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이 상황은 뭐지? (1)
마지막 질문이 이어졌다.
“김지훈 선생, 3개월 동안 구미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지?”
“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정식으로 근무합니다.”
“만일 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되면 참석하기 힘들 수도 있겠군. 어쩌면 그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어. 아직도 철회할 생각이 없나?”
숨도 쉬지 않았다.
“없습니다.”
“결론이 나면 어떤 결정이 나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 위원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수긍하고 따를 수 있겠어?”
“따르겠습니다.”
“불이익 될 수 있는 결정이 나도 말이지?”
교수들의 양심과 의지를 믿었다. 이득을 취하기 위한 일이 아니기에, 결코 과장하거나 부풀린 일이 없기에 한 점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김지훈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확하게 판단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알았네. 징계위원회 회부 결정은 오늘 중 바로 날 거야. 어떤 결정이 나든 구미에서도 최선을 다해 근무하길 바라. 잘할 것이라 믿네. 그럼 나가 보게.”
마지막 말이 왠지 의미심장했다.
인사를 하고 나온 김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소명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하윤호 교수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온갖 불만과 적대감으로 범벅된 얼굴은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달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방법이 있었다.
“한마디만 합시다.”
“웃긴 놈이네. 여기까지 왔는데 할 말이 뭐가 있어?”
끝까지 욕을 섞으면서도 손끝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초조하고 불안하다는 말이었다.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 김지훈이 회의실 문을 가리켰다.
대우할 이유가 없었다.
“저 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당신은 의사로서 누려왔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어. 스스로 옷 벗으면 그중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대신 평생 칼을 잡지 말아야겠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병원이라는 큰 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옷 벗는다면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것이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개새끼, 너야말로 이 문을 연 걸 후회하게 될 거야.”
“끝까지 욕을 달고 사네. 하윤호, 도리어 열지 않았다면 평생 후회했을 거야. 착각하지 마.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당신이 의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무슨 개소리야? 그걸 네가 정해?”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환자가 분명하게 알려 줄 거야. 기대해도 좋아.”
더 이상 얼굴도 보기 싫었다.
눈길도 주지 않고 돌아섰다. 그런데 막상 하윤효 교수가 회의실로 들어가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 숨은 불안일 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슬쩍 회의실 내로 귀를 기울였다.
웅웅웅웅!
누구 목소리인 줄은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 똑똑히 들리지 않았다. 하윤호는 열심히 항변하고 하성원 원장은 두둔하는 것 같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하지만 가지가지 하네. 교수감이 아니라는 걸 가장 잘 알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사람이 중앙 의료원 원장이라는 사실에 갑갑하고 울적했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뿌리 뽑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금경태는 언제든 나타날 것이다.
‘왜 좋은 분들보다 나쁜 사람들이 더 득세할까? 이사장님과 몇몇 사람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하성원 원장까지 날려 버릴 힘은 없다.
교수들의 정확한 판단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문득 대학 병원 교수에게 지워진 짐은 의료와 교육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 이상의 보직을 맡은 의사는 더할 것이다.
하나의 과는 병원이란 작은 사회에 속한 또 하나의 작은 사회였다. 이를 책임지고 운영하려면 정말 많은 요인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구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후우!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겠네. 그나저나 언제 결과를 알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결과라는 것도 징계위원회로 넘어가는 것에 불과했다. 확실한 끝을 보기 전에는 조금도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시간상 거의 끝날 때가 다 됐는데 굳게 닫힌 회의실 문은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은근한 초조함을 느끼는 순간 신상민 교수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똑똑히 들리지 않았지만 양승철 교수의 목소리에서는 흥분까지 느껴졌다.
하윤호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하성원 원장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송재덕 교수의 목소리는 아예 송곳처럼 날카롭게 들렸다. 펠로우, 전임, 실력, 품성이라는 단어가 회의실 바깥까지 또렷하게 타고 나왔다.
갑자기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무언가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 다가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회의실 문에 귀를 가져가는 찰나 귀청을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야야!”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찌릿찌릿했다.
이것이 바로 전율이자 희열이었다.
전공의 때 가장 두려워해야 했던 소리가 왜 이렇게 반갑게 들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외롭고 힘든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결코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연달아 어퍼컷을 날렸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까지 감돌았다. 짜릿한 느낌이 뒤통수에 붙은 채 떨어지질 않았다.
‘하윤호, 야야야 소리 똑똑하게 들었지. 넌 죽었어.’
벌컥 문이 열렸다.
허옇게 뜬 하윤호가 쓰러질 듯 굴러 나와 의자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감싸 쥔 두 손이 벌벌 떨렸다. 자신을 보고 있는 김지훈을 의식하지도 못했다.
열린 문 틈 사이로 하성원 원장이 눈을 부릅뜬 채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송재덕 교수와 신상민 교수, 양승철 교수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차고 있었다.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 곧 정식으로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하윤호는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모든 기회를 스스로 다 차버렸다.
스스로 옷을 벗기에는 이미 늦었다.
‘인생이 불쌍하다. 내가 한 말, 오늘 있었던 일, 앞으로 있을 일 절대 잊지 마. 당신이 살 길은 그 속에 있어.’
덜덜 떨고 있는 하윤호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홍간난 환자가 생각났다.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병실로 향하는 내내 다리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몸은 완연한 회복을 보였지만 정신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어디 간다고? 잘 갔다 와. 예쁜 사람은 어딜 가도 귀여움 받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런데 당신 누구야?”
정말 간만에 멀쩡한 말을 하다말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치매 기운은 여전했고 김지훈이 누군지 못 알아보긴 매한가지였다.
“김지훈이에요. 김지훈. 끝까지 못 알아보시네. 할머니, 저 다녀올게요. 치료 잘 받으시고 건강하게 퇴원하세요.”
“누구라고? 병옥이하고 진우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내 걱정 말고 네 걱정이나 해.”
끝까지 눈에 박히고 이름 기억하는 의사는 강병옥과 송진우뿐이었다. 그래서 더 안심이 되고 좋았다. 마치 손주에게 하는 말 같아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보호자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홍간난 환자가 덥석 손을 잡았다.
“의사 선생, 잠깐만. 내가 줄 게 있어.”
분명 의사 선생이라고 했다.
혹시 마지막이라고 김지훈을 알아보는 것일까?
병상 옆 조그만 사물함을 뒤적였다. 그리고는 딱지처럼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 세 장을 내밀었다.
“할미가 주는 거니까 필요할 때 써. 밥 꼭 챙겨 먹고 차 조심해. 낯선 곳에 가서 아프면 서러우니까 몸 잘 챙기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 연락은 따로 안 해도 된다.”
앙상하고 마른 손으로 김지훈의 손을 꼭 쥐고는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할미라는 말에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졌다. 마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를 보는 것처럼 따스한 눈빛이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손에 쥔 천 원짜리 세 장은 더 이상 돈이 아니었다. 환자가 아닌 할머니의 마음이 담겼기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병실을 나왔다. 뒤늦게 이혁원과 강병옥이 달려왔다. 송진우는 왜 숨을 헐떡이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혁원아, 병옥아, 할머니 잘 부탁한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교수들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가감 없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인사를 했다. 가장 노심초사했을 이준영 교수가 왠지 편안한 눈빛을 보였다.
결정이 난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설마 야야야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을까?
아무 말 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쓰여 있는 대로야. 담낭농증 환자 수술 소견과 상황 정확하게 기술해.”
‘이거 소견서잖아. 그럼? 결국 일 터진 건가? 고소당한 게 틀림없어. 이렇게 되면 하윤호 네가 빠져나갈 방법이 없겠다. 어후! 끝까지 잘했다고 우기더니 고소하다.’
교수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열심히 소견서를 작성했다. 억하심정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했다. 그래야 어떤 결과가 나와도 떳떳할 것이다.
내내 이준영 교수의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 일이 징계 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야. 마음 푹 놓고 최선을 다해.”
“알겠습니다. 선생님.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
평소와 다름없이 무뚝뚝한 목소리가 도리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교수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이혁민 교수가 깍지를 끼며 입을 열었다.
“혼자 있으니까 니가 과장이다. 과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문제는 없는지 항상 신경 써야 한다. 알겠나?”
“예. 최철한 선생님 오실 때까지 신경 쓰겠습니다.”
김지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신기동 교수를 보았다.
‘제가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수 떠나시겠네요.’
정말 셀 수도 없이 비수를 맞았다. 지금 역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 때문인지 쌓인 정이 정말 깊었다.
김지훈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너무 깍듯했다.
“선생님, 다녀오겠습니다.”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왜 이래? 오늘 꽤 피곤할 텐데 빨리 퇴근해. 3개월 후에 보자.”
신기동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신현수, 이경석, 지동훈 교수가 따라 나왔다. 박승준 교수가 보이지 않아 서운했지만 돌이켜 보면 서먹함이 다 지워지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병원 나서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혁원, 나종진, 강병옥까지 배웅을 나왔다.
“다들 얼굴 펴. 난 후련한데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다. 빨리 들어가.”
“지훈아, 여긴 경석이 형하고 나한테 맡기고 신경 쓰지 마. 하윤호, 절대 근무 못한다.”
“말만이라도 좋네. 현수야, 그래도 내가 참석해야 하는 자리면 올라오는 게 맞아. 잊지 말고 연락해.”
“구미는 어떻게 하고?”
“최철한 선생님 올 때까지 내내 당직 서라고? 3년차에 진우까지 있는데 설마 올라올 시간 없겠어?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 참! 야야야 소리 터졌다.”
신현수와 이경석이 서로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야야야 소리 터진 이상 게임 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전공의들까지 모두 깜짝 놀랐다.
아직도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하윤호 덕분에 배웅을 다 받아 보네. 후우! 당분간 징계는 싹 잊고 구미에 충실하자. 한 달만 버티면 시간 많이 날 테니까 이번 기회에 경아 씨하고 연애나 다시 해야겠다.’
집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휙 스쳐 지나가는 차창 속으로 얼핏 하윤호와 하성원 원장이 보였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초조한 얼굴이었다. 도움을 청할 누군가를 찾아가는 지도 몰랐다.
‘하성원 원장님, 끝까지 하윤호를 감싸고돈다면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누군가는 부당함을 절대 지나치지 않을 테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러나 세상은 어둡지만 않다. 이미 잘못한 일이 적지 않았다. 하윤호를 구하기 위해 또 다시 부당한 일을 행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몇 배로 지어야 할 것이다.
자업자득!
인과응보!
결코 멀리 있는 말만은 아니었다.
훌훌 털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고경아와 구미에 충실해야 할 시간이었다. 가장 궁금해 하며 노심초사했을 고경아에게 경과보고를 했다. 하이파이브 한 번 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끝냈다.
한참 짐을 싸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송재덕 교수였다.
(지훈아, 교수야, 나다. 나.)
“선생님, 전화를 다 주시고 웬일이십니까?”
(왜 내가 전화하면 안 되니? 안 돼? 그동안 하윤호 때문에 고생 많았다. 4:1로 징계위원회에 넘겼어. 한 놈이 문제야. 한 놈이. 어쨌든 고소까지 당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구미 가서 열심히 해. 열심히. 3개월 후에는 웃는 얼굴로 보자. 웃자. 웃어.)
송재덕 교수의 마음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근데 지훈이 너 말 되게 잘하더라. 연습했니? 대답을 못하는 거 보니까 연습했구나. 잘했다. 잘했어. 나도 말 잘해서 그놈 파면시킬 거야. 파면.)
특유의 말투를 되찾았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도출됐기 때문일 것이다.
‘야야야 소리까지 하셨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한동안 통화를 하고 끊자마자 또 한 통의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