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1)

오하석까지 눈을 크게 뜨고 있어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도리어 장 손상만 가중시킬 수 있었다.

‘평소 잘만 들어가더니 왜 이렇게 안 들어가지? 하석이까지 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김지훈이 장갑을 벗으며 보호자를 찾았다.

“외부에서는 장을 배 속으로 집어넣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수술로 해결해야 합니다.”

“수술이요? 꼭 해야 합니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무리하게 복원을 시도하다 시간이 너무 지나면 장을 잘라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확률은 반반입니다.”

장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구미 병원을 못 믿어 대구로 가 처음부터 다시 진료를 받다가는 자칫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이동 시간마저 아끼는 것이 좋았다.

충분히 설명했지만 돌아온 말은 냉랭했다.

“봐라. 내가 말했지? 전에 봤던 선생 아니다. 이노무 병원은 툭하면 의사가 바뀌네. 되게 젊어 보이는데 믿고 맡겨도 되겠나? 고민하지 말고 대구 가자.”

얼핏 들린 말 속에 실린 불신이 대단했다.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는 어떤 수술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환자와 보호자를 대해야 한다.

김지훈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술에 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만 죽지 않았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수술입니다.”

“장이 죽었으면 힘들다는 겁니까?”

“당연히 탈장 수술만 할 때와는 달리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아끼시는 것이 좋습니다.”

보호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구미에서 받자는 의견보다 대구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결코 말 몇 마디로 풀릴 불신이 아니었다. 무려 4일 만에 온 두 번째 수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콧등을 찡그리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수술하면 많이 땡기고 아프다는데 우야지? 노인네 나중에 여기서 수술했다고 우리한테 분명히 뭐라 할 기다. 내말 틀림없으니까 쓸데없는 원망 듣지 말고 퍼뜩 대구로 가자. 이왕이면 큰 병원에서 하는 게 좋지 않겠나?”

보호자의 엉뚱한 불안과 수술 후 통증 걱정을 듣는 순간 번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통증은 누구나 무서워하고 수술 방법은 두 가지다.

전통적인 방법은 당연히 큰 통증을 수반하고 복강경 수술은 통증에서 자유롭다. 어떤 방법을 택할지는 자명했지만 장 손상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전통적인 수술만 생각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복강경 수술을 하며 장을 다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밀거나 당겨 본 것이 다였다. 기구를 사용해 안전하게 복원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재빨리 탈장 상황을 유추해 보았다.

‘서혜부를 열고 장을 집어넣는 것이 훨씬 안전하겠지만 라파로로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잖아? 만일 잘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때 서혜부를 열어도 늦지 않아.’

수술 중 문제가 생겨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에서는 워낙 수술이 많아 관성 혹은 타성에 젖었던 모양이었다. 실패한다고 해도 1센티미터 크기의 흉 세 개만 더 날 뿐이었다.

반대로 성공한다면 그보다 좋은 결과는 없었다.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에서도 얻지 못한 소중한 경험까지 얻을 수 있었다. 더구나 구미에 온 결정적 이유는 복강경 수술 때문이다.

시도조차 못할 이유가 없었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좋은 기회였다.

보호자에게 복강경 수술을 권유했다.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마치 이 병원도 복강경이 가능한지 묻는 것 같았다.

현수막을 못 본 모양이었다.

비용 문제와 실패 가능성에 주저했지만 복강경 수술이 주는 이점은 보호자와 환자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결정적인 말을 던졌다.

“보호자 분, 서울에서 복강경 수술로 유명한 쌤이에요. 얼마 전에 방송 못 봤어요? 벨기에 대사 부인까지 수술하셨으니까 금방 할 거예요.”

“내는 못 봤는데. 벨기에? 그기 어디 붙은 나란데?”

“유럽에 있는 나란데 되게 잘사는 나라에요. 그 나라를 대표해서 온 사람도 수술 받았는데 고민할 게 뭐가 있어요?”

보호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요? 근데 이 조그만 병원에는 왜 왔어요?”

“우리 병원이 뭐가 쪼그매요? 속사정은 잘 모르지만 정말 어렵게 초빙한 쌤이에요. 서울 병원 환자들이 자기들 수술해야 하는 쌤 가신다고 난리 났다 안 해요?”

얼굴에 금칠까지 해댔다,

눈앞에서 오고 가는 말에 무척 쑥스러웠다.

‘유명한 사람은 스승님이지 내가 아닌데.’

어쨌든 상당히 도움 되는 말이었다. 보호자도 현관에 붙은 홍보물에 방송까지 생각났는지 손가락을 튕겨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기억났다. 그 선생님이 이 선생님이셨구나. 휴가 갔다가 환자 안 좋다고 수술하러 다시 온 선생님 맞지요? 내 어쩐지 대구 가자는 소리에 쪼매 찜찜했다. 선생님, 대사 부인까지 수술하신 분인데 몰라봐서 정말 죄송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주저하던 보호자가 단박에 결정을 내렸다.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역시 홍보, 방송, 입 그리고 경력의 힘은 무서웠다.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사천리로 수술 준비가 진행됐다. 코 줄과 소변 줄을 끼우는 오하석의 조심스럽고 신중한 손에도 눈길이 갔다. 의사란 환자의 성별에 구애돼서는 안 된다.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아직도 힐끔힐끔 쳐다보며 무언가 속닥이는 보호자들의 눈빛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각오를 다졌다. 복강경 기구를 이용해 장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은 방법을 생각하며 수술실로 올라갔다.

고경아와 수술 방 이 간호사가 한창 준비 중이었다.

“잘 돼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고경아가 살짝 눈길만 주었다.

“배 절개하고 나서 에어팁, 트로카, 카메라 순으로 준비하고 탈장은 수처를 하시니까 기구들 차례대로 잘 준비하면 돼요. 인공 조직 잘 챙기시고요.”

“고 쌤이 먼저 해야 하지 않아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에요. 저는 옆에서 도와만 드릴 게요. 우리 둘이 같이 하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소속과 나이, 직급을 떠나 가르친다는 마음보다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대하면 훨씬 부드러운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수술 방 이 간호사의 태도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배워야 할 좋은 태도다.

이용철 과장이 웃으며 다가왔다.

“김 과장, 일복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죽지 않았네. 오늘 수술 다 끝나서 쉬려고 하니까 스케줄 올리고 시간 참 잘 맞춘다. 근데 벌써 라파로 잡은 거야? 내과에서 안 주니까 스스로 환자를 만드는구나. 탈장은 얼마나 걸려?”

“통상은 1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장 복원을 해야 해서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만약 장을 잘라야 한다면 다시 개복을 해야 하니까 훨씬 더 걸릴 수밖에 없고요.”

“설마 장이 죽었겠어? 넉넉잡고 2시간이면 되겠네. 퇴근 전에 끝내자.”

탈장 수술도 꽤 손에 익었는데 은근히 긴장됐다.

그 시각 조성민은 난생 처음 복강경 퍼스트를 서야 한다는 사실에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그것도 담낭 절제가 아닌 탈장이었다.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손에 들린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우야, 주의할 점이 뭐가 있지?”

“라파로는 거의 대부분 집도의가 수술을 합니다. 선생님은 카메라만 잘 조작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너야 많이 봤으니까 쉽게 보이겠지. 은근히 떨린다.”

김현철이 고개를 내밀었다.

“선생님, 혹시 제가 할 일이 있나요?”

“현철아, 자료 봤잖아. 너하고 나는 눈 크게 뜨고 잘 보기만 하면 돼.”

“그렇죠? 뭐라도 하고 싶은데 라파로는 배 닫을 때까지 할 일이 없네요.”

수술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송진우가 피식 웃었다.

‘1년차 때는 수처도 아쉽긴 했어. 현철이 수술 받을 때 다시 소리를 얼마나 해야 타지 않을까? 에휴! 나는 또 어떻게 하지?’

복강경 수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드디어 첫 복강경 수술 환자가 올라왔다.

수술 팀의 긴장이 배가 됐다.

이제 두 번째 수술이지만 첫 번째 복강경 수술이다.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김지훈도 복원이 안 되는 탈장 환자를 복강경으로 수술하긴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상당한 부담이 다가왔다.

누구 입을 통해서든 온갖 설레발을 다 쳐 놨다. 상황과 관계없이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본전이다. 보호자는 물론 의료진 모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할 것이다.

실패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후우! 장 끄집어내는 게 관건이네. 그 부분에서 실패하면 장이 죽었든 살았든 할 말조차 없는데 잘 될까?’

마취가 시작됐다.

환자의 눈이 스르르 감길 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수술실로 들어왔다. 수술 모자와 마스크에 덧 가운을 걸친 모습이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민혁기 원장이었다.

“이 과장, 김 과장, 나 신경 쓰지 말고 진행해.”

수술 방과 마취과 간호사들까지 우르르 들어왔다.

궁금함과 기대로 수술실이 꽉 채워졌다.

부담 백배다.

복강경이라지만 제법 흔히 하는 탈장 수술인데 보는 눈이 몇 개인지 모를 일이었다. 집도의 자리에 서서 수술을 상기하던 김지훈이 어깨를 풀었다.

환자 배에 걸렸던 힘이 모두 빠졌다.

“마취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예. 시작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또 한 명이 들어왔다.

이용철 과장이 고갯짓을 했다.

‘정 과장, 우리 병원 첫 번째 라파론데 잘 봐. 나도 궁금해 죽을 지경이야.’

정성호 과장의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복강경 수술을 요하는 담석 환자 때문이라도 김지훈의 실력을 직접 확인할 참이었다. 외과가 아니라고 해도 수술이 무난하게 진행되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일말의 기대를 가지면서도 소문은 으레 부풀려지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수술이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다.

김지훈은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메스!”

배꼽 아래에 작은 절개창 하나를 만들었다.

“에어 팁!”

에어 팁을 안전하게 꼽기 위해 절개창 한쪽을 들어 올려야 할 조성민이 멈칫거렸다. 고갯짓을 하는 김지훈의 눈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처컥! 처컥!

환자 복부가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10미리 트로카!”

첫 번째 절개창을 통해 카메라가 들어갔다.

우측 복강 가장 아래 부분에서 탈장 구멍으로 끌려 들어간 소장이 관찰됐다. 벌겋게 부어오른 채 꽈리처럼 꼬여 구멍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

외부에서 복원하지 못한 이유였다.

“5미리 트로카!”

김지훈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익숙하게 손을 놀려 기구 두 개를 더 넣으며 소장을 복원시킬 방법을 생각했다.

“장 복원부터 시작합니다. 혈관 수술할 때 쓰는 기구 알죠? 켈리 두 개 주시고 끝에 고무 튜브 끼웁시다. 빠지면 곤란하니까 헐렁하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순조롭게 어시스트를 서던 이 간호사가 갑작스러운 말에 멈칫거렸다. 고경아가 재빨리 대처했다. 혈관 수술에서는 흔히 사용하는 기구이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마취과, 헤드 다운시켜 주세요.”

위이이잉!

수술 베드가 기울어지며 장이 머리 쪽으로 밀려났다. 카메라를 잡은 조성민의 손이 서툴렀지만 탈장 구멍에 박힌 소장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접근해 복원을 시도했다.

어지럽게 얽힌 실매듭을 풀 때처럼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조심스럽게 소장 일부분을 잡고 서서히 당겼다. 생각 이상의 강한 압력이 전해졌다. 도리어 더욱 심하게 조여지는 소장을 보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다가왔다.

손으로 직접 복원할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신중을 기한다고 했는데 너무 성급했다.

‘이런 식으로 일일이 당겼다가는 손상만 가중시킨다. 꼬인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 당겨야 안전하게 풀 수 있다는 말인데 어디지?’

재빨리 기구를 떼고 꼬인 부분의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려 애썼다. 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기구를 이용해 소장의 여러 부분을 살살 밀고 당겨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디서 꼬인 거야? 안에서 안 되면?’

“조성민, 초점 정확하게 맞춰. 진우야, 서혜부 쪽에서 복원하는 것처럼 밀어 봐.”

유기적인 호흡이 필요했다.

조성민이 눈가에 바짝 힘을 준 채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 송진우가 김지훈의 신호에 따라 조심스럽게 서혜부에 위치한 탈장 부위를 눌러 장 복원을 시도했다.

소장이 불쑥불쑥 움직였다. 순간순간 꼬인 부분이 명확하게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찾았다.

“모두 움직이지 마.”

조심스럽게 당겼다.

적정한 압력이 전해지며 마침내 탈장 주머니 속에 갇혀 있던 소장이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손으로 복원할 때처럼 술술 풀려나왔지만 새로운 걱정이 다가왔다.

김지훈이 숨을 죽였다.

죽은 부분이 있다면 복강경으로 불가능하다.

이 부분만큼은 절대적으로 운이 따라 줘야 한다.

수술 팀 모두 눈을 떼지 못했다.

벌겋게 부어오른 소장이 끊임없이 딸려 나왔다.

10센티미터, 20센티미터, 30센티미터.

드디어 소장을 모두 빼냈다.

“카메라 접근시켜.”

조성민이 신중하게 복원된 소장 쪽으로 카메라를 가져갔다. 수술실이 정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