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36화 (736/1,329)

5화. 한두 번의 경험도 큰 자산이다. (1)

김지훈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오프도 안 가고 밤새 공부했나?’

의문도 잠시 고민거리와 마주해야 했다.

다들 무사히 회복되고 있었지만 장 폐쇄 환자가 문제였다. 좋아지던 증상과 사진 소견이 어느 순간부터 딱 그 자리에 멈춘 채 진전이 없었다.

“성민아, 진우야, 뭐가 문제일까?”

CT를 찍어도 폐쇄를 유발한 부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데 그걸 누가 알까?

“수술하는 게 좋겠지?”

“입원한지 이제 4일짼데 하루 이틀 정도 더 지켜보시죠. 바이탈은 안정적이고 복통도 심하지 않습니다.”

“그럴까?”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장 폐쇄는 수술 타이밍을 잡기가 무척 힘들다. 보존적 치료로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데 결국 좋아지는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이었다.

송진우도 같은 의견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경험한 환자들을 기억해 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밴드가 장을 묶고 있다면 풀릴 수가 없는데.’

불안함을 안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조급한 기색을 보였지만 개복이 반복되면 장 폐쇄는 더욱 잘 발생하기에 신중해야 했다.

외래로 내려가자 간만에 진료 예약이 있었다.

복부에 발생한 양성 종물이었다.

작든 크든 수술은 수술이다. 국소마취 하에 30분이면 끝날 수술이었지만 그마저도 반갑기 짝이 없었다. 조성민과 함께 마주 앉아 종물을 제거했다.

재수 없는 사람 하나 생각났다.

‘이런 수술도 쩔쩔 매는 사람이 대학 병원 교수라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세상 참 불공평해. 징계는 어떻게 된 거지? 이따가 연락해 봐야겠다.’

하윤호 같은 의사를 만들면 환자에게도 큰 문제지만 병원은 물론 대학의 수치였다. 같은 대학 혹은 같은 병원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환자들에게 도매금으로 넘어갈 것이다.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수술을 끝내고 조용히 물었다.

“내일 라파로 준비는 철저하게 하고 있지?”

“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조금 떨립니다.”

새카맣게 타며 준비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실전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심각한 경험 부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뭐가 떨려?”

“카메라 잡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네요.”

“몇 번 해 보면 눈 감고도 할 수 있어. 최철한 선생님하고 유석재 선생님 오시니까 준비 철저히 해.”

무척 쉽다고 말했지만 사람 몸은 그렇지 않다. 몇 번의 경험으로 돌발 사태까지 대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성민이 눈가를 좁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오시냐.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외과의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태도였다.

‘스승님이 가장 강조하시는 문제가 자만인데 너희들은 그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김지훈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무려 네 건이 연이어진다.

조성민이 또 의국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보는 앞에서 실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단단히 각오하고 자료를 펼치며 한마디 했다.

“내일 수술이 부담되지만 이렇게 가면 좋겠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 쉬는 생활 얼마나 좋아. 준비할 시간도 충분하잖아. 진우야, 너도 그렇지?”

송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가를 좁혔다.

응급 수술이 없으면 집도 기회가 그만큼 적어진다. 절대 원치 않는 일이었다. 조성민의 말에 동의하면 더 문제였다. 방심이나 여유는 금물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복을 앞에 두고 입방정을 떨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줄을 읽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라파로 준비도 벅찬데 난리 났다.

어느덧 하루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오후 회진을 얼마 남기지 않는 시간에 조성민이 급히 진료실로 들어왔다. 상당히 긴장한 기색이었다. 마무리를 바라보는 석사 논문에 심취하고 있던 김지훈이 눈을 반짝였다.

‘응급실에 환자 있나? 근데 왜 직접 왔지?’

“선생님, 혈관 환자 컨설트 있습니다.”

귀가 활짝 열릴 정도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래? 환자는 봤어?”

“예. 일반적인 문제 말고는 특별한 문제없습니다. 환자 분이 오늘 중으로 수술할 수 있냐고 하십니다.”

“다음에는 다른 수술이 없는 한 준비되는 대로 바로 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려. 혈관 수술은 응급에 준한다고 생각하면 돼.”

정성호 과장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수술이 조금 생겼다고 하던 짓 안 하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커피 하나 챙겨서 인사하고 막 돌아오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최철한과 유석재였다.

“김 교수, 우리 왔어.”

전화보다 얼굴이 확실히 반갑다.

김지훈이 반색을 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전문의 시험 볼 때까지 모셔야 할 교수들을 본 조성민이 힘차게 허리를 숙였다.

“선생님! 빨리 오셨네요.”

“생각보다 길이 안 막혔어. 회진 돌 시간이야?”

“아닙니다. 혈관 환자 컨설트가 와서 환자보고 준비되는 대로 수술할 예정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송진우가 들어왔다.

조성민이 있는데 외래에는 무슨 일일까?

힐끗 시선을 준 최철한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야! 수술 없다고 엄살떨더니 혈관까지 해?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될까? 가운은 가져왔어.”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못한 선배들 앞에서 수술을 하려니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과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말이다.

“그럼 같이 가시죠. 진우야, 인사 드려.”

이제야 최철한과 유석재를 본 송진우가 흠칫 놀라며 인사를 했다. 학생 때 임상 실습 돌며 봤지만 자신의 얼굴도 모를 까마득하기만 한 선배들이었다.

“우리 과 선배님들이시고 구미에서 근무하실 예정이야.”

“안녕하십니까? 2년차 송진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깍듯한 인사가 오고갔다.

송진우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조성민 선생님, 응급실에 아뻬 환자 한 명 있습니다.”

“그래? 혈관 수술도 하나 해야 하는데.”

“라파로를 원합니다.”

“뭐? 아뻰데 라파로로 해 달라고?”

입방정을 떤 대가가 계속 이어졌다.

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조성민은 환자도 못 봤는데 송진우가 바로 노티를 하는 꼴이 됐다. 귀가 번쩍 뜨인 김지훈의 입이 쭉 찢어졌다.

아뻬가 제 발로 찾아와 복강경을 원한다니 서울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반색하다말고 이내 눈가를 찡그렸다. 혈관 수술과 아뻬 라파로는 신경 많이 써야 한다. 더구나 환자가 원해 온 상황이었다. 수술을 매끄럽게 이어 가야만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성민아, 일단 혈관 환자부터 보고 수술 준비하는 동안 아뻬 환자 보자. 라파로로 가능하면 준비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연달아 하면 되겠다. 최철한 선생님, 가시죠.”

김지훈의 뒤를 따르던 최철한과 유석재가 서로를 보았다. 확실히 엄살을 부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후 회진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정신이 없다.

일반외과가 대부대로 변했다.

혈관 환자를 무려 여섯 명이 둘러섰다.

김지훈의 설명에 모두 귀를 기울이자 의아해 하면서도 위압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미 수술한 환자를 본 덕까지 겹쳐 쉽게 결정을 내렸다.

“준비되는 대로 수술하겠습니다.”

응급실에서는 오하석까지 일곱 명이었다.

진찰을 마친 김지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터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배를 열어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개인 병원 원장님이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 연락하니까 복강경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왔습니다. 우리 딸내미가 이제 19살인데 흉 크게 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김지훈이 고민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터진 아뻬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혹시 살짝 터졌다면 모를까 고름 집이 크게 잡혔으면 수술 자체가 굉장히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수술 후에도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개복보다 도리어 위험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아빠의 눈빛이 좋지 않았다.

“맹장 갖고 대구로 갈 수도 없고 우야지? 그래서 내가 빨리 병원 가 보라고 했잖아. 당신은 집에서 애 안 보고 뭐 했어?”

“내는 뭐 할 일 없나? 나도 밥하고 빨래하느라 바쁘다. 저놈의 기지배가 내 말 안 듣는 걸 우짜노? 19살이면 지 몸 지가 챙겨야지.”

“애 탓은 왜 해? 경미야, 괘안타. 엄마 말 신경 쓰지 마라. 선생님, 정말 안 되겠습니까? 곱게 키운 자식인데 흉 크게 남는 거 못 봅니다.”

아빠가 딸 바보다. 엄마의 눈빛도 심상치 않아 이러다 부부 싸움이 날지도 몰랐다. 목소리가 또 높아졌다. 싸움 구경 재미있다지만 부부 싸움은 절대 아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서둘러 사이에 끼어들었다. 확실한 진단을 위해 복강경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무작정 불가능하다고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일단 복강경으로 시도하겠습니다. 맹장이 터져 절제가 불가능하면 어쩔 수 없이 열어야 합니다.”

개복이란 말은 듣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 없으신 것 같은데 대구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역시 이 지역은 뭐든 대구에 있어야 왕이다.

“가셔도 무방합니다만 똑같은 말을 들으실 겁니다. 많은 이점을 가진 복강경 수술이지만 만능은 아닙니다.”

보호자가 곤란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의사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과장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의사가 둘이나 있었다. 혹시 좋은 의견이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없었다.

‘이 모꼬? 정말 안 되나?’

“아빠, 나 많이 아프다. 웬만하면 여서 하자. 대구 가다 죽을 것 같다.”

딸 바보 아빠에게는 딸자식 한마디가 결정타다.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눈에 확 보였다.

“어이구! 우리 딸 그렇게 많이 아프나? 안 되겠다. 선생님, 빨리만 해 주십시오. 배는 열지 말고요.”

끝까지 복강경을 원했고 시간도 많이 까먹었다.

‘이런 문제로 시간을 잡아먹을 줄은 몰랐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먼저 해야 할 수술이 있습니다. 잠시만 응급실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수술이 있어요?”

보호자의 눈치가 조금은 변했다.

수술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때론 득이 되기도 한다. 구미처럼 예외적으로 환자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부랴부랴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이용철 과장과 고경아가 최철한과 유석재를 보고는 무척 반가워했다.

“반갑다. 얼마 만에 보는 거야? 최철한 선생하고 유석재 선생 왔다고 김 과장이 수술을 연달아 하네. 그것도 혈관에 아뻬 라파로로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제수씨, 아니 고 간호사도 잘 지냈죠?”

“어머! 웬일이세요? 근무 시작하시려면 아직 3주 가까이 남지 않으셨어요? 혹시 이번 주부터······.”

“그건 아니고 며칠 휴가 냈습니다.”

병원 내에서 적절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애매모호한 관계다. 고경아가 예전처럼 불러 달라며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좋다 말았네.’

소란스러움도 잠시, 혈관 수술이 시작됐다.

고경아와 이 간호사가 어시스트를 들어왔다.

퍼스트는 조성민, 세컨은 송진우였고 참관만 세 명이었다. 수술이 모두 끝난 이용철 과장까지 들어와 수술실이 또 의료진으로 바글바글 했다.

“메스!”

김지훈이 메스를 들자 수술실이 정적에 잠겼다. 혈관 수술에 관한 한 조성민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핵심적인 과정은 혼자 진행해야 했다.

“이리게이션. 보비. 정맥 엽니다.”

최철한의 눈가를 좁히며 김지훈의 손에 집중했다.

“동맥 열고 연결합니다. 성민아, 집중하자.”

침착하면서도 능숙한 손놀림에 최철한이 내심 감탄을 터트렸다. 혈관 수술의 어려움과 신기동 교수의 비수를 잘 알고 있는 유석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훈이 밖에 파견할 교수가 없다는 말씀을 괜히 하신 게 아니었어. 못 보는 사이에 정말 엄청나게 실력이 늘었네. 선배라는 생각 접고 배워야겠다.’

공통된 마음이었다.

어렵게만 보이는 혈관 수술이 깔끔하게 끝났다.

누가 있든 예외는 없다. 최철한까지 있는 탓인지 조성민과 송진우가 차례로 공포의 휴게실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화끈화끈하고 섬뜩섬뜩한 기운이 확 흘러나왔다.

혈관 환자가 병실로 올라갔다.

얼마 안 있어 아뻬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옮겨졌다.

수술 준비를 하는 동안 김지훈이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복강경으로 안전하게 아뻬를 절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무리하게 시도하다 개복하면 도리어 절개 창만 커지고 많아진다.

딸 바보 아빠의 걱정이 마음에 걸렸다.

‘이걸 어떻게 한다. 아무리 보아도 터진 것 같은데 가능할까? 보호자는 흉을 가장 걱정한단 말이지.’

이미 마취는 시작됐고 복강경 기구들까지 모두 준비된 상항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시작하면 이보다 바보 같은 짓은 없었다.

환자를 위해서도 안전을 최우선에 놓아야 했다.

이를 간과했을 김지훈이 아니었다.

답은 경험에 있었다.

진상미와 진단적 복강경!

장이 꼬였던 탈장 환자!

시간이 촉박해지자 도리어 흐릿했던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수술 계획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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