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77화 (677/1,329)

5화. 동전의 양면? (2)

홍보물을 보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에 눈살까지 찌푸려야 했다. 그런데 생각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라파로는 물론 미니콜레에 대한 상담까지 눈에 띄게 늘은 것이다.

하윤호 교수가 아닌 김지훈에게 말이다.

“다행이긴 한데 왜 나한테 외래 환자가 몰리지?”

신현수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환자도 의사 보는 눈이 있겠지. 원무과 직원도 보고 듣는 게 있는데 마찬가지 아니겠어?”

외래 예약 시 직접 의사를 지명하는 환자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무과 안내를 받는다. 원무과 직원이 마음만 먹는다면 환자를 특정 교수에게 집중되게 할 수도 있다.

“혹시 니가 손쓴 거 아니야?”

“나 펠로우다.”

말이 유난히 짧은 걸 보니 수상했다. 어찌됐든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김지훈이 미니콜레를 한다고 해서 하윤호 교수에게 한 건도 없을 리가 없었다.

가르친다는 마음가짐으로 수술을 들어가도 그놈의 손은 여전히 갑갑했고 답답함도 차곡차곡 쌓여 갔다. 반대로 하윤호 교수는 늘어가는 김지훈의 수술을 보며 심각한 불안감과 초조함에 시달렸다.

실력을 토대로 한 경험은 무서웠다.

홍보 효과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정작 미니콜레가 어떤 수술인지 김지훈이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미니콜레를 두 시간 만에?

마취과 김진호 교수가 엄지를 척 치켜든 것으로 게임 끝났다. 한 놈은 이를 갈면서 울고 한 사람은 웃었다. 고경아는 한숨 돌렸다는 얼굴이었다.

“우리 교수님 최고!”

김지훈 기분도 최고!

드디어 몸과 마음의 평안을 찾을 시간이 왔다.

일 년 내내 고대하던 여름휴가가 시작됐다.

노는 사람은 좋지만 일하는 사람은 인원 부족으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김지훈은 하윤호 교수와 강병옥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훈아, 교수야, 휴가 언제 가니? 언제.”

“이준영 선생님 다녀오신 후에 갑니다.”

“그렇구나. 휴가 가서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쉬어야 한다. 푹. 그래야 또 힘을 내서 일하지. 잘하고 있다만 사람이 참 힘들다. 사람이. 허허! 이 교수, 지훈이한테 너무 큰 짐을 준 거 아니니? 속없는 사람처럼 웃고 사는 걸 보면 내가 다 미안해. 내가.”

송재덕 교수의 웃음 속에 착잡함이 숨어 있었다.

“힘든 거 하나도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맙다. 고마워. 경석이하고 현수도 미안해하더라.”

김지훈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게 웃었다.

이준영 교수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잘 만들어 봐. 수술이 늘면 네게도 기회야.”

어떻게 알았을까?

어쩌면 이혁원이 말했을 지도 몰랐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벌어져도 좋았고 스승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간만에 카르페 디엠을 외쳤다.

바쁜 일상이 이어졌다.

일주일에 한두 건 정도 하윤호 교수 앞으로 수술이 잡혔다. 늘어야 그게 그거였지만 홍보에 김지훈이 퍼스트까지 서가며 수술을 가르친 탓에 나타난 부작용이었다. 더욱이 환자는 물론 내과 교수 전체가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메이저 수술보다 더 강한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하윤호 교수의 손이 조그만 변화라도 보이면 그것을 위안 삼았다.

‘인간성은 몰라도 인간적으로 기본 실력은 빨리 갖춥시다. 내가 불안해서 당신 수술에 후배들을 들여보낼 수가 없습니다. 당신 교수잖아.’

당연히 순기능도 있었다.

미니콜레 경험이 늘면서 시간을 조금씩 단축했다. 이제는 평균 2시간 정도 걸렸고 숙달되면 될수록 기존 수술과 큰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하윤호 교수를 더욱 구체적으로 태울 수 있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이 부분은 확실히 손보다 기구가 편합니다. 굳이 롱켈리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에요.”

“그거야 환자마다 다르지. 아직 어려운 케이스를 못 봐서 그렇지 미니콜레가 그렇게 쉬운 수술이 아니야. 괜히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까지 걸리는 줄 알아?”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죠.”

듣기에 따라 환자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의사일 수도 있었다.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얼굴에 철판 깔고 꿋꿋하게 버티는 하윤호 교수였다. 그래도 찡그리는 시간보다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휴가를 떠났던 신현수와 이경석이 돌아왔다.

너무 갑자기 변한 탓일까?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훈아, 좋은 일이라도 있어?”

“좋을 일이 뭐가 있어요?”

“조금 전에 하윤호 교수 수술한 거 아니야? 지나가면서 보니까 꽤 고생하는 것 같던데 안 힘들었어?”

“힘들지 않은 수술 있어요? 난 가끔 아뻬도 힘들더라. 그냥 원칙대로 하니까 괜찮네요. 하윤호 교수나 박승준 선생님 때문에 우리가 일반외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중심만 잘 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항상 긍정적이라 좋기는 한데 너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현수도 누구 때문에 고민이 많더라.”

펠로우들이 이럴진대 이혁원과 나종진은 오죽할까?

김지훈에게 한 차례 말은 들었지만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는 모양이었다. 더욱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까지 슬쩍 언질을 주었다.

라인이라는 것이 뛰어나다면 펠로우나 전공의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알고는 있어야 최소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혁원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교수에 관한 말은 항상 부담스럽기 마련이었다.

“선생님, 전에 말씀은 들었지만 솔직히 하윤호 선생님이 변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주변에서 노력한다고 스스로 변하지 않는 사람이 쉽게 변하겠어? 당연한 일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즐거워하세요?”

“혁원아, 종진아, 환자가 괜찮잖아.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것도 많아. 라파로하면서 내가 무엇을 놓치는지 깨닫고 미니콜레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와. 솔직히 하윤호 교수 수술 시간도 좀 줄지 않았어?”

긍정도 이 정도면 병이다. 게다가 자신들은 김지훈 수술을 들어갈 때마다 새카맣게 타기 일쑤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허탈한 소리가 들렸다.

후배들의 생각을 모를 리 없는 김지훈이었다.

“이상해 보여?”

“예. 솔직히 그렇게 보입니다. 다른 생각이 있으신 건 아니십니까? 혹시 저희들 때문에······.”

‘자식들 많이 컸네.’

“혁원아, 종진아, 내가 힘들어 하면 너희들은 더 힘들겠지? 난 그게 싫다. 하윤호 교수 덕분에 이제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기도 했어.”

“무슨 말씀이세요?”

이혁원과 나종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나직해졌다.

“교수님들에게 6년 동안 배웠고 펠로우 된지 1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교수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이준영 선생님의 무뚝뚝함, 우리를 자식이라고 부르는 송재덕 선생님, 신기동 선생님의 비수, 과장이라는 티조차 내지 않는 이혁민 선생님. 표현은 다 다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결코 다르지도 가볍지도 않네.”

이혁원이 긴 숨을 내뱉었다.

“좋은 면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김지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단호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의사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실수가 있어. 한 번은 넘어가도 두 번은 안 돼. 박승준 선생님, 하윤호 교수, 강병옥. 내가 웃고 있다고 설렁설렁 넘어간다는 말은 아니다.”

나종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김지훈은 결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윤호 교수를 대하는 태도를 빼면 여느 때처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료와 후배들을 보며 웃었을 뿐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넘치기까지 한다면 고마움을 느끼긴 어렵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지훈의 마음도 그런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회진 안 돌아?”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헛바람을 집어 삼킨 이혁원과 나종진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헉헉 대며 병동에 도착해 차트를 확인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다른 어떤 말보다 후배들이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 유독 지워지질 않았다.

박승준 교수와 하윤호 교수가 병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얼굴에도 즐거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회진을 돌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라인을 암시하는 말은 꺼내지도 말아야 할 겁니다. 일반외과 의사가 가져야 할 원칙, 태도, 자존심만 지켜 준다면 얼굴 붉힐 일도 없을 겁니다. 하윤호 교수, 당신은 실력부터 갖춰야 해.’

함께 근무하는 한 일반외과 의사이자 교수 그리고 동료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원하던 원치 않던 말이다.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었지만 잃지 않으려 애썼다.

“여유를 갖자.”

혼자 중얼거리며 호흡을 골랐다.

하윤호 교수의 수술이 없는 날이다.

간만에 여유를 갖고 오전 정규 수술을 마쳤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역시 담도 담석은 경험이 더 필요해. 그래도 몇 케이스만 더하면 석사 논문 쓸 정도는 되겠네. 오후 수술도 힘차게!’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휴게실로 들어갔다. 신임 교수들이 둘러앉아 김밥, 삶은 계란, 우유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우물우물 계란을 씹던 하윤호 교수가 반색을 했다.

‘이 인간은 수술도 없는데 여기서 뭐하는 거야?’

“어? 벌써 끝냈어? 역시 라파로에 관한 한 김지훈 선생 실력은 알아줘야 해. 배고프지? 앉아.”

“김지훈 선생, 식당 갈 시간이 애매한데 같이 먹자.”

잠시 망설이던 김지훈이 지동훈 교수의 말에 엉덩이를 붙였다. 박승준 교수가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

“요새 수술실 분위기 괜찮다며? 서로 도와가면서 일하다 보면 훨씬 좋아질 거야. 같은 파트는 더 그렇지. 휴가 때는 다들 바쁘니까 9월에 술 한 잔 하자.”

‘하윤호, 홍보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어쨌든 예상 밖으로 김지훈은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이경석이 생각보다 수술 욕심을 많이 내네. 하성원 원장님 통해서 내과 쪽에 신경을 더 써야겠어. 컨설트 횟수를 제한하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

‘또 술자리를? 당분간은 그럴 일 없습니다.’

김지훈이 아무 말 없이 김밥만 입에 쑤셔 넣었다.

“하 교수도 이젠 수술할 맛이 나겠어.”

“많이 좋아졌습니다. 라파로나 미니콜레는 괜찮을 것 같은데 메이저가 문제죠. 손이 풀려 가면 뭐합니까? 이준영 선생님은 그렇다고 쳐도 김지훈 선생까지 만만치가 않아서 틈이 없네요.”

농담도 정도가 있다.

간담도 메이저 수술은 누가 퍼스트를 서 줘도 할 수 있는 하윤호 교수가 아니었다. 허세를 떨어도 정도껏 떨어야 하는데 무슨 생각인지 모를 일이었다.

‘저 인간을 어떻게 하지? 퍼스트를 서 주는 게 도리어 독이 되는 것 같네.’

“김지훈 선생,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하 교수한테 양보 좀 해. 지금처럼 둘이 같이 하면 보기도 좋고 결과야 말할 것도 없잖아. 전임 될 사람이 왜 그래? 혼자 너무 잘나가면 욕먹는 거야.”

하윤호 교수의 실력을 모르는 걸까?

전임이라는 말은 왜 또 꺼낸 것일까?

함께 수술하라는 말에는 목이 콱 막혔다.

뇌리 속 잠재해 있던 라인이 다시 떠올랐다.

‘하성원 원장님 조카라면 박승준 선생님도 무시 못하겠지? 술자리에서 원장님을 본 것이 우연이었을까?’

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남은 김밥을 입에 쑤셔 넣고는 일어섰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오후에 라파로 하나밖에 없잖아. 뭐가 급해서 벌써 일어나? 나도 환자에게 꽤 신경 쓰는데 따라갈 수가 없어.”

하윤호 교수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박승준 교수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동훈 교수가 급히 따라 나왔다.

“김지훈 선생, 하 교수 문제는 뭐라고 말 못하지만 다른 문제는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나도 노력하고 있어.”

“제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아십니까?”

“술자리에서 나온 말은 나도 넘어가기 힘든 문제야. 반드시 내가 바로 잡을게.”

지동훈 교수도 빤히 알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마음고생까지 한 모양인데 당장은 할 말이 없었다.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라인 문제야 말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중요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만 살짝 숙이고는 수술실로 향했다.

답답한 한숨이 따라붙었다.

마지막 수술이 끝났다.

회복실로 향하던 김지훈이 걸음을 멈췄다.

아뻬 수술 준비가 한창이었다. 서 있는 자리를 보니 강병옥이 집도를 하고 하윤호 교수가 퍼스트를 설 모양이었다.

“요새 기분도 꿀꿀한데 술 한잔 할까?”

“저야 좋죠. 마침 오늘 오프입니다. 저번에 갔던 그 집 어떠십니까? 분위기 좋지 않았습니까?”

“그 집? 좋지. 사람 사는 맛이 이런 건데 너무 딱딱해도 힘들어. 실력 있고, 예의 바르고, 내 맘까지 잘 아는 네가 내 파트를 돌았으면 좋겠다. 넌 내가 끝까지 책임져 줄 테니까 마음 푹 놔도 돼.”

“감사합니다.”

강병옥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수술 실력은 없어도 배경이 좋으면 무시하기 힘든 법이지. 날 단단히 믿고 있으니까 눈 밖에 나지만 않으면 큰 득이 될 거야. 그런데 지동훈 교수님은 점점 무덤덤해지네.’

박승준 교수는 실력으로, 하윤호 교수는 그 외의 면으로 밀어준다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 김지훈의 시선만 바꿀 수 있다면 탄탄대로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의외긴 하지만 김지훈 선생님이 신현수 선생님을 제치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 같아서 그것도 신경 쓰이네. 제길! 진우 그 자식 때문인가?’

아무리 불안해도 아뻬까지 참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지나치려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마취가 시작돼도 대화가 끝나질 않았다. 웃음소리가 섞이는 것으로 보아 수술에 관한 내용도 아닌 것 같았다.

‘요새 수술하는 걸 보면서 느낌이 안 좋았는데 혹시 병옥이가 자만에 빠진 것은 아닐까? 참관을 하면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

누구도 사람 속을 알 수는 없지만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김지훈이 조용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강병옥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신경 쓰지 말고 환자에게 집중해.’

“김지훈 선생, 벌써 끝났어? 점점 빨라지네. 이러다 추월당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매일 보는데도 볼 때마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하면 김지훈인데 하윤호 교수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판이었다.

뻔뻔함인가?

아뻬라고 긴장 풀고 있는 모습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뭔가 불안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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