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끝을 보자. Ⅱ (2)
그 시간 하윤호 교수가 하성원 원장과 함께 마취과 과장을 만나고 있었다. 예상대로 양천석은 식은땀이 날 정도로 난리 법석을 떨었다. 양 회장에게 투자한 돈까지 거론하며 퇴원한다는 것을 억지로 주저 앉혔다.
‘제길 돈 좀 넣었다가 이게 무슨 망신이야? 개새끼. 그깟 나이 몇 살 더 처먹었다고 꼬박꼬박 반말이나 하고 상전이 따로 없네.’
환자를 두고 개인적인 욕심을 앞세우면 별게 다 약점이 되는 법이다. 어떻게든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상책이었다. 정식 스케줄보다 앞당겨 마취와 수술실을 부탁할 힘이 있는 사람은 하성원 원장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있는 욕 없는 욕 또 먹고 이 자리까지 왔다.
“세세하게 말하기 그렇지만 상당히 중요한 환자야. 한 시간이면 끝난다니까 부탁해. 내 오늘 일 결코 잊지 않을게.”
상당한 권한을 쥐고 있는 중앙 의료원 원장의 말이다. 듣는 사람에게는 부탁이 아니라 일종의 압박이었다. 한동안 난감한 표정을 짓던 마취과 과장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전화한 끝에 수술실 하나를 배정할 수 있었다.
“10시에 수술실을 배정하겠습니다. 원장님, 이번뿐입니다. 죄송하지만 다시는 이런 부탁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부가 있나. 정말 고맙네.”
“감사합니다. 과장님. 언제든 시간 내 주시면 식사 한 번 대접하겠습니다.”
한시름 놓은 하윤호 교수가 웃다말고 찔끔했다.
“하윤호, 내가 그렇게 당부했는데 이따위로 처리할 거야? 수술 하나 걸린 일이 아니잖아. 에이! 전공의 하나 휘어잡지 못하고 뭐하는 거야?”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데다 대들 처지가 아니었다.
온갖 타박과 핀잔에도 한 마디 하지 못했다.
재빨리 병동으로 올라가 양천석을 만난 하윤호 교수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술 방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김지훈과 이혁원이 떠올랐는지 오만상을 썼다.
‘어쨌든 잘 해결돼서 다행이야. 성질 같아서는 한 마디 하고 확 패 버렸으면 좋겠네. 개새끼들.’
채 10분도 남지 않았다.
하윤호 교수가 부리나케 수술실로 들어갔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박승준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자신이 아니면 말해 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 교수, 나 좀 봐.”
“지금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이따가 얘기하시죠.”
“그게 급한 게 아니야.”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입도 열지 못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숨만 헐떡이고 있을 때 양천석이 수술실로 옮겨졌다.
강병옥이 힐끗 눈치만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징계 소리를 듣는 순간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것만으로도 수술할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성원 원장이 무리해 가며 직접 부탁했고 환자는 이미 마취에 들어가고 있었다. 담당 마취과 교수가 못마땅한 얼굴로 재촉까지 했다.
“하 교수님, 빨리 끝내야 합니다. 다음 환자 분이 상당히 고령입니다. 빨리 준비해 주십시오.”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때론 단순 종물 수술도 꽤 애를 먹는 경우가 있다. 가뜩이나 실력이 없는 하윤호 교수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허겁지겁 박승준 교수를 찾았지만 이미 자신의 수술을 들어간 뒤였다. 매몰차게 말만 전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일반외과 교수가 아홉 명인데 도움을 청할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메스를 든 손이 바르르 떨렸다.
수술이 시작됐다.
복벽을 여는 손이 어지러웠다. 종물 크기에 비해 절개창마저 작았다.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마치 얼빠진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강병옥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연구실에 앉아 구미 갈 준비를 하던 김지훈이 긴 숨을 내쉬었다.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이럴 때는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참관하는 편이 나았다.
터덜터덜 수술실 복도를 걷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정대로면 마지막에 수술해야 할 하윤호 교수가 떡하니 수술실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순서는 그렇다고 쳐도.
‘이 상황에서 수술을 해? 징계 요청한 걸 모르나?’
의문도 잠시 강병옥이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손을 뻗는 모습이 보였다. 옆구리에서 뻘건 피가 주루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윤호 교수가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취과 교수까지 고개를 내밀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지나치고 싶었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지방종도 제대로 제거를 못하면 어떻게 하니. 환자가 무슨 죄야? 선생님들께 말씀 드릴까? 아니지. 내가 징계를 요청해 놓고 무슨 부탁을 해.’
문제가 생겼다면 십중팔구 지방종이 근육 속에 묻혔을 경우다. 그 점을 무시하고 절제를 시도하다 근육 내 혈관에 손상을 입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해도 해결은 어렵지 않았다.
잠시 지켜보았지만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강병옥의 손에 들린 거즈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출혈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환자의 심장박동까지 빨라졌다.
머릿속이 복잡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가장 침착해야 할 하윤호 교수의 손이 완전히 어지러웠다. 일반외과 의사에겐 기본적인 수술인 지방종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취과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김지훈 선생, 이러다 문제 생기겠다. 도와줘.’
징계를 요청해 놓고 도와줘야 한다니 이렇게 갈등을 유발하는 일도 없었다. 수술대에 올라간 이상 환자에겐 죄가 없다. 깊은 잠에 빠져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 수조차 없는 상태다.
이는 징계와 무관한 문제였다.
‘환자부터 해결하자.’
재빨리 손을 씻고 수술실로 들어간 김지훈이 하윤호 교수를 보았다. 수술에만 집중해야 할 눈 속에 불안, 초조, 분노만이 보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집도의를 바꾸지 않으면 사고가 날 상황이었다.
지금도 피가 흐르고 손은 어지럽기만 했다.
‘개새끼, 징계 요청해 놓고 내 수술에는 왜 들어와?’
말도 안 되는 오기를 부렸다.
갈 때까지 갔는데 새삼 얼굴 붉힐 필요는 없었다.
김지훈이 바이탈에 주의를 기울이며 조용히 기다렸다. 점점 상황은 심각해졌다. 강병옥이 필사적으로 출혈을 막으려 했지만 하윤호 교수의 손은 근육 손상만 가중시키고 있었다.
지켜볼 여유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제발 일 분만 침착해.’
따르륵! 따가각!
근육 속 어딘가를 잡았다.
수술 부위를 보던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꺼멓게 죽었다. 도리어 출혈이 더 심각해졌다. 엉뚱한 곳을 잡았거나 추가 손상을 준 것이다.
강병옥이 거즈를 뭉텅이로 쑤셔 넣었다.
이젠 일 초도 지켜볼 수 없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김지훈, 너. 너.’
수치이자 치욕이었다. 부서져라 어금니를 악문 하윤호 교수가 뒤로 물러났다. 악에 바쳐 소리라도 지를 기세였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김지훈이 눈길도 주지않고 집도의 자리에 섰다.
“강병옥, 리트랙터 잡아. 켈리.”
반쯤 제거된 종물 옆으로 마구 찢겨진 근육이 보였다. 그 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원인은 혈관이었고 대처는 정확한 출혈 부위부터 찾는 것이었다.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침착하게 근육을 벌렸다. 생각보다 깊은 부위에 손상을 입혔다. 강한 압박과 적절한 석션으로 출혈 부위를 확인한 김지훈이 켈리를 가져갔다.
따르륵! 따가각!
줄줄 흐르던 피가 멈췄다.
단 한 번으로 혈관을 잡았다.
“타이!”
강병옥이 안전하게 타이를 했다.
남은 종물을 제거하고 절개창을 닫았다.
너무 쉽게 끝났다.
이젠 화도, 짜증도 나지 않았다.
김지훈이 마취과 교수에게 눈짓을 하고 일어났다. 아직도 이를 갈고 있던 하윤호 교수가 급히 뒤따라 나왔다. 환자가 무사히 깨어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말이다.
“김지훈,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징계 요청을 말하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뭘 어쨌다고 징계를 요청해? 너 나한테 억하심정 있어? 너는 무사할 줄 알아?”
김지훈의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징계 요청이 부적절하다면 내가 책임지고 적절하다면 하 교수님이 책임지면 됩니다. 수술 방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닙니다.”
더 이상 감정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었다.
말투까지 정중했다.
“책임? 좋아. 너 이 새끼 이런 식으로 날…….”
“보는 눈이 많습니다. 말조심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유리할 겁니다.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하지 말고 징계를 결정하는 교수님께 해요. 그리고 충고 하나 합시다.”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충고?”
“앞으로 절대 수술하지 말아요. 대학 병원 교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종물조차 제거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수술하다간 큰 사고 낼 겁니다. 한두 번은 돈으로 감당할지 모르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입만 벙긋거렸다.
“페… 펠로우 새끼가 지금…….”
김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은 펠로우가 아니라 의사 자격조차 없어. 자존심 세우고 싶으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 아니면 아예 다른 길을 알아봐. 그게 당신을 위한 최선의 길이야.”
하고 싶었던 말을 담담하게 내뱉었다. 듣는 사람에게는 치욕적일 테지만 하윤호는 그런 말을 들어야 했다. 환자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널 내보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욕먹어도 좋아. 오늘 이 수술 역시 네 옷을 벗기는데 일조할 거야.’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는 것이 유리했다. 솔직히 더 이상 화를 낼 이유도 없었다. 김지훈이 태연한 얼굴을 한 채 다른 수술실로 들어갔다.
한동안 어딘가를 노려보던 하윤호 교수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망신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강병옥, 오늘 수술실에서 있었던 일 함부로 입에 담지 마. 확실하게 입 다물어.”
빠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사는 세상 참 묘하다.
하윤호 자신의 이득을 위해 양천석을 수술했다. 그런데 그 환자로 인해 도리어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양천석 때문도, 김지훈 때문도 아니었다.
이유는 차고 넘쳤지만 해결 방법이 없지 않았다. 모든 일이 바로 하윤호 자신에게서 비롯됐다는 사실만 자각한다면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가능할까?
일반외과 내부 소명 절차가 시작됐다.
요청자인 김지훈과 비슷한 입장일 수 있는 펠로우들을 제외한 모든 교수가 참석했다. 박승준 교수를 찾아 보다 자세한 상황을 전해 들은 하윤호 교수가 얼굴을 굳혔다.
‘박승준, 상황만 전해 주면 끝이라 이 말이지? 나 안 죽는다. 펠로우 새끼 하나 잡을 힘은 있어.’
문제의 발단이 된 양천석은 해결됐다.
원칙에 위배되는지 빤히 알면서 욕심을 부렸지만 이제와 손에 쥔 것을 놓칠 수는 없었다. 하나라도 인정하면 곧바로 징계 절차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미친 새끼. 나만 죽고 끝날 것 같아? 잘못 생각했어. 당황하면 안 돼. 어디를 파고들어야 하지?’
불리할수록 고개 빳빳이 들어야 유리하다고 믿었다. 분위기가 엉망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사람은 없다. 교수들의 표정은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같은 과 교수를 징계해 달라고 하는 것 자체로 경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텐데 이혁민 선생도 생각이 있겠지. 김지훈, 너 실수한 거야. 중앙 의료원 원장님과 내가 호구로 보여?’
하윤호 교수가 최대한 속마음을 감췄다.
“김지훈이 제기한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관이 과도하게 개입된 말이고 솔직히 이런 일이 징계 사유나 됩니까? 혁원이 몸에 손을 댄 것은 미안한 일인데 제가 순간적으로 흥분을 못 이겨서 그런 것뿐입니다.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징계 요청이 부당하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솔직히 펠로우가 교수 실력과 자질을 평가할 수 있습니까? 순서 바꾼 문제도 병옥이가 착각 한 일이고 끼워 넣기라고 하지만 스케줄 내기 전에 바로 잡았습니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까지 들먹이는 것이 도리어 문제 아닙니까?”
“착각에 김지훈이 문제다?”
“예.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운 김지훈에게 경고해야 합니다. 저로서는 단 하나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이면 징계 안 당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지만 똥 싼 놈이 성질내는 꼴이었다. 당당해도 너무 당당했다. 상황 인식이야 그렇다고 쳐도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떼어 놓고 생각하면 하윤호 교수의 항변도 일리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열된 모든 사유가 단 6개월 만에 단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 일이었다.
쌓이고 쌓인 문제가 터진 것이다.
송재덕 교수의 얼굴이 벌게졌다.
목소리는 물론 말투까지 변했다.
“하 교수, 그러니까 징계 받을 사람은 하 교수가 아니라 도리어 김지훈이다 이 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이번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라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입에 담기 힘든 막말까지 나와 제가 징계를 요청할 만한 일이었지만 꾹 참고 지나갔습니다. 그게 같은 과 교수에게 취해야 할 행동 아니겠습니까? 쌍스러운 욕까지 참았는데 김지훈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책임 전가를 말하는 거야?”
하윤호 교수가 움찔거렸다.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송재덕 교수의 말을 듣자 유리할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자연스럽게 남 탓을 하며 둘러댔다.
평생 살아온 방식이었다.
“지금 와서 그 일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솔직히 그 일도 김지훈이 억지로 문제를 만든 겁니다. 수술 중 흥분하면 가끔 마음에 없는 말도 나오는 법 아닙니까? 강병옥에게 직접 물어보시면······.”
“그러니까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단 말이지?”
결코 중간에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는 송재덕 교수가 아니었다. 분명한 경고였지만 친분을 쌓지 못한 하윤호 교수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잘못이라기보다 일종의 실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사람 무고하는 거 결코 작은 잘못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무고? 이놈의 자식이.’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간의 잘잘못을 떠나 이제라도 무조건 진솔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