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한두 번의 경험도 큰 자산이다. (2)
성공한다면 복강경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단, 실패할 경우도 단단히 대비해야 했다.
‘복강경을 시도했다가 개복해야 하면 흉이 더 생기니까 아예 절개창을 숨기자. 보호자 걱정 때문에라도 미용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좋겠지.’
가끔 머리를 스쳤던 방식이 있었다.
수술 계획의 첫 번째 과정이다.
카메라가 들어간 자리에 1센티미터 정도의 흉이 남는다. 이왕이면 그조차 안 보이는 것이 좋다. 또한 배 속에 염증이 있는데 무작정 공기를 주입하면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었다.
결정을 내리자 어떻게 해야 할지 주욱 떠올랐다.
복부 소독이 모두 끝났다.
자리에 선 김지훈이 고경아를 보았다.
“고 간호사, 이 간호사, 수술 방법 바꿉니다.”
뜻밖의 말에 조성민은 물론 고경아까지 당황했다. 최철한과 유석재는 무척 기대되면서도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바꾸신다는 말씀이세요?”
“에어 팁 안 쓰고 카메라부터 넣을 거니까 메스, 포셉, 켈리 준비해 주세요.”
에어 팁을 이용해 배 속에 공기를 넣어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기구를 안전하게 넣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데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다음 과정을 기다렸다.
보통 배꼽 바로 아래를 절개한다. 그런데 김지훈이 배꼽을 꼼꼼하게 다시 소독하고는 그 속을 곧바로 절개했다. 수술 후 염증 발생 때문에 꺼려 왔지만 절개창을 완전히 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부위였다.
복막을 1센티미터 정도 열고 바짝 들어 올렸다.
절개창 사이로 장기 위치와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넣었다. 카메라와 닿은 복벽을 봉합해 틈을 단단히 막았다.
최철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소한 차이지만 라파로의 미용적 의미를 생각할 때 좋은 방법이네. 왜 저런 생각은 쉽게 안 떠오를까? 경험의 차이일까?’
“에어 온(Air On)!”
카메라에 연결된 관을 통해 공기가 주입됐다.
처컥! 처컥!
배 속이 서서히 모니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로카를 쓰지 않고 카메라를 넣었지만 다행히 공기는 새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다음 수술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하복부로 방향을 돌렸다.
평행 결장과 연결된 조직인 대망이 맹장을 덮고 있었다. 대장 일부분과 소장 말단부에도 염증 소견이 관찰됐다.
터졌을 때 보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모든 조직들이 서로 단단히 달라붙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뻬 주변은 어떨지 상당히 걱정됐다. 고름 집까지 잡힌 채 떡이 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김 과장, 확실히 터진 거지? 이게 라파로로 가능해?”
김지훈이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리며 고민에 빠졌다.
꼬인 장을 푸는 것과 염증 때문에 서로 들러붙은 장을 박리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쉬울지는 불문가지였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엇이 가장 큰 난관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조직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들러붙었는지가 관건이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봐야 확실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두 번째 과정, 박리가 가능한지 판단해야 했다.
“5미리 트로카 하나만 주세요.”
최대한 흉을 줄이기 위해 개복할 때 여는 위치에 트로카를 찔러 넣었다.
“성민아, 지금은 내가 조작하자.”
왼 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오른 손으로 맹장 주변에 달라붙은 조직들을 살살 밀었다. 기구 하나만 이용해 조직을 헤치려니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십이지장과 연결된 대망이 문제였다. 염증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막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척 얇은 구조의 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혈관까지 상당히 많이 분포해 있다. 아차하면 개복을 요하는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한참 씨름한 끝에 심하게 달라붙지 않은 대망 일부를 간신히 옆으로 밀어냈다.
유석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휴! 위험하다. 위험해.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
맹장과 연결된 소장 일부분이 드러났다. 그 아래 어딘가에 아뻬가 숨어 있을 것이다. 시야를 확보하며 맹장과 소장 사이를 슬쩍슬쩍 기구로 미는 순간 노란 액체가 팍 흘러나왔다.
이용철 과장이 냄새라도 난다는 듯 코를 잡았다.
“에이! 고름까지 잡혔네. 열거지? 모니터로 보니까 양이 엄청 많은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모니터로 보이는 소견을 그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이다. 고름 집까지 잡혔다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
“석션.”
노란 고름이 석션 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매서운 눈으로 모니터를 보던 김지훈이 눈을 반짝였다. 순간적으로 맹장과 연결된 아뻬 뿌리 부분을 본 것이다.
‘생각보다 단단해 보이는데 가능할 수도 있겠어.’
기구 하나만 넣은 채 계속 진행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제 하나만 더 들어가면 복강경에 사용되는 기구는 다 동원된다. 개복하면 훨씬 빨리 끝날 수술을 두고 복강경으로 진행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개복해? 이 수술이 갖은 의미는 보호자나 구미 병원 입장만이 아니야. 내게도 정말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어.’
가능성을 보았지만 그 전에 대망을 분리해 내고 터진 아뻬를 제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면 발전할 수가 없겠지. 결국 손으로 하는 과정을 기구로 대신할 뿐이다. 해부학적 구조만 명심하면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수많은 경험을 공연히 쌓은 것이 아니다.
눈가에 힘을 준 김지훈이 트로카를 외쳤다.
“뭐? 고름까지 잡힌 아뻬를 라파로로 한다고?”
이용철 과장을 비롯해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철한과 유석재 역시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더 큰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너무 힘차게 외친 모양이었다. 큰 소리 떵떵 치고 실패하면 창피한 일이다. 그렇다고 물러날 구석을 만들면 자신감만 사라질 것이다.
김지훈이 도리어 눈을 부릅떴다.
“고 간호사, 진행합시다.”
5밀리미터 기구 하나가 더 들어갔다.
이제는 오직 성공만을 생각하고 집중해야 할 때였다.
카메라 위치를 잡았다. 맹장과 대망 부위를 신중하게 확대한 후 개복 시 손으로 박리하는 부분을 찾았다. 세 번째 수술 계획이자 핵심이었다.
‘이 부분으로 접근해야 손상과 출혈을 막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서로 단단히 붙은 장기를 기구로 떼어 내는 것은 손으로 박리할 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손상 받지 않도록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했다.
‘탈장 때 꼬인 장에서 느껴졌던 감각을 살리자. 그때보다 훨씬 더 힘을 덜 주어야 해.’
사악! 사악!
마치 간을 자를 때처럼 조금씩, 조금씩 분리해 냈다. 고름 섞인 체액이 흘러나올 때마다 피가 비쳤다. 제어할 수 없는 출혈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손과 기구는 확실히 달랐다.
대망에 과도한 힘이 가해졌다고 느낀 순간 빨간 피가 주루룩 흘렀다. 당황하면 안 된다. 보기보다 훨씬 양이 적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신중하게 출혈 부위를 확인했다.
경험의 힘은 무섭다.
“보비.”
김지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지만 수술 팀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하얀 연기와 함께 핏물이 타들어 갔다. 판단 대로 봉합하지 않고 조절할 수 있는 출혈이었다.
계속 진행해도 좋았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다음번엔 힘들 수 있어.’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정절한 긴장과 자신감이 필요했다.
확실히 경험이 없는 과정은 배로 힘들다.
대장이든 소장이든 찢어지면 무조건 개복해야 한다. 박리가 진행될수록 수술 부위가 좁아져 기구 조작이 쉽지 않았다. 등짝이 점점 땀으로 축축해졌다. 아뻬를 두고 이런 긴장감을 느끼기는 정말 오래 간만이었다.
“석션, 보비, 켈리.”
침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째깍째깍 시간은 쉼 없이 흘렀다.
그동안 쌓은 경험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붙었던 부분을 떼어 냈다. 개복 시 손을 이용했던 부위를 정확하게 박리한 것이다.
‘후우!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되겠어. 집중하자. 집중!’
한 고비를 넘겼지만 또 다른 고비가 남았다.
소장과 맹장 사이를 살살 벌려가며 아뻬를 찾았다.
고름이 또 흘러나왔다.
“석션.”
재빨리 기구를 바꾸고 고름을 빨아들였다.
끈적거리는 고름이 시야를 방해했다.
“이리게이션.”
주변으로 고름이 퍼지지 않도록 소량의 물을 뿌리고 석션해 가며 끈적거리는 고름을 제거했다. 서서히 시야가 확보되며 아뻬 뿌리 부분이 확실하게 보였다.
아뻬를 따라 주변을 살살 박리했다.
위험성과 어려움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기구 조작 한 번에 땀 한 방울이었다.
집도의의 긴장과 어려움을 고스란히 느낀 수술 팀과 참관하는 사람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아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부분은 생각 이상으로 힘드네. 염증 때문에 아뻬 일부라도 완전히 녹았으면 기구로는 제거할 수 없겠지? 여기까지 와서 개복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걱정이다.’
상당히 초조했다.
아뻬는 물론 주변 조직이 손상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기구를 조작했다. 무리한 힘을 가하다 문제가 생기면 그보다 난감한 일은 없을 것이다.
최철한이 입술에 침을 축였다.
‘심한 염증으로 들러붙은 장과 아뻬를 상당히 쉽게 박리하네. 도대체 경험을 얼마나 쌓은 거야?’
집도의의 눈과 보는 눈이 확연하게 달랐다.
유석재는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째깍! 째깍!
초침 소리만 들렸다.
마침내 아뻬를 모두 노출시켰다.
모든 시선이 일제히 모니터에 나타난 아뻬로 향했다. 끝 부분이 심하게 터졌지만 나머지 부분은 어느 정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름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경험으로 볼 때 이 정도 상태면 제거할 수 있었다. 단, 마지막 고비를 넘겨야 한다. 만약 넘지 못한다면 여기까지 와 배를 열어야 할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장간막을 손으로 박리하는 것처럼 할 수 있을까?’
가장 약하고 가장 위험한 조직이었다.
머릿속으로 박리 과정을 그려 봤다.
가구를 손처럼 사용할 수만 있다면 절제 가능한 수준으로 보였다. 그러나 주변에 퍼졌을 염증이 문제였다. 확실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수술 후 언제라도 장 사이사이에 고름 집이 생길 수 있었다.
결정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선생님, 장간막이 무척 약해 보이는데 동맥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묶을 수 있습니까?”
조성민의 물음에 김지훈의 눈가가 더욱 좁아졌다.
“확실히 동맥 처리가 문제지? 해보자.”
저항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지만 과정은 다르지 않다. 살살 아뻬와 장간막 사이를 뚫었다. 조직 속에 고였던 조직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신중 또 신중.
툭!
드디어 구멍이 났다.
동맥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불과 1-2밀리미터만 더 옆으로 뚫었으면 동맥이 끊어졌을 것이다. 벌떡벌떡 뛰는 모습에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클립.”
조심스럽게 클립을 끼워 넣고 동맥이 포함된 장간막을 한꺼번에 잡았다. 조직 손상을 대비해 한 번 더 잡았다. 단단하게 고정된 클립을 확인했다.
‘됐어. 이제 아뻬 제거하고 염증만 잘 처리하면 된다.’
터진 부분을 포함해 아뻬를 전부 제거했다.
딱 이 부분만 수월했다.
이제 장 사이사이에 퍼진 염증과 고름을 해결해야 한다. 개복을 한 경우, 씻어내기 쉽다는 이점은 있지만 시야는 좁다. 모니터를 통해 보는 덕에 시야는 도리어 좋았다.
결국 집도의 실력에 달린 문제였다.
“석션, 이리게이션.”
양손을 더욱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
한 손으로는 장을 헤치고 다른 손으로는 석션과 이리게이션을 동시에 시행했다. 아직도 서로 달라붙어 있는 일부 소장과 대장을 떼어 내며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냈다.
이미 경험한 과정이었기에 기구 조작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탈장 때와는 상태가 완전히 달랐다. 장 조직이 약해 손상을 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다가왔다. 최악의 경우 어딘가가 찢어져 봉합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절대 장에 구멍을 내서는 안 돼.’
믿는 구석은 오로지 그동안의 경험뿐이었다. 모든 주의을 기울이고 집중을 잃지 않은 결과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침내 아뻬 주변의 모든 장기들을 말끔하게 씻어 냈다. 조금이라도 불안해 보이면 안심이 될 때까지 이리게이션을 했다. 확대돼 보이는 탓인지 개복 때보다 더욱 신경 쓰였다.
“이 정도면 되겠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김지훈도 고름 집까지 잡힌 아뻬는 처음 한 수술이었고 결정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집도의의 몫이었다. 수없이 해 온 아뻬 수술을 두고 고민할 줄은 몰랐다.
‘너무 자세하게 보여도 문제네. 확인할 부분은 다 확인했으니까 끝내도 되겠지. 개복해도 지금보다 깨끗하게 처리할 수는 없어.’
결정을 내린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수술 부위를 다시 확인한 후 드레인을 박았다. 이리저리 빠져나가던 드레인이 정확한 위치에 고정됐다.
“조성민, 마무리해.”
뻐근한 어깨를 느끼며 장갑을 벗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나직하게 들려온 탄성 때문이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고 마무리를 지켜보았다.
카메라가 들어갔던 절개창이 배꼽 속으로 쏙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5밀리미터에 불과한 절개창 두 개만 보였다. 사소한 차이가 아니었다. 미용적인 측면도 있는 복강경 수술을 생각할 때 매우 탁월하고 훌륭한 선택이었다.
“고 간호사, 이 간호사, 다음 라파로 할 때 카메라는 무조건 배꼽 속으로 넣읍시다.”
힐끗 시계를 보니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수술 전 예상하긴 했지만 배를 열었을 때보다 두 배는 더 걸렸다.
‘매번 시도할 수 있는 수술도 아니고 더 빨리 끝내기 힘들 것 같은데 딜레마네.’
시간을 더 단축하지 못한다면 개복 시와 비교해 어떤 면이 유리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오랜 마취는 환자에게 결코 좋을 일이 없었다.
어쨌든 성공했다.
뿌듯함과 동시에 찜찜함을 느끼며 보호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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