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분명히 좋은 일이다. (1)
병실에서 나온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혁원아, 내가 뭐 빠뜨린 거 없나?”
“없는 것 같은데 갑자기 왜 그러세요?”
“환자들 모두 문제없으니까 도리어 불안해서 그래. 왜 이렇게 뭔가 빼먹은 거 같지? 찜찜해 죽겠네.”
가슴이 답답할 정도였다.
“우리 환자는 확실히 문제없지? 에이! 모르겠다. 강병옥, 오늘 수술할 환자들 준비 철저히 해.”
원래는 하윤호 교수 담당이었던 강병옥이 어느새 김지훈 파트가 됐다. 수술 건수를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니 당연한 일이었다.
회진 내내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김지훈이 정색을 하며 수술 방으로 향했다. 하윤호 교수가 보인 탓이었다. 얼굴을 딱 보는 순간 찜찜함의 원인을 알았다.
‘담낭농증 환자는 괜찮은가?’
어쩌면 쥐 죽은 듯 잠잠한 하윤호 교수 그 자체가 찜찜한지도 몰랐다.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일을 터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일 수도 있었다.
강병옥이 재빨리 달려가 회진을 돌았다.
환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입에 거품을 물어도 금방 끝날 수밖에 없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강병옥이 심각한 표정으로 하윤호 교수를 붙잡은 탓에 의외로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 어제와 비교해 양이 조금도 줄지 않았습니다. 재수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담낭농증 수술 후에 드레인에서 바일(bile:담즙) 나오는 경우 많아. 양이 많지 않으니까 곧 멈출 거야.”
하루 이틀 본 얼굴이 아니었다.
확신하지 못하는 표정이었고 믿을 수도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하윤호 교수의 체면이나 입장을 먼저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강병옥이 눈빛을 굳히며 고개를 저었다.
환자에 관한 일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교수 자존심이 걸린 일일지라도 말이다. 아니, 하윤호 교수는 반드시 들어야 한다.
“기간도 너무 오래됐고 미열과 복통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절로 멈출 것 같지 않습니다. 김지훈 선생님이나 이준영 선생님과 상의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김지훈과 상의하라고? 이 자식까지 내 속을 긁네.’
하윤호 교수가 인상을 팍 썼다.
“강병옥, 너 요새 왜 이래? 혹시 아직도 그때 일로 꿍한 거야? 내가 흥분해서 그랬다고 했잖아. 내일 시간되면 술 한잔 하면서 확실하게 풀자.”
강병옥이 내심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설명은 누구보다도 오래하는데 정작 환자에게 기울여야 할 관심은 없었다. 체면이나 자존심을 찾을 일이 아니었다. 이혁원 역시 지난 며칠 동안 재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마다 도리어 짜증만 냈다.
‘이 상황을 두고 볼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술 한잔 하자니까 왜 대답을 안 해?”
환자는 안중에도 없고 술타령하는 모습에 짜증이 확 솟구쳤다. 대답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내일은 당직입니다.”
“그래? 그럼 주말에 먹을까?”
“죄송합니다. 주말에도 당직입니다.”
“전 주에 당직 섰는데 또 서?”
“진우가 바꿔달라고 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윤호 교수가 혀를 차며 눈가를 찌푸렸다. 한 마디만 하면 바로 달려오던 강병옥이 어느 틈엔가 자신과의 자리를 피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 자식까지 왜 이래? 내 눈 밖에 나면 좋을 일 없다는 걸 잊은 거야? 네 부모 아니었으면 나도 볼일 없어.’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가보겠습니다. 수술 환자 때문에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김지훈 수술이 몇 갠데?”
“혈관 수술 두 개까지 하면 모두 여섯 건입니다.”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완전히 구겨졌다.
“여섯 건? 무슨 수술이야?”
“라파로 두 개, 미니콜레 하나, 탈장 하나 있습니다. 탈장도 라파로로 합니다.”
한숨 소리가 절로 터졌다.
김지훈이 수술하는 날이면 얼굴 보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면 이준영 교수보다 수술을 더 많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응급 수술까지 계산하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6개월 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펠로우 2년차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등짝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제길! 죽 쒀서 개 줬네. 미니콜레를 도대체 몇 개나 하는 거야? 몇 명 있지도 않았던 환자는 점점 더 줄어들고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담낭농증 환자는 왜 담즙이 멈추질 않는지 모르겠네.’
신현수와 이경석도 자신의 길을 꾸준하게 걷고 있었다. 나날이 늘어나는 수술과 환자는 이미 하윤호 자신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지 오래였다.
은연중 기분 나쁜 티가 전해졌을 텐데 강병옥이 꾸벅 인사만 하고는 스테이션으로 달려갔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깍듯한 태도에 도리어 신경이 거슬릴 정도였다.
이제 남은 끈은 박승준 교수 하나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윤호 교수가 얼굴을 펴지 못했다.
차트를 펼치던 강병옥이 눈빛을 굳혔다.
예전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정말 보고 배워야 할 선생님을 눈앞에 두고 저런 사람과 가까이 하려고 했다니 내가 미쳤었네.’
하윤호 교수는 반면교사의 전형적인 표본이었다.
예정된 수술이 모두 끝났다.
김지훈이 뻐근한 목과 어깨를 돌리며 눈가를 꾹꾹 눌렀다. 수술하는 날마다 하루에 여섯 건 이상 하기는 확실히 힘들었다. 신기동 교수와 혈관 수술까지 한 날이면 더욱 피곤했다. 지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부드러워지실 때도 되지 않았나? 어째 점점 더 심하게 타는 것 같네. 그놈의 비수는 도대체 언제까지 맞아야 하는 거지?’
최근 들어와 신기동 교수의 눈매가 의아할 정도로 더욱 예리해졌다. 집도를 하던 퍼스트를 서든 시도 때도 없이 날려대는 비수에 온몸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김지훈이 이러니 경험까지 부족한 신현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눈가가 벌게진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현수야, 혈관 수술하다가 명 짧아질 것 같지 않아? 병옥이 보기 민망하네.”
“우리가 그렇게 부족해 보이시나?”
“그럼 넉넉해 보이겠냐? 어림도 없는 소리지.”
투덜투덜 입맛을 다시며 수술실을 나가려는 순간 송진우가 후다닥 달려왔다.
“선생님, 3번 수술실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송진우가 얼굴만 붉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술실로 향한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이준영 교수가 하윤호 교수를 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것이 눈에 보였다.
이혁원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하 교수, 뒤로 빠져. 환자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다들 뭐한 거야? 김지훈, 빨리 들어와.”
담낭농증 환자였다.
담즙이 샌다며 걱정하던 이혁원의 불안이 현실이 됐다.
‘뭐야?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
곧바로 수술복을 갈아입고 자리에 섰다.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준영 교수가 어느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수술을 앞둔 데다 제자인 김지훈의 존재가 주는 안정감 때문이 분명했다.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담낭을 제거한 부위가 엉망이었다. 고름이 잡힌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담즙이 줄줄 새고 있었다. 담낭관 처리가 잘못됐거나 수술 중 담도 손상을 입힌 것이 틀림없었다.
이미 하윤호 교수가 여기저기 건드린 후였다. 한눈에도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환자는 극심한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름을 제거하고 담낭 뗀 자리를 꼼꼼하게 다시 처리했다. 동맥과 담낭관을 확인하고 미진한 부분을 해결했다. 결정적인 원인이 아니었다.
‘어디지?’
마지막으로 총수담관만 남았다.
담즙 누출의 원인을 찾았다.
총수담관 중앙에 눈에 보일 정도로 큰 구멍이 나있었다. 첫 수술 시 손상을 입힌 것이 분명했다. 지속된 염증으로 미세했던 손상이 점점 커지다 한꺼번에 열렸을 것이다.
담낭관이 아니라는 사실에 이혁원이 숨죽인 한숨을 터트렸다. 뒤늦게 들어온 강병옥이 하윤호 교수를 보며 인상을 썼다.
‘우리말이라도 들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
초조함이 감돌았다.
담도는 자르고 다시 이을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T-tube를 넣어 담즙이 배출되는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 T-tube를 빼주면 자연스럽게 아문다. 단, 제거까지 6개월 정도의 긴 시간을 요한다.
말은 쉽지만 재수술인데다 시기까지 늦어 결코 만만히 볼 과정이 아니었다. 만일 T-tube로 해결이 안 된다면 소장을 총수담관에 올려붙여야 한다.
배보타 배꼽이 커지는 것이다.
말이 필요 없었다.
어떻게 수술해야 할지 이미 결정됐다.
스승과 제자의 손은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지속적인 담즙 누출과 염증으로 너덜너덜해진 총수담관을 처리하는 이준영 교수의 손은 섬세했다. 남들보다 한 배 반은 더 큰 손에서 어떻게 이런 섬세함이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 여기는 이렇게 처리하면 되겠지?”
난데없는 말에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수술 부위에 집중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의견을 교환한 이준영 교수가 상의한 대로 수술을 진행했다.
구멍 난 부분을 처리하고 T-tube를 넣었다. 주변 조직이 상당히 약해져 수처와 타이에 상당한 주의를 요했다. 담관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소장을 올려붙여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었다.
한 바늘 한 바늘이 신중했다.
타이를 하는 김지훈도 최대한 숨을 죽였다.
극도의 긴장 속에 마지막 타이가 끝났다.
T-tube는 안전하고 단단하게 고정됐다.
하윤호 교수가 수술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지만 수술은 깔끔하게 마쳤다. 이준영 교수가 마지막 마무리까지 함께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개만 끄덕인 이준영 교수가 하윤호 교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혁원과 강병옥도 살벌한 눈빛을 피하지 못했다. 때론 무언의 압박이 더 무서운 법이다.
하윤호 교수는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준영 교수가 수술실을 나가고 한참이 지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입빠른 하윤호 교수도 조용히 환자를 보다 수술실을 나갔다.
위기를 모면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호자 앞에서 게거품을 물고 그럴듯한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쓰다. 정말 쓰다.
환자를 위한 일이 하윤호 교수를 도와준 꼴이 됐다.
당연한 선택이고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간의 일을 생각할 때 어이없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했다. 환자가 무사히 깨어나 병실로 올라간 것을 위안 삼아야 했다.
‘정말 딜레마다. 딜레마. 하윤호 운이 좋은 건지 우리 운이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네. 그런데 왜 이제와 수술하고, 스승님은 왜 그렇게 화를 내신 거지?’
수술복을 벗으며 물었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이혁원, 어떻게 된 거야?”
“수술 후 조금씩 묻어 나오는 정도였는데 오후에 갑자기 양이 많아 졌습니다.”
“재수술해야 한다고 말 안 했어?”
“며칠 전부터 말했는데 듣질 않으셨습니다.”
‘모른 척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가능성이 있을까? 휴우! 같은 과 교수를 두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네.’
판단 착오와 과실을 연관시켜 봤지만 재수술은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 의견이었다. 과실을 판단하는 측에서는 하윤호 교수의 실력과 무관하게 전문의 의견을 더 중요시 여길 것이다. 게다가 환자가 먼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결정적인 제약까지 따랐다.
“그럴 줄 알았다. 실력이 없으면 조언이라도 잘 들어야지. 쯧! 근데 이준영 선생님은 왜 들어오셨어? 너희들에게 화는 왜 내신 거야?”
이혁원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실에서 어떤지 아시잖아요. 오늘도 배 열자마자 난리가 났는데 다른 일로 들어오셨다가 우연히 들으신 모양입니다. 담낭관 타이를 제대로 못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까 지나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담낭관은 염증만 심한 상태였잖아?”
“새는 부분을 다 확인도 안 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하니까 화가 나신 모양입니다. 수술이 제대로 진행 안 되는 것을 보시고는 바로 옷 갈아입으셨습니다.”
김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뒤는 안 들어도 빤했다.
하윤호 교수를 도저히 믿을 수 없기에 마침 수술이 끝난 김지훈까지 불렀을 것이다.
“너희들은 왜 혼난 거야?”
“패혈증이 올 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지금까지 지켜봤다고 한마디 하셨습니다.”
이준영 교수의 말을 떠올린 이혁원이 부르르 떨었다.
- 패혈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치프란 놈이 뭐한 거야? 이럴 거면 관둬. -
사실 딱 그 말 뿐이었는데 이준영 교수의 말 속에 담긴 힘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아들이기 전에 제자이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갑자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이유가 될까? 수술 후 합병증은 불가피한 일이고 고의로 재수술을 미루지 않은 이상 문제 삼기 힘든 일이잖아. 미꾸라지 같은 놈.’
환자와 하윤호 중 한 명을 택하라면 환자를 택해야 하는 것은 절대적 원칙이다. 의사의 책임감 덕에 하윤호 교수는 또 한 번 동아줄을 잡았다. 얻은 것이라고는 이준영 교수의 분노를 샀다는 것뿐이었다.
자격 없는 사람 하나 쫒아내기 정말 어려웠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일이었다.
하윤호 교수 반대쪽에 환자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