈압이 오르지 않습니다.”

우측 흉강에 박힌 흉부 도관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멈추질 않았다. 이미 1500cc가 넘게 수혈했지만 출혈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깨진 간은 또 얼마나 많은 출혈을 야기하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김지훈까지 환자 처치에 합류했다.

급히 달려 나온 주덕현 과장이 흉부도관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가슴을 열고 출혈을 잡아야 할 상황이었다.

“보호자 분, 계속 피가 나오면 가슴을 열고 출혈 부위를 잡아야 합니다. 간 손상까지 있어서 수술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절망적인 말이 이어졌다.

의사로서는 피할 수 없는 말이었다.

간 파열에 출혈성 폐 손상까지 동반됐다.

피를 밀어 넣다시피 수혈하고 있지만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인데 다발성 늑골 골절은 환자의 호흡마저 점점 어렵게 했다. 기관에 삽입된 튜브와 연결된 앰부(공기 주머니)를 짜는 손이 하얗게 변했다.

뿌우욱! 삐이익!

불규칙한 환자의 호흡과 강제 호흡이 충돌하며 공기 새는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바이탈은 물론 의식 상태까지 좋지 않아 안정제도 함부로 투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숨 가쁠 정도로 심장이 헐떡거렸다.

“산소 포화도 떨어진다. 튜브 석션해.”

적지 않은 양의 피가 끌려 나왔다.

조성민이 매서운 눈으로 환자 상태를 살피며 필요한 조치를 모두 취했다. 송진우와 인턴들이 모두 달라붙어 호흡을 유지시키고 수액과 피를 짰지만 바이탈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과장님, 이대로 지켜보면 손도 못 쓸 것 같습니다. 당장 여는 게 좋겠습니다.”

“이 상태에서 수술하자고? 김 과장, 바이탈이 너무 흔들려. 배를 여는 순간 혈압이 잡히지 않을 거야. 그 상황에서 가슴까지 열면 자칫······.”

말을 흐렸지만 무슨 말을 할지 모를 수가 없었다.

Table Death(수술 중 사망).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웠던 단어, 일반외과와 흉부외과 의사라면 결코 잊거나 무시할 수 없는 단어가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환자는 아직 살아 있다.

최대한 빠르게 출혈을 잡지 못하면 손도 못 써 보고 잃을 것이다. 꺼져가는 생의 촛불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책임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마취만 가능하면 지금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주덕현 과장이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간 수술로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폐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면 가슴까지 열어야 한다. 철저하게 준비해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하물며 바이탈이 흔들리는 환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가슴 열 때 김 과장이 도와줄 수 있지?”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손이 필요했다. 수술을 잘한다고 해도 다른 과 영역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그간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 대구로 보내야 했다.

김지훈이 숨도 쉬지 않았다.

“변상훈 과장님과 여러 번 수술했습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어떤 문제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과 다급함만 절절히 묻어 있었다. 누구에게 최종 책임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다. 지금이야말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주덕현 과장의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흉부외과를 택한 후 처음 가슴을 열었을 때의 치열했던 열정과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살릴 수 없을 지라도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자.’

“좋아. 수술하자. 송진우 선생, 바이탈 어때?”

“80 이하에서 잡힙니다.”

“90까지만 올리자.”

마취가 가능한 최소 요건이다.

모든 의료진이 달려들어 혈액과 수액과 약물을 쏟아부었다. 수혈만 3000cc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지탱하지 못하면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제세동기 사용은 절망일 뿐이었다.

김지훈은 이미 이용철 과장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공의에게 맡길 환자가 아니었다.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을 갖춘 마취과 의사의 능력이 필요했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간호사에게 연락하고 나갈 테니까 준비되는 대로 환자 올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혈압 90까지 올려야 돼.)

수술 방 간호사도 중요했다. 불행히도 일반외과 전담인 이 간호사는 당직이 아니었다. 고경아에게 연락했다.

(지금 나갈게요.)

수술 스케줄은 필요 없었다. 마취가 가능해지는 즉시 수술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노모와 아내의 눈에 공포만이 보였다.

“보호자 분, 동의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는 기회라도 잡을 수 있습니다.”

“대구로 가면 안 될까요?”

“가는 도중에 사망합니다. 우리를 믿고 동의해 주세요.”

끔찍한 말이었다.

아내가 달달 떨리는 손으로 지장을 찍었다.

남은 일은 단 하나, 혈압을 올리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처치, 필요한 치료는 모두 다 했지만 10mmHg에 불과한 차이가 넘을 수 없는 한계처럼 작용했다.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가운이 피와 땀으로 젖어 들었다.

위이이잉!

혈압계에 공기가 주입되며 모니터 숫자가 빠르게 바뀌었다. 심장박동 소리가 다시 들리며 혈압이 체크됐다.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던 송진우가 눈을 부릅떴다.

“85. 아니, 90에서 잡힙니다.

“다시 체크해.”

“역시 90에서 잡힙니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환자 올립시다. 인턴 선생, 환자 옆에 붙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술 방으로 달려갔다. 간이침대에 실려 옮겨지는 환자의 손이 덜렁덜렁 흔들렸다. 송진우와 인턴은 지금도 혈액 팩을 짜고 있었다.

아내의 넋이 나갔다.

“선생님, 우리 남편 꼭 살려 주세요.”

그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아내와 노모의 눈물을 뒤로 한 김지훈과 조성민이 온기 하나 없는 복도를 달렸다. 이동하는 중에 벌어질지 모르는 사소한 변화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송진우가 환자 옆에 바짝 붙었다.

수술 방이 삽시간에 긴장으로 가득 찼다.

“혈압 80에서 잡혀요.”

환자는 불과 이삼 분도 버티지 못했다.

“김 과장, 이 상태에서는 마취 못한다. 송진우, 손 나중에 닦고 피부터 짜. 간호사, 인턴 선생 빨리 불러요.”

다급히 달려온 마취과 인턴도 모자라 주덕현 과장까지 달라붙었다. 수술실까지 왔지만 응급실의 연장이었다. 수술 중 사망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김지훈이 입을 꽉 다문 채 눈가에 힘을 주었다.

‘환자 분, 제발 힘냅시다.’

혈압이 다시 90까지 올라야 한다.

마취를 시작할 수 있는 최소 수치다.

초조함에 입이 말라왔다.

바이탈이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두고 볼 수 없는지 조성민이 움찔거렸다.

김지훈이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성민, 바이탈은 마취과에게 맡기고 대기해.”

인원은 더 이상 필요 없었고 움직일 공간도 없다. 더구나 마취가 시작되는 순간 동시에 배를 열어야 한다. 단 일 초라도 아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취해야 할 때였다.

복부와 흉부 소독을 모두 끝냈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아직도 혈압은 오르지 않았다.

단 한 번뿐이라도 좋으니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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