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99화 (699/1,329)

6화. 평생 두려워해야 하는 장기. (2)

스테이션 앞에 서서 잠시 노닥거리는 사이 이혁원이 후다닥 달려왔다. 갑갑한 표정이었다. 눈짓을 받은 강병옥이 뭔가를 내밀었다.

담낭농증 환자의 드레인을 감싸고 있던 거즈였다.

“선생님, 이거 괜찮은 겁니까?”

거즈를 받아든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예닐곱 장 정도가 노란색으로 푹 젖어 있었다.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삼출물 색이었지만 시간상 상당히 많이 젖은 편이었다. 아직도 염증이 심하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드레인과 맞닿은 부분의 색깔이었다. 갈색과 푸른색이 희미하게 관찰됐다. 담즙이 새고 있다는 의미였다. 단순히 넘어갈 수 없는 소견이었다.

김지훈이 코를 가져가며 킁킁 냄새까지 맞았다.

‘다행히 감염은 없는 것 같네.’

“선생님, 바일(bile:담즙)이 이 정도 새는데 지켜봐도 됩니까? 담낭관 타이한 게 빠졌을까봐 불안합니다.”

“염증이 심하면 며칠간 담즙이 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어. 담낭관 타이가 빠졌다면 훨씬 더 많이 나와야 돼. 환자 상태는 어때?”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 바이탈은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윤호는 뭐라고 그래?”

이혁원과 강병옥이 눈가를 찌푸렸다.

차마 하기 힘든 말을 해야 했다.

“담낭관 타이가 풀린 것이 아니라면 샐 곳이 없다며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지켜보랍니다.”

“설마 책임지라는 말을 한 건 아니지?”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들은 말 이상의 타박과 핀잔을 줬을 것이다. 은연중 책임을 전가하는지도 몰랐다. 최악의 경우, 하윤호 교수 말이 맞는다고 해도 최종적 책임은 집도의에게 있다. 그 점을 또 잊는다면 하윤호 교수에겐 치명타가 될 것이다.

“나도 신경 쓸 테니까 잘 봐. 나오는 양의 변화와 기간이 중요하다는 사실 잊지 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퍼스트를 선 이혁원에겐 대단한 압박이자 부담이 분명했다. 김지훈마저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을 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단순 손상 때문이라면 곧 멈출 테니까 상관없는데 담도라면 심각한데. 에이! 설마 하윤호 손이 아무리 거칠어도 담도 손상까지 주진 않았겠지?’

당장 배를 열어야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만일 총수담관에서 담즙이 샌다면 절대 멈추지 않는다. 재수술이 불가피하다. 빠른 판단과 재수술 시기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염증이 워낙 심한 담낭농증이었기에 하윤호 교수의 과실 유무를 입증하기도 힘들다. 이미 보호자에게 경고를 수없이 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떠나 환자를 위해서 불길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배 속에 거즈를 남겨도 자르기 힘든 현실인데 나쁜 생각 하지 말자.’

주섬주섬 퇴근을 준비하던 김지훈이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휴가 후 첫 당직이다. 어쩐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싶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치도곤을 당한다.

고경아에게 환자 있다고 정식으로 노티하고 마음 편히 응급실로 내려갔다. 당직실에서 이혁원의 노티를 기다렸다.

문 넘어 전해져오는 부산한 움직임.

급박한 모니터 소리.

환자와 보호자들의 아우성.

고요하다가도 일순간에 전쟁터처럼 변하는 응급실 모습은 언제나 변함없었다. 잠시 소파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사이 검사 결과가 모두 나왔다.

이혁원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18살인데 췌장 파열이 의심된다고?”

어떤 장기보다 무서운 장기가 췌장이다. 복부 CT를 확인한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췌장 중간 부분에 수직으로 난 검은 선이 보였다.

R/O, Pancreatic rupture or fracture.

(췌장 파열 혹은 절단 추정)

머리, 몸통, 꼬리로 나뉘는 췌장 중 몸통 부분 손상이 강력하게 의심됐다. 머리 부분 즉, 두부 손상보다 예후가 좋다지만 치명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방과 단백질을 녹이는 소화효소가 줄줄 새고 있을 것이다.

“오토바이에 치었는데 전신 찰과상 이외에 다른 부위 손상은 없습니다. 상복부에만 충격이 전해진 것 같습니다.”

다른 과가 담당해야 할 부상이 없다는 것은 천운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절대 운이 좋다고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환자는 열여덟 살에 불과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환자를 찾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극심한 통증에 새우등을 한 채 몸을 펴지 못했다. 보호자들은 초조한 기색으로 한시라도 빠른 치료를 원하고 있었다.

세심한 진찰은 췌장 손상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보호자 분, 이쪽으로 오실까요?”

두려움이 번졌다.

“안타깝게도 췌장이 손상됐습니다. 소화효소가 나오는 장기이기 때문에 주변 조직을 녹이기 전에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머리 쪽과 몸통 일부분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의 울음이 터졌다.

아버지는 꿋꿋하게 서 있었지만 손을 떨고 있었다.

“수술만 하면 괜찮은 겁니까?”

가장 하기 힘든 말이 남았다.

“불행히도 췌장 절단면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수술 후에도 상당 기간 지켜봐야 합니다. 소화효소가 지속적으로 샌다면 사망률이 낮지 않습니다.”

힘들게 버티던 어머니의 무릎이 꺾였다.

어떤 말로도 부모의 두려움을 씻어 낼 수는 없다. 그저 사실대로 정확하게 설명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만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직한 설명이 이어졌다.

“복막염 증세까지 보이기 때문에 췌장 손상 이외에도 대장이나 위 손상이 동반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부분은 수술 중 확인하고 대처하겠습니다.”

희망 섞인 말만 할 수 없었다. 온통 위험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의사의 한계를 여실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부모의 선택권은 없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들 꼭 살려주십시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는 넋이 거의 나갔다.

의사의 선택권도 없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수술과 마취 동의서에 도장을 찍은 아버지가 수많은 사망 요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들은 파란 불에 길을 건넜을 뿐인데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다.

즉시 수술 준비가 진행됐다.

만일을 대비해 수혈 준비까지 했다.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이혁원과 변종수가 동시에 복부 소독을 했다.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기에 2년차인 강병옥까지 들어왔다.

수술대 앞에 선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완벽하게 수술했다고 해도 합병증이 종종 발생하는 경우가 바로 췌장 손상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가장 경험이 적은 수술이 췌장 쪽이지만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수술이다.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스승님께 기대는 것은 방법이 아니야. 이제 18살인데 하필이면······.’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마취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네. 시작하십시오.”

피부를 깊숙이 절개했다.

지방층은 물론 근육층까지 모두 피멍이 심하게 들어있었다. 혈관이 거의 분포하지 않는 백색선마저 피에 물들어 벌겋게 보일 정도였다. 사고로 인한 충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견이었다.

복막을 열었다.

곳곳에 피가 고여 있었다.

배 속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췌장이 손상 받았다. 동반 손상이 없을 리가 없었다. 피를 닦아내기도 전에 손상 부위가 보였다.

김지훈이 답답한 신음을 터트렸다.

대장이 터져있었다.

췌장 바로 윗부분에 위치한 평행결장이 세로로 완전히 절단되기 직전이었다. 흘러나온 내용물로 주변이 오염됐지만 가장 급한 부위는 대장이 아니라 췌장이었다.

“임시 봉합하고 췌장부터 빨리 확인하자. 수처!”

더 이상 내용물이 새나오지 않도록 터진 부분을 거칠게 봉합했다. 증류수로 재빨리 배 속을 세척하고 주요 장기를 확인했다.

다행히 간과 비장은 손상을 입지 않았다. 탭(수술용 천)과 거즈로 대장 손상 부위를 감싼 후 위와 대장 사이의 연결 조직을 열었다.

췌장을 싸고 있는 막이 보였다.

시뻘건 피멍이 들어있었다.

조심스럽게 막을 박리해 가며 손상 부위에 접근했다. 췌장이 드러나기도 전에 곳곳에서 출혈이 발생했지만 시간을 지연시킬 수는 없었다.

“타이!”

급한 부분만 타이를 했다.

췌장이 보이면 보일수록 심한 초조함이 다가왔다.

‘CT에서 보인 것처럼 파열이 아니라 절단이어야 하는데.’

파열은 마치 짓뭉개진 것처럼 심한 조직 손상을 동반했을 때 쓰는 표현이다. 반면 절단은 골절(Fracture)을 의미하는 단어를 쓸 정도로 췌장이 한 줄로 잘라진 양상을 의미한다.

어느 쪽이 예후가 좋을 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서서히 췌장이 드러났다.

본래의 노란색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상 부위가 넓었다. 조심스럽게 주요 손상 면을 찾아가며 췌장 조직을 확인했다.

후욱!

긴장이 잔뜩 담긴 숨이 터졌다.

파열일까?

절단일까?

두부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의 탄력이 느껴졌다.

희망이 보였다.

절단면으로 의심되는 부분에 도달했다.

모스키토를 이용해 신중하게 막을 박리했다.

거칠게 잘라진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면을 따라 조금씩 췌장을 노출시켰다.

마침내 췌장이 모두 드러났다.

“마취과 초점 맞춰 주세요.”

CT 소견대로 몸통 부분에서 세로로 잘라진 상태였다.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천만 다행이었다.

새로운 긴장이 치솟았다.

절단면을 기준으로 꼬리 쪽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다.

문제는 담도와 연결되는 머리 부분이었다. 따라서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부분 즉, 머리 부분의 손상 정도가 관건이었다.

타박상은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다. 파열은 면했지만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면 수술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정상 조직이 반드시 충분하게 남아있어야 했다.

췌장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어느 정도 손상이 가해졌는지 확인하느라 신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모든 감각을 동원했다.

손으로 전해지는 촉각.

눈으로 전달되는 손상 소견.

그리고 경험에서 나오는 감각까지.

한동안 손상 정도를 확인하던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이혁원과 강병옥이 마른침을 삼켰다.

“선생님, 이 정도면 남은 부분은 괜찮은 겁니까?”

“후우! 다행이야. 절단면 처리하고 나머지 부분 제거하면 문제없겠어.”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수술은 지금부터였다.

살짝 누그러졌던 수술 팀의 긴장이 다시 고조됐다.

췌장 손상의 치명적 위협은 언급한 것처럼 지방과 단백질을 녹이는 소화액 유출이다. 즉, 주변 장기를 녹이게 되고 만일 동맥을 터트리면 손을 쓸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나뭇가지처럼 분포한 소화관은 굵은 부분 이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상된 채 노출된 췌장 세포에서도 소화액이 흘러나온다. 따라서 절단면을 모두 세세하게 봉합하고 타이해야 한다.

두부처럼 연약한 조직을 예리한 바늘로 떠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타이는 더욱 어렵다. 가뜩이나 약해진 췌장 조직은 힘을 조금만 강하게 주어도 찢어질 것이다. 새로운 손상과 더불어 소화액 추가 유출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김지훈이 이혁원을 보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솔직히 췌장 수술 경험은 누구에게나 부족하기에 김지훈도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수술을 해왔고 퍼스트인 이혁원은 3년차다.

그것도 총치프다.

‘스승님은 내게 지금보다 더 빠른 시기에 더 어려운 술기를 맡기셨다. 혁원이보다 내가 훨씬 뛰어났을까? 아니야. 믿어주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어. 이젠 혁원이를 전적으로 믿어야 할 때야.’

“혁원아, 시작하자. 수처!”

절단면을 따라 한 바늘 떴다.

거의 저항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봉합사를 잡은 이혁원이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난 널 믿어. 수술에만 집중해.’

강한 신뢰를 느낀 이혁원이 눈가에 힘을 주며 첫 번째 타이를 했다.

극도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손길이 느릿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당연한 일이었다. 섣부른 실력을 믿고 서두르는 것보다 백배 나은 태도였다.

한 바늘 한 바늘 진행했다.

이혁원이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침착하게 타이했다. 실이 조여질 때마다 췌장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조직 손상을 입히지는 않았다.

진물 같은 삼출액이 흘러나왔다.

그 속에도 소화액이 섞여 있을 것이다.

강병옥이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닦아냈다.

‘둘 다 잘하고 있어.’

중심에 위치한 가장 주된 소화관을 찾았다.

이중으로 타이하고 주변을 다시 봉합했다.

이제 절반 정도 진행됐다.

밤톨만 한 단면을 처리하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집도의는 물론 수술 팀 전체의 일천한 경험을 생각하면 대단히 빠른 속도였다.

“남은 부분부터 제거하고 다시 확인하자.”

절단면에서 꼬리 쪽으로 향한 부분의 제거를 시작했다.

제거는 절단면 처리보다 더 어렵다.

남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그냥 떼어내면 되기에 쉬울 것 같지만 남은 부분 역시 후복막에 묻혀있다. 과도한 조작이나 수술 중 손상을 입히면 소화액이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위험까지 상존했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모스키토! 타이! 컷!”

후복막 쪽은 언제나 어려움을 가중시켰고 췌장이라는 장기는 두려움까지 유발했다.

수많은 위험 요소를 끊임없이 상기했다.

김지훈이 신중하면서도 과감하게 췌장 주변을 박리했다.

‘이 부분은 정말 처리하기가 어렵네. 경험 부족을 탓하기보다는 내 실력을 먼저 생각해야 해.’

췌장에서 전해지는 감각을 확연하게 느낀 이혁원이 자신감을 갖고 정확하게 타이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이제는 치프다운 손을 보였다.

띠! 띠! 띠! 띠! 띠! 띠!

슈우욱! 슈우욱!

심장박동과 인공호흡기 소리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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