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제자리로. (1)
강병옥이 갑자기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씨펄! 생각을 정리했는데 왜 이렇게 떨리지? 아직도 김지훈 선생님이 무서운 거야? 그럴 필요 없어.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면 그뿐이야.’
그 때 이혁원과 하윤호 교수가 의국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벌겠다.
이혁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수술실에서도 모자라 또 내 책임을 물으러 왔나?’
“강병옥, 이혁원, 아까 내가 말을 심하게 했지? 미안해. 사람이 흥분하면 그럴 수 있잖아. 이해해 주고 앞으로는 이런 문제 안 생기도록 잘해보자. 환자는 어때?”
어색한 얼굴로 어깨까지 두드렸다.
이혁원과 강병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미안하다고 하는데 무엇을 사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의국을 나가는 하윤호 교수의 볼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개새끼, 두고 보자. 내가 옷 벗으면 너도 벗는 거야. 절대 나 혼자 안 망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쉴 새 없이 눈알이 돌아갔다.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김지훈이 고민에 잠겼다.
한 가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도 아닌데 또 다른 문제가 남았다.
덜덜 떨리던 가슴이 다시 답답해졌다.
강병옥의 자만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기술적인 부분은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면 늘게 돼있다. 노력까지 더해진다면 놀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할 수도 있다. 반면 올바른 마음가짐은 누가 가르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닫고 항상 자신을 단단히 추슬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빤히 알기에 더욱 화가 났다.
‘실력만이 능사가 아닌데 이걸 어떻게 하지?’
의외로 난감했다.
자신도 부족한데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당장 얼굴을 보면 너무 심한 말을 할지 몰라 잠시 시간을 두어야할 정도였다. 어쨌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였다.
자만은 소리 없이 사람을 죽이는 독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칫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눈에 걸렸던 자잘한 일들을 빼고도 드레싱, 수술 스케줄에 이어 세 번째다.
그동안 경험했던 일반외과 의사답지 못했던 의사로 만들 수는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기에 강병옥은 너무도 아까운 후배였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소리 지르고 벌주면 강병옥이 깨달을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어린아이에게도 통하지 않을 방법이었다. 직접 강병옥을 보고 어떤 말을 하는지 듣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단 하나의 수술에서 벌어진 일이 하루 종일 힘들게 했다.
‘일단 얼굴부터 보자. 강병옥, 이번에는 잘못했다는 말만이 아니라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강병옥을 연구실로 불렀다.
아무 말도 없었다.
막상 얼굴을 보니 도리어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강병옥, 오늘 일을 어떻게 생각해.”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일종의 두려움까지 느낀 강병옥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데?”
“제가 너무 서두르다 실수를 했습니다. 선생님 수술하시는 것 보며 많이 깨달았습니다.”
말이 흐릿하다.
“실수? 지금 실수라고 했어?”
강병옥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확하게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깨달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제 실수… 아니, 잘못으로 인해 환자에게 큰 문제가 생길 뻔했습니다. 책임을 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떻게?”
강병옥이 눈가를 찌푸렸다.
‘김지훈 선생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네.’
“책임 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책임이라고 했어?”
“예. 그 문제를 물어 보신 것 아닙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책임 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습니다.”
강병옥의 말투가 삐딱하게 들렸다.
전공의가 책임을 거론하다니 그동안 선배이자 펠로우로서 후배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가슴이 아프면서도 참을 수 없는 화가 느껴졌다.
이율배반적인 감정이었다.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하루 종일 연락도 없던 어린 자식이 멀쩡하게 들어왔을 때 드는 부모의 마음일까?
자책이 아니라면 무의식중에 하윤호 교수가 떠올랐는지도 몰랐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강병옥, 넌 전공의야. 네가 왜 책임을 져? 우리가 그렇게 가르쳤어?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해? 하윤호야?”
흥분이 극에 달한 목소리였다.
강병옥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지 못했다.
“환자와 수술에 대한 책임은 교수에게 있어. 하윤호가 책임을 회피한다면 네가 아니라 내가 책임지는 것이 맞아. 집도의의 책임을 다하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자기 자신과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야. 어떻게? 어떻게 해야 최선을 다하는 거야?”
여전히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강병옥이 멍한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실수를 한 내가 아니라 문제를 수습한 김지훈 선생님이 책임을 진다고? 왜?’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은 강병옥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돼?”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한동안 훅훅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강병옥은 눈도 마주치치 못했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이유 모를 분노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이유 모를 아픔과 안타까움이 다시 몰려왔다.
자기 자신의 입으로 자만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지도 몰랐다. 혹은 수술 중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실수였다고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전자이기를 바라며 입을 열었다.
“강병옥, 빈도가 다를 뿐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그래서 너희들이 수술할 때 교수들이 퍼스트를 서고 우리 역시 너희들과 함께 수술하면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강병옥이 눈가를 굳혔다.
“핵심은 실수하게 된 이유야. 실력이 부족한 건 도리어 문제가 안 돼.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자기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그게 뭐야?”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강병옥, 내 눈에 빤히 보인 문제를 너는 모른다는 거야? 자만이란 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데 그걸 정말 몰라?”
자만이라는 말에 강병옥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병옥, 전공의 때는 아무리 뛰어나도 바로 위의 선배보다 뛰어날 수 없다는 말이 있어. 그게 너한테는 적용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보기엔 절대 아니야. 동기하고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아.”
강병옥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지막 말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봐. 2년차로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 자만이라는 말을 절대 잊지 마. 누구나 인정하는 써전이 돼도 자만하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어. 대가가 무엇일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거야. 더 이상 날 실망시키지 마. 나가 봐.”
김지훈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강병옥의 몫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가랑비에 옷이 젖고 있다는 것이었다. 흠뻑 젖기 전에 곁에서 깨우쳐 주고 스스로 깨닫는 일은 김지훈과 강병옥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병옥아, 신뢰를 잃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어. 오늘 일을 절대 잊지 말기를 바란다.’
강병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으로 끝인가?
최악의 경우 주먹이 날라들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도 분명 화를 내고 있는데 수술 스케줄이 바뀌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책임 문제는 물론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실수에 대해서는 몇 마디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강병옥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선생님, 제 실수에 대해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강병옥, 넌 이제 2년차야. 그래서 우리가 있는 거야. 가장 큰 잘못은 실수가 아니라 자만이야. 지금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험한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강병옥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느껴진 것이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당분간 집도할 일은 없을 거다. 네가 준비되는 그날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네가 말하는 실수 때문이 아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일반외과 전공의에겐 사형선고와 같은 말을 했다.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강병옥은 입도 열지 못했다.
더 이상 김지훈 앞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잘못했습니다. 가보겠습니다.”
돌아서던 강병옥이 눈가를 찡그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오늘 같은 날은 당직을 바꿔서라도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답답함을 가득 안고 의국으로 돌아갔다.
이혁원, 나종진과 함께 나직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송진우가 헛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순간 자신의 실수에 대해 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진우야, 너는 가서 일 봐. 강병옥 선생님, 앉아요.”
짐작이 맞았다.
이혁원의 목소리가 서늘했다.
“김지훈 선생님과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아두세요. 오늘 일로 하윤호 선생님과 고성과 욕설이 오고갈 정도로 심하게 충돌하셨답니다.”
아니, 틀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우가 이경석 선생님께 노티할 일이 있어 갔다가 우연히 싸우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에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책임 문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공의가 아니라 교수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나종진의 말에 강병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연하게 보였다.
마치 목이 막힌 것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혁원이 혀를 차며 말했다.
“강병옥 선생님, 윗년차로서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자만하지 말아요. 난 김지훈 선생님이 아뻬를 하실 때조차 쉽게 생각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수술 실력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병옥 선생님을 아끼고 걱정하시는 분이 바로 김지훈 선생님입니다.”
이혁원과 나종진도 수술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어떤 일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병동으로 나온 강병옥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미칠 것 같았다.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동기를 찾아 당직을 바꿔달라고 했지만 사정이 있다면 고개를 저었다. 남은 오프 한 명은 송진우였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인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동기는 물론 의국 선배들까지 눈 아래에 둘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누구도 하지 않는 실수를 했고 사소한 부탁마저 할 사람이 없었다.
‘후우! 미치겠네. 왜 이렇게 답답하고 괴롭지.’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무력하기 만한 자신의 모습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한숨조차 내쉴 수 없었다.
그 때 송진우가 다가왔다.
별일 아닌 것처럼 딴청을 부리며 입을 열었다.
“병옥이 형, 나 내일 일이 있어서 그런데 오프 좀 바꿀 수 있어요? 부탁하고 싶지 않은데 혹시 몰라서요.”
일과 관련된 말을 할 때도 데면데면해진지 꽤 오래였다. 눈도 안 마주치고 무뚝뚝하게 보이려 애쓰는 송진우의 얼굴이 벌겠다.
갑작스러운 말에 강병옥이 눈만 멀뚱거렸다.
“싫다는 말은 안 하니까 바꾼 걸로 알겠습니다.”
그 말만 하고는 휙 사라졌다.
멍청히 뒷모습을 보던 강병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무슨 사달이 났는지 잘 알고 있는 송진우였다. 자신이 오프를 가려 한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지며 괴롭고 답답하기만 했다.
일단 병원을 벗어나고 싶었다.
가운을 벗던 강병옥이 고개를 흔들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아뻬 환자 드레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부리나케 병실로 향했다.
송진우가 드레싱을 하고 있었다.
“강병옥 선생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제게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대신 치료하겠습니다.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절 찾으세요.”
무슨 이유인지 다리에 힘이 빠져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병동으로 향하던 강병옥이 멈칫거렸다.
김지훈이었다.
이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친 이유는 빤했다.
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것이다.
자신의 환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환자 상태 확인했어?”
강병옥이 고개만 푹 숙였다.
“환자 얼굴 평생 잊지 마. 네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술에 임했는지 절대 잊지 마. 우리는 실수라고 하지만 환자에겐 목숨이 달린 일이야. 자만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가 바로 그거야.”
병원을 나온 강병옥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불구덩이에 던져진 것처럼 온몸이 타들어 오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무수한 고민을 해야 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