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또 하나의 벽을 넘다. Ⅱ (2)
보호자를 만났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자연스럽게 뒤를 따랐다. 개복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의아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마치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것 같았다.
‘내가 경고를 너무 심하게 했나?’
“정말 복강경 으로 수술한 겁니까?”
“예. 다행히 마치긴 했습니다만 장 벽 일부가 손상돼 두 곳을 봉합했습니다. 구멍이 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후우! 야!”
의미 모를 한숨을 내쉰 보호자들이 서로를 보며 입을 열지 못했다.
“왜 그러십니까? 불안하십니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보호자가 손사래를 치며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김지훈이 수술 방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뭐꼬? 분명히 대구에서도 복강경 으로는 안 된다고 했지? 니 그 말 확실하나?”
“무슨 소리야? 내 똑똑히 들었다. 분명히 복강경 으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디나 수술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냥 여기서 수술 받으라는 말까지 했다 아이가.”
“대단하네. 여기 구미 병원 맞나?”
“맞다. 근데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대구에서도 어렵고 위험하다고 안 하는 수술이라고 했는데 환자가 확실하게 나아야 안심할 수 있잖아.”
“그 말이 정답이네.”
놀라움 속에 의구심과 불안이 감돌았다.
복강경이라고 합병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떤 경과를 보일지 모를 일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도리어 트집을 잡힐 지도 몰랐다. 왜 배를 열지 않았느냐는 항의와 함께 말이다.
아직 보고조차 없는 수술이었다. 다른 병원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수술을 한 대가이자 부담일 것이다. 김지훈이 대놓고 좋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반면 소식을 접한 의료진들은 난리 났다. 민혁기 원장이 호들갑스럽게 원 내를 휘젓고 다녔다. 정성호 과장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홍보를 어떻게 하지? 방송국에 연락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정 과장, 환자 팍팍 보내라. 뭘 보내도 하겠다.”
복원되지 않는 탈장, 터진 아뻬 그리고 장 폐쇄.
속된 말로 내리 3연타다.
어딘 가에 이미 시도한 써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세 경우 모두 복강경은 추천되지 않는 질환이었다. 개복보다 유리한 점이 없다는 이유와 도리어 위험성만 가중시킨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 수술을 구미에 와 세 건이나 시행한 것이다.
남다른 의미가 담길 수밖에 없었다.
“김 과장, 어느 정도 해야 김 과장처럼 할 수 있을까?”
최철한의 물음에 김지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나요? 그냥 열심히 한 것 밖에 없습니다. 사실 라파로도 제가 아니라 이준영 선생님이 하시는 걸 봐야 하는데.”
마치 아이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난 내년에 오는데 어떻게 하지? 최철한 선생님, 저 오기 전에 확실하게 하셔야 합니다.”
“노력할게.”
송진우가 입술을 오므렸다.
전공의라도 보는 눈이 있는데 김지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는 수많은 수술에 묻혀 겉만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 봉합을 보며 질릴 정도로 기본을 강조한 이유를 이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수처와 타이는 외과 수술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몰랐다. 전문의 된지 오래인 최철한과 유석재의 겸손과 끊임없는 노력까지 보았다.
불현듯 강한 욕망이 솟구쳤다.
‘김지훈 선생님을 넘어 서고 싶다. 김지훈 선생님만이 아니라 우리 과 교수님들이 가진 모든 것을 배워야 해.’
각오를 다지면 다질수록 얼굴이 시뻘게졌다.
쑥스럽던 차에 잘 됐다.
“송진우. 넌 또 왜 벌게져? 하여간 시도 때도 없어요. 성민아. 수술한 환자도 볼 겸 회진 돌자.”
휴게실 문을 열 이유가 없었다.
오늘 타야 할 사람은 김지훈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스승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무사히 끝냈지만 뜨거운 불길 속에 담긴 살아있는 지식이 간절했다.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을까?’
약간 이른 회진을 돌았다.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늘 수술한 환자 모두 순조로운 회복을 보였다.
입원 환자래야 이제 두 자리 수 중반이었지만 성과를 떠나 최선을 다했다. 조금만 더 달리면 구미 일반외과가 정상 궤도에 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고경아와 커피 한 잔 하며 오늘 수술이 가져다 준 여운을 즐겼다. 고경아도 뿌듯한지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함께 상의하고 준비하지 않았으면 몇 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경아씨도 힘들었죠? 이리와요.”
팔베개를 내주며 눕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생각해 보니 오하석이 당직이다.
(63세 남자 환자입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복막염이 의심됩니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송진우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힘찼다. 분명 수술 당직일 테고 온갖 기대를 다하고 있을 것이다.
김지훈도 눈가에 힘을 꽉 주었다.
‘이제 시작이다.’
부작용이 뒤따랐다. 갑자기 많아진 수술에 고경아의 깊은 한숨이 따라 붙었다.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빤히 보이는 눈빛을 뒤로 한 채 병원으로 내달렸다.
신중하게 촉진하고 검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소장 파열이 의심됐다. 수술이 결정되자 송진우가 김현철과 함께 수술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오늘따라 더욱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김지훈이 눈을 반짝였다.
‘진우도 조금 있으면 3년차네. 칼바람 날릴 자격이 있고 손바람 날릴 때가 됐지.’
미처 말도 하기 전에 휴대폰이 울렸다.
고경아는 아닐 것이다.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김지훈이 살짝 놀라며 급히 당직실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전화였지만 전공의 앞에서 나눌 내용이 아니었다. 정제되고 담담하게 들리는 신현수의 목소리는 언제나 한결 같았다.
(지훈아, 지금 통화할 수 있어?)
“수술 하나 있는데 준비 중이니까 괜찮아.”
징계를 요청한 당사자였지만 정작 가장 필요할 지도 모를 때 구미에 있다. 먼저 연락하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입장까지 묘해 궁금함을 꾹꾹 눌러 참아왔다. 조바심이 날 정도였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현수야, 이준영 선생님하고 다른 선생님들 모두 잘 계시지? 너희들도 별 일 없고? 먼저 전화 못해서 미안하다.”
(이제 2주도 안 됐는데 징계 결과가 아니라 선생님들 안부가 궁금해? 지훈이 네가 예전에도 이랬나?)
마음으로만 고마워했지 이 핑계 저 핑계로 먼저 안부를 물은 적은 거의 없었다. 한 살 두 살 나이 먹고 타지에 있는 덕일 지도 몰랐다.
쑥스럽고 미안한 일이었다.
“나도 이제부터 주변사람 챙기려고 그런다. 그건 그렇고 결정 난 거야?”
(어제 징계 위원회에서 결정 내렸어.)
순간 귀가 활짝 열리며 입이 말랐다.
(어떻게 결정 났어?)
“파면은 아니고 해임이야. 징계 수위에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받을 만큼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하윤호에게는 치명타가 될 거야.”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우워워워워!
고대했던 소식이었다.
파면이면 어떻고 해임이면 어떠랴!
하윤호가 옷 벗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중징계라 다른 대학 병원에 취직도 못한다. 한 사람의 불행이 아니라 응당 받아야 할 대가를 치른 것뿐이었다.
이제야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떤 기분인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불끈 쥔 주먹을 흔들며 거친 숨만 내뱉었다.
신현수가 어색한 콧소리를 냈다.
(그런데 하성원 원장님이 이의를 제기했어. 자진 퇴직으로 끝내길 원하는 모양이야. 자기 입장이 있으니까 가능한 한 징계 수위를 줄이려고 하겠지.)
해임과 자진 퇴직은 차원이 달라도 엄청나게 다르다. 해임 이상의 징계가 아니라면 자칫 하윤호가 다른 대학 병원에서 또 교수를 할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뒤통수가 차갑게 식었다.
“무슨 소리야? 끝난 거 아냐?”
(재심 요청이 받아들여졌어.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징계 위원회에서 재심하고 곧바로 최종 결정을 내릴 이사회가 열려. 이사회까지 통과해야 확실하게 끝나는 거야.)
이미 알고 있는 절차였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인정해도 하윤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우에 따라서 재심이나 이사회에서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말이야?”
(교수님들 분위기를 보니까 결정이 뒤집히기는 어려울 것 같아. 하지만 이사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어. 아버님 말씀을 들으니까 하성원 원장님에게 우호적인 이사님들이 몇몇 있는 것 같아.)
“뭐? 하성원 원장님도 별반 다른 사람 같지 않던데 우호적인 사람이 있어? 잘못하면 제 발로 나가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절대 안 돼. 어디 가서 뭔 짓을 할 줄 알아? 그 인간 환자 잡고도 남는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원장 되는 방법이 꼭 한 가지만은 아닐 거야. 사람 일이잖아. 이런 일이 왜 우리 과에서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지훈아, 미안한지만 네가 올라와야 할 것 같아.)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다음 주 토요일이라고 했지? 원장님께 양해 구하고 바로 올라갈게. 재심 때 내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일이 있을까?”
(재심이 아니라 이사회에 참석해야 돼.)
“징계 위원회가 아니라 이사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한동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징계를 요청한 사람으로서 사유를 설명해야 하는 자리는 징계 위원회까지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사회에 참석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왜 참석을 해? 이사회에서도 사유를 설명해야 하나? 하라고 하면 하는데 이상하네. 그럼 하윤호도 참석해?”
의문이 끊이질 않았다.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아버님께서 네가 참석했으면 하셔. 어쩌면 하윤호가 아니라······.)
말꼬리를 흐렸다.
‘이사장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고 하윤호가 아니라고?’
신현수가 하지 못한 말을 알 것 같았다.
“혹시 하성원 원장님 문제야?”
(이번 일과 관련돼서 생각하면 다른 이유가 없잖아. 추측이 맞는다고 해도 네가 참석해야 하는 자리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윤호는 몰라도 하성원 원장님 문제는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없잖아. 뭐지?”
(어쨌든 하윤호 징계 건하고 분명히 관계가 있겠지. 조만간에 말씀이 있으실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기다려. 공식적으로 발표한 게 아니니까 다른 사람한테는 가급적 말하지 마. 수술 좀 했어? 오늘도 수술하는 거 보니까 많이 하는 모양이다.)
순간 뒤통수가 더 서늘해졌다.
하윤호든 하성원 원장이든 신현수와 별개 문제다. 첫 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술이 많아졌지만 서울과는 여전히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신현수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달릴 놈이다.
침착하자.
“응? 나야 항상 그렇지, 뭐. 넌 어때?”
(우리 파트 수술이 만만치 않게 많은데 혈관하고 라파로 까지 하려니까 힘들다.)
“라파로도 해?”
(뭘 그렇게 놀라? 이제 두 건 했어.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 실력이 안 되니까 이준영 선생님하고 신기동 선생님한테 매일 혼난다. 후우! 서연이 눈총도 피해야 하고 죽겠어.)
한숨 푹푹 쉬는데 왠지 자랑처럼 들렸다. 아닌 게 아니라 목소리에 겸손보다 즐거움이 뚝뚝 묻어났다. 이경석도 똑같은 상황일 것이다.
긴장 백배다.
때 아닌 식은땀까지 났다. 물론 비장의 카드가 있었지만 세 건의 복강경은 환자가 모두 무사히 퇴원해야 입 밖으로 낼 수 있을 것이다.
섣불리 내뱉으면 부정 탄다.
있는 그대로 말했다.
“난 혈관하고 라파로 혼자 하려니까 힘들고 불안한 면이 많아. 다행히 후배들이 잘 따라와 줘서 한결 편해졌어.”
(그래? 수술 좀 하는구나. 들은 말과 달라서 다행이다. 어쨌든 이혁민 선생님이 올라올 때 수술 실적하고 석사 논문 갖고 오라신다. 걱정이 많으셔.)
신현수의 목소리에서 가벼운 긴장이 느껴졌다.
‘자식! 긴장하긴. 난 아직 멀었어. 니가 부럽다.’
“들은 말과 다르다는 건 뭐고 걱정은 왜 하셔?”
(시간 너무 많이 남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네. 임시라도 과장이니까 해야 할 일 잘하고 전공의들 확실하게 챙기라고 하셨어.)
사전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구미 사정 모를 이혁민 교수가 아니었다. 문득 서울에서 과장을 언급하며 했던 당부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 과가 어떻게 돌아가는 잘 보라고 하셨나? 어이구! 일단 자리를 잡아야 과장이라는 타이틀도···. 아니지. 만약 정식으로 근무했다면 어깨가 얼마나 더 무거워지는 거야?’
이혁민 교수의 의중을 알듯 말듯 했다.
고민할 일이 늘었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려. 다음 주에 보자. 나만 달랑 남겨두고 퇴근하는 거 아니지?”
(우리 과 일이야. 다음 주에 보자.)
통화를 끝낸 김지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윤호 문제는 아직 끝이 아니었고 이사회에 참석까지 해야 한다니 이번 주는 머리 좀 아플 것이다. 당면한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과장이라고 불리며 제 역할 하기를 요구받는데 고민이 너무 적었다. 상황에 따라, 흘러가는 시간 따라 행동할 때가 아니었다.
전공의 교육도 펠로우 입장에서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 명 한 명 연차에 맞게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교육시켜야 할 일이었다.
‘현철이는 기본, 진우는 수술 경험이 더 필요하고 성민이는 논문까지 신경 써야 했는데 생각이 없었네. 이것뿐일까?’
불과 2주 후에 최철한이 정식으로 근무를 시작하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마땅했다. 시야가 좁고 생각이 짧다면 함께 가야할 사람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근데 하윤호가 자진 퇴직을 하면 눈에 안 보이겠지만 헛짓거리 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고민도 우왕좌왕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송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 빼먹었다는 느낌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선생님, 준비 다 됐습니다. 환자 올릴까요?”
아차! 하윤호 때문에 수술을 잊고 있었다.
‘어휴! 웬수같은 놈. 도움이 안 돼요.’
김지훈, 머릿속으로만 긴장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