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09화 (709/1,329)

1화. 최선을 다 하는 것은 의무다. (2)

김지훈이 눈빛을 굳히며 잘린 위를 수술용 헝겊으로 감쌌다. 두 번째 장기를 제거하는 순간 오로지 끝을 향해 달려야 한다. 극도의 긴장 대신 심장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뜻하지 않은 담담함이 찾아왔다.

“십이지장 제거하자.”

나지막한 목소리가 수술 팀의 긴장을 유지시켰다.

유문 부위를 지나 십이지장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수술용 가위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우측 후복막에 반쯤 묻혀 있는 십이지장이 서서히 드러났다.

어차피 제거해야 할 장기라고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담도와 췌장 소화관이 합쳐진 총수담관과 연결된 장기이기 때문이다. 분포하는 혈관도 무수하게 많다. 제거 도중 손상을 준다면 주변 조직에도 손상을 주게 된다.

바짝바짝 입이 마르고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언제나 어려운 부분이지만 오늘 수술 중 이보다 쉬운 과정은 없었다.

휘플의 어려움이자 무서움이었다.

째깍! 째깍!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두 개의 손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김지훈의 손은 정확했고 이혁원은 자신의 손이 들어가고 나가야 할 때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마침내 공장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도달했다.

위 절반과 하나의 장기를 완전히 들어낸 것이다.

나직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장 겸자.”

십이지장이 공장으로 이행되는 부분을 잘랐다.

잘려진 위와 연결돼 있는 십이지장을 하나의 수술용 헝겊으로 다시 감쌌다.

이것이 앙블락(En Bloc) 수술법이다.

각 장기들을 따로따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된 채 한꺼번에 들어내는 방법을 말한다.

암 수술의 기본이다.

이렇게 해야 장기 사이사이에 위치해 암의 전파 경로가 되는 임파선을 남김없이 모두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일부와 십이지장을 모두 들어냈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췌장과 담낭, 그리고 담도와 후복막까지 제거해야 한다.

김지훈이 이혁원을 보았다.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해.’

“담낭 제거하자.”

아직도 수술은 초입에 불과했다.

전기 소작기가 삑삑 소리를 낼 때마다 담낭 벽이 간에서 분리됐다. 하얀 연기와 함께 또다시 살 타는 냄새가 퍼졌다.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일부 의사들도 역겨워하지만 외과의들에게는 익숙한 냄새일 뿐이었다.

담낭 동맥을 묶었다.

방금 전까지 핏기를 잃지 않았던 담낭이 검붉게 변했다.

세 번째 장기가 제거됐다.

분리된 담낭과 연결된 담낭관을 박리해 갔다.

간에서 내려오는 굵은 담도와 만나는 부분이 노출됐다. 박리가 진행되며 남은 담도와 간으로 이어지는 혈관이 환하게 드러났다.

휘플이 아니고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구조들이었다.

마침내 암 발생 부위와 담도가 완전히 노출됐다.

김지훈이 신중한 표정으로 담도를 촉진했다.

조심스럽게 암덩어리와 간 쪽으로 이어지는 담도를 확인했다. 딱딱한 부분을 지나 강한 탄력을 보이는 부분까지 촉진했다.

육안으로는 정상 조직이다.

하지만 간과의 간격이 너무 짧았다.

불안감이 다시 찾아왔다.

고개를 들어 수술 팀을 보았다.

누구 하나 불안해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역시 1센티미터도 남길 수가 없지만 이제와 돌이킬 수는 없다. 내 자신과 우리 수술 팀을 믿고 가자.’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담관 자릅니다. 송진우 선생 불러 주세요.”

수술용 가위에 전해지는 느낌이 묵직했다. 서서히 힘을 주자 굵은 담도가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정상보다 진한 갈색을 띤 담즙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힘을 가했다.

직경 1센티미터에 이르는 담도가 완전히 잘렸다.

“겸자.”

따르륵!

재빨리 잘린 담도에 난 구멍을 막았다.

위와 장, 담도를 임시로 막은 겸자만 네 개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도중에 중단하면 수습할 방법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이준영 교수가 있다고 해도 결코 다르지 않은 상황에 이른 것이다.

송진우가 들어왔다.

잘린 담도의 끝 부분을 잘라 건넸다.

“프로즌(frozen:급속 냉동 생검) 결과 빨리 가져와.”

조직을 받아든 송진우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이 부분에 암 조직이 있다면 얼마 남지 않은 담도를 더 잘라야 한다. 너무 짧게 남으면 아예 연결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생각만으로도 섬뜩한 일이었다.

수술 팀의 긴장이 확 치솟았다.

이미 12시가 훌쩍 넘은지 오래였다.

수술 시작한지 4시간 가까이 흘렀다. 김지훈의 과감하고 빠른 손과 이혁원의 확실한 어시스트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진행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만이 남았다.

후복막에 묻힌 채 암덩어리가 들어 있는 담도와 췌장이다. 그 어떤 수술보다 오랜 시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위험도는 말로 설명할 수조차 없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수술에 관여한 모든 의료진들의 긴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4시간에 가까이 이어진 긴장에 수술 팀의 피로가 눈에 보였다.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소비한 시간 이상의 시간이 더 지나야 수술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적절한 휴식이 절실했다.

김지훈이 수술 부위를 젖은 천으로 덮으며 말했다.

“5분간 쉬자.”

김지훈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이혁원이 강병옥과 변종수에게 쉬라는 눈짓을 했다. 수술 중 휴식을 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남은 과정을 생각하면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고경아가 보조 간호사를 보며 고갯짓을 했다.

빨대 꽂은 작은 우유 네 개가 수술 팀 입에 물려졌다. 탈수를 예방하기 위한 방편이자, 허기를 달랠 점심이다. 마스크 사이로 빨대를 물고 간호사의 손에 들린 우유를 마셨다.

김지훈이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과도한 긴장은 손을 굼뜨게 만들고,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것이다.

후우! 후우!

마스크가 불룩해지도록 숨을 길게 내뱉었다.

째깍! 째깍!

어느새 5분이 지났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일이 십 분은 더 걸릴 것이다. 지금은 단 일 분도 불필요하게 소모할 때가 아니었다. 육안으로 보인 소견을 믿고 수술을 진행해야 할 때였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시작하자. 켈리(가위처럼 생긴 수술용 집게).”

켈리를 받아 든 이혁원이 눈가를 좁혔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이자, 이 수술의 성패가 달린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암덩어리가 있는 담도와 췌장 머리 부분을 제거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도리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홍간난이라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기필코 성공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확신이 필요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성공한다.’

김지훈이 췌장에 면한 후복막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이혁원의 손이 바짝 따라붙었다.

경험은 확실히 큰 힘이었다.

김지훈의 손이 과감하면서도 부드러웠다.

후복막을 구성하는 조직과 그 속을 통과하는 혈관이나 신경들이 차례차례 박리됐다. 그러나 췌장이다. 그것도 몸통이 아닌 머리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석션, 보비.”

“병옥아, 피 닦고 빨리 빠져.”

따르륵! 따가각!

“타이! 타이!”

이혁원이 긴장을 끈을 바짝 조였다.

최대한 신중하게 타이해도 미세하게 가해지는 조직 손상은 피하기 어려웠다.

“이혁원, 타이 더 부드럽게 하고 반대쪽 빨리 잡아. 고 간호사, 타이는 더 가는 실로 주고, 보비 파워 높여요.”

“병옥아, 최대한 살살 닦아. 변종수, 최대한 당겨. 시야가 나빠지면 안 돼.”

이혁원은 물론 김지훈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마취과 간호사가 계속 이마를 닦아 주어야 할 정도였다. 온몸이 땀으로 푹 젖은 지 이미 오래였다.

‘후우! 몸통 제거하고는 차원이 다르네.’

수술이 이 정도로 어렵고 힘들 줄 몰랐다.

필요한 기구가 모두 동원됐다.

어느 누구도 수술 부위에서 눈을 뗄 여유가 없었다. 윤서연 역시 출혈 상황을 살피며 환자 바이탈을 유지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어깨와 허리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한창 수술이 진행되고 있을 때 송진우가 조용히 수술실로 들어왔다. 어떤 말이 나오는지에 따라 수술 방향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말할 틈을 찾지 못할 정도로 수술 팀 전체가 수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경아도 힐끗 시선만 주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김지훈과 이혁원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째깍! 째깍!

한 시간 같은 일 분이 반복됐다.

마침내 췌장 머리 부분을 모두 박리했다.

김지훈이 이제야 허리를 폈다.

“송진우, 언제 들어왔어? 결과 나왔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덜컥 겁이 나는지 강병옥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진우야, 프리(free)지? 프리 맞지?’

송진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프리랍니다.”

안도의 한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김진호 교수와 윤서연까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지훈이 훅 치밀어 오르는 흥분을 꾹 누르며 헛기침을 했다.

‘이제 남은 부분을 자르고 잇기만 하면 된다.’

“이혁원, 집중해. 췌장 자르자.”

긴장을 풀 틈은 없다.

멀쩡한 췌장을 잘라야 한다는 것만 다를 뿐 최종철을 수술할 때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려움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수처! 타이!”

한 바늘 한 바늘이 긴장이다.

두부처럼 연약한 췌장 조직을 타이하는 이혁원의 입이 바짝 말라들었다. 강병옥과 변종수는 리트랙터를 잡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췌장 중심을 가로지르는 소화관을 남기고 모두 단면을 처리했다. 주변 손상을 막기 위해 소화관 입구를 꼼꼼하게 거즈로 막았다.

네 번째 장기가 제거됐다.

마지막 장기만 남았다.

암이 발생한 담도다.

가장 확실하게 제거해야 한다.

김지훈이 입술에 침을 바르며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암 발생한 부위니까 출혈에 유의하자.”

암덩어리가 들어있는 담도 제거가 시작됐다.

1기라고 하지만 후복막을 침범했다.

돌처럼 딱딱해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암이라는 놈이 어떤 일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주의하고 또 주의해 가며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췌장 이상으로 어려웠다.

역시 출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보비! 석션! 수처!”

김지훈이 박리한 부분의 출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불과 1센티미터 정도를 박리할 때마다 거즈가 몇 장씩 벌겋게 피로 물들었다.

바이탈과 수술 상황을 지켜보던 윤서연이 수혈을 시작했다. 똑똑똑 한 방울씩 떨어지는 혈액이 홍간난 환자를 지켜 줄 것이다.

간으로 주행하는 혈관과 주변 신경이 인접한 부분에서는 엄청난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자칫 손상을 가한다면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수술이 끝난 후 새로운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었다.

“종수야, 힘껏 끌어. 병옥아, 석션 대기해. 이혁원, 타이!”

집중력을 잃지 않았지만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사투였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무조건 암과 담도를 제거해야 한다.

수술 팀의 이마에 한 방울의 땀이 흐를 때마다 암이 퍼져 들어간 후복막이 조금씩 박리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은 경험은 헛되지 않았다.

마침내 암덩어리에서 시작한 박리가 담도 절단면까지 진행됐다. 제거해야 할 장기를 암 수술 원칙에 따라 한꺼번에 모두 제거한 것이다.

위 하부, 십이지장, 담낭, 췌장 일부, 담도.

이 모든 장기가 암과 함께 한 덩어리가 돼 배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르고 작은 노인의 배 속 한 부분이 텅 비었다. 언뜻 소름이 돋을 정도였지만 이것이야말로 암 수술의 절대적 원칙이었다.

오후 3시다.

여섯 시간째다.

언제나 그렇듯 온몸을 적신 땀 덕분에 화장실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도리어 지나친 탈수, 정신적 피로와 뻐근한 육신이 문제였다.

빨대 꽂은 우유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5분간 쉽시다.”

김지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혁원이 고개를 흔들며 훅 숨을 내뱉었다. 극심한 긴장에 맥이 빠진 것이다. 강병옥과 변종수도 다르지 않았다. 사실 노련하기만 한 의사도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눈가를 좁혔다.

집도의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상상을 초월했다.

‘후우! 상당히 힘드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절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어렵고 힘들었다. 휘플이란 수술을 왜 일반외과 의사들이 두려워하는지 또 한 번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숨을 돌린 후 수술을 재개했다.

소장을 남은 위와 췌장 그리고 담도와 연결해야 한다.

위와 소장을 연결하는 과정은 숱하게 경험했다.

이혁원의 손길에 자신이 붙었다.

첫 번째 장기를 이었다.

어렵지 않게 끝냈지만 문제는 췌장과 담도였다.

“담도부터 연결하자.”

불과 1센티미터도 안 남은 담도와 소장을 이어야 한다. 점막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꼼꼼하게 봉합하지 않으면 수술 후 담즙 유출을 막을 수 없다. 간과의 간격과 손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적어 타이는 더 큰 난관이었다.

김지훈이 어깨를 살짝 흔들며 눈가에 힘을 주었다.

수술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최대 난관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지금도 수술의 성패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었다.

“수처!”

나직한 목소리에 강한 긴장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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