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10화 (710/1,329)

2화. 구미 가기도 전에. (1)

부드러운 소장 조직을 뜬 후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강한 담도를 한 바늘 떴다. 단순한 동작인데 마치 혈관 수술을 하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타이!”

매듭을 만든 이혁원이 신중하게 손가락을 밀었다. 두 조직이 전하는 감각은 상당히 이질적이었고 이는 타이의 어려움을 한층 더 가중시킬 것이다.

어느 정도 힘을 주어야 할까?

그 동안의 경험과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서서히 부드럽고 탄력 있는 두 개의 조직이 맞붙었다. 단단히 조여진 매듭을 보며 이혁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김지훈의 눈길이 타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일까?

‘이혁원, 정말 열심히 배웠구나. 이 정도면 충분해.’

“컷!”

이혁원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수처와 타이가 진행될수록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작아졌다. 우려했던 대로 기구를 놀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타이할 공간 부족은 말할 것도 없었다.

소장이 간과 딱 붙어 담도를 거의 볼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소장과 담도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틈만 남았다. 남은 바늘은 단 한 바늘이다. 모든 신경을 눈과 손에 집중시켰다.

담도, 점막, 소장의 벽.

한 순간 모든 조직을 단번에 과감하게 떴다.

조직을 뚫고 나온 바늘이 날카롭게 빛났다.

타이도 단 한 번만 남았다.

끊어지거나 느슨하면 실수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다시 수처를 하는 것은 물론 타이까지 상상 이상으로 힘들어 질 것이다.

퍼스트에게 이보다 큰 부담은 없었다.

이혁원이 훅 숨을 내뱉었다.

손가락 하나 떨지 않기 위해 숨을 멈췄다.

손에 가려졌던 매듭이 드러났다.

매듭 사이를 서서히 밀고 들어갔다.

소장이 담도와 밀착되며 간과 딱 붙었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연결 부분을 점검했다.

수술 성패를 가를 수 있기에 가장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과정이었다. 그동안 이혁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확인했다.

두 번째 장기가 무사히 연결됐다.

‘이 정도면 됐어. 후우! 이제 췌장만 남았나?’

담도와 이어진 소장 하부를 가로로 길게 열었다. 췌장 단면과 연결해야 한다. 담도와 연결된 부분이 당겨지면 자칫 찢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극도의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말 끝도 없는 싸움이다.

김지훈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갖가지 조직을 수도 셀 수 없이 수처 했던 손이다.

과감해야 할 때와 신중해야 할 때를 정확하게 구분했다.

이혁원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타이에 가해지는 힘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췌장이 찢어진다. 소장 점막과 췌장이 버틸 수 있는 각기 다른 한계점을 정확하게 느껴야 한다.

한 바늘, 두 바늘, 세 바늘.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소장과 부드러우면서도 매우 연약한 췌장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노란 췌장 단면이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미 푹 젖은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 마지막 수처와 타이만 남았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단 한 바늘의 수처와 타이에 달렸다.

은빛 바늘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까만 실이 부드럽고도 견고하게 매듭지어졌다.

김지훈이 신중한 얼굴로 연결 면을 살폈다.

‘더 이상 건드리면 문제만 만든다.’

이로써 마지막 장기 연결이 모두 끝났다.

손 하나하나에 모든 힘을 다 쏟았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며 입을 여는 순간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수술 팀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따뜻한 물이 노인의 배 속을 적셨다. 오랜 수술에 창백하게 변했던 장기들이 전해지는 온기에 꿈틀꿈틀 움직이며 제 색을 찾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장기를 제거하고 세 곳을 연결한 수술 부위가 의외로 깔끔하고 깨끗했다. 제거해야 할 장기는 확실하게 제거됐고 이어야 할 장기는 정확하게 연결됐다.

마침내 휘플이라는 수술을 끝내기 직전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놓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다가왔다. 수술 팀은 물론 마취과와 고경아까지 마찬가지였다.

“이혁원, 강병옥, 불안한 부분 있어?”

“제 눈에는 안 보입니다.”

이제 휘플이라는 수술을 마무리해도 좋을까?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오케이! 닫자.”

이혁원, 강병옥, 변종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침내 펠로우와 전공의 세 명의 힘으로 일반외과에서 가장 어렵다는 수술을 해낸 것이다.

감동이자 가슴 벅참이었다.

김지훈마저 가빠지는 호흡을 진정시켜야 했다.

지나친 감정 과잉은 금물이다.

“아직 안 끝났다. 마무리하자.”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수술 팀 모두 현실로 돌아왔다. 미진한 부분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한 김지훈이 마무리를 시작했다.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보였다.

유심히 수술 부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수술인데 정말 잘했다. 다음에는 보다 확실하게 더 빨리 할 수 있을 거야. 반드시 그래야 한다.’

“김지훈, 배 닫으면 아홉 시간이야. 환자에게 무리가 오고도 남는다는 것은 생각했겠지?”

나오는 말은 표정과 전혀 달랐다.

“예, 명심하고 있습니다.”

“담도 쪽은 잘 판단했어. 이번 경우가 한계라고 본다. 기준으로 삼아도 좋을 거야.”

제자의 첫 휘플을 보고만 있을 이준영 교수가 아니었다. 어느 틈에 보았는지 수술 과정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이 스승의 자세일 것이다.

김지훈에겐 칭찬이자 흐뭇함이자 질책이었다.

“예, 선생님. 노력하겠습니다.”

“늦었다. 말할 시간에 마무리 해.”

무뚝뚝하게 한 마디 던지고 나가는 이준영 교수의 뒷모습을 보며 김지훈이 입을 꽉 다물었다. 항상 느끼지만 스승은 모든 면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자 벽이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스승님을 넘어서겠습니다.’

굳은 각오로 눈빛까지 번쩍였지만 김지훈의 손은 이미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예측과 이준영 교수의 말대로 아홉 시간 만에 수술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했어. 윤서연 선생, 김진호 선생님, 너무 오래 걸려서 죄송합니다.”

“어후! 피곤하다. 맥주 한잔 사.”

김진호 교수의 말에 꾸벅 인사를 하고는 휴게실로 향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휘플을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힘차게 어퍼컷 날리자 온몸이 절로 떨렸다. 가슴부터 발끝까지 설레는 흥분과 심장이 전하는 두근거림을 만끽했다.

후우! 후우!

가빠지는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홍간난 환자가 알려 준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곰곰이 수술 전 과정을 되새겼다. 어느 부분에서 불필요하게 시간을 잡아먹었는지, 어느 과정이 어려웠는지 찬찬히 정리했다.

이보다 더 큰 자산은 없었다.

다음 휘플을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었다.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진 후 보호자를 만났다.

하루 종일 수술 방 앞을 떠나지 못했던 아들과 며느리가 눈가를 붉혔다. 고맙다는 말 이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숱하게 찾아오겠지만 그 말로 족했다.

“선생님, 며칠은 중환자실에서 치료하겠습니다.”

“그래. 24시간 눈을 떼면 안 되는 상황이니까 그게 좋겠다. 혹시 치매에 영향을 줄지 모르니까 정신과에 다시 컨설트 내.”

홍간난 환자가 눈도 뜨지 못했다.

고령의 몸으로 아홉 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곁을 지키던 김지훈이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신기동 선생님이 빨리 수술 들어오시래요.”

아! 혈관 수술이 남았다.

연수 때문에라도 예외를 두지 않을 신기동 교수였다. 무거운 발을 끌고 어기적어기적 수술실로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신현수가 집도 중이었다.

퍼스트를 서던 신기동 교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이제야 혈관 수술이 뭔지 아는 것 같네. 신현수, 이렇게만 하자. 김지훈, 빨리 앉지 않고 뭐해? 나이도 많은 환잔데 아홉 시간이 뭐야? 정신 똑바로 차려. 다음에는 일곱 시간 내에 끝내. 알았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써드 아니, 참관을 했다. 세컨을 서던 송진우의 얼굴은 왜 벌게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을 힐끔힐끔 보며 말이다.

김지훈도 얼굴이 벌게졌다.

‘이 자식이 혈관 수술까지 잘하네. 아이고! 몸은 힘들어 죽겠는데 마음까지 초조하다.’

신현수의 냉정한 손길에 찬바람이 휘이잉 불었다. 휘플이 주는 감동이 가시고도 남았다. 거의 열한 시간 만에 수술실에서 벗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경아 씨, 오늘은 같이 퇴근합시다.”

늦은 회진을 돌고 고경아와 함께 퇴근을 했다.

어깨를 맞대고 손을 잡는 순간 하루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고경아도 마찬가지인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훈 씨, 휘플 한 기분이 어때요? 우리 남편이 정말 일반외과 교수가 된 것 같아서 난 가슴이 막 떨려요.”

“경아 씨 덕분에 그나마 편하게 했어요. 고마워요. 나도 사실은 은근히 흥분되고 떨리네요. 선생님들은 일곱 시간 내에 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언젠가는 여섯 시간 내에 하고 말 거야. 두고 봐요.”

“그럼요. 우리 지훈 씨가 어떤 사람인데. 한두 번만 더 하면 다섯 시간 안에 할 수 있을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최고의 응원이었다.

“당연하지. 기념으로 맥주 한잔?”

“좋아요. 우리 근사한데 가서 밥도 먹고 맥주 한 잔 해요. 딱 한 잔 만이에요.”

어느새 시간은 8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여유 있게 먹으려면 빨리 가야겠네. 갑시다.”

간만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칼질에 맥주를 곁들였다.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다는 고경아가 지갑을 활짝 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김지훈이 슬쩍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럴 땐 남자가 내야 하는 건데. 아! 지갑이······.”

용돈 올려 달라는 말이다.

고경아가 팔짱을 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훈 씨, 요새 물가가 너무 올라서 죽겠어요. 장바구니 하나 채우면 지갑이 텅 비네요. 오늘도 휘플 아니었으면 집에서 먹었어야 하는 건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떻게 살긴?

김지훈 용돈 아껴서 잘 살아야지.

‘에휴! 철벽이네. 용돈이 적은 건 아니지만 챙길 놈들이 한둘이 아닌데 비자금은 언제 만드나.’

있으면 쓰는 동물이 바로 남자다.

특히 후배나 친구 좋아하는 놈은 요주의 대상이고 씀씀이 조절은 경제권을 쥔 사람의 몫이다.

김지훈이 깔끔하게 포기했다.

지금 당장은.

‘비자금 걱정하느니 환자 걱정이 백번 낫다.’

(혁원아, 환자 분 어때? 혹시 딴소리 안 하셔?)

(예, 잘 깨어나셨지만 아직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삼 일 정도 관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 큰 수술을 했지만 치매가 아니었다면 중환자실에서 치료할 필요는 없었다. 몹쓸 병이 홍간난 환자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치매가 악화되면 안 되는데.’

수술과 중환자실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가 걱정이었다. 후배들과 함께 눈 부릅뜨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토요일이다.

홍간난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치료 받은 지 3일째다.

온갖 악조건은 모두 가진 환자다.

치매 기운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코 줄과 소변 줄은 물론 수액 줄까지 잡아 뽑으려 했다. 소리 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손발을 모두 침대에 묶었지만 코 줄이 손앞에서 달랑거렸다.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강병옥과 송진우의 눈이 시뻘겠다.

여느 때 같았으면 환자 열심히 봤다는 티라도 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도 많이 달랐다.

‘체력만의 문제가 아니야. 강한 정신력과 열정이 아니면 저럴 수가 없어.’

말이 아닌 김지훈의 몰골 때문이었다.

전공의보다 낫다고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펠로우 2년차에서 전공의 6년차로 돌아갔다.

‘후우! 힘들다. 이번 주는 다리 뻗고 쉰 적이 없는 것 같네. 교수가 늘어난 덕에 당직 줄어든 건 정말 신의 배려야. 하윤호가 없었으면 조금 더 편했을까?’

그럴 리가!

하윤호 교수는 손 하나 보태는 것이 없었다.

초빙이라는 불리는 구미 파견은 지옥을 선사했다.

밀려드는 외래와 예약된 정규 수술.

활활 타오른 이준영 교수의 불길.

매일 날아드는 신기동 교수의 비수.

석사 논문 초안에서 춤을 춘 이혁민 교수의 빨간 펜.

구미 가기 전 최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각오와 하윤호 교수를 말려 죽이겠다는 결의.

여기에 홍간난 환자 걱정까지.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게다가 오늘은 집담회가 있는 날이다.

제대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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