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47화 (747/1,329)

10화. 당당하게. Ⅱ (2)

송재덕 교수는 입술을 모은 채 말이 없었다.

역시 동료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배수진, 승부수, 무리한 시도.

긍정적인 말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하윤호에 대한 송재덕 교수와 일반외과 교수들의 평가와 책임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것이다.

그럴 듯한 말 때문이 아니었다.

평소 보였던 태도와 한 마디 말, 그리고 동료와 환자를 대하는 자세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내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권위나 내용이 없는 말은 어떤 믿음도, 인정도 받지 못하는 법이다. 하성원 원장과 하윤호는 자신이 뿌린 대로 거뒀을 뿐이었다.

‘미친놈들. 내가 이대로 무너질 줄 알아?’

하성원 원장의 눈에 분노와 함께 불안감이 감돌았다.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는 모습을 보던 송재덕 교수가 전화기를 잡았다.

“이 과장, 해임으로 결정 났다. 지훈이 왔지?”

(예. 방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잘됐다. 함께 상의해야 하니까 다 같이 내려와. 현수하고 경석이 빼먹지 말고. 후우! 속이 다 후련한데 이제 하나 넘었을 뿐이다. 하나. 나머지를 넘어야 끝나는 건데 잘되겠지? 잘될 거야. 시간 없으니까 빨리 내려와. 빨리.”

초조한 얼굴과는 달리 이미 결론 났다는 말투였다. 재심 위원 전체가 동의했다는 사실 자체로 이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잠시 후 김지훈과 함께 뜻밖의 얼굴이 보였다.

맨 뒤에 손일석이 뒤따르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입을 꾹 다문 채 심각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단순히 인사 왔다가 얼떨결에 따라온 표정이 아니었다. 인연이 깊다고 해도 함께 할 자리가 아니었지만 교수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신동철 이사장과 이사 및 몇몇 사람만 알고 있던 하성원 원장 문제는 더 이상 숨길 일이 아니었다. 신상민 교수와 양승철 교수도 함께 자리했다.

송재덕 교수가 김지훈을 보며 웃었다.

“전원 동의로 처리했으니까 이사회에서도 그대로 통과될 거야. 하윤호 문제는 머릿속에서 지우자. 남은 문제는 하성원 원장이야.”

교수들 모두 담담했다.

이경석이 깜짝 놀랐다. 상당한 관련이 있는 박승준 교수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열지 못했다. 김지훈과 신현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귀를 바짝 기울였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하성원 원장의 전횡, 직권남용, 직무 유기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태야. 하윤호 문제도 도를 넘었어.”

이혁민 교수가 조용히 물었다.

“이사회에서 논의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어떤 제안을 하셨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해임됐으면 하지만 몇몇 이사들과 이해관계가 맞물렸나 봐. 이사장님도 무리라고 하셨어. 그래서 권고사직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어떨까 해.”

“결과야 다르지 않지만 가능하겠습니까?”

송재덕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야. 아홉 명 중에 네 명만 반대해도 하성원 원장은 못 잘라. 하지만 이사장님께서 먼저 나섰을 때는 뭔가 복안이 있다는 소리잖아. 지훈이 너한테 뭘 물으실지 모르겠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이경석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렇게 중대한 일을 알고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안개처럼 희미한 일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었고 이유가 있기에 비밀에 부쳤을 것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짐작해 보면 하윤호와 관계된 일밖에 없지 않겠어? 원장실에 끌려가 들은 얘기도 있을 거 아냐? 지훈아, 교수야, 아는 선에서 당당하게 대답하면 돼.”

“알겠습니다.”

하윤호 징계 건이 끝도 없이 확대됐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일반외과 교수들이 모인 사이 하성원 원장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 이사들과 접촉했다.

‘한 놈도 빠짐없이 동의를 해? 죽일 놈들. 일단 나부터 살아야 해. 이 위기만 넘기면 이사장도 임기 중에는 날 어쩌지 못해. 어차피 내년으로 끝인데 인사이동 때 오늘 본 놈들은 어떻게든 모조리 보직에서 해임하고 만다.’

일식집에서 만난 이사 세 명.

그 자리에서 거론된 권 이사와 차 이사.

정승옥과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양 회장까지.

보이는 대로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올바른 결정을 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하윤호의 해임을 거론했지만 결국 자신의 대한 변명과 살려 달라는 호소였다.

네 명, 단 네 명만 자신의 편에 서면 권위에 흠집은 날지언정 원장 자리를 고수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허울만 남는다고 해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과 쫓겨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명함을 뒤져가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과 통화를 했다. 그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도와줄지는 결과가 알려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들이 속속 회의실로 들어갔다. 중간에 도착한 신동철 이사장과 윤재철 이사는 하성원 원장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깟 사소한 일들 때문에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자리가 주는 힘이 취해 은연중 혹은 스쳐 지나가 듯 들려온 경고를 무시한 탓이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윤호의 해임은 중앙 의료원 원장의 신변 문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맥을 이용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일은 하성원 원장, 자신만의 일도 아니었다.

신동철 이사장이 눈가를 좁혔다.

사안이 중대해 자문을 맡은 인사들의 배석을 요청했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보인 탓이었다. 이사장이라고 해도 병원과 이사회를 손안에 잡고 주무를 수는 없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었다.

장점이 많다고 해서 단점까지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김 이사와 오 이사가 추천한 사람인 모양인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지 않군.’

징계 결과를 받아든 이사들 모두 심각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부담스러운 일이 분명했다. 신동철 이사장의 입이 열릴 때까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윤호 해임 건부터 안건에 부쳤다.

“별 사유도 없는데 해임까지 해야 하는 문제입니까?”

“재심까지 벌여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입니다. 우리가 반대할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실력이 없다고 하지만 저쪽에 계신 양 회장님 자제 분도 만족스러운 치료를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 정 차관님도 직접 수술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마찬가지고요.”

“아니죠. 올라온 보고서를 보면 연수를 다녀왔다는 사실 자체도 의문입니다. 문제만 안 생겼다 뿐이지 펠로우의 도움이 절대적인 것 같지 않습니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탓인지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아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기 때문이었다. 해임 반대 쪽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나 하성원 원장이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권 이사와 차 이사는 마지막까지 손을 들어 주지 않았다.

매서운 눈으로 찬반을 표하는 이사들을 보며 묵묵히 듣고 있던 신동철 이사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결정해야 할 사안이 두 가지입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먼저 하윤호 교수 문제부터 결정했으면 합니다. 교직원 해임은 우리 병원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이나 친분에 연연하면 안 될 겁니다.”

윤서연이 아버지이자 이사장 못지않은 지분을 가진 윤재철이 손을 들었다. 위를 모두 잘라 내는 수술을 받은 탓에 많이 야위었다. 그 탓인지 눈빛은 도리어 더 날카롭고 깊어진 것 같았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교수직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만일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병원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겁니다. 저는 권 이사님과 차 이사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해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도 윤 이사님 말씀에 십분 동감합니다. 다른 이사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총무 부장님, 미안하지만 자료 배포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반대하기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총무 부장이 나누어 준 자료를 확인하는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김지훈과 하윤호의 실적이었다.

펠로우와 전임강사,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경험과 연륜의 차이가 무색했다. 미국 연수까지 다녀왔다는 하윤호의 실적은 참담 그 자체였다. 반면 펠로우인 김지훈의 실적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김지훈이 누군데 어떻게 이런 실적을 낼 수 있지? 복강경부터 암 수술까지 못하는 수술이 없고 도대체 하루에 몇 건을 수술한 거야?’

‘흐음! 이걸 보고도 편을 들어주다간 도리어 망신살만 뻗치겠어. 하 원장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한 거지?’

단 두 장의 종이 위에 적힌 내용이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실적과 실력이 절대적으로 비례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중요한 판단 근거일 수밖에 없었다.

중립적인 위치에 있던 권 이사가 정승옥과 나직한 대화를 나눈 뒤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너무 심각하군요. 실적은 해임 사유가 되지 않지만 이 정도라면 일반외과에서 직접 징계 요청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 바로 투표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동철 이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하 교수 징계는 투표까지 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해임에 반대하시는 분이 있다면 의견을 개진해 주세요. 내규에 따라 네 분 이상이 반대하면 징계를 취소하겠습니다.”

신동철 이사장이 일일이 시선을 주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해임에 십분 동의하는 이사들이 태반이었다. 설령 반대한다고 해도 일개 전임강사 때문에 이사장과 척을 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의 없으시면 하윤호 교수를 정식으로 해임하겠습니다. 총무 부장님은 교육부, 보건복지부에 공식 요청서를 최대한 빨리 보내세요.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겁니다.”

최종 결정이다.

아등바등 매달리던 하윤호의 장래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결정됐다. 결과를 전해들은 하성원 원장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이미 포기했는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키던 하윤호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럴 순 없어. 내가 잘릴 이유가 없어. 김지훈, 이 개새끼 너 가만 안 둔다. 내가 이대로 물러날 줄 알아? 어림도 없어. 다들 각오해.”

추태다.

꼴불견이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하윤호를 잡아끌었다. 질질 끌려 나가면서도 발악을 멈추지 않았다. 불쌍하다 못해 안쓰러운 인생이다.

김지훈의 귀에도 마지막 발악이 똑똑히 들렸다.

‘징계 요청하길 정말 잘했네.’

교수들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박승준 교수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이제 남은 안건은 하성원 원장이 거취였다.

불과 1년 전에 의사들이 직접 뽑았고 이사회에서 추인했다. 누구에게나 심지어 신동철 이사장과 윤재철에게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남은 안건을 처리하겠습니다. 미리 연락을 드린 것처럼 중앙 의료원 원장인 하성원 원장의 거취 문제입니다.”

이사장의 공식적인 제안에 이사들 대부분 심각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자사의 변론과 함께 두 명을 더 이 자리에 부르겠습니다. 원장 비서와 방금 전에 나눠드린 실적 표에 나오는 김지훈 선생입니다.”

하성원 원장이 들어왔다.

당사자의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머지 둘은 예상도 못했다. 이사들의 의아함 속에 김지훈과 함께 원장 비서도 동시에 입장했다.

“각자 지정된 자리에 앉으세요. 하성원 원장님, 하윤호 교수에 징계 결과는 이미 들었겠죠. 더불어 지금 이 자리에서 중앙 의료원 원장의 거취를 결정하고자 합니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 두툼한 서류를 건네받았다. 권고사직을 권하는 사유가 줄줄이 나열돼 있었다. 하성원 원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날 죽이려고 샅샅이 뒤졌군. 마음대로 안 될 거야.’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최소한 자기 변론의 기회는 주어야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김지훈, 저 놈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이 자리에 왜 부른 거지? 제길!’

하성원 원장이 김지훈을 보며 부르르 손을 떨었다. 비서에게는 아예 협박성 눈빛을 보냈다. 알아서 말 똑바로 하라는 의미였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해 왔는데 이런 자리에 서게 돼 죄송하고 개인적으로 유감입니다. 어떤 일이든 추진하다 보면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을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이 타는지 물 한 잔을 마셨다.

“그러다 보면 제 의도나 사실과는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직권남용이나 인사 전횡 문제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윤재철 이사가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올 초 직원 채용 때 예년과는 달리 면접 점수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더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이미 다 생각해 뒀다.

“개인적으로 학력이나 경력보다는 인성을 더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면접하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큰 항목 아닙니까?”

준비는 하성원 원장만 한 것이 아니었다.

윤재철이 서류를 넘겼다. 의혹이 많은 부분에 빨간색으로 표시까지 한 상태였다. 찔리는 사람이 있는지 이사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3월에 방사선과 장비 구입 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정 회사 제품만 구매한 이유가 뭡니까? 직접 최종 결정하고 구매 지시를 하셨죠.”

하성원 원장이 헛기침을 했다.

“성능과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입니다. 물론 직원들 의사도 중요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측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억을 호가하는 장비를 그런 식으로 구입해도 되는 겁니까? 뿐만 아니라 아무 문제없이 물품을 공급하던 회사들을 올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평균 단가가 도리어 낮았는데도 말입니다.”

서류를 넘길 때마다 의혹이 증폭됐다.

몇몇 이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담당 이사님들께 사후 보고서를 전해 드렸고 당시 아무 문제 제기도 없었습니다. 환자에게 사용하는 물품인데 가격보다는 품질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리조리 피해 나갔지만 감자 줄기처럼 줄줄이 의혹이 제기됐다. 약품 구매, 병원 내 매점과 식당 심지어 주차장 위탁까지 모두 이권과 관련된 문제였다.

‘의혹뿐이지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수가 없는 문제야.’

“제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 문제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실무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승진을 포함한 인사 문제는 객관적으로 시행했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불평과 불만일 뿐입니다. 그런 말이 나올까봐 교수들에게는 특히 엄격하게 적용했습니다.”

시뻘게진 얼굴로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대답이 나올 때마다 윤재철은 고개만 끄덕일 뿐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궁색한 변명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거론한 일은 현재 감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입니다. 모두 부인하셨지만 결과에 따라서 민형사상의 책임이 따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전 그런 의심을 받을 이유조차 없습니다. 떳떳합니다.”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하성원 원장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단 한 가지만 인정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하성원 원장이 힐끗 오 이사와 김 이사를 보며 눈가에 힘을 주었다. 구체적인 증거가 나올 리 없다고 여겼지만 그동안 공들인 이유는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였다. 병원과 상관도 없는 양 회장을 참석시킨 일도 마찬가지였다.

신동철 이사장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지훈 교수와 비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결정하겠습니다. 돈은 다시 채울 수 있어도 인재는 한 번 잃으면 회복할 수 없기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윤재철 이사님께서 계속 진행하실 겁니다. 경청해 주십시오.”

“김지훈 교수님,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

드디어 김지훈이 말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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