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40화 (740/1,329)

7화. 또 하나의 벽을 넘다. Ⅱ (1)

처컥! 처컥!

배 속 상태를 예의주시하며 압력을 조절했다. 공기가 차며 배가 부풀어 오르자 복막에 붙은 소장이 점점 더 길게 딸려 올라왔다.

카메라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유착된 부분이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트로카로 복벽에 구멍을 내는 일은 언제나 주의를 요한다. 한층 더 집중과 주의를 기울여 안전하고 적절한 위치에 기구를 삽입했다.

조성민에게 카메라를 넘기고 기구를 잡았다.

복막에 붙은 소장부터 떼어내야 한다.

켈리로 잡고 살짝 당겼다.

예상대로 단단하게 붙어 있었다.

수술 후 장 폐쇄를 예방하기 위해 손상 부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또한 소장에 붙은 흉 조직을 최대한 적게 남기는 것이 박리 원칙이다.

후복막이 아니다.

복막에 바짝 붙여 분리한다면 보다 쉬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손상 부위를 만들게 된다. 반대로 소장에 바짝 붙여 박리한다면 반드시 피해야 할 장 손상을 줄 수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박리해야 적정한지 결정해야 했다.

김지훈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진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했다.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부위를 찾았다.

‘최대한 혈관이 분포하지 않는 부위, 흉으로 연결된 부위를 찾아 박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후우! 눈에는 빤히 보이는데 기구를 넣을 틈이 없네.’

불안은 불안일 뿐.

긴 숨을 내쉰 김지훈이 과감하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수술 시작이다.

성공한다면 일반외과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이다. 두려워 자꾸 뒤를 돌아보면 스스로 실패할 가능성만 높일 뿐이었다.

“보비! 켈리! 가위!”

보비로 살짝 복막을 열었다.

박리해야 할 부분이 실처럼 가늘게 보였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만큼 복강경 수술의 의미가 줄어든다. 결코 그 선을 시야에서 놓치면 안 된다.

복막과 소장 사이를 조심스럽게 박리했다.

소장이 서서히 떨어져 나왔다.

혈관이 분포하지 않는 선 안을 정확하게 박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출혈이 발생했다. 수처와 보비를 이용해 출혈을 잡았다.

소장에 남은 흉 조직은 과감하게 가위로 잘라냈다.

미약하게 남아 있는 연동 운동을 예측할 방법은 없다. 미동도 없던 소장이 갑자기 꿈틀거릴 때마다 재빨리 가위를 빼야 했다.

가위 끝이 아슬아슬하게 소장을 빗겨 나갔다.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후우! 이러다 내 손으로 소장 자르겠네. 조심해야겠어.’

계속해서 쌓이는 경험과 노력에 점점 더 능숙해졌지만 어려움은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카메라 전진시켜.”

조성민이 기구 조작에 방해되지 않는 선까지 바짝 카메라를 접근시켰다. 수술 부위가 확대되고 일종의 요령이 생겼지만 딱 그만큼 수월해졌을 뿐이었다.

삐이익! 삐이익!

날카로운 보비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분리된 소장이 늘어났다. 10센티미터가 마치 1미터는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어깨가 뻐근했다.

긴장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잠시 손을 멈추고 어깨를 흔들었다.

과도한 긴장을 덜어내자 침착하면서도 능숙한 손이 다시 나타났다. 기구가 박리하고자 했던 선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유석재가 입을 벌린 채 멍해질 정도로 놀라운 정확성이었다. 김지훈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았다면 얼마나 집중하고 긴장했는지부터 보았을 것이다. 이주 후 근무를 시작하는 최철한이 꽉 쥔 주먹에서 힘을 빼지 못했다.

마침내 마지막 부분에 도달했다.

툭!

카메라 앞을 막고 있던 소장이 복막에서 떨어져 나왔다. 마치 손상 받은 부위가 조금도 없다는 것처럼 꿈틀꿈틀 움직였다.

유착 부위가 보다 확연하게 보였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에 끝났다.

이제 첫 고비를 넘겼을 뿐이었다.

남은 과정이 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장과 장을 들러붙게 만든 흉은 종이처럼 얇은 막과 다름이 없다. 역시 혈관이 분포하지 않지만 무리하게 박리하면 장 조직이 찢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장 폐쇄 수술의 최대 위험이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켈리 주세요.”

목소리에 확연한 긴장이 실렸다.

켈리로 살살 유착된 소장과 소장 사이를 벌렸다.

성기게 붙은 부분은 문제가 없지만 조밀하게 붙은 부분은 장 조직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얼마나 강하게 붙었는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조금씩, 조금씩 소장을 분리할 때마다 한 방울의 땀이 이마에 맺혔다. 손으로 수술할 때의 과정을 생각하며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순탄하기만 할 수술이 아니었다.

소장 사이로 밀어 넣은 켈리를 벌리는 순간 빨간 피가 새어나왔다. 기구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이 이전과는 달랐다. 조성민이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긴장이 확 치솟았다.

‘침착하자. 침착.’

“조성민, 움직이지 마.”

소장 조직을 태울 수 있기에 전기 소작은 절대 금물이었다. 기구 끝에 거즈를 물리고 조심스럽게 피를 닦았다. 양이 많지 않다는 것이 도리어 불길한 조짐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소장 벽이 찢어진 것이다.

만일 구멍까지 났다면 개복을 피할 수 없다.

“카메라 접근시켜.”

찢어진 부분이 점점 크게 확대됐다. 소장 내부에 있던 이질적인 색깔의 액체가 보여도 점막 손상에 준해야 했다. 찢어진 부분이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천만 다행이었다. 장벽이 갈라지긴 했지만 구멍은 나지 않았다. 봉합만 제대로 한다면 개복할 필요는 없었다.

“수처 주세요.”

지난 며칠간 퉁퉁 부어있었던 부분이었다. 분리된 부분에서 부종을 유발한 체액이 줄줄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장 조직이 약하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복강경 수술을 하며 장을 봉합한 적은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기구를 손처럼 다뤄야 할 때였다.

‘침착하게.’

은빛 바늘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보였다.

수술실이 완벽한 침묵에 잠겼다.

조심스럽게 소장 겉면을 한 바늘 떴다.

너무 약했다.

저항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손이 흔들릴까 두려워 숨을 참아야 했다. 바늘이 빠져나오고 나서야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수처 자체도 힘들지만 타이는 더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힘이 과하면 조여진 실이 소장 벽을 파고 들어갈 것이다. 반대라면 수술 후 언젠가는 터져 복막염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손으로도 힘든 타이를 기구로 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매듭을 만들었다.

서서히 조여지는 실에서 전해지는 감각이 생소했다. 촉각 못지않게 시각에도 집중해야 했다. 복강경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조금 더 조여야 할까? 아니야. 지금이 최적이다.’

첫 타이를 끝냈다.

카메라를 바짝 접근시켜 제대로 소장 벽을 조였는지 확인했다.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술 팀의 판단 또한 중요했다.

조성민은 말을 아꼈고 송진우는 눈가에 힘을 준 채 판단을 기다렸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을 가져도 좋았다.

극도의 긴장 속에 타이와 수처를 반복했다. 은빛 바늘이 장을 통과하고 검은 실이 소장 벽을 조일 때마다 섬뜩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놀림 하나 하나에 개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잊은 지 오래였다.

‘괜찮을까?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

세 바늘을 뜨고 타이 한 김지훈이 이중 봉합을 시도했다. 안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긴장 속에 아슬아슬하게 보였던 과정이 끝났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불과 여섯 바늘이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긴장된 시간이었다. 고경아의 녹색 수술 모자가 땀에 젖어 짙은 색으로 변했다.

많이도 붙었다.

또 한 번 소장 벽이 찢어졌다.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두 번 반복한다고 쉬워질 과정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경험에서 얻은 탄탄한 기본기가 없었다면 결코 넘지 못했을 것이다.

수술복이 푹 젖었지만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착에서 벗어난 장이 많아질수록 원인이 되는 부분이 곧 나올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빵빵해진 소장이 점점 확연하게 보였다.

그 끝 어딘가 꽉 막힌 부분이 있을 것이다.

유착 부위를 거의 다 풀었다.

반투명 비닐처럼 소장에 달라붙은 마지막 막을 제거하는 순간 하얀 줄 하나가 보였다.

질기고 질긴 밴드다.

드디어 핵심적인 원인을 찾았다.

“켈리. 가위.”

한쪽 끝을 잡고 밴드를 잘랐다.

마치 댐이 무너진 것처럼 밴드에 묶여 움직이지 못했던 소장이 한꺼번에 툭 투둑 밀려나왔다. 소장 속에 갇혀있던 공기와 내용물들이 소화관을 따라 이동했다.

이제 끝난 것일까?

살짝 미소 짓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한쪽으로 밀린 채 꽈배기처럼 꼬인 소장이 남았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소장을 간신히 헤치자 또 하나의 하얀 줄이 보였다.

툭! 투툭!

두 번째 밴드를 제거했다.

주루룩 소장이 밀려나며 본래의 자리로 찾아갔다.

더 이상 폐쇄를 유발한 원인은 없었고 소장의 움직임도 만족스러웠다. 당연히 문제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 결코 원치 않았던 상황이 보였다.

최철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지훈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찡그렸다.

‘간신히 여기까지 왔는데 하필이면 왜 평행 결장하고 붙어있는 거야? 그냥 놔둬도 될까?’

바람일 뿐이었다.

소장 유착보다 훨씬 문제가 되는 부분이 대장 유착이다. 드물게 발생하지만 대장 폐쇄는 소장 폐쇄와 차원이 다르다. 밴드를 제거했다고 이 상태에서 수술을 끝낸다면 폭탄 하나를 남기는 꼴이었다.

“성민아, 남은 부분도 풀어주자.”

“선생님, 대장인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하지. 지금 안 풀어주면 결국 문제를 일으킬 테고 그게 더 위험하지 않겠어? 그래도 4-5센티미터 밖에 안 돼서 다행이다.”

결정을 내렸지만 산 너머 산이었다.

대장은 절대 찢어먹으면 안 된다.

소장은 자체 회복력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만 대장은 다르다. 바늘구멍보다 작은 구멍이 나도 필히 합병증을 발생시키는 장기다. 배 속으로 똥이 새는 것보다 치명적인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풀어진 긴장의 끈을 다시 바짝 조였다.

살이 떨렸다.

대장 벽은 상당히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놓을 틈이 없었다. 켈리로 유착 부위를 벌릴 때는 물론 보비를 사용해야 할 때는 아예 입안이 마를 지경이었다.

째깍! 째깍!

불과 4-5센티미터를 분리하는 동안 시간은 한없이 흘렀다. 손을 사용해도 어려울 판인데 기구를 사용하니 어려움이 몇 배로 증가했다.

마취과 간호사가 땀을 닦아 주었다.

수술 팀과 참관을 하는 모든 의료진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김지훈은 오직 기구로 전해지는 감각과 모니터에 집중할 뿐이었다.

“성민아, 얼마 안 남았다. 집중하자.”

스스로에게 하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필요한 모든 기구가 동원됐다.

째깍! 째깍!

마침내 소장과 대장이 분리됐다. 굵은 평행 결장이 족쇄에서 벗어난 것처럼 축 늘어졌다. 어떤 손상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고비를 넘겼다.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확인만 남았다.

더 이상 막힌 부분은 없었다.

몇 미터인지도 모를 소장과 대장을 일일이 확인하고 적당한 자리에 차곡차곡 위치시켰다.

봉합 부분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깔끔하고 단단하게 소장을 잡고 있었다.

벌써부터 활발하게 움직이는 장이 보였다.

손으로 장을 잡고 수술해야 하는 개복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결과였다. 장을 덜 만진 만큼 손상이 적기 때문이었고 회복은 당연히 빨라질 것이다.

만일을 대비해 드레인 을 넣고 마무리를 했다.

카메라를 넣은 절개 창이 배꼽 속으로 쏙 기어들어갔다. 상복부 중앙에 길게 난 절개 흉 밑에 두 개의 상처만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왠지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외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손상을 적게 주었고 내부 장기도 공기 대신 이산화탄소와 접촉을 했으니 흉이 덜 생길 것이다. 재발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였다는 사실이 이번 수술의 핵심이었다.

김지훈이 시계를 보았다.

개복했으면 한두 시간 사이에 끝날 수술이 무려 세 시간 넘게 걸렸다. 과도한 긴장 탓에 어깨까지 뻐근했지만 목적한 바를 이루었기에 힘들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왠지 모를 가슴 떨림만이 느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전공의들의 힘찬 목소리를 뒤로 하고 수술실에서 나왔다. 고경아의 눈길이 따라붙었다. 환한 미소가 마스크 뒤에 숨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수술한 것처럼 맥이 빠진 이용철 과장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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