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11화 (711/1,329)

2화. 구미 가기도 전에. (2)

첫 화살은 면했다.

“이혁원, 담도와 췌장에 소장을 연결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뭐야? 연결할 부분이 1센티미터보다 짧으면 포기해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어?”

불길이 화르륵!

“강병옥, 치매 기운이 있다고 했는데 그럴 경우 수술 후 주의하고 유의해야 할 사항이 뭐가 있어?”

비수가 파바박!

“진우야, 너도 킵 한다며? 문제가 뭐야? 문제가. 왜 말이 없어? 얼굴 벌게진 걸 보니까 몸으로 때우는구나. 몸으로. 그러면 안 된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면 안 된다. 안 돼.”

얼굴이 화끈화끈!

전공의 세 놈은 맛보기다.

오늘의 표적, 김지훈의 독무대가 이어졌다.

“담도암 1기라고 해도 2기로 넘어가기 직전이면 소견 자체가 다른데 그 점을 생각하고 휘플을 준비한 거야?”

땀이 뚝뚝뚝!

‘스승님, 같이 준비하셨잖아요. 그땐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는 왜 이러십니까?’

속으로만 한 번 덤벼 봤다.

“휘플이 어려운 이유는 장기 제거만이 아니라 자른 장기들을 연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수처가 기본이라는 말이야. 혈관 수술을 얼마나 무성의하게 했으면 수술이 아홉 시간이나 걸려? 어떻게 생각해?”

등짝에 소름이 쫙!

‘선생님, 수처는 인정한다고 하셨잖아요.’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김지훈 선생, 내가 보기에 이번 환자 준비가 부족했었던 같아. 고령이니까 당연히 체력은 약할 테고 치매까지 있다며? 그럼 더 철저히 했어야지. 철저히. 우리 이경석 선생하고 신현수 선생 봐라. 깔끔하고 확실하게 수술하잖아. 구미 가기 전에 더 배워야겠다. 더. 이러다 최철한 선생이 널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니니? 문제다. 문제.”

‘대장할까요?’

왠지 모를 설움에 눈물이 주루룩!

“쯧!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의사는 그런 핑계나 변명을 해서는 안 돼. 이 환자 확실하게 회복시키고 구미 가라. 만에 하나 문제 생기면 없던 일로 하는 게 낫겠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왠지 협박 같은 느낌이 훅!

“지훈아, 오늘은 네 덕에 편했다. 고마워.”

“열심히 해. 내가 다 창피하다.”

이경석과 신현수까지?

이번 주도 위암과 대장암 수술까지 하며 칼바람 날리긴 마찬가지였는데 잘도 피해 나갔다.

‘내 편은 누구지?’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분노가 활활활!

고개를 푹 숙이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이혁원과 강병옥이 똑같은 모습으로 뒤를 따랐다. 슬쩍 나종진의 눈치를 본 송진우가 얼굴이 벌게진 채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송재덕 교수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교수, 자기가 처음 휘플 했을 때 얼마 걸렸지?”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스승님께 수술 못한다고 된통 혼나지 않았어? 맞지? 내 기억이 맞지? 지훈이가 조금 더 빨리 끝냈으니까 이 교수보단 낫네. 기분 좋지? 제자가 스승을 앞지르면 그보다 좋은 게 없잖아. 좋다. 좋아. 신 교수, 혈관은 어때?”

“이제야 봐 줄만한데 구미 파견이 걱정입니다.”

“그 손 어디 가겠어? 누구를 임시 주임 교수로 선택할지 기대된다. 기대돼. 분명히 한 놈은 펑펑 울면서 이를 갈 거야. 이를. 아이고! 궁금하다. 궁금해.”

김지훈과 신현수의 라이벌 관계를 모르는 교수는 없었다. 강력하면서도 건강하기에 걱정할 일 전혀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리어 자극을 주는지도 몰랐다.

두런두런 들리던 교수들의 대화 소리가 멀어져갔다.

박승준 교수가 인상을 팍팍 썼다.

“하 교수, 어떻게든 수술 건수 늘려. 이게 뭐야?”

이번 주는 아예 수술이 없었다.

환자들도 알아보는지 당직 날마저 완벽한 침묵에 잠겼다.

“저도 죽겠습니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있는지 사방팔방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이준영 교수가 손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무슨 손을 써? 왜?”

이유야 빤했다.

제 입으로 말하면 망신살이 뻗칠 뿐이다.

“그걸 알면 벌써 해결했죠. 어쨌든 김지훈 저 자식이 구미로 가면 숨통이 트일 겁니다. 설마 이준영 교수 혼자 그 많은 수술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제대로 좀 하자. 모임은 어떻게 된 거야?”

박승준 교수의 목소리가 하윤호 교수를 압도했고 입장도 확연히 달라졌다. 의사의 힘은 역시 실력과 환자에게서 나오는 법이다.

“원장님한테 말씀 드렸으니까 곧 좋은 소식 있을 겁니다. 기다리세요. 그나저나 지 교수와는 괜찮은 거죠? 한 명이라도 더 우리 편을 만들어야 하는데 펠로우들은 아예 포기하신 겁니까?”

박승준 교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펠로우들이 따르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가 냉랭해진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서로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였던 지동훈 교수는 하윤호 교수와의 단절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 확실하게 정리하실 때까지 한발 뒤로 물러나서 기다리겠습니다. 김지훈 선생, 이경석 선생과 함께 수술하셨을 때를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갑갑한 일이었다.

언뜻언뜻 모든 욕심을 훌훌 털고 교수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맺은 관계와 스스로 갖는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이제와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웃으면 나만 우스운 꼴이 되겠지.’

쓸데없는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머릿속이 뒤엉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잡했다. 일단 하성원 원장이 주도한다는 모임에 참석해 상황을 살펴보고 판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머뭇거리며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하 교수, 빨리 추진해. 하 교수에게 주어진 시간 많지 않을 수도 있어. 내 말뜻 알지?”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허예졌다.

여차하면 각자 살 길을 찾자는 말이었다.

박승준 교수마저 등을 돌린다면 혼자 생존할 방법은 없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병원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환자부터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늘지 않는 실력이다.

‘홍보 이후부터? 아니야. 김지훈 저 자식과 대판 한 이후인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실력을 빼고 생각하니 답이 나올 리 없었다. 한 주의 결산이 담긴 환자 리스트를 보던 하윤호 교수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아뻬, 탈장, 빤뻬리부터 라파로, 미니콜레까지 많이도 했다. 외래 환자 수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중간에 굵은 글씨로 강조된 휘플은 덜컥 알지 못할 두려움까지 불러왔다.

박승준 교수가 불까지 질렀다.

“담낭농증 환자는 잘 해결될 것 같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데 누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여간 깐깐한 게 아닙니다.”

“만에 하나 고소라도 당하면 그 여파가 얼마나 클지 잘 알지? 확실하게 해결해.”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분노보다는 초조함이 하윤호 교수를 휘감았다.

쉴 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하루하루가 지났다. 월요일 아침, 드디어 퇴원을 하게 된 최종철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선생님, 저 퇴원합니다. 다음 주 외래 진료 볼 때 찾아와도 되죠?”

강병옥이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흐뭇하고 기뻤다.

기쁨도 잠시, 강병옥을 필두로 송진우에 이어 변종수는 물론 이혁원까지 초췌해졌다. 무지막지할 정도로 벌어지는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의 수술도 벅찬데 홍간난 환자는 일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오후 회진을 끝내고 잠시 쉬던 이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종진아, 3년차 치프되면 여유 부리면서 어깨에 힘 좀 줄 줄 알았는데 더 죽겠다.”

“좋게 생각해.”

“나쁘다는 건 아닌데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아. 1년차 때는 어떻게 버텼지?”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 하윤호 교수까지 수술했다면, 강병옥 선생이 변하지 않았다면, 진우가 없었다면. 어때? 끔찍하지?”

이혁원이 탄성을 질렀다.

나종진의 어깨까지 툭툭 쳤다.

“그러네. 야! 그럼 내가 운이 엄청 좋은 거네. 죽을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말 아냐?”

“그렇지. 넌 행운아야.”

“행운아? 그럴 듯한데 왜 목덜미가 싸늘하지.”

이혁원이 눈을 껌벅거리자 나종진이 씨익 웃었다. 이왕 해야 하는 일 불평, 불만을 쏟아 내면 힘만 더 든다. 시답잖은 소리라도 기분 좋게 할 일이었다.

“홍간난 환자는 어때? 진우 말로는 중환자실에서 곧 올라올 것 같다는데 괜찮겠어?”

“많이 좋아졌어. 체력이 부족한데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치매가 심해졌던 모양이야. 이젠 강병옥 선생하고 진우는 확실하게 알아봐. 사실 둘이 번갈아 가며 매일 밤낮으로 킵을 하는데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한 일이지.”

“너는 못 알아봐?”

“나? 어림도 없다. 김지훈 선생님도 누군지 몰라.”

“그래? 수술 정말 힘들게 하셨는데 서운해 하시겠다.”

“웃기만 하셔. 강병옥 선생하고 진우가 이뻐 죽겠다는 게 눈에 딱 보여. 난 안중에도 없다.”

“치프가 2년차한테 밀리면 어떻게 해?”

“대장 파트 바쁜 건 알지만 김지훈 선생님 당직까지 걸리면 수술 들어가는 날이 월화수목금금금이야, 인마. 킵까지 했으면 내가 중환자실에 누울 판이라고.”

치프가 이 정도 힘들어 하면 아래 년차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전공의 6년차로 변한 김지훈도 죽을 맛이긴 했다. 특히 혈관 수술이 주는 중압감이 극심해졌다.

“구미 가기 전까지 김지훈이 계속 집도하고 신현수가 퍼스트 서.”

좋아서 입 벌어지는 시간도 잠시 수술이 끝날 때마다 신기동 교수의 지적이 이어졌다. 3개월 간의 공백 때문에 단 한 마디도 놓칠 수 없었다. 그동안 신현수가 얼마나 발전할지 추측조차 할 수 없기에 더욱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수술과 환자가 주는 만족감, 보람, 행복이 아니었다면 벌써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오늘도 힘든 하루를 마친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 이혁민 교수와 마주 앉았다. 얼굴이 왠지 심상치 않았다. 뭔가 곤란한 일이 벌어졌을 때 보는 표정이었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김지훈, 니 요새 많이 힘들지? 이준영 선생님보다 수술을 더 많이 하는데 안 힘들 수가 없겠지.”

간담도만 따지면 절대 그럴 수 없다. 하지만 혈관 수술에 파트 구분이 애매모호한 수술도 적지 않아 전체 건수로는 확실히 많았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하윤호 교수 수술을 막기 위해 자청한 면도 없진 않았다.

“아닙니다. 구미 가면 훨씬 편해질 텐데 지금 열심히 배워야죠.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근데 말이야. 일정에 변화가 생겼다.”

“예? 더 빨리 가야 합니까?”

“아니다. 10월 셋째 주부터 구미에서 근무 시작하는 건 변함이 없는데······.”

이혁민 교수가 말꼬리를 흐렸다.

이준영 교수도 눈가를 살짝 아주 살짝 찡그렸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이혁민 교수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내 그냥 편하게 얘기할게. 한 달 정도는 혼자 근무해야 할 것 같다.”

“혼자요?”

김지훈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구미 일반외과가 서울이나 천안보다 훨씬 편하다지만 어디까지나 교수 두 명이 진료할 때 얘기였다. 혼자 근무한다면 지금과 다를 바가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당직 문제는 더더욱 곤란하고 심각해질 것이다.

“최철한 선생 후임으로 오기로 한 선생이 일신상의 사정으로 한 달 뒤에나 온단다. 당장 사람을 구할 수는 없고 누군가가 대체할 방법도 없지 않겠나? 구미 과장 자리는 곧 비는데 다른 도리가 없다.”

비상이다.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졌다.

고경아의 서슬 퍼런 눈빛이 절로 떠올랐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대책을 빠르게 세울수록 좋은 법이다. 구미 병원 사정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했다.

“혹시 수술 건수나 입원 환자는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한 명은 이미 그만둬서 과장 혼자 근무하는데 웬만큼은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수술이야 그때그때 다르니까 가 봐야 알겠지. 전공의 인원이 문젠데 예전처럼 한 명씩인가?’

“전공의는 1, 2, 3년차 한 명씩 세 명입니까?”

“뭐 그렇게 되겠지.”

말이 묘했지만 걱정이 앞선 탓에 한 귀로 흘렸다.

“저하고 전공의 세 명이 한 달을 끌고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열심히 하겠지만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데다 응급실까지 생각하면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구미 스탭 두 명이 다 그만둘지 누가 알았겠나? 말이 나오긴 해서 미리 준비하면 별일 없을 줄 알았는데 결국 이 사달이 나네.”

이준영 교수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인원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동의한다. 해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 치프는 힘들고 2년차 중 한 명과 같이 가라.”

귀가 번쩍 열릴 말이었다.

김지훈이 바싹 다가앉았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니가 정하면 된다. 빈자리 조정은 이혁원이 알아서 하겠지. 생각나는 사람 있나?”

당연히 두 사람이 떠올랐다.

송진우와 강병옥.

예전이었으면 숨도 안 쉬고 송진우를 외쳤겠지만 지금은 누가 적당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다소 판이한 성격이 도리어 고민을 안겨 주었다.

‘구미 전공의들과 잘 어울려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소극적이면 같이 가나 마나 한 일이겠지? 병옥이를 데려가면 스승님 파트는 어떻게 하지? 생각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충분히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이제 2주도 안 남았다. 같이 갈 2년차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빨리 결정했으면 좋겠다. 늦었는데 빨리 퇴근해라. 경아가 많이 기다리겠다.”

“선생님들은 퇴근 안 하십니까?”

이준영 교수가 이제야 입을 열었다.

“우린 할 얘기가 남았어. 먼저 퇴근해.”

“예. 선생님. 가 보겠습니다.”

집으로 가는 내내 고민이 끊이질 않았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뭐라고요? 아무리 환자가 적어도 그렇지 혼자 근무하면 언제 쉬어요? 그럼 최철한 선생님 오실 때까지 한 달 내내 당직 서야 하는 거예요?”

김지훈이 한숨을 내쉬자 고경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난 몰라. 우리 안 갈 방법 없을까요? 수당이고 뭐고, 지훈 씨가 로봇도 아니고 어떻게 견뎌요. 난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데 지훈 씨 없으면 혼자 뭐하고 지내요? 난 몰라.”

머리 싸매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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