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34화 (734/1,329)

4화. 슬슬 낮에도 바빠진다. (1)

가벼운 질환으로 내원한 환자 몇몇만 보였다.

“환자 어디 갔어요?”

“지금 초음파 하고 있을 거예요. 끝나는 대로 CT 찍는다고 했으니까 조금 기다리셔야 해요.”

“그래요? 송진우 선생은?”

“초음파하고 CT 부탁한다고 가셨으니까 방사선실에 있지 않을까요?”

역시 송진우였다.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방사선실로 향했다. 과장이 지나치게 나서면 전공의는 당연히 부담을 느낀다.

슬그머니 고개만 들이밀었다.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면 쥐비 엠파에마(empyema:담낭농증)라고 봐야겠어. 빨리 수술해야 되겠다. 담도에도 돌이 몇 개 보여. CT 찍으면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바로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미 CT실에 부탁했습니다.”

“그래? 역시 일반외과는 이러는 게 어울려.”

방사선과 과장이 송진우에게 힐끗 눈길을 주었다. 왠지 뿌듯한 마음에 어깨를 들썩이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송진우 어깨 어림에서 작은 단발머리 하나가 요리조리 흔들리고 있었다.

오하석이었다.

‘야! 응급실 인턴이 검사실까지 따라온 건 정말 간만에 보네. 조그만 놈이 힘도 좋아.’

담낭염 환자가 왔다는 사실과 겹치며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졌다. 열정을 가진 인턴이 오하석만은 아닐 것이다. 서울에서는 워낙 바빠 눈길 주기 힘든 탓도 있었다. 어쨌든 옛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신선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과장님, 담낭 안에도 돌이 많은 거죠?”

“지금 보이는 게 다 돌이다.”

“송진우 선생님, 담낭 떼고 T-tube 넣으면 되나요? 이런 경우도 라파로로 가능해요?”

수술 방법까지 질문했다.

인턴 때 생각이 나며 은근히 탐이 났다.

남자였다면 덥석 잡아끌었겠지만 여자에게 일반외과는 정말 녹록치 않은 과였다. 체력이 가장 큰 난관이었고 성향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아 아쉬움만 남았다.

‘근데 진우 저 자식은 인턴이 열성을 가지고 질문하는데 대답도 안 하고 뭐해? 또 얼굴만 붉히고 있는 거 아냐?’

김현철을 태울 때는 말만 잘하는 놈이 뭐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잠시 후 초음파가 끝났다. 침대 손잡이를 잡는 송진우와 오하석과 눈이 딱 마주쳤다.

김지훈이 마치 우연히 들른 것처럼 정색을 했다.

“송진우, 환자 분 검사 다 끝났어? 과장님은 뭐라셔?”

“담낭과 담도 담석으로 인한 담낭농증이 의심된답니다. 지금 바로 CT 찍을 예정입니다.”

이왕 얼굴 봤다.

“담낭농증이 의심된다고? 같이 가자.”

복강경이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 속에 CT 촬영이 진행됐다. 담낭과 담도 부분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하자 김지훈이 혀를 찼다.

‘역시 라파로로는 안 되겠네. 아깝다.’

잠잠했던 오하석의 입이 다시 열렸다.

“선생님, 담낭 벽이 염증으로 두꺼워진 거죠? 담도는 괜찮은 건가요? 수술은 어떤 식으로 하죠? 선생님, 이런 경우에도 라파로로 가능해요?”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탐나다 못해 예쁘기까지 했다.

‘관심이 대단하네. 정말 우리 과 하고 싶은 거 아냐?’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일이 대답해 주자 힐끗 힐끗 오하석에게 눈길을 주던 송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끝났다.

응급실로 돌아가며 넌지시 물었다.

“진우야, 오하석 선생 우리 과 하고 싶은 것 같지 않아? 탐난다. 우리 과가 조금만 덜 힘들었으면 그냥 잡았을 텐데 아깝네. 어떻게 생각해?”

“예? 하석이가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잘 좀 꼬셔 봐.”

꼬셔보라는 말에 유난히 얼굴 붉어졌다. 다른 때와는 붉어지는 정도가 달라진 것 같았다. 앞서가던 김지훈을 보며 오하석이 송진우에게 속삭였다.

“김지훈 선생님 참 자상하시네요. 수술실에서도 큰소리 한 번 안 내시고 외과에 저런 선생님이 계시다는 게 신기할 정도에요. 항상 저러시죠?”

밖에서 보는 시선은 이런 걸까?

흠칫 놀란 송진우가 입을 열려다 말고 입술에 꾹 힘을 주었다. 자상은 웬만큼 넘어갈 수 있지만 다음 말은 다 틀렸다. 리틀 이준영이란 별명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애정이 많으신 분이지만 절대 방심하지 마.”

“애정?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하석이 까치발을 하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너무 가깝다. 가뜩이나 벌겠던 두 뺨이 활활 불타올랐다.

응급실이다.

환자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은 금물이다.

과거력과 병력을 확인하고 꼼꼼하게 진찰했다. 당연히 자리를 지켜야 할 전공의들 사이로 오하석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수술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설명도 하기 전에 보호자가 먼저 물었다.

“선생님, 개인 병원에서 들으니까 복강경으로 수술하신다면서요? 대구로 가려고 하다가 그 말 듣고 왔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홍보를 여기저기 많이 한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조금만 빨리 왔다면 가능할지 몰라도 지금은 염증이 너무 심했다. 대구에 있는 대학 병원이 아니라 이준영 교수라고 해도 복강경 수술을 시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학회나 논문을 통해 얻은 정보니 틀릴 수가 없었다.

‘소문났다면 좋은데 이 환자를 라파로로?’

김지훈이 잠시 머뭇거리자 보호자들이 벌써 대구로 갈 눈치를 보였다. 자신 없는 태도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개복해야 한다면 대구로 보낼 이유가 없었다.

환자 상태만 더 나빠질 것이다.

“복강경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무리하다가는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대구로······.”

“대구로 가셔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 후 통증 등을 우려하시는 것 같은데 상당 부분 완화시킬 수 있는 수술법이 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 때문인지 보호자가 관심을 보였다.

“그게 뭔가요?”

또 다른 무기 하나를 빼들 때가 됐다.

하윤호 때문에 갈고 닦은 무기 말이다.

김지훈이 손가락을 벌리며 말했다.

“미니 담낭 절제술입니다. 기존 방법으로는 최소 15센티미터 이상 열어야 하지만 미니 법은 3분의 2 이하로 엽니다. 수술 결과는 동일하고 환자 분 통증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습니다. 단, 개복하는 건 마찬가지기 때문에 복강경보다 입원 기간이 길 수밖에 없습니다.”

조성민과 김현철이 귀를 쫑긋거렸다.

오하석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담낭만 떼면 2시간 정도 걸리지만 담도에 관을 하나 넣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전문 용어를 쓰는 것은 역효과만 초래한다.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 설명했다. 핵심은 결국 절개창이 작아 수술 후 통증을 덜고 회복에도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보호자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복강경을 기대하고 왔는데 다른 수술법을 말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침 누군가 대구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다며 부산하게 전화를 했다. 한동안 눈가를 찡그리며 통화를 하고는 결정권을 가진 보호자에게 뭔가를 속닥였다.

“대구에서도 못한다고? 그라몬 어쩔 수 없네. 복강경 수술까지 잘 하신다니까 한번 믿고 맡겨 보자. 조금 열면 그만큼 덜 아프지 않겠나?”

“그래도 이왕이면 큰 병원이 낫지 않겠습니까?”

규모와 상관없이 안 되는 건 어디 가든 안 되는 것이다. 설왕설래, 고심을 거듭하던 보호자들이 다가왔다.

“선생님, 미닌지 뭔지 하는 그 수술을 받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듯 쉬운 과정을 거쳐 결정이 났다.

수술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즉시 수술 준비가 진행됐다.

난감한 사람은 보호자만이 아니었다.

‘어후! 걸리는 수술마다 왜 이러지?’

조성민이 어김없이 송진우와 따로 자리를 가졌다. 복강경 탈장에 혈관도 모자라 담낭 절제술도 새로운 방법이라니 산 넘어 산이었다.

미니콜레는 이미 하윤호 수술이 아니었다. 송진우가 이름조차 일절 언급하지 않으며 자세하게 설명했다.

조성민이 묘한 눈으로 송진우를 보았다.

“퍼스트를 선 적도 없다면서 이 수술 저 수술 참 자세히도 봤네. 비결이 뭐야? 눈이 더 달렸나?”

정말 눈이라도 찾는 것처럼 뒤통수를 뒤적뒤적 뒤졌다. 머리 만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 없는데 무던하게 참아 주었다.

“참관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나 같으면 졸기 바빴을 텐데 용하다. 어후! 수술도 들어가기 전에 추워지네. 오늘은 또 무슨 말씀을 하실까?”

수술 방도 물음표가 난무했다.

절개창이 작을 뿐 수술 과정은 똑 같다는 고경아의 설명에 간호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은근슬쩍 끼어들어 귀를 기울이던 이용철 과장이 턱을 매만졌다.

“조금 여는데 과정이 똑같으면 수술하기 더 어려울 거 아냐? 고 간호사,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담낭 절제는 2시간 정도면 끝나요.”

“담낭농증을? 김 과장, 정말 대단해. 옛날에 박경일 과장이 손은 타고났다고 하면서 감탄을 했는데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르네.”

복강경에 이어 미니콜레가 또 한 번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이용철 과장은 수술마다 감탄이다. 갓 인턴 됐을 때 보기 시작해 과장으로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마치 나이 차 많이 나는 큰 형수가 결혼한 막내 시동생을 보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수술이 시작되기도 전에 궁금함, 불안, 기대가 난무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를 드는 순간 수술실에 긴장만이 감돌았다.

미니콜레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야 했다. 다소 마른 환자라 절개창을 가능한 한 적게 열었다. 불과 10센티미터도 안 될 정도였다.

‘뚱뚱한 환자 아뻬 할 때도 저것보다 더 여는데 가능한가? 너무 작게 연 거 아니야?’

이용철 과장이 눈가에 주름을 만든 채 눈을 떼지 못했다. 복벽을 여는 내내 조성민이 가장 긴장했고 송진우는 김지훈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복벽이 열렸다.

다들 일부분만 보이는 담낭을 어떻게 뗄 지 걱정이 앞서는 표정이었다. 숱하게 보아온 송진우만이 다소 여유를 찾고 있었다.

가장 긴 기구들이 동원됐다.

김지훈이 적정한 긴장을 유지하며 능숙하게 담낭을 박리해 나갔다. 제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심한 염증은 꼭 일을 만든다.

담낭 벽이 살짝 찢어지며 피가 비쳤다.

따가각! 따가각!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출혈 부위를 잡았다.

“타이!”

최대한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타이를 하려던 조성민이 땀을 흘렸다. 바짝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의 손조차 보기 힘들었다.

‘공간이 너무 좁다. 이걸 서울에서는 밥 먹듯 하셨다고? 김지훈 선생님 실력 덕분이겠지만 퍼스트들이 잘 받쳐 줬다는 말이잖아?’

퍼스트의 어려움은 물론 상당히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 조성민의 등짝이 후줄근하게 젖어 들었다.

첫 번째 타이는 무사히 끝났다.

덕분에 조성민의 수준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어려워하지만 경험이 몇 번 쌓이면 문제없겠어. 악조건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은 다 했구나. 다행이다.’

집도의가 마음을 놓은 탓일까?

툭!

두 번째 타이가 끊어졌다.

주루룩 흘러나온 피가 수술 부위를 흥건하게 적셨다. 깜짝 놀란 조성민이 김지훈을 보았다. 송진우가 재빨리 석션기를 가져가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조성민, 수술 중에 어딜 보는 거야? 집중해.”

전에 없이 큰소리를 낸 김지훈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리트랙터 위치를 바꾼 후 재빨리 기구를 넣었다. 어느새 실이 끊어진 부분을 잡고 있었다.

“타이!”

응당 보여야 할 퍼스트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조성민이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느다란 혈관이기에 망정이지 담낭 동맥이었으면 치명적일 수 있는 실수를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이제야 눈길을 주었다.

눈빛이 서늘하기만 했다.

이것이야말로 된통 타고도 남을 일이었다.

“조성민, 뭐해? 타이는 나도 끊어 먹을 수 있어. 수술에 집중해. 넌 퍼스트야.”

짧고 단호한 목소리에 강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 조성민이 급히 어지러운 머릿속을 수습하고 타이를 했다. 제대로 했는지 더 이상 가타부타 말없이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 중 처음으로 큰소리가 터졌다.

입술을 꽉 깨문 조성민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수술에 집중했다. 고경아와 나란히 선 이 간호사도 어시스트에 최선을 다했다.

그 덕분인지 살얼음판을 밟는 것 같은 긴장 속에서도 순조로운 진행을 보였다.

“담낭 동맥 잡습니다.”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부위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이 부분은 절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김지훈이 얼굴을 굳히며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최대한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조성민이 눈가에 힘을 잔뜩 준 채 손가락에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쿵! 쿵! 쿵!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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