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06화 (706/1,329)

10화. VIP란. (1)

늦은 밤에도 툭하면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이혁원이 그때마다 땀을 흘려야 했다.

“우리 젊은 선생님은 왜 안 와요?”

“할머니, 김지훈 선생님은 퇴근하셨다니까요. 의사도 좀 쉬어야지 어떻게 매일 병원에만 있어요?”

“아픈 사람 놔두고 가긴 어디를 가? 그럼 의사 선생도 나 수술 하나?”

“예. 할머니.”

“나 수술만 받으면 괜찮은 거지? 아이고! 다 늙어서 자식한테 몹쓸 짓 하는 것도 사람 할 짓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 늙으면 죽어야 돼. 의사 선생, 수술 잘해 줘야 돼.”

강병옥이 일일이 응대하며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는 이혁원을 보며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드레싱과 차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병원은 여전히 환자들로 북적였다.

가뜩이나 힘든 전공의들이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4년차 부재와 1년차 부족은 어느 해보다 과중한 부담을 안겨 줄 수밖에 없었다.

그 탓일 것이다.

사람 미워하지 말라고 해도 하윤호 교수는 확실히 눈에 박힌 가시였다. 휴가 이후 상당히 잠잠했지만 수술이 뜨면 전공의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실력을 생각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게다가 대사 부인을 수술하기 전 보았던 모습과 담낭농증 환자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홍간난 환자를 수술하기 전 잠시 여유가 있을 때 상의해야 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공식과 비공식은 전혀 다르게 작동할 수 있었다.

‘파견까지 가는데 그전에 교수님들께 모두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모든 일을 확실하게 알고 계셔야 문제가 생기면 적절하게 대처하실 수 있겠지.’

신현수, 이경석과 함께 그동안의 일을 정리했다.

김지훈이 먼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라파로 전혀 못하고 미니콜레와 다른 수술은 위험할 정도로 손이 거칠어. 아뻬도 불안할 지경이야. 첫 번째 문제는 실력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미달이야. 그러면서 환자가 VIP다 싶으면 눈에 불을 킬 정도로 욕심을 내.”

“두 번째는 품성이겠지?”

신현수의 말에 이경석이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지훈아, 현수야, 전에도 말했지만 수술실이나 응급실에서 보인 모습은 결정적 사유가 안 돼. 다른 과 교수들까지 생각하면 짜증내고 입 거친 써전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실력을 빼면 더한 사람도 있는 게 현실이야. 병옥이에게 책임을 미룬 일이 핵심 중 하나일 것 같은데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길이 많아서 불안하다.”

“나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리긴 해요. 흥분한 상태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왔다고 하면 문제 삼기 힘들잖아요.”

이경석이 콧등을 찡그렸다.

“지훈아, 실력 문제는 말하기 쉬울까? 하윤호 교수 옷 벗기는 게 목적이라면 교수들이 다 인정해야 돼. 우리 과 선생님들이야 당연히 아시겠지만 다른 과 교수들에겐 설득력이 없을 수 있어. 하성원 원장님의 입김도 작용할 거야.”

이준영 교수도 같은 걱정을 했을 것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벌써 6개월이나 지났다. 문제 제기만 하고 교수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기를 바랄 수만도 없었다.

“좋은 방법 없을까요?”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네. 수술 방 간호사나 마취과에서 도와주면 나름 객관적일 수도 있는데 가능할까?”

김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형, 그건 안 돼요. 솔직히 우리도 부담스러운데 다른 사람한테까지 부담을 줄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답답한 일이지.”

김지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펠로우의 한계였다.

교수들도 딱히 방법이 없을지 모르지만 펠로우 세 명이 머리를 맞댄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 주에 휘플도 해야 되고 곧 구미 가야 하는데 골치 아프네.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현수야, 넌 뭐 떠오르는 생각 없어?”

“당장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해도 최소한 교수님들과 상의하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들어. 네가 파견 가 있는 동안에 이준영 선생님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일단 터지면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거야.”

나직한 한숨이 터졌다.

결코 원한 일이 아니었지만 김지훈이 중간에 서서 일종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파견 이후에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바위처럼 묵묵히 지켜보고 있지만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하면 결코 넘어가지 않을 이준영 교수였다. 이미 담낭농증 환자로 인해 한계 직전에 와 있을 것이다. 행여 해가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건 절대 안 되지. 제길! 하윤호 하나 때문에 걱정거리가 끊이질 않네.’

“기록까지 다 떼어 갔는데 담낭농증 환자가 고소나 확 해 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최소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른 과 교수님들도 아실 거 아냐?”

“자기 돈 들여서 변호사 사고 의사들 의견까지 구해야 하는데 고소하기가 쉽겠어? 돈은 둘째 치고 나한테 소견을 요청해도 객관적으로 써 줘야 하잖아. 그런 자료를 들고 승산이 있다고 생각할까?”

신현수의 말에 이경석이 탄식을 했다.

“우리 과에서 이런 말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환자도 문제지만 우린 이게 무슨 꼴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김지훈도 혀를 차며 시계를 보았다.

5시다.

회진 돌기 전에 상의할 시간은 충분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는데 이러저런 일로 너무 미뤘다. 구미 가기 전에 단단히 밟아 놓을 일이었다.

김지훈이 가운을 걸치며 말했다.

“현수야, 경석이 형, 이준영 선생님께 지금 바로 말씀드리고 교수님들과 자리 만들죠.”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혁원입니다.)

“왜? 무슨 일이야?”

(한 시간 째 홍간난 환자가 안 보입니다.)

“뭐? 무슨 소리야?”

(보호자가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병실에서 나가신 모양입니다. 병원 안을 샅샅이 뒤졌는데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환자라면 걱정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홍간난 환자는 치매까지 앓고 있다. 하루 종일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하곤 했다. 눈앞에 홍간난 환자가 있지 않는 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현수야, 지금은 안 되겠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김지훈이 이유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병동으로 달려갔다. 아들 내외는 물론 전공의과 간호사들까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병원 내에는 확실히 없어?”

“예, 전 병동에 다 전화하고 직접 확인했습니다. 혹시 몰라 방송까지 했는데 봤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최악은 병원 밖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중간에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낯선 타지에서 도움조차 제대로 요청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김지훈이 가운을 벗었다.

“이혁원, 강병옥, 나가서 찾자. 인턴 선생들 다 불러. 보호자 분, 근처 지리를 잘 모르시니까 병원이 보이는 곳까지만 찾아보셔야 합니다. 간호사, 빨리 경찰서에 연락해서 도와 달라고 해요.”

회진도, 하윤호 교수 문제도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

마침 나종진과 송진우가 보였다.

“진우야, 너 의료봉사 때 본 담도암 할머니 알지? 시간 있으면 병원 내에 계신지 찾아봐.”

모두들 다급한 얼굴로 병원 주변을 헤맸다.

멀리서도 눈에 딱 뜨일 수밖에 없는 환자복을 입고 있을 텐데 시간이 가도 보이지 않았다.

초조했다.

몇 번이나 병원에 전화했지만 찾았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번쩍번쩍 경광등을 켠 순찰차가 병원 근방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점점 주변이 어두워졌다.

입안은 바싹 말라드는데 온몸은 땀에 젖었다.

김지훈에게도 거리 풍경이 낯설었다. 77세 노인의 걸음은 건장한 청년보다 훨씬 느릴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은 가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도대체 어디에 계신 겁니까?’

돌아오는 길이 어둑어둑했다.

덜컥 겁까지 났다.

빤히 보고도 지나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뒤돌아봐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정작 보여야 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홍간난 환자를 찾은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 내외는 손발을 바들바들 떨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두 눈이 퉁퉁 불어 있었다.

“혁원아, 경찰한테 연락 없었어?”

“없었습니다.”

‘설마 사고가 난 건 아니겠지? 아니야. 그랬으면 환자복을 입고 있는데 당연히 응급실로 왔겠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선생님, 우리 어머니 별일 없으시겠죠?”

“여보, 미안해요. 내가 화장실을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요.”

“이게 왜 당신 탓이야? 그런 생각 하지 마. 노인네.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아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며느리는 눈물만 흘렸다.

초조함을 넘어 극심한 불안이 다가왔다.

환자 관리를 제대로 못한 책임이 문제가 아니었다. 낯선 곳을 헤매고 있을 홍간난 환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다시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밤을 새서라도 반드시 찾아야 했다.

병동을 나서려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병옥이는 아직 안 온 거야?”

다들 정신이 없는지 이제야 강병옥을 떠올렸다.

그때 간호사가 부리나케 달려오며 소리 질렀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뾰족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김지훈 선생님, 환자 분 찾았대요. 강병옥 선생님이 지금 택시 타고 오는 중이래요.”

“뭐? 나 바꿔줘요.”

“병옥아, 정말 옆에 계신거야?”

(예. 선생님. 옆에 계십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어디서 찾았어?”

(이태원 너머 보광동 거의 끝까지 가셨네요.)

일순 말문이 막혔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담도암을 앓고 있는 77세 고령 환자가 젊은 사람도 걸어가기 힘든 곳까지 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괜찮지?”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번쩍번쩍하다며 좋아하고 계십니다.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면서 놀다 가면 안 되냐고 하시네요. 할머니! 여기서 내리면 안 된다니까요. 병원 가야죠.)

한바탕 소린이다.

홍간간 환자의 목소리가 쌩쌩했다.

“어휴! 알았다. 빨리 와.”

일 분이 한 시간 같았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개를 빼야 했다.

드디어 강병옥이 보였다.

홍간난 환자의 손을 꼭 잡은 채였다.

무릎에 힘이 쪽 빠졌다.

아들 내외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어머니!”

“엄마, 내가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며느리는 또 울고 아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너무 기뻐 도리어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홍간난 환자도 아들을 보며 그랬을 것이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뾰족했다.

“할머니,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요 앞에 잠깐 나갔다 왔는데 걱정을 왜 해? 할 일이 그렇게 없어? 근데 날 데리고 온 사람은 누구야?”

“누구긴 누구에요? 의사 선생님이죠.”

온갖 타박과 원망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치매 정말 무섭네.’

김지훈이 홍간난 환자의 손을 꼭 잡은 채 병실로 들어가는 강병옥을 보았다. 담담하면서도 벅찬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땀으로 젖은 이마에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어 있었고 와이셔츠는 흠뻑 젖은 상태였다.

얼마나 찾아 헤맨 걸까?

“강병옥, 고생했어. 들어가서 좀 쉬자.”

“형! 찾았다면서요?”

헐레벌떡 의국으로 달려 들어오던 송진우가 말을 하다말고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땀투성이가 된 자신을 김지훈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함께 들어온 나종진은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이혁원이 안 하던 짓을 했다.

“진우야, 뭐해? 음료수 하나 가져 와.”

김지훈이 묵묵히 강병옥에게 눈길만 주었다.

송진우가 가져온 음료수를 건넨 이혁원이 어떻게 보광동까지 찾으러 갈 생각을 했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병옥 선생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시 봐야겠어요. 술이라도 한잔 사야하는데 오늘 당직이죠? 아깝다. 아까워. 우리 오프가 겹치는 날이 언제지? 진우야, 뭐해. 빨리 날짜 맞춰 봐.”

송진우가 급히 당직 표를 꺼내 들었다.

강병옥이 훅 숨을 내뱉었다.

수술을 멋지게 해냈을 때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김지훈은 여전히 별말 없었지만 자신을 보는 눈빛은 생소할 지경이었다.

환자에 대한 열정과 정성!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였다.

최종철에 이어 홍간난 환자까지 김지훈과 선배들이 무엇을 말했는지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들과 자신의 이마와 머리카락을 적신 땀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야 진심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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