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최선을 다 하는 것은 의무다. (1)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좋아졌다.
여기저기서 불길이 타올랐다.
전공의들은 뛰어다니느라 헉헉대고 교수들은 입가에 웃음을 달고 다녔다. 하윤호 교수는 여전히 잠잠했고 얼마 전 강병옥과 있었던 일도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내년에는 얼굴 볼 일 없다.”
이준영 교수의 확신에 찬 목소리는 기쁨을 배가시켰다.
“조용히 하자. 조용히. 여러 사람 입 타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세상 참 복잡하지? 잉크 한 방울도 물에 섞이면 걸러내기 어려운 게 세상이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면 차차 깨끗해 질 거야. 차차.”
송재덕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맥이든, 혈연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만을 등에 업고 나대는 사람은 쉽사리 자신의 자리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날만 지속되면 원이 없을 것이다.
하나만 빼고.
신기동 교수가 손가락 사이 전부에 비수를 걸었다.
“김지훈, 너 딴 생각했지? 손이 왜 이래?”
“아닙니다. 집중했습니다.”
“집중한 게 겨우 이거야? 강병옥이 빤히 보고 있는데 창피하지도 않아? 이래서 혈관 수술 할 수나 있겠어? 일석이 이 자식은 언제 제대하는 거야.”
그나마 불똥이 분산돼서 다행이었다.
“신현수, 너도 마찬가지야? 김지훈 구미 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수술 계속 들어오고 싶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
왜 이러는지 빤히 알고 있지만 등짝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끝이 아니다.
하나 더.
“구미 가기 전까지 시간 맞으면 라파로 같이 하자.”
구미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복강경이다. 스승과 함께 하는 수술은 언제든 두 팔 들고 환영할 일이었지만 왠지 불길했다. 불길한 느낌을 따라 불길이 난무했다.
“김지훈, 최철한은 전공의가 아니라 전문의야. 선배를 가르칠 수 있겠어? 똑바로 하자.”
언제나 가장 무섭고 섬뜩한 말이다.
전공의 때처럼 스승에게 새카맣게 탔다.
또 하나 더.
“김지훈, 석사 논문 잊지 마라. 구미가 서울보다는 편할 테니까 핑계거리도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휘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홍간난 환자의 치매 기운은 일말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족히 열 명 몫을 하고도 남았다.
아! 정말 힘들다.
이러다 구미 가기 전에 죽을 지도 몰랐다.
고경아가 점점 초췌해지는 김지훈을 보며 구미에 대한 기대를 더욱 강하게 드러냈다.
“지훈씨, 여기보다 편한 거 맞죠? 꼭 그래야 돼.”
최철한과 둘이 근무한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드디어 수요일 아침이 밝았다.
‘휘플! 반드시 해낸다.’
비장한 각오도 무색하게 홍간난 환자가 아침부터 난리를 쳤다. 치매 기운 때문인지 소변 줄은 살살 달래가며 끼웠는데 코 줄이 문제였다. 변종수가 하다하다 못해 손을 들었고 강병옥이 나서고서야 간신히 꼽을 수 있었다.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수술한다더니 사람 잡네. 이거 빨리 빼줘. 빨리. 아이고! 죽겠다.”
참기 힘들 정도로 갑갑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술 후에도 한동안 유지해야 한다. 생명줄이나 다름없어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절대 빼서는 안 된다.
“나 수술 안 해. 이거 빨리 빼줘. 나 죽네. 나 죽어.”
어떤 말도 듣지 않고 떼를 쓰는 홍간난 환자를 보던 강병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자꾸 이러시면 앞으로 할머니 안 봅니다. 다른 선생들이 치료하게 할 겁니다.”
그렇게 난리를 치던 홍간난 환자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강병옥이 손을 꼭 잡은 채 수술 방으로 함께 내려갔다. 수술대 위에 누울 때까지 놓지 않았다.
정말 치매에 걸린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마취 직전이다.
김지훈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메이저 수술만이 아니라 난이도 높은 수술까지 숱하게 했지만 휘플은 차원이 달랐다. 더구나 첫 집도에 환자는 치매 걸린 고령의 노인이다. 안심하고 구미로 가기 위해서는 수술을 문제없이 완벽하게 끝내야 했다.
이혁원과 강병옥도 얼굴을 굳힌 채 수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오래 간만에 김지훈 수술을 들어온 고경아 역시 조금의 미비함도 만들지 않기 위해 바짝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지훈 선생, 휘플은 처음 하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아홉 시간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른 수술도 아니고 휘플은 처음 하는데 그 안에 끝낼 수 있을까? 지훈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
“마취는 우리한테 맡기고 여유 있게 수술해.”
김진호 교수의 말에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윤서연 선생, 준비 다 됐으면 마취 시작합시다.”
마취가 시작됐다.
윤서연이 산소마스크를 잡으며 간호사에게 눈짓을 했다. 정맥을 통해 마취제가 주입됐다. 홍간난 환자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띠! 띠! 띠! 띠!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이제부터 환자의 바이탈은 마취과가 담당한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지훈과 이혁원의 눈이 마주쳤다.
‘이혁원, 시작하자.’
‘예, 선생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직하고 강한 목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메스!”
김지훈의 손에 들린 메스가 무영등 불빛에 반짝였다.
명치부터 배꼽 아래까지 길게 열었다. 바짝 마른 노인의 육신은 너무도 쉽게 속을 내보였다. 기름기 하나 찾기 어려웠다.
환하게 드러난 장기들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복부 CT에서 발견되지 않은 원격 전이가 있다면 수술은 진행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장기가 깨끗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첫 번째 관문을 넘었음을 알렸다.
담낭 주변과 간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위와 대장 사이에 이어진 얇은 막, 대망을 절개했다. 지방조직으로 덮인 췌장과 총수담관의 윤곽이 보였다.
담도를 촉진해 딱딱한 암 덩어리와 주변부를 확인했다. 박리하기 전이라 확인하기 쉽지 않았지만 정상 조직과는 다른 감촉을 전하는 부분이 바로 암 덩어리다. 퍼스트 역시 정확한 병변의 위치와 상태를 알아야 한다.
“이혁원, 확인해.”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어 암 덩어리를 촉진한 이혁원이 눈가를 찡그렸다. 생각보다 훨씬 딱딱했고, 겉으로 만져지는 주변 조직이 본래의 탄력을 잃은 상태였다.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암이 퍼졌다는 증거였다.
“암 발생 부위부터 확인하자.”
담도와 췌장 주변을 덮고 있는 막을 일직선으로 제거했다. 전기 소작기가 이질적인 기계음을 낼 때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매캐한 냄새를 퍼트렸다.
잠시 후 담도 일부가 드러났다.
김지훈이 전에 없는 신중한 표정으로 담도 상태를 살폈다. 수술 기구로 주변 조직을 살짝 벌려가며 제거가 가능한지, 어디까지 절제해야 하는지 확인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담도 벽을 따라 간에 가까운 부분까지 암이 퍼진 것 같다. 후우! 담도를 2센티미터 이상 남기지 못하면 소장을 이어주기 힘든데 난감하네.’
“조금 더 박리해서 자세하게 확인하자.”
전에 없던 일이었다.
담도 상부를 덮고 있는 막을 모두 열었다.
암 덩어리부터 시작해 간에서 나오는 담도 근처까지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정상적으로 촉진되는 부분이 채 2센티미터가 되지 않았다.
예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암 경계부에서 1센티미터는 더 잘라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남은 부분이 1센티미터도 안 되잖아. 소장을 안전하게 연결할 수 있을까? 수술 후에 담즙이 새면 회복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최악의 경우가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김지훈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이혁원과 강병옥이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수술이 불가능한 것일까?
담도 제거가 불가능하다면 수술은 보존적 치료로 끝내야 한다. 환자에게는 절망만이 남을 것이다. 가족 전체의 삶까지 한동안은 무너진다. 홍간난 환자가 생을 다하고 나서도 한참 후까지 말이다.
다시 한 번 암 발생 부위를 확인한 김지훈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해. 연결이 가능할까? 무리하게 수술하다 연결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수술은 하나마나일 수도 있어. T-tube만 넣고 끝내야 하나?’
선택의 기로였다.
기술적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경우에도 보존 치료로 끝내야 한다. 암이 발생한 부분에 T-tube를 넣어 담도가 막히지만 않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일시적인 치료에 불과하다.
홍간난 환자의 경우 분명히 암은 제거가 가능했다.
문제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지였다. 불과 1센티미터도 안 남을 담도에 소장을 안전하게 연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나 혼자 수처와 타이를 다 할 수는 없어.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게 훨씬 더 위험해. 혁원이가 타이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할 수 있을까? 현수나 경석이 형을 부르면 가능할까?’ 확실한 판단이 서질 않는지 김지훈이 계속 망설였다.
단 하나의 문제도 생기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장기를 모두 건드리기 때문에 고령의 환자는 조그만 충격에도 견디지 못할 수 있었다.
스승과의 수술과 그동안 경험했던 일까지 떠올랐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 수술에서도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에게는 치명적인 후유증이 남는다. 더구나 지금은 최대한 안전을 담보하고 진행하는 정규 수술이다.
만일 수술 후에라도 환자가 사망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김지훈의 호흡이 가빠졌다.
담도를 확인하는 손에 확신을 싣지 못했다.
그때 이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담도에 소장을 연결하는 과정이 정말 위험해 보이는데 설마 수술이 불가능한 겁니까?”
김지훈이 고개를 들어 이혁원을 보았다.
같은 판단을 하고 있었다.
“가능할 것 같아?”
망설임 없는 답이 나왔다.
“선생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강한 신뢰와 확신이 실려 있었다.
전공의의 패기와 집도의인 김지훈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퍼스트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조언자다. 가장 믿을 수 있고 아끼는 후배, 이혁원이 바로 퍼스트다.
강병옥과 눈이 마주쳤다.
간절했다.
‘선생님, 이렇게 끝낼 수는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김지훈의 마음을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사람은 고경아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수술이 진행되기만을 기다렸다.
‘지훈씨, 지훈씨 아니면 누가 이런 수술을 할 수 있겠어요? 수술 팀을 믿으세요.’
믿음 이외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술 팀 전체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만큼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반 외과에서 가장 큰 수술인데다 실제 소견이 더 나쁜 상태라고 지레 겁부터 먹었다.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해냈다. 그러나 집도의는 가장 객관적이야 한다. 주관이 섞이거나 감정에 휘말리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짊어지게 된다.
이혁원은 과연 그만한 실력을 갖췄을까?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이혁원이었다.
담도와 소장을 연결할 때 집도의만큼 중요한 사람이 퍼스트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자만이라는 말은 아예 모르는 이혁원이었다.
김지훈 또한 확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처음 하는 수술이라는 사실은 핑계조차 되지 않았다.
집도의의 불안이 사라졌다.
‘그래. 불가능한 수술이 아니야. 우린 할 수 있어. 혁원아, 병옥아, 이 환자 살려 보자. 웃는 모습 꼭 보자.’
희미해져 가던 확신이 다시 가슴을 가득 채웠다.
김지훈의 호흡이 평온해졌다.
수술 팀을 보는 눈에 믿음이 실렸다.
마침내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혁원, 예정대로 진행하자.”
팽팽하기만 했던 긴장감이 터질 것처럼 치솟았다.
강병옥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홍간난 환자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최대한 긴장을 푼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고경아의 손에서 집도의와 퍼스트의 손으로 수술 기구가 전해졌다.
휘플은 가장 상부에 위치한 위를 절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장기들을 차례로 제거해야 한다.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후복막이나 췌장부터 제거하면 어려움이 훨씬 더 가중되고, 그만큼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절제가 시작됐다.
주변 조직을 박리하고 위동맥을 찾았다. 심장박동을 따라 벌떡벌떡 뛰는 동맥을 자르고 묶었다. 핏기를 잃은 위의 하부가 검붉게 변했다.
김지훈과 이혁원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위를 자르는 순간 무조건 진행해야 한다. 헛된 수술만 하고 중간에 끝낸다면 환자의 삶만 단축시킬 것이다.
‘집중하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오로지 수술에만 집중하자. 반드시 성공한다.’
“장 겸자.”
따르륵! 따가각!
노인의 연약한 위는 쉽게 잘렸다. 절단면을 따라 위 조직 속에 남아있던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되돌릴 수 있는 기회도 흐르는 피를 따라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