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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678화 (678/1,329)

6화. 더 이상 못 참는다. (1)

잠시 후 환자 회복을 지켜보던 이혁원의 얼굴이 보였다. 잘 깨어났다는 노티를 하고는 김지훈 옆에 섰다.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수술이 시작됐다.

생각보다 절개 창이 작았다.

강병옥의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동안 단순 아뻬만 보셨는데 좋은 기회야. 터진 아뻬를 확실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면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지. 2년차 중반 넘어가는데 이런 마이너 수술만 받을 수는 없잖아?’

빠르게 복벽을 절개해 나갔다.

하윤호 교수가 피를 닦다 말고 엉뚱한 말을 했다.

수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별 일 없으시지?”

“재판 하나 때문에 속 썩는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변호사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지. 나중에 식사나 같이 하게 말씀 좀 드려.”

강병옥이 슬쩍 김지훈의 눈치를 보았다.

‘몇 마디 정도는 괜찮겠지?’

“예. 언제 가능하십니까?”

“주말이 제일 좋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수술 끝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어머님도 같이 뵐까요?”

“그거 좋지.”

김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술 중 잡담을 할 수는 있다. 가령 과도한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수술과 관계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교수가 말을 시키는데 전공의가 대답을 안 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복벽을 절개하는 중에는 위험한 과정이나 구조물이 없다는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주요 과정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강병옥, 그만 말하고 수술에 집중해.’

“휴가 때는 피하는 게 좋겠죠?”

“난 아무 때나 괜찮으니까 시간만 잡아.”

김지훈의 눈치를 봤는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복막이 열렸다.

순간 역겨운 냄새가 확 퍼졌다.

“에이! 진찰할 때부터 불안하더니 터졌네. 강병옥, 고름 집까지 잡힌 것 같으니까 천천히 진행해.”

‘이 정도쯤이야 문제없지.’

“제대로 터진 것 같습니다. 아뻬부터 박리하겠습니다.”

맹장 주변을 확인한 강병옥이 손가락을 넣었다. 이런 경우 기구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방법이다. 과감하게 움직이며 아뻬를 찾기 시작했다.

자신 있다는 눈빛이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너무 과도해. 그러다 아뻬 끊어진다.’

강병옥이 몸을 구부리며 손가락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눈가를 살짝 찌푸렸지만 어렵다는 눈치는 아니었다.

“괜찮겠어?”

“아뻬가 너무 흐물거리는 데다 뒤쪽에 박혀 있네요. 조금만 더 박리하면 나올 거 같습니다.”

아뻬도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바로 이번 경우다.

맹장 뒤쪽에 깊숙이 박힌 아뻬가 터져 고름까지 잡혔다. 사방으로 염증이 퍼지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약해진 주변 조직 특히 동맥이 위치한 장간막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병옥, 빠르다고 잘하는 게 아니다. 천천히 해. 천천히.’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강병옥의 손은 과감하기만 했다. 절개 창을 따라 고름이 줄줄 흘러나올 정도로 염증이 심한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자신감인지 자만인지 알 수 없었다.

“아뻬 박리 다 됐습니다. 동맥부터 잡겠습니다. 켈리.”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따르륵! 따가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김지훈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자신감과 자만은 달라. 자만하지 말고 신중하게 해.’

이혁원이 나직한 신음을 터트렸다.

‘너무 과감한 것 같은데 괜찮을까?’

위험한 순간이다.

아뻬라고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동맥을 확실하게 결찰 할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제 꺼내고 자르면 끝이네.’

강병옥이 스윽 켈리를 잡아 올렸다.

터지지 않은 아뻬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동작이었다. 일천한 경험과 실력을 믿고 자만한 것이 분명했다.

깜짝 놀란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려는 순간 하윤호 교수가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강병옥이 급히 켈리를 놓으며 거즈를 집어넣었다.

거즈에 피고름이 잔뜩 묻어나왔다.

“이거 찢어진 거 아니야?”

김지훈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동맥이 끊어진 건 아니겠지?’

강병옥이 새 거즈를 밀어 넣으며 소리쳤다.

“거즈 계속 주고 켈리 주세요.”

거즈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동맥 손상이 분명했다.

석션을 하던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하얘졌다,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동맥이다. 동맥. 빨리 잡아. 빨리. 강병옥, 뭐해?”

강병옥이 배 속으로 켈리를 쑥 집어넣었다.

따르륵! 따르륵!

정확한 출혈 부분이 아니라 주변 조직을 마구 잡는 것이 분명했다. 손상만 가중시키고 잘못하면 동맥이 배 속 깊숙이 끌려갈 상황을 초래할 행동이었다.

“잡았어? 잡은 거야? 이 새끼야, 왜 말을 안 해?”

욕까지 터져 나왔다.

“다시 잡겠습니다. 석션 들어와 주세요. 아니 그쪽 말고 아래쪽으로 들어와 주세요.”

강병옥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공의가 집도할 때 교수가 퍼스트를 서는 이유는 가르치기 위함만이 아니다. 돌발 사태가 발생했을 때 빠르고 안전하게 대처해야 한다.

“빨리 잡아. 빨리.”

강병옥을 침착하게 유도해야 할 하윤호 교수는 소리만 질렀다. 애초에 기대할 일이 아니었다.

따르륵! 따르륵!

또 켈리 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병옥, 잡혔어?”

수술 부위를 닦은 거즈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강병옥이 허둥지둥 할 뿐 입도 열지 못했다.

“켈리 내놔. 이 새끼야. 천천히 하라고 했지? 빨리 주지 않고 뭐해?”

버럭 버럭 소리를 지른 하윤호 교수가 수술 부위를 마구 뒤졌다. 욕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강병옥, 뭐해? 피 닦아. 씨발! 어디 간 거야?”

지금은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침착하고 정확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뛰어나다고 해도 집도의는 2년차다. 퍼스트는 조금도 믿을 수 없는 하윤호 교수다.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설혹 있다고 해도 당황한 상태에서는 도리어 문제만 키울 수 있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이혁원, 빨리 손 닦아. 강병옥, 더 이상 건드리지 말고 거즈로 압박하고 있어. 하윤호 선생님, 건드리지 마세요.”

손을 씻는 동안에도 욕설과 함께 켈리 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원칙도 모른다는 사실과 하윤호 교수의 무능 그리고 강병옥의 자만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

김지훈이 수술실 문을 열며 소리쳤다.

아직도 수술 부위를 정신없이 뒤지고 있었다.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다 환자 잡아.”

너무 늦게 개입한 걸까?

하윤호 교수가 이를 악문 채 손을 떨고 있었다. 수술 부위를 압박하고 있는 강병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김지훈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강병옥. 비켜. 이혁원, 퍼스트 서.”

“김지훈 선생, 부탁해. 나보다 혁원이랑 손이 잘 맞으니까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야.”

하윤호 교수가 재빨리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마치 지금이라도 손을 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눈빛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자리 지켜요. 교수님 환잡니다.”

하윤호 교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침착하게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아뻬는 이미 잘려있었고 주변 조직은 너덜너덜했다.

쭉쭉 흘러나오는 피에 동맥이 숨은 위치를 찾기 어려웠다. 출혈 부위와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작은 동맥이라고 무시할 상황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복부 정중앙을 크게 열어야 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이대로 빠르게 진행할지 더 여는 것이 환자에게 유리할지 정확한 결정이 필요했다.

‘이 상황에서는 동맥을 찾으려고 하면 안 돼. 랜드 마크를 기준으로 정확한 출혈 부위를 확인하고 잡는다. 안 되면 곧바로 크게 연다.’

“석션. 거즈. 탭.”

이혁원이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최대한 시야를 확보했다.

재빨리 맹장과 연결된 장간막을 확인했다. 그 끝 부분 어림에 아뻬와 연결된 장간막이 있고 그 속에 끊어진 동맥이 숨어 있을 것이다.

‘조직에 작용하는 압력 때문에 배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면 원래 위치보다 위쪽에 있겠지.’

“강병옥, 위쪽으로 끌어. 아래쪽은 힘 빼요.”

절개 창 좌우로 걸렸던 리트랙터를 위아래로 걸었다.

장간만 끝 부분이 보다 명확하게 보였다.

켈리로 잡았던 자리가 너덜너덜했다.

시뻘겋게 물든 조직 사이에서 피가 줄줄 새나왔다.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

‘여기 숨은 게 확실해.’

“혁원아, 석션해. 강병옥, 움직이지 마. 롱켈리.”

장간막을 최대한 깊숙이 잡고 조심스럽게 당겼다.

“라이트 앵글(right angle).”

끝이 오른 쪽으로 90도 꺾인 기구를 켈리에 물린 조직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밀어 넣었다.

따르륵!

라이트 앵글이 맞물렸다.

더 이상 깊숙하게 잡을 수는 없다.

동맥을 잡지 못했다면 크게 열어야 한다.

강한 긴장감이 흘렀다.

끊어진 동맥을 잡았을까?

조심스럽게 주변을 닦았다.

스멀스멀 새나오던 피가 점점 줄었다.

‘잡힌 것 같은데.’

“타이!”

이혁원이 신중하게 타이를 했다.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수술 부위를 닦아가며 출혈을 확인했다. 거즈를 적시는 피의 양이 줄기 시작했다. 마침내 묻는 정도에 불과해졌다.

띠! 띠! 띠! 띠! 띠! 띠!

환자의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었다. 아무리 가늘다고 해도 동맥 출혈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도 김지훈의 빠른 대처 덕분에 바이탈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마취과 전공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병옥은 물론 하윤호 교수도 더 이상 손을 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실력을 떠나 심리적으로 무너진 상태기에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것이 빤했다.

길게 숨을 내쉰 김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술을 진행했다. 고름이 잡혀 가뜩이나 지저분한 수술 부위가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더구나 아뻬가 중간에서 잘리며 남은 부분이 배 속으로 숨어 버렸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이뻬를 모두 제거하고 너덜거리는 조직까지 정리했다.

드레인을 넣고 나니 허리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시간이 아니라 긴장 때문이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김지훈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뻬 수술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강병옥의 자만과 하윤호 교수의 자격 미달이 만들어낸 사고였다. 만일 김지훈이 보고 있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 이혁원이 없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교수란 사람은 해결을 못하고 2년차 밖에 안 된 놈은 자만을 해? 이번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돼.’

그때 하윤호 교수가 강병옥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있다가는 마취과서부터 간호과까지 내 이름이 오르내릴 게 뻔해. 그럴 수는 없지. 김지훈 덕에 잘 끝났지만 이번 수술은 병옥이 네가 책임져야겠다.’

“강병옥, 내가 천천히 하라고 그랬지? 하기 힘들면 손 빼는 게 원칙이야. 책임질 수 없으면 아예 손을 대지 마. 쯧! 이거 수술 한 번 줬다가 개망신 당할 뻔했네. 이거 어떻게 책임 질 거야?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 수술 기록 지 똑바로 정확하게 작성해.”

개망신? 수술 기록 지?

지금은 그런 말이 나올 때가 아니었다.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실력을 믿고 줬는데 그깟 아뻬 하나 절제를 못해서 동맥을 끊어먹어? 까불지 말고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모든 책임은 집도의에게 있다는 거 똑똑히 기억해.”

‘전공의한테 책임을 물어? 이 인간 지금까지 자기 수술에 책임 질 생각 자체가 없었던 거야?’

김지훈의 눈빛이 변했다.

전공의는 전문의가 아니다.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의사이기에 어느 수술에서나 미흡한 면을 보일 수 있다. 그때 적절한 조언을 하며 위험을 방지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수의 역할이다. 따라서 교수는 퍼스트를 서도 집도의 이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이대로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아니, 결코 지나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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