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반복되는 시간. (1)
김지훈이 살짝 긴장하며 기구를 바꿨다.
‘지방조직이 너무 두꺼워서 지혈이 안 되나?’
“수처 주세요.”
간과 인접한 부위를 봉합하고 타이해야 한다.
조금만 잘못 찔러도 간을 찌를 수 있다. 간 봉합용 바늘은 끝이 뭉툭하지만 지금 사용하는 바늘은 창처럼 끝이 날카로운 일반용 바늘이다.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
스윽!
출혈 조직 주변만 살짝 떴다.
타이 역시 결코 쉽지 않았지만 기구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은 다르지 않았다. 제대로 지혈이 됐지만 지방을 깊게 파고 들어간 실과 매듭을 보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세게 힘을 주면 도리어 찢어지겠어.’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신현수와 이혁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다시 박리다.
담낭이 간에서 떨어져 나오면 나올수록 수술 부위는 깊어졌고 시야는 당연히 더 나빠졌다. 전기 소작기로 지혈하기 힘든 출혈이 이어졌다.
수처와 타이를 할 때마다 긴장이 치솟았다. 담낭 절제술의 특성상 수술 시야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 이외에는 퍼스트나 세컨이 도울 수 있을 일은 거의 없었다.
김지훈이 마취과 간호사를 보았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자 마스크가 불룩해질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라파로를 하며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도 보기 드물었다.
나직한 기계음만이 들렸다.
수술 팀 누구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일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강병옥과 송진우까지 손에 땀을 쥐었다.
담낭 벽이 거의 다 박리됐다.
“담낭 동맥 주변 박리합니다.”
수술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위험한 부위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대장과 지방을 밀어내며 시야 확보에 안간힘을 썼다. 동맥 주변을 감싸고 있는 두터운 지방조직은 박리하기 더욱 까다로웠다.
웬만한 실력으로는 엄두도 못 낼 과정이었다.
김지훈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수술 양상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통상의 복강경 수술과 달리 퍼스트와 세컨의 경험과 실력이 상당히 중요해졌다. 김지훈의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행하는지에 따라 어려움이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카메라 우측 하부 비추고 간 살짝만 밀자. 그게 더 안전하겠어.”
여전히 긴장에 휩싸인 채였지만 신현수와 이혁원의 손은 정확하게 움직였다.
언뜻 동맥이 보였다.
김지훈의 손이 점점 느려졌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가장 깊고 위험했다.
심각한 출혈은 없었지만 기구 조작 한 번에 지혈 한 번일 정도로 피가 많이 비쳤다. 두툼한 지방이 이 정도로 어려움을 가중시킬 줄은 몰랐다.
김지훈이 기구 조작을 중단하며 눈가를 찡그렸다.
“현수야, 아직 동맥이 반도 노출되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담낭관이 있는 부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이번 수술은 담낭관이 동맥보다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일 수도 있잖아.”
신현수도 심각한 눈빛이었다.
“숨은 동맥까지 있으면 문제가 상당히 커지겠어.”
기필코 성공해야 한다.
실패하면 하성원 원장과 하윤호 교수가 기다렸다는 듯 꼬투리를 잡고 아귀처럼 달려들 것이다. 마음 한 구석으로 신경 쓰일 뿐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의사이기에, 무엇보다도 환자를 위해 개복을 피해야 했다. 대사 부인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믿고 치료를 맡긴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었다.
‘개복을 피하고 최대한 안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기존 방식대로 따로따로 진행하면 더 어려울 수 있어.’
기존의 방법으로는 위험을 피하기 힘들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익숙함을 버려도 되는 걸까?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스승도 말이다.
오로지 집도의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어느 쪽이 더 안전할까? 내 손에 익숙한 방법이 더 안전할까? 아니면 상황에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할까?’
안전과 위험, 익숙함과 새로운 시도,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문제들 두고 고민에 잠겼다. 한동안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결론을 내렸다.
“동맥과 담낭관을 동시에 확보하고 잡자.”
“그럼 간과 연결된 지방조직까지 모두 박리해야 하는데 출혈을 제어할 수 있겠어?”
“백인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 환자 특성인지 몰라도 지방층에 분포한 혈관이 너무 조밀해. 차라리 암 환자 임파선 절제할 때처럼 지방과 함께 주변 연결 조직까지 모두 한꺼번에 제거하는 편이 낫겠어.”
모두들 깜짝 놀랐다.
“임파선 절제하는 것처럼? 지금까지도 쉽지 않았는데 수술 부위가 더 커지면 너무 위험해.”
퍼스트로서 당연히 해야 할 조언이었다.
김지훈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어느 방법이든 주저하면 더 어려워진다. 집도의로서 최대한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했다. 확신을 갖고 진행해야 안전하다.
“이 환자에 한해서는 그 방법이 도리어 안전할 것 같아. 우리 능력과 손을 믿어야지. 이혁원, 나종진,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창피해서라도 복강경 제대로 못한다는 소리 들을 수 없다.”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농담만은 아니었다.
훅 숨을 내뱉은 김지훈이 박리 부분을 바꾸었다.
담낭 동맥과 담낭관을 둘러싸고 있는 지방과 연결 조직을 통째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간 혈관과 총수담관에 인접한 부위였다.
복강경으로는 단 한 번의 경험도 없는 과정이었다. 이준영 과장도 이런 방식으로 수술한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도 부담이 큰 사람은 김지훈이었다.
신현수가 숨을 몰아쉬었다.
‘라파로로 암 환자 수술하는 것처럼 한다고? 개복해서 해야 하는 과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혁원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전기 소작기 소리가 쉼 없이 울렸다.
“수처.”
중간중간 봉합까지 해야 했다.
김지훈의 등이 땀으로 푹 젖었다.
신현수를 비롯해 수술 팀의 긴장이 마취과에게까지 전해졌다. 모니터 화면을 지켜보던 강병옥과 송진우가 움찔움찔 놀랐다.
“혁원아, 간을 조금만 더 우측에서 잡아. 그렇지. 그 부분이야. 현수야, 카메라로 대장을 살짝 누를 수 있을까? 오케이! 그 정도만 눌러줘도 훨씬 낫다.”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기본기를 토대로 한 임기응변이었다.
서서히 간 쪽에 붙은 조직이 떨어져 나왔다.
간 혈관 하나가 드러났다.
기구를 조작할 때마다 등짝에 소름이 돋았다.
총수담관에 붙은 조직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긴장은 끝도 없이 치솟았다.
담낭관이 들어가고 담낭 동맥이 주행하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동맥을 터트리면 그 다음은 상상하기도 싫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김지훈이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며 신중하게 기구를 조작했다. 피가 비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섬뜩함과 서늘함을 피할 수 없었다.
‘후우! 수술만 생각하자.’
신현수가 적절하게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고 이혁원은 간을 미는 방향을 조금씩 바꾸었다. 조그만 동작 하나에도 손이 떨릴까 두려워 숨을 죽였다.
수술 팀의 능력이 모이며 직경 1센티미터에 가까운 총수담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긴장과 집중, 냉철한 손과 담담한 가슴.
필요한 요소들을 단 하나의 수술에 모두 쏟아부었다.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만 울렸다.
기구는 쉼 없이 움직였다.
마침내 간과 위 사이에 위치해 총수담관을 두껍게 덮고 있던 지방조직이 모두 박리됐다. 담낭 동맥과 담낭관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드러났다.
놀랍다.
암 수술 시 보이는 모습 그대로였다.
신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부분을 모두 박리할 생각을 한 것도 놀랍지만 어떻게 이런 식으로 수술할 수 있지? 암 수술 때 하는 임파선 박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잖아?’
김지훈이 얼마나 강력한 라이벌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잠시만 방심해도 훌쩍 앞으로 달려 나가 보이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김지훈이 출혈 부위까지 모두 잡았다.
“현수야, 혁원아, 더 이상 피 나는 데 없지?”
동맥과 담낭관 주변을 확실하게 박리한 덕에 남은 과정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클립. 세 개.”
동맥을 잡고 잘랐다.
이제야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클립. 세 개.”
극도의 긴장에서 해방된 김지훈도 여유를 되찾았다.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담낭관을 잡아가며 말했다. 담석으로 인한 담낭 절제술 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설명할 좋은 기회였다.
“송진우, 강병옥, 증상이 급격하게 발생한 이유는 담낭관 내부에 돌이 갑자기 박혔을 때야. 내부 구조가 나사처럼 꼬여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배출되지도 않겠지? 어떻게 해야 돼?”
송진우와 강병옥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총수담관에 바짝 붙여서 담낭관을 최대한 제거해야 합니다.”
“이 환자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담석 수술의 원칙이야. 단, 총수담관이 손상되면 수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되는 부분이야. 잘 기억해 둬.”
방심이라는 말에 강병옥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가위, 콘돔 주세요.”
드디어 담낭관까지 모두 잘랐다.
절제된 담낭을 배 밖으로 끄집어냈다.
“콘돔 하나 더 주세요.”
박리된 지방 덩어리가 담낭보다 더 컸다. 통상의 경우보다 얼마나 넓은 부위를 수술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들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깔끔했고 출혈도 보이지 않았다. 고도비만이 아니면 필요하지 않았지만 만일을 대비해 드레인을 넣었다. 깨끗하다면 이틀 후에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현수야, 끝내도 되겠지?”
“잘된 것 같다.”
“다들 수고했어.”
김지훈의 눈에 확실한 여유가 감돌았다. 하지만 수술 모자와 수술복이 흠뻑 젖은 지 오래였다. 온몸에 맥이 빠져 환자 옮기는 부산한 소리를 뒤로 하고 쉬어야 할 정도였다.
‘후우! 정말 힘들었다. 만만한 수술이 하나도 없네.’
잠시 숨을 돌리고 신현수와 함께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벨기에 대사를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수술 설명이 이어졌다. 벨기에 대사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신현수의 말이 끝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외국인 치고는 상당히 또박또박한 말투로 김지훈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김지훈이 황급히 인사를 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누가 보아도 김지훈과 신현수는 젊은 의사다. 이미 펠로우라고 신분까지 밝혔다. 그럼에도 자신의 부인을 믿고 맡긴 대사에게 고마웠고 잘 끝냈다는 안도감에 왠지 뿌듯했다.
위이이이잉! 반짝반짝!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밝은 불빛이 내내 따라붙었다. 정훈철의 표정이 상당히 진지했다.
함께 수술 결과를 전해들은 하성원 원장이 웃기는 했다. 김지훈의 괘씸하고 당돌한 모습을 떠올리며 분을 삭이는 것 같았다. 하윤호 교수는 왜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에 코웃음을 날렸다.
회복실로 돌아가 환자를 보았다.
무사히 회복되면 4-5일 후에 퇴원할 것이다.
‘휴가 마지막 날까지 수술이네. 몸은 피곤해도 하윤호 대신 수술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라파로로도 담도 주변 임파선 절제가 가능하네. 스승님은 이런 경우 어떻게 수술하실까?’
수술을 되짚어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뜻하지 않게 새로운 길을 열지도 모르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복강경으로 위와 소장을 연결할 수 있다면 조기를 넘어 1기까지 진행된 위암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확장하면 간담도 역시 적용할 수 있는 질환이 늘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스치는 생각을 뒤로 하고 여느 환자처럼 수술 후 해야 할 일을 했다. 무사히 깨어난 환자가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캄사합니다’로 들려 잠시 웃음까지 머금었다.
“억지로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편히 쉬세요.”
고개 숙여 답하고는 병실을 나왔다.
‘하윤호 덕분에 별일이 다 벌어지네. 근데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Shut the mouth, Be quiet. 이렇게 말했다가는 난리 나겠지?’
엉뚱한 생각과는 달리 가슴이 벅차기만 했다. 대사 부인을 수술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하윤호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라 코웃음을 한 번 더 쳐줬다.
‘실력이 있었어도 당신은 인간성 때문에 안 돼.’
룰루랄라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옷을 갈아입던 김지훈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한두 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