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00화 (700/1,329)

7화. VIP란. (1)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소리가 수술 팀의 과도한 긴장을 풀어 주었다. 적정한 긴장과 집중력은 육체적 피로는 물론 생리적 현상까지 잊게 했다.

수많은 기구들이 쉼 없이 움직였다.

한 방울의 땀이 수술복을 적실 때마다 피멍 든 노란빛 췌장이 서서히 후복막에서 떨어져 나왔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주변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이 순간 이혁원은 최고의 퍼스트였다.

강병옥은 2년차 이상의 능력을 보였다.

마지막 부분이 서서히 떨어져 나오며 오랜 시간 끝에 췌장이 제거됐다.

강병옥이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고도 비만 환자의 복강경 수술에 이어 췌장 수술을 보는 강병옥의 시선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다시는 기회가 없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수술에 집중했다.

‘췌장 수술할 때 후복막에 묻힌 부분을 정말 주의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거침이 없으시네. 이게 탄탄한 실력과 경험의 힘인가? 지금 김지훈 선생님의 모습은 자만이 아니라 자신감이겠지? 이혁원 선생님도 정말 대단하네.’

선배들의 능력과 실력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김지훈이 절단면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메인 소화관을 비롯해 나뭇가지처럼 퍼진 미세한 소화관들이 잘린 부분이다. 최대한 확실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혁원아, 제대로 처리 안 된 부분이 있나?”

“이 부분이 좀 불안합니다.”

“그래? 보자.”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수처 주세요.”

남은 췌장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바늘을 깊숙이 뜰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살짝 뜨면 타이 도중 췌장이 버티지 못하고 찢어질 수도 있었다. 적절한 정도는 오로지 집도의의 감각과 경험에 달렸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췌장 조직을 한 바늘 떴다.

퍼스트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췌장이지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타이를 하는 이혁원이 손끝 하나 떨지 않기 위해 숨을 죽였다.

“컷!”

잘려나가는 실을 보며 훅 숨을 내쉬었다.

이마에서 땀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몇 곳을 더 수처하고 타이했다.

끝이 아니다.

경험상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설혹 모든 소화관과 깨진 췌장 조직을 처리했다고 해도 확신은 금물이었다.

젤리처럼 끈적끈적한 지혈제를 뿌리고 그물처럼 만들어진 지혈 망을 덮었다. 절단된 혈관 속에 스며들어가 구멍을 막는 원리가 미세하고 가느다란 소화관에도 적용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무영등 불빛을 받은 절단면이 지혈제로 번쩍였다.

이로써 췌장 부분을 모두 마무리했다. 몇 번을 보아도 불안했지만 손상 부위는 췌장만이 아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

“마취과, 대장 절제합니다.”

정말 많은 경험을 가진 수술이다.

김지훈과 이혁원의 손이 잘 어울렸다.

과감한 손은 조금도 막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허술하거나 거친 것이 아니었다. 기분에 충실한 써전이 어떤 손을 보이는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대장을 잘랐다.

정상적인 대장을 이었다.

가벼운 자극에 대장이 꿈틀거리며 연동 운동을 보였다. 확실하고 안전하게 이어졌다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혈관이 분포하는 장간막을 철저하게 확인했다. 실력에 관한 한 흠잡을 데가 없는 박승준 교수마저 놓친 부분이기에 더욱 집중했다.

“이혁원, 어때?”

“괜찮아 보입니다.”

배 속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장기 손상 여부를 또 한 번 확인했다. 여러 번 반복해도 결코 과하지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췌장을 다시 확인했다.

“혁원아, 절단면 어때 보여?”

이제야 이혁원이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동안 어떤 교수도 수술 중 이토록 많은 의견을 물은 적이 없었다. 치프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느껴지면서도 그 이상의 무거운 책임감을 온몸으로 실감해야 했다.

이혁원이 살짝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제 눈에는 문제없어 보입니다.”

“오케이! 치프하고 나하고 의견이 같다면 더 이상 손댈 부분이 없다는 말이지? 닫자.”

이제야 수술 팀이 긴장 속에서 빠져나왔다.

김지훈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미 온몸이 땀으로 젖은 지 오래였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많아진다고 해도 결코 마르지 않을 땀이었다.

“이게 췌장 수술의 무서움이야. 눈으로는 완벽해 보이는데 실상은 구멍이 술술 뚫린 상태나 다름이 없어. 그래서 이리게이션(irrigation : 세척)이 가능한 드레인을 넣는 수밖에 없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이혁원이 모를 리 없었다. 강병옥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김지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무엇일까?

굳이 그것까지 설명할 이유는 없었다.

췌장 제거 부위에 드레인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구멍 두 개가 난 네모나고 두꺼운 플라스틱 관이다. 한쪽으로 식염수를 주입하면 몸속으로 들어간 식염수가 반대쪽으로 흘러나올 수 있는 구조다.

소화액 유출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기에 수술 후 이 관을 통해 자주 췌장 수술 부위 주변을 씻어내야 한다. 환자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장 절제 부위에도 드레인을 넣었다.

배 양쪽으로 무려 다섯 개다.

마지막으로 절개창을 닫았다.

3년차와 2년차가 들어왔기에 마무리를 맡겨도 좋았지만 김지훈은 자신의 말을 잊을 사람이 아니었다.

‘준비됐을 때 수술을 준다고 한 말 잊지 않았겠지? 많이 변한 것 같다만 지금은 조금 더 지켜볼 수밖에 없어.’

강병옥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수처가 끝났다.

마취가 풀린 환자가 몸을 비틀었다.

“끄으응!”

어렵고 힘든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환자는 불과 18살이다. 수술은 잘됐기에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든 췌장 절단면에서 소화액을 내뿜을 수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기도가 열리며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가 반가웠을 테지만 이제 시작이란 생각만 들었다.

믿을 수 있는 후배가 한둘이 아니다.

불길한 생각은 지우는 것이 마땅했다.

‘너희들이 노력하는 한 반드시 잘 회복될 거야.’

김지훈이 기지개를 펴며 수술실을 나갔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실 팀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강병옥의 목소리도 들렸을까?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졌다.

이혁원이 오더를 내는 변종수를 보며 말했다.

“종수야, 김지훈 선생님 말씀 들었지? 드레인으로 이리게이션 하는 거 정말 신경 많이 써야 한다. 소화액 제거해 주지 못하면 환자 못 살린다.”

“하루에 몇 번 정도 하면 됩니까?”

“환자가 짜증 낼 정도로 많이 하면 할수록 좋지. 식염수가 배 속에 주입되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통증까지 느끼니까 최대한 천천히 해야 돼. 1분에 50cc 정도 한 번에 500cc 이상이다.”

변종수가 살짝 콧등을 찡그리며 입술을 모았다.

드레싱을 제외하고 세척만 한 번에 10분 이상 걸린다는 말이었다. 환자가 몇 명 안 되거나 하루에 한두 번이라면 모르지만 시간을 내기가 정말 버거운 상황이었다.

“나도 시간 나는 대로 세척할 테니까 최대한 신경 써.”

이혁원은 총치프다.

수술도 많이 들어가고 응급실이나 병동 일까지 할 일이 적지 않았다.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든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에 변종수가 눈가에 힘을 주었다.

그 시간 보호자를 만나고 있던 김지훈이 안타까운 눈으로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은 잘됐는데도 앞으로 2주 이상 지켜봐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눈에 보이지 않는 췌장 내 소화관까지 완전히 막혔다고 확신하려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수개월이나요?”

“췌장이란 장기가 그렇습니다. 수술은 잘됐다고 생각하지만 저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대장을 자르고 이은 데다 소화액 분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앞으로 상당 기간 금식을 유지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죄송하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회복 조짐이 확실해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밥을 먹고 문제가 없어야 퇴원이 가능합니다.”

수술만 잘되면 안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는데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끈 상황이었다. 자식을 둔 부모의 억장이 무너졌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아버지의 눈에 진한 아픔이 배었다. 어머니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가 또한 어머니다. 아들의 곁을 꿋꿋하게 지켜낼 것이다.

김지훈이 인사를 하고는 수술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수고했다는 말을 듣거나 걱정 말라는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환자가 웃으며 밥을 먹게 되는 그날, 그날이 와야 오고 갈 수 있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환자 앞에서 무언가를 상의하는 이혁원. 강병옥, 변종수를 보았다. 환자의 회복은 수술보다 앞으로의 치료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공의들의 열정과 정성이 그 어떤 환자보다 간절한 환자였다.

‘병옥아, 혁원이와 종수가 있긴 하지만 인원이 부족한 지금 가장 큰 열정이 필요한 사람은 너야.’

피곤을 어깨에 잔뜩 짊어진 채 퇴근을 했다.

침대에 몸을 눕히는 순간에도 환자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믿을 수 있는 후배들이 있다.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한 가지 불안을 덜자 엉뚱하게도 담낭농증 환자의 얼굴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소화액도 담즙도 절대 새면 안 되는데.’

김지훈이 결국 밤새 몸을 뒤척였다.

환자는 의사를 대부분 불안하게 하지만 춤추게도 한다. 다른 사람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게 수술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나흘 만에 퇴원했다.

뿌듯했다.

신동철 이사장을 비롯해 병원 관계자들까지 얼굴을 보였다.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이 이어지자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하윤호 교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 한 군데 곪아서 팍 터졌어야 저 꼴을 안 보는 건데. 제기랄! 운 좋은 새끼.’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은 나라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다 똑같은 모양이었다. 벨기에 대사까지도 활짝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외래에 살포시 놓고 간 처음 보는 음료수에 웃음이 나왔다.

진료를 마친 신현수와 이경석이 지나가다 들렸다.

“경석이 형, 주스 하나 마셔요. 이름도 모르겠고 글자도 영어가 아닌 게 벨기에 건가 봐요.”

“그래? 대사 부인이라서 그럴 듯한 선물을 주고 갈 줄 알았는데 결국은 주스네. 현수야, 미국 사람도 그래?”

“그쪽 사람들 의사들에게 이런 거 절대 안 줍니다. 받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에요.”

“야! 그럼 내가 대단한 거 받았네.”

신현수가 주스 캔을 따며 물었다.

“좋겠다. 어제 저녁에 췌장 수술 했다며? 잘 끝났어?”

부러움이 눈에 보였다.

췌장 수술은 경험하기 극도로 힘들기 때문이었다.

“두고 봐야지.”

“이리게이션 정말 자주 해야 할 텐데 인원이 부족해서 걱정이네. 대장까지 잘랐다고 들었는데 잘 봐야겠다.”

회진 돈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마침 아침에 나간 중요한 검사도 있었다. 남은 주스를 탁 털어 마신 김지훈이 부리나케 병동으로 올라갔다.

‘맛이 희한하네.’

항상 먹던 주스가 입에 맞는 모양이다.

차트를 앞에 두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던 강병옥이 재빨리 다가왔다.

“병옥아, 결과 나왔어?”

“예. 세척액에서 소화효소가 약간씩 검출됐습니다.”

수술 중 제거하지 못한 소화액이거나 혹은 수술 부위에서 미세하게 새고 있다는 말이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무방한 결과였지만 걱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세척은 언제 했지?”

강병옥이 살짝 멈칫거렸다.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종수가 두 번 시행했습니다.”

내심 강병옥이 했으면 했지만 이제 하루도 안 됐고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환자를 찾았다.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분무 사이로 나직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코 줄과 소변 줄이 주는 불편함과 큰 절개창에서 전해지는 통증은 젊고 건장한 환자에게도 상당한 고통이었다.

18세 남자 환자, 최종철.

환자 표에 적힌 나이가 눈에 밟혔다.

“최종철, 많이 아프면 바로 말해. 참을 필요 없다. 어머니, 혹시라도 불편을 호소하면 우리 강병옥 선생을 바로 찾으세요.”

걱정이 가득한 어머니와 한동안 대화를 나누고 병실에서 나왔다. 문득 전공의 때 십이지장이 막히지 않아 7년이 넘은 세월을 병원에서 지냈던 민수 생각이 났다.

‘자식! 잘 지내겠지? 최종철, 넌 그런 상황을 당하면 안 된다. 최선을 다해 반드시 막을 테니까 힘내.’

환자는 최종철만이 아니다.

바쁜 일상이 이어졌다.

하윤호 교수는 여전히 쥐 죽은 듯 잠잠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혁원은 결코 최종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피곤에 찌든 변종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주말이 지나고 새로운 주가 시작됐다.

수술 후 5일 째 된 최종철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빠르지도 않았다.

숨 가쁜 월요일 일과를 마치고 퇴근했던 김지훈이 TV를 보다말고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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