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27화 (727/1,329)

10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2)

처음 만져 보는 기계인 탓에 서툴 수밖에 없었다. 배 속 온기와 습기로 렌즈에 김이 서리고 초점까지 맞지 않았다. 김지훈이 슬그머니 카메라를 잡고 있는 조성민의 손을 잡고 천천히 조작했다. 이런 식으로 가르쳐야 빠르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떨 거 없어. 카메라 찍는다는 생각으로 조작하면 돼. 김이 서리면 내게 말하고 뜨거운 물에 담그는 거 잊지 마.”

확인해야 할 부분이 정확하게 드러났다.

수술 팀 모두 손상이 의심되는 부분에 집중했다.

꼬였던 소장은 물론 구멍에 꽉 끼었던 소장을 특히 유의해야 했다. 서툴다고 해도 조성민이 치프이자 퍼스트란 사실은 변함없다.

“조성민, 어때?”

“다른 부분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이 부분이 불안합니다. 피멍이 많이 들었고 부종도 심해 보이는데 괜찮을까요?”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확실히 불안했다.

연동운동의 강도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혹시 뜨거운 물 더 준비됐나요? 없으면 빨리 준비해 주세요. 이리게이션합니다.”

탈장에서는 필요 없었던 과정에 고경아와 간호사의 손길이 바빠졌다. 부랴부랴 적정하게 데운 증류수가 준비됐다.

“석션 주세요.”

복강경에 사용되는 석션기는 이리게이션까지 동시에 할 수 있다. 한 손으로 데워진 증류수를 소장에 뿌린 후 물을 빨아들였다. 남은 한 손으로 소장을 이리저리 움직여 온기가 골고루 퍼지도록 했다.

소장은 결코 짧지 않다. 꾸불꾸불 서로 겹쳐 있는 장을 안전하게 다루며 석션까지 하는 동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단 한시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이 수술에 구미 라파로 수술이 걸렸을지도 모르는데 쉽지 않네. 제발 살아라.’

첫 복강경 수술할 때보다 더 떨렸다.

온기를 받은 소장의 혈류가 증가하며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보아도 미약했다. 다시 한 번 따뜻한 물로 이리게이션을 했다.

소장을 돌리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꿈틀꿈틀!

“조금만 더 기다립시다.”

모두들 김지훈과 모니터를 보며 숨을 죽였다.

째깍! 째깍!

얼마나 지났을까?

꿈틀꿈틀! 꿈틀꿈틀!

확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가를 좁히던 김지훈이 안도의 숨을 훅 내쉬었다. 마침내 원하는 수준의 연동운동을 보인 것이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성민, 송진우, 경험상 이 정도 연동운동을 보이면 손상이 심해 보여도 터지지 않은 장은 충분히 살아. 잘 봐 둬. 좋았어. 탈장 구멍 막고 한 번 더 확인하자.”

이제부터는 고민할 문제도 어려울 것도 없었다.

강하고 질긴 인공 조직으로 탈장 구멍을 막았다.

한때는 상당히 힘들어했던 수처다.

길고 가는 기구가 마치 손안에 딱 잡혀 있는 것처럼 능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수술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의료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손놀림이었다.

탈장 구멍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다시 한 번 손상된 소장을 확인했다.

톡톡 자극을 주자 잘도 움직였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리며 뿌듯한 기분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같은 수술을 두고도 환자가 주는 어려움과 즐거움은 참 가지가지였다.

“마취과, 수술 끝내겠습니다. 조성민, 만일을 대비해서 드레인 하나 넣고 배 닫자. 마무리해.”

빠르다.

길고 얇은 드레인을 순식간에 원하는 부분에 위치시킨 김지훈이 장갑을 벗었다. 조성민이 힐끗 시선을 주고는 절개창을 봉합했다. 단 세 바늘이었지만 조성민의 손을 보는 김지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다행히 노력 안 한 손은 아니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김지훈의 안목까지 높아지고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할 능력 정도는 생긴 것이다.

마지막 봉합이 끝났다.

딱 두 시간 걸렸다.

수술 팀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

민혁기 원장이 활짝 웃고 있었다.

얼마나 만족했는지 눈가가 쉬지 않고 씰룩거렸다.

정성호 과장은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다른 과 수술 보느라 회진 시간까지 잡아먹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다소 아쉬웠다.

‘무난하게 끝난 걸 보셨으면 신경 써 주실 것 같은데 어디까지 보셨지?’

조성민과 김현철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김지훈의 손은 경이로웠고 말로만 들었던 복강경 수술은 신기할 지경이었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본 것처럼 감탄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송진우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김현철, 환자 안 옮겨? 정신 바짝 차려.”

수술실에서 넋 놓으면 당연히 따끔한 매 한 방이다.

김지훈이 보호자를 만났다.

무사히 끝났다는 말에 복도가 소란해졌다.

“아이고! 걱정 많았는데 잘됐네요. 감사합니다.”

“말 들어 보니까 시간 꽤 걸린다고 하던데 되게 빨리 끝났네. 방송이 거짓말한 건 아니네.”

“하모. 이런 것까지 거짓말하겠나. 대단하신 선생님 오셨다. 아는 사람한테 전화해 보니까 이게 보통 어려운 수술이 아니라 카더라.”

180도 변한 태도에 어색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본전은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소중하고도 귀중한 경험까지 얻었다.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었지만 언젠가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느낀 점과 감각 절대 잊지 말자.’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회복실을 찾았다. 환자가 막 병실로 옮겨지기 직전인데 송진우의 눈길이 사나웠다. 다른 때보다 얼굴이 더 달아올라 있었다.

“김현철, 수술 기록지 똑바로 작성해. 이거 보고 어떻게 수술했는지 누가 알 수 있겠어? 처음일수록 더 정확하게 기술해야 할 거 아냐?”

빨간 펜이 춤을 췄다.

하나하나 자세하게 고쳐 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르겠으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나한테 물어봐. 단, 처음 몇 번만 가르쳐 준다. 그다음에는 무슨 수를 쓰든 네가 직접 확실하게 작성해야 돼.”

의외로 엄하고 무서운 모습에 김현철이 쩔쩔맸다. 복강경에 관한 한 3년차나 1년차나 똑같다. 조성민이 헛기침을 하며 열심히 곁눈질하고 있었다.

다들 잘하고 있다.

‘진우 저 자식도 은근히 무서워.’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김지훈이 표정 관리 하고 들어서자 송진우가 재빨리 입을 닫았다.

“환자 잘 깼지?”

“예. 잘 깼습니다.”

다음 순서는 말 안 해도 빤했다.

자! 이제 김지훈 차례다.

“조성민. 나 좀 보자.”

휴게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준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

“죄송합니다. 처음 보는 수술이라·······.”

“처음? 카메라 조작은 처음이겠지. 하지만 에어 팁과 기구 넣는 방법은 모든 비디오테이프에 수도 없이 나와. 기본이란 소리야. 퍼스트를 서야 하는 치프가 기본을 소홀히 해?”

불과 얼음, 비수가 난무했다. 지난 사흘 간 완전히 떼어 내지 못한 나태함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김지훈의 말이 조성민의 가슴을 후벼 팠다.

휴게실에서 나온 조성민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한숨만 푹푹 쉬는 모습을 보며 잠시 기다린 송진우가 조용히 속삭였다.

“선생님, 김지훈 선생님 곧 병실 올라가십니다. 회진도 돌 시간입니다.”

흠칫 놀란 조성민이 후다닥 병동으로 올라갔다. 김지훈이 나타나자 곧바로 탈장 환자 병실부터 찾았다. 김현철의 소리 죽인 발걸음이 무척 빨랐다.

환자 두 명을 두고 참 희한한 풍경이었다.

곤히 잠든 환자를 앞에 두고 즐거운 웃음이 오고갔다. 김현철이 드레싱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보호자가 중얼거렸다.

“구멍만 3개 내고 어떻게 수술했는지 신기하네. 방송에 났다 카더니 선생님 재주가 참 용합니다.”

순조롭게 끝난 수술은 마음의 평안이다.

그때 정성호 과장이 병실로 들어왔다. 탈장 환자 보러 왔을 리가 없다. 가볍게 인사만 받고는 회진을 돌았다. 병실을 나가며 힐끗 눈길을 주긴 했다.

‘수술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벌써 올라왔어? 의욕만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열정도 살아 있는 것 같네.’

속마음을 알든 모르든 이런 기회를 놓칠 김지훈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욕심만이 아니라 전공의 트레이닝까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다음 병실로 향하는 정성호 과장을 재빨리 붙잡았다.

“선생님, 우리 과 신경 좀 써 주십시오. 이제 2건 했습니다. 3년차에게도 수술을 줄 수가 없네요.”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

“선생님, 왜 이러세요? 컨설트만 내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환자 잡아서 수술하겠습니다. 대구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까 환자한테도 좋잖아요.”

단 사흘 만에 말이 짧아졌다.

나이차가 꽤 나는데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정성호 과장이 피식 웃고 말았다. 툭하면 찾아와 구역질이 날 정도로 마신 커피도 한몫했을 것이다.

조성민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함께 꾸벅 인사하는 모습에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지난 시절 일반외과 과장에게 바라왔던 모습이었다.

‘넉살 하나는 좋네. 슬슬 환자가 늘 조짐인가?’

그날 밤.

이용철 과장과 맥주 한 잔하며 대화를 나누던 정성호 과장이 연거푸 웃어댔다. 12시가 다된 시간에 이용철 과장이 불려 나간 것이다.

“정 과장, 내가 김 과장 때문에 불안하다고 했지? 한 잔만 하길 정말 잘했네. 어이구! 이젠 꽤 춥다.”

가장 흔하게 보는 아뻬였다. 이 시간이면 으레 수술을 다음 날로 미뤘던 전임 과장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용철 과장을 기다리던 김지훈도 웃었다.

- 수술 주신다고요? 할 일도 없는데 당직이면 어떻습니까?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치프에게 먼저 주고 송진우와 김현철을 챙기는 것이 마땅했다. 마침 오프라 고민스러웠지만 통화가 끝나자마자 어느새 옆에 서 있는 조성민이 믿음직스러웠다. 몇 시간 전 새까맣게 탄 일은 잊은 모양이었다.

송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오늘은 내가 당직인데.’

수술이 시작됐다.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사를 한 조성민이 메스를 들었다.

수술을 진행하며 자꾸만 김지훈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무래도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모든 상황이 바뀌었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조성민, 집도의는 너야.”

살짝 눈가가 흔들린 조성민이 이내 수술에 집중했다. 퍼스트를 서며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상황이 열악해서 그렇지 결코 얼렁뚱땅 세월을 보낸 손이 아니었다.

구미 세 번째 수술도 잘 끝났다.

‘오늘 본 것처럼 다행히 기본기는 탄탄하네. 앞으로 상황 봐 가면서 수술 줘도 되겠어. 오늘 오후부터 조짐이 아주 좋아. 슬슬 달려 보자.’

김지훈이 별말 없이 이용철 과장과 나가자 조성민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비록 아뻬지만 평가받고 싶었던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물어볼 사람이 옆에 있다.

“진우야, 김지훈 선생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아뻬라 신경 안 쓰시는 건가?”

“문제가 보였으면 수술 후에 꼭 지적하시는데 말씀이 없는 걸 보니까 반대일 것 같습니다.”

“그래? 후우! 다행이다. 아뻬하면서 긴장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수술실에만 들어오시면 눈빛이 변하시네.”

“환자 등한히 하면 더 무섭게 변하세요.”

잠시 후 빨간 펜이 또 날았다. 김현철만큼 송진우의 얼굴도 달아올랐다. 곁눈질하며 마음 놓고 있던 조성민의 얼굴도 시뻘게졌다.

“조성민, 집도하면서 퍼스트 눈치를 왜 봐? 치프면 집중 안 해도 수술이 잘돼? 나도 못하는 일이야. 정신 차려.”

이련 면에 관해서는 그냥 지나갈 김지훈이 아니었다. 곧 후다닥 병실로 달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오프인 조성민이 무의식중에 숙소로 향하다 말고 헉헉대며 뒤를 따랐다.

‘아무래도 환자를 충분히 보지 못하면 기본을 잊기 쉽겠지. 우리 과 환자가 아니더라도 기본에 차이가 있을 수는 없으니까 조치를 취해야겠다.’

병실에서 나온 김지훈이 조용히 말했다.

“성민아, 응급실 인턴이 2명이네. 둘이 돌아가면서 근무하면 몸이 버틸까?”

“힘들다는 소리는 많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 왔습니다. 몰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내원 환자가 적어서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다.”

“오하석 선생 체력이 좋아 보이긴 해. 그래도 이틀마다 혼자 당직을 서면 만만치 않을 텐데 환자 몰리면 어떻게 하지? 진우하고 현철이가 도와주긴 하겠지만 우리 일반외과잖아. 그리고 기본은 환자에게서 나온다.”

고뇌에 찬 눈길이 조성민에게 향했다.

며칠 전 들은 말을 깨끗이 잊었던 조성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은근슬쩍 빠져나가려던 자신에게 기본이라는 대못을 확실하게 박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형식적으로 응급실 보고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 김지훈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 오전.

일과를 마친 조성민이 비상을 걸었다.

집도, 퍼스트를 가리지 않고 새카맣게 탔다. 게다가 처음으로 복강경 수술을 봤다. 다들 감탄을 터뜨리며 엄지를 세웠다. 이렇게 되면 내과에서 담석 환자를 보내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최대한 준비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두려움을 몰고 오는 서늘한 눈빛과 목소리에 맞아 죽을 것이다. 송진우와 김현철에게도 눈총 꽤나 받을 것이다.

“진우야, 자료 설명해.”

김현철의 눈빛이 빠릿빠릿했다. 두세 번 춤추는 빨간 펜을 보면 다 그렇게 된다. 엄격하게 따지면 송진우와 소속이 다른데 고마운 일이었다.

의국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 시간 외래를 지키고 있던 김지훈도 석사 논문을 보며 빨간 펜을 휘둘렀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마다 부족한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놈의 논문은 고쳐도, 고쳐도 마음에 안 드네. 내 눈에도 이런데 이혁민 선생님 마음에 들 리가 없지. 아! 그나저나 환자 참 없네. 눈치 보인다.’

몇 번의 수술과 마음가짐으로 개선될 상황이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수술이 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전에 하고도 시간이 팡팡 남아돌 수술 수에 초조함이 또 찾아왔다.

정성호 과장을 능동적으로 꾸준히 두드려야 했다.

가운을 툭툭 털며 외래를 나서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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