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86화 (686/1,329)

10화. 어부지리? 노력의 대가? (1)

새로운 형태의 스테이플이다.

직장암 수술 시 단면과 단면을 연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스테이플과 같은 원리를 가진 기구다. 다른 점은 위를 자르지 않은 상태에서 위벽과 위벽을 스테이플 사이에 넣고 레버를 당기면 자르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ㄷ’자로 생긴 스테이플 사이에 잘라야 할 위를 위치시키면 된다는 말이다.

조기 위암이 발생한 부분의 위벽을 한 바늘 떴다.

김지훈이 한쪽 켈리로 위를 누르며 나머지 켈리로 실을 잡고 들어올렸다. 원뿔 모양으로 변한 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원뿔 꼭지 점에서 3센티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스테이플을 끼우면 된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신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둘레를 따라 일정한 간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이리저리 스테이플을 돌리고 나서야 원하는 위치에 끼울 수 있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잘못 자르면 개복 후 위를 다시 잘라야 한다.

“지동훈 선생님, 정확하게 잡았는지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지동훈 교수가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조작했다. 스테이플에 잡힌 위벽 주변을 최대한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아, 괜찮지?”

“좋아. 그대로 잡으면 될 것 같은데.”

“진행한다. 콘돔 주세요.”

콘돔을 배 속에 집어넣은 신현수가 눈에 힘을 주었다.

스테이플 레버를 침착하면서도 강하게 당겼다.

끼이이익!

스테이플이 맞물렸다.

위벽이 잘라지며 절단면이 하나로 이어졌다.

김지훈이 절제된 위를 재빨리 콘돔에 넣고 빼냈다.

담낭과 달리 잡아 빼기가 쉽지 않았다.

‘위 절제 부위가 더 크면 절개 창을 더 열어야 빼낼 수 있겠어. 공기 새는 걸 막을 방법이?’

잠깐 딴 생각을 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고경아가 수술 용 그릇에 위를 펼쳤다.

정확하게 잘랐을까?

수술 팀의 시선이 일제히 절제된 위에 집중됐다.

정중앙에 조그만 병변이 보였다.

일단 암은 확실하게 제거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점막이었다.

점막이 빠진 곳은 물론 연결이 의심스러운 부분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 손이 아니라 스테이플을 썼기에 더욱 확실해야 했다. 불완전한 연결이 의심되면 성공을 눈앞에 두고 개복하는 수밖에 없다.

긴장이 확 치솟았다.

점막을 일일이 잡아가며 한 번 또 한 번 반복해 확인했다. 단 한 부분도 빠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완벽하게 이어졌다는 말이었다.

신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훈아, 확실하게 잘랐지? 지동훈 선생님, 박순용 선생님, 점막 빠진 곳 없죠?”

“없어. 단 한 군데도 없어.”

“없습니다.”

수술 팀 모두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공이다!

오랜 동안 기다려 왔고 모든 힘을 다해 준비한 수술을 해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수술 팀을 지배했다.

신현수의 마스크가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장 긴장하고, 가장 초조했을 것이다. 잠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던 신현수가 의미 모를 콧소리까지 냈다.

김지훈은 물론 지동훈 교수까지 가쁜 숨을 감추지 못했다. 정수리에서 시작된 짜릿한 느낌이 발끝까지 전해졌다. 손끝마저 바르르 떨렸다.

‘후우! 정말 짜릿하네.’

이런 느낌이 바로 전율일 것이다.

고경아와 윤서연의 눈가에 잔주름이 잡혔다.

누구보다도 기쁨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잘했다. 수고했다. 신현수 다음번엔 오늘처럼 떨면 안 된다. 김지훈 니는 계속 퍼스트 서라. 지 교수, 그때도 부탁한다. 내 오늘 지 교수가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떨긴 누가 떨었다고 그래? 내가 보기에는 여러 번 한 것처럼 잘만 했다. 우리 펠로우들 수술 너무 잘한다. 너무 잘해. 역시 젊은 사람들이 기계에 익숙해. 호치키스하고 막대기가 손에 붙은 것 같다. 지훈아, 현수야. 대장하자. 대장. 지 교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장하자. 대장.”

누군가 나직한 웃음을 터트렸고 지동훈 교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껌벅거렸다. 송재덕 교수가 확고한 신뢰를 보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 과정이 진행됐다.

드레인을 박고 피부를 봉합했다.

마치 자신의 수술인 것처럼 흥분을 못 이기던 김지훈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1시가 거의 다 됐다. 대장 파트인 송진우의 얼굴까지 보였다.

“현수야, 나 먼저 나가야겠다.”

“아! 간 절제?”

김지훈이 서둘러 탈의실로 달려가 땀에 젖은 수술복을 갈아입었다. 뽀송뽀송한 수술복 감촉이 어느 정도 피로를 씻어 주었다.

‘조기 위암은 잠시 잊고 간 절제에 집중하자.’

갈증과 배고픔을 느낄 새가 없었다.

감동만이 아련하게 남았다.

박승준 교수가 대장 절제를 막 끝낸 후였다.

“김지훈 선생, 딱 맞춰서 들어왔네.”

약방의 감초도 아니고 하윤호 교수가 또 보였다.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쳐 박승준 교수에게만 살짝 고개를 숙이고 집도의 자리에 섰다. 나종진이 세컨 자리로 비켜서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였다.

“수술 잘 끝났어?”

“다행히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신현수 선생은 경험도 거의 없는데 라파로 기구 다루는 솜씨가 대단했습니다. 정말 많이 노력한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들으라는 듯 살짝 목소리를 높인 김지훈이 절개 부위로 눈을 돌렸다. 명치부터 골반 위까지 길게 열려있었다.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복강경 수술의 유용함을 또 한 번 절감했다.

수술 부위는 역시 깔끔했다.

대장과 대장이 정확하게 연결돼 있었고 임파선을 포함한 장간막을 제거한 부위가 깨끗하게 보일 정도였다.

‘마음에 걸리는 일만 없으면 정말 좋겠는데.’

나직한 한숨을 내쉰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잡생각은 금물, 집중해야 할 때였다.

먼저 간과 주변 조직을 확인했다.

간은 외관 상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지만 담낭 벽 일부가 미세하게 두꺼워져 있었다.

박승준 교수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김지훈 선생, 담낭은 괜찮나?”

“담낭관과 연결된 부위가 살짝 두꺼워져 있네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경험과 실력, 세심함이 아니면 발견하기 쉽지 않은 소견이었다. 전공의에게는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고 하윤호 교수였다면 발견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흐음! 확실히 펠로우 수준이 아니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수술 시작한지 이미 4시간이 훌쩍 지났다.

간 절제는 순조롭다고 해도 3시간 정도 걸린다.

담낭을 절제하고 배를 닫는 시간까지 하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수술 시간만 도합 9시간에 가까워진다. 암 환자치고는 의아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다지만 무리가 될 것이다.

중간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수술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승준 교수는 송재덕 교수도 인정한 일반외과 의사였다. 서로 믿고 손을 맞춘다면 어떤 일이 발생해도 확실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이는 아니지만 담석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증상이 발생했을 때 배를 열면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담낭도 같이 제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술 시간이 더 길어지는데 괜찮을까?”

박승준 교수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호흡만 잘 맞으면 담낭 절제는 바로 끝낼 수 있으니까 전체 수술 시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실력만큼은 믿고 가자.’

“최대한 줄여보겠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에 박승준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담낭 절제부터 시작했다.

배는 활짝 열려 있고 염증도 발생하지 않은 담낭이다. 무수한 경험까지 겹쳐 김지훈의 손이 전에 없이 과감했다.

삐이익! 삐이익!

보비 소리와 함께 간과 붙은 담낭 벽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두세 번의 타이로 출혈까지 완벽하게 조절했다.

자연스럽고 정교하다.

어느 새 담낭 동맥과 담낭관이 환하게 드러났다.

“타이! 컷!”

위험 구조물 처리를 끝으로 담낭이 깔끔하게 절제됐다. 불과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염증이 없어 빠르게 할 수 있다지만 박승준 교수의 감탄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다.

‘야! 빠르면서도 확실하네.’

곧 바로 간 절제가 이어졌다.

서걱! 서걱!

모스키토로 손톱만큼씩 잘라나갔다.

“타이!”

박승준 교수의 손이 돋보였다.

간결하고 빨랐다.

조금만 힘을 줘도 쉽게 끊어지고 부서질 미세한 혈관과 담도 및 간 조직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타이했다.

서걱! 서걱!

김지훈은 거침이 없었다.

정확한 해부학 지식과 실력 그리고 경험을 토대로 한 자신감이었다. 뛰어난 퍼스트가 전하는 편안함에 심리적 안정까지 얻었다.

좌측 간에 혈류를 공급하는 혈관이 드러났다.

과감하던 손이 신중해졌다. 눈가를 좁힌 채 전에 없는 부의를 기울였다. 박승준 교수의 손길도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혈관 주변 조직을 깨끗하게 처리했다.

“타이! 컷!”

손가락 굵기 만한 혈관 단면이 긴장을 유지시켰다.

좌측 간 내 담도에 도달했다.

간 절제의 가장 흔한 합병증 중 하나가 바로 담즙 유출이다. 유출 양이 많으면 재수술을 요한다. 혈관만큼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처리했다.

어려운 부분이 모두 무난하게 진행됐다.

박승준 교수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실력 하나는 흠잡을 데가 없어.’

서걱! 서걱!

지루하리만치 반복적인 과정이 이어졌다.

인내력과 정신력 역시 실력의 일부분이다.

오랜 수술 시간에 긴장과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김지훈과 박승준 교수의 눈빛과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잘라야 할 마지막 부분이 보였다.

“타이! 컷!”

마침내 검붉게 변한 좌측 간이 절제됐다.

끝이 아니다.

사소한 출혈과 담즙 유출 부분까지 모두 확인했다.

빠짐없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거즈.”

새하얀 거즈를 받아 든 김지훈이 절단면을 지그시 눌러 닦았다. 점점이 피가 묻었다. 약간은 노란 빛이 도는 것도 같았다.

간 절제면의 출혈은 더 이상 조절할 수 없다. 이 정도면 저절로 지혈이 되며 큰 문제없이 회복될 것이다.

김지훈이 이제야 고개를 들었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박승준 교수가 동시에 살짝 기지개를 폈다.

“정말 깔끔하게 잘랐네.”

저절로 시계에 눈이 갔다.

얼마나 빨리 했는지 궁금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받을 부담 때문이었다. 절제를 시작한 지 3시간이 막 지나고 있었다. 담낭 절제를 포함한 시간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끝났다.

‘대단해.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네. 이러니 하윤호가 마음에 들 리가 없지. 반의반이라도 실력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아. 갑갑하다.’

김지훈도 내심 감탄하고 말았다.

‘후우! 역시 실력에 관한 한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선생님이네. 시간도 시간이지만 처음 수술을 같이 하는데 정말 편하게 했어.’

“마무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박승준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하윤호 교수를 보았다.

마무리는 단순히 배를 닫는 과정이 아니다. 최종 점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무리는 당연히 내가 해야지. 김지훈 선생, 수고했어. 정말 고마워. 나종진, 시작하자.”

“그럼 전 나가보겠습니다.”

나종진의 눈에 언뜻 의아함이 흘렀다.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수술실에서 나갈 김지훈이 아니었다. 역시 덧 가운만 벗은 채 수술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리를 지켰다.

“수고하셨습니다.”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힘찼다.

마취과도 부산해졌다.

구석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던 하윤호 교수만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눈길도 주지 않고 마무리를 지켜보는 김지훈과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 마무리라는 말에 힘을 준 박승준 교수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펠로우 주제에 어떻게 3시간 만에 끝낼 수 있지? 이거 분위가 묘해지네. 박승준, 설마 다른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재미없을 줄 알아.’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불안과 초조함을 이기지 못했다.

하성원 원장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웃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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