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85화 (685/1,329)

9화. 또 하나의 이정표. Ⅱ (2)

수술 직전까지 관련된 모든 의료진들의 열정이 이어졌다.

신현수 못지않게 김지훈의 부담 역시 컸다. 실력을 떠나 동료의 절대적 믿음 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승준 교수와도 꽤 긴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정승옥 환자의 검사 결과를 앞에 둔 박승준 교수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시간이 다소 지나고 나서야 복부 CT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간 절제까지 해야 하니까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 좋겠지? 김지훈 선생, 지 교수, 이 부분에서 자르고 하방으로 박리해 나가면 수월할 것 같은데 어때?”

김지훈이 입을 열려고 하자 지동훈 교수가 지그시 팔을 잡아끌었다. 박승준 교수도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닌 듯 CT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독특한 습관이자 특징이다.

약간은 다르고 어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승준 교수의 수술 계획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간결하고 빠른 방법을 택했다.

이론적 토대도 확실했다.

박승준 교수의 간결하고 깔끔한 수술은 뛰어난 기술만이 아니라 수술 전 철저하게 준비한 덕이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열정까지 보였다.

‘우리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전적인 느낌이야. 경험이 풍부한 덕일까? 경석이 형에게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직접 보니까 정말 배워야 할 점이 많네.’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김지훈 선생, 간 절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눈가를 굳힌 김지훈이 자신의 수술 계획을 설명했다. 실전과 다름이 없다. 환자에게 한 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담낭 우측에서 먼저 접근할 생각입니다. 특히 혈관과 인접한 부분에서는 병변과 충분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박승준 교수의 눈빛이 조금씩 변해갔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라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펠로우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어. 이론만이 아니라 상당한 경험을 쌓은 덕이겠지. 하윤호가 어떻게 보일지 눈에 선하네. 김지훈과 지 교수만 잡으면 걱정할 일이 없을 텐데.’

수술 연계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오고갔다.

모든 사안을 확실하게 정하고서야 자리를 끝냈다.

강한 책임감이었다.

‘지동훈 선생님만 같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오래 간만에 이런 자리를 함께 한 지동훈 교수의 눈빛이 복잡 미묘했다. 박승준 교수를 보며 살짝 인식이 변한 것 같은 김지훈의 표정에 더욱 아쉬워하고 있었다.

‘김지훈 선생을 통해 우리 과 분위기가 어떤지 다시 한 번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원하는 것은 저절로 얻으실 겁니다.’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예전 모습.

다른 사람처럼 생각될 정도로 보이는 또 다른 모습.

박승준 교수는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을까?

드디어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조기 위암 환자와 간 전이가 동반된 대장암 환자가 수술실로 내려갔다. 신현수와 지동훈 교수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김지훈도 회진이 끝나자마자 수술실로 달려갔다.

병원 역사상 첫 수술이라는 의미 때문인지 기술직 직원들이 와 녹화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수술실이 의료진들로 가득했다.

집도의 : 신현수 교수.

퍼스트 : 김지훈 교수.

세컨 : 지동훈 교수.

써드 : 전공의 4년차 박순용.

마취과 : 윤서연 교수 및 김진호 교수.

어시스트 간호사 : 고경아.

펠로우들이 꾸릴 수 있는 최고의 수술 팀이다.

강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혁민 교수가 조용히 수술 준비를 지켜보았고 송재덕 교수까지 얼굴을 비쳤다.

환자가 수술대 위에 누웠다.

윤서연이 편안한 목소리로 환자를 안심시켰다.

“환자 분, 약 들어갑니다. 팔이 조금 저리실 수 있어요. 간호사. 근이완제 동시에 투여하세요.”

환자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호흡 마취를 유지하던 윤서연이 기관 내 삽관을 했다.

심장 박동과 인공호흡기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지동훈 교수와 박순용이 복부를 소독했다.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매일 맡아도 항상 강렬한 자극이다.

환자의 전신을 깨끗한 천으로 덮었다.

수술 팀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 섰다.

복강경 본체와 각종 기구가 들어왔다.

“고 간호사, 김지훈 선생, 빠진 기구 없죠?”

“빠짐없이 준비됐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현수가 윤서연을 보았다.

“마취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네. 시작하셔도 됩니다.”

윤서연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메스!”

훅 숨을 내쉰 신현수가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드디어 복강경을 이용한 조기 위암 수술이 시작됐다.

절개된 피부에서 빨간 피가 비쳤다.

“에어 팁(air tip).”

피부 양쪽을 단단히 잡고 들어 올렸다.

가늘고 뭉뚝한 관을 그 사이에 꼽았다.

툭!

복막이 뚫리는 저항감이 사라졌다.

“에어 온(on).”

처컥! 처컥!

배 속으로 이산화탄소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서서히 배가 부풀어 올랐다.

배 속 압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와 함께 에어 펌프가 멈췄다.

신현수의 눈길에 김지훈이 가볍게 복부를 눌렀다.

트로카(troca : 복벽 천공용 기구)를 넣기에 안전할 정도로 공간이 확보됐다는 감각이 다가왔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현수가 압력을 확인하고 손을 내밀었다.

“트로카.”

담낭 절제와는 달리 모두 다섯 곳을 뚫어야 한다.

좌측에 두 곳, 우측에 세 곳이다.

모두 굵고 뾰족한 직경 10밀리미터 트로카다.

따라서 내부 장기 손상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복강경 경험이 거의 없는 신현수의 손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카메라.”

배 속은 깨끗했다.

트로카로 인한 손상은 없었고 원격 전이나 임파선 전이도 관찰되지 않았다.

예정대로 수술을 진행하면 된다.

담낭 절제술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세컨인 지동훈 교수가 신현수 옆에 서서 카메라를 잡았다. 환자 우측에 자리한 신현수가 켈리와 보비가 달린 기구를 삽입했고 반대쪽에 선 김지훈도 필요한 기구를 넣었다.

담낭을 절제할 때 필요한 기구보다 두세 배 더 크고 굵은 기구 끝이 위압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제 수술 준비는 모두 끝났다.

집도의의 역할이 80퍼센트 이상인 담낭 절제술과는 달리 조기 위암은 집도의와 퍼스트가 유기적으로 어울려야만 해낼 수 있다.

신현수와 김지훈이 눈을 마주쳤다.

긴장과 흥분, 불안과 설렘이 교차했다.

무엇보다도 강한 신뢰가 흘렀다.

‘시작하자.’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경험 부족은 위 몸체 좌측에 발생한 암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미리 위암에 물려 놓은 클립을 간신히 확인하고 복부 CT 및 이혁민 교수의 판단까지 모두 동원해야 했다.

“지훈아, 이 지점을 중심으로 위아래 3센티미터 절제하고 연결 조직 박리는 그에 맞춰서 진행하자.”

“오케이!”

이제 비장과 연결된 조직을 박리해야 한다.

개복 시에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위지만 이번 수술에서는 특히 더 어렵고 중요한 과정이었다. 위는 새로운 기구를 이용해 간편하게 자를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오로지 기구를 다루는 손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수술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구나 신현수는 복강경 수술 초짜다. 이론과 실제가 다를 듯 기구 다루는 손이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게 어시스트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신현수가 잘라야 할 부분을 가리켰다.

조직 양편을 잡은 김지훈이 그 부분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펼쳐 시야를 확보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수술이지만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실패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긴장이 배가 된 수술 팀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끼이익! 끼이익!

레버를 당길 때마다 켈리 끝이 물렸다 풀리기를 반복하며 조직이 박리됐다. 경험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자연스러운 손길을 보였다.

‘기구 다루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 연습 정말 많이 했구나. 역시 대단한 놈이야.’

노력하는 사람 앞에서는 제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배짱이라면 명함조차 못 내미는 법이다.

새빨간 피다.

경험적 판단 이외에는 어떤 방식으로 지혈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다.

신현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전기 소작으로 충분할까?”

줄줄 흐르는 것 같아도 모니터에 확대돼 보일 뿐이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까지는 충분해.”

“보비 온.”

김지훈이 발판을 눌렀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니터 화면이 뿌옇게 변했다.

“석션.”

강한 흡입력에 연기와 함께 배 속의 공기까지 제거됐다. 압력이 감소하며 배가 꺼지자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처컥처컥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소리가 들렸다.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혈관에 손상을 가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해 박리하지만 결국 묶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혈관이 굵기 때문에 도리어 클립을 사용하기 힘들다. 개복 시에도 조심해야 할 부분을 라파로 기구로 타이까지 해야 한다.

박리와는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

김지훈도 예전에는 상당히 어려워했던 술기였다. 신현수 스스로 안전하게 잘해낼 수 있을지 상당히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타이!”

올 것이 왔다.

신현수의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김지훈을 보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지훈아, 네가 먼저 하는 것이 좋겠어.”

수술 테이프를 통해 혹은 가상 연습을 하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그렇다고 해도 신현수가 자존심을 접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언제나 명심하고 배워야 할 태도야.’

자존심을 죽였으면 살려주어야 한다.

집도의의 자신감은 절대적 요인이다.

“이 부분은 위치상 내 쪽에서 묶는 것이 훨씬 편할 것 같아. 난 여기만 할게. 조금 더 진행하면 현수 네 자리에서 하는 게 나아 보인다.”

혈관을 피해 최대한 천천히 수처를 했다.

기다란 기구 끝에 물린 실에 매듭을 짓고 타이까지 마쳤다. 신현수가 확실하게 보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담낭 절제 시 사용하는 기구보다 두껍고 큰 탓인지 생각보다 어려웠다.

‘기구 하나 바뀌었다고 어색하다니 정말 쉬운 과정이 하나도 없네.’

김지훈의 생각과는 달리 쉽게 한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신현수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모았고 지동훈 교수는 내심 감탄을 터트렸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이혁민 교수와 송재덕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리와 타이가 이어졌다.

역시 경험은 무섭다.

김지훈의 손이 점점 익숙하게 움직였다.

‘지훈이 수준 정도 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역시 김지훈 선생은 펠로우로 보면 안 돼. 전문의 된지 2년도 안 됐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숙련되게 수술할 수가 있지?’

김지훈이 말한 부분에 도달했다.

매서운 모니터를 눈으로 지켜보던 신현수가 눈빛을 굳히며 혈관 주변 조직을 한 바늘 떴다.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기구 양 끝에 까만 실을 물리고는 매듭을 만들었다.

서서히 실을 당겼다.

매듭이 조직을 꽉 물 때까지 조여야 한다. 힘이 부족하면 매듭이 풀리고 과하면 실이 끊어진다. 손끝이 아니라 굵고 긴 기구에서 전해지는 느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수술 팀의 긴장이 느껴졌다.

신현수의 첫 번째 타이가 끝났다.

눈빛은 냉정했지만 수술 모자는 이미 젖어있었다.

“이 정도면 될까?”

김지훈이 타이 된 부분을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정확하네. 문제없겠어.”

“오케이! 컷!”

김지훈의 손과 확실히 차이가 났다. 그러나 누구도 첫 수술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동시에 가벼운 긴장이 교차했다.

‘첫 번째인데 이 정도로 타이를 해?’

‘지훈이하고는 비교하기도 힘드네. 경험이 쌓이기 전까지는 정말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겠어.’

감탄과 각오가 오고갔다.

비장 손상을 주의하면서 충분하게 박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번갈아 가며 수처와 타이를 했다.

째깍! 째깍!

적지 않은 시간을 흘렀다.

마침내 비장과의 연결 조직을 모두 박리했다.

위암이 발생한 부위 주변이 말끔하게 정리됐다.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훌쩍 지난 시간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었다.

김지훈의 등짝은 축축해진지 오래였고 신현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는지 연거푸 침을 삼켰다.

이제 위를 자르고 연결해야 한다.

집도의의 모든 신경은 수술에만 쏠려있는 상황이었다. 퍼스트는 단순히 손만 거드는 사람이 아니다.

김지훈이 나직한 기침을 터트리며 수술 팀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신현수와 지동훈 교수가 살짝 목과 어깨를 돌리며 과도한 긴장을 해소했다.

“위 자르겠습니다. 기구 준비해 주세요.”

드디어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기구가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