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76화 (676/1,329)

5화. 동전의 양면? (1)

그 시간 병동으로 올라간 강병옥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김지훈의 태도가 확 변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어느 쪽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수술이 끝난 후 우연히 듣게 된 둘 사이에 오고간 대화에 더욱 헷갈렸다.

‘미니콜레를 배운다고? 누가 누구한테 배운다는 소리야? 이렇게 되면 하윤호 선생님과 부딪쳐 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건가? 환자에 대한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더니 김지훈 선생님도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아니야. 아직은 모르는 일이야. 조금 더 두고 보자.’

한참 고민에 빠진 사이 이경석과 송진우가 뭔가 대화를 나누며 스테이션 앞을 지나쳤다. 오늘도 송진우의 얼굴은 벌게진 채였다.

강병옥이 코웃음을 쳤다.

‘상처에 염증 생긴 환자 때문에 또 올라온 거야? 송진우 저 자식도 웃기네. 별일도 아닌데 1년차는 어디다 쓰려고 저러고 있어.’

하윤호 교수가 올라왔다.

여느 때처럼 오늘 수술한 환자와 보호자를 만날 생각이 분명했다. 강병옥이 총알처럼 달려가 앞장섰다. 이혁원에게 노티도 하지 않았다.

“환자들 드레인 어때?”

하윤호 교수가 마무리까지 했지만 어떻게 보면 김지훈과 이혁원이 한 것과 다름이 없는 수술이었다.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

이미 1년차를 시켜 거즈는 갈아놓은 상태였다.

“괜찮습니다.”

병실에 올라온 후 환자를 보지도 않은 강병옥이 자신 있게 말했다. 하윤호 교수도 힐끗 드레싱 부위를 보고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입이 아플 정도로 설명은 열심이었다.

이것도 환자에 대한 신뢰의 일종일까?

병실을 나온 하윤호 교수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강병옥, 오늘 오프야?”

“예. 왜 그러십니까?”

“기분도 꿀꿀한데 술 한잔 하자.”

가끔 있는 일이었다. 아니,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술자리를 한 사람이 하윤호 교수였다. 일과를 끝낸 강병옥이 부리나케 단골집으로 향했다.

“병옥아, 내가 믿는 놈은 너밖에 없어. 부모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너는 내가 확실하게 키워준다. 전공의 중에서는 네가 최고다.”

밤늦도록 술을 마신 하윤호 교수의 혀가 꼬였다.

“내가 너 끝까지 책임져 준다. 나만 믿어. 그러면 네 인생 꽃피는 거야. 펠로우 주제에 건방을 떠는 놈은 필요 없어. 언젠가는 피눈물 흘리면서 후회하게 될 거야.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우리 집안이 어떤지 병옥이 너는 잘 알잖아.”

‘김지훈 선생님에 대한 감정이 점점 나빠지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스스로 한 말에 책임만 지면 돼. 실력까지 갖췄으면 정말 좋겠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든든한 배경도 실력의 일종이겠지.’

강병옥의 표정이 묘했다.

하윤호 교수와 술자리를 할 때마다 지갑을 열어야 했지만 투자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운전 안 시키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김지훈의 얼굴이 변했다.

담담한 듯 진지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박승준 교수나 지동훈 교수를 볼 때는 물론 급기야 하윤호 교수의 수술이 연속으로 떠도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자! 오늘도 가르쳐 볼까?’

퍼스트를 서며 적절하게 조언을 날렸다.

가끔은 씨알도 안 먹혔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절개창을 적게 열어서 손이 들어갈 틈이 없네요. 이 부분에서 롱켈리를 사용하면 누가 퍼스트를 서도 큰 불편 없을 것 같습니다.”

위험한 부분에서는 목소리까지 높였다.

“동맥 잡을 때 계속 같은 방식만 고집하면 케이스에 따라서 더 위험해 질 수도 있습니다. 주변 조직 박리도 조금 더 해야 안전합니다.”

‘어휴! 이건 기본이야. 기본. 몇 번을 말해야 머릿속에 콱 박힐까?’

‘이 자식이 이젠 소리까지 지르네. 후우!’

“담낭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총수담관에 바짝 붙이지 않으면 관 속에 있는 돌이 다 제거되지 않습니다.”

하윤호 교수의 눈빛이 좋을 리 없다.

‘이 자식이 지금 날 전공의로 아는 거야? 뭐야?’

불편한 기색을 역력하게 보였지만 아쉬운 사람은 하윤효 교수였다. 김지훈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했지만 짜증의 빈도가 높아지는 부작용이 초래됐다.

그럴 때면 좋은 말 아주 좋은 말로 웃으며 마무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술이 끝날 때마다 하윤호 교수가 얼굴을 구기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김지훈이 딱 그 경우였다.

‘저 자식 속을 알 수가 없네. 그래도 이렇게만 가면 메이저 수술이 떠도 문제없겠어. 그래.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너도 전임 자리 보장 받고 싶겠지.’

사람 속 쉽게 변하지 않는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똥 씹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가르쳐도 시원찮을 판에 배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으니 그럴 것이다.

그것도 전공의 앞에서 말이다.

하윤호 교수도 전문의 자격증을 날로 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전보다 조금은 손이 나아졌다. 물론 김지훈의 적극적인 가르침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스스로의 노력?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그동안 답답했었는데 이제야 손이 맞아 가네. 수술 팀이 조금만 더 노력해 주면 문제될 일이 없을 것 같다. 김지훈 선생도 미니콜레 조금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겠지?”

얼굴에 철판까지 깔고 거들먹거렸다. 자신의 실력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의도적인 허세인지 모를 일이었다. 어느 쪽이건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였다.

‘실력은 나아진 것이 없는데 자만을 해? 산 넘어 산이네.’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인간이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강병옥 역시 뭔가 마음에 걸렸다. 꽉 찬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빈틈이 보였다.

혹시 자만이란 놈이 찾아온 걸까?

가르치면서 배운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김지훈도 비용 때문에 복강경을 선택하지 못하는 담석 환자들에게 본격적으로 미니콜레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몇 건 되지 않았지만 하윤호 교수와 함께 할 때와는 비교도 하기 힘든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김지훈 선생, 나보다 미니콜레를 더 하는 것 같아.”

‘무슨 꿍꿍이지? 어쨌든 내 방법을 시도한 다는 것 자체가 불리하지는 않겠지.’

하윤호 교수의 표정이 묘했지만 상관할 바 아니었다. 수술이 있을 때마다 이준영 교수까지 관심을 보였다.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 질 수 있도록 더욱 집중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박승준 교수도 술자리 이후로 특별한 말이 없었다. 어쩌면 김지훈의 달라진 태도를 엉뚱하게 해석하는지도 몰랐다. 가끔 지동훈 교수와 큰 소리가 오간다는 말이 들렸지만 궁금함에 그칠 뿐이었다.

‘아예 말이 없는 편이 낫다.’

그 즈음 전반기를 결산하는 진료 회의가 열렸다.

각과 과장은 물론 원장단과 각종 센터 센터장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꽤 큰 규모의 회의였다.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에 이어 모든 과의 관심사가 이어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폭 보강된 펠로우들과 신임 교수들에 대한 평가였다.

대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연임 내지 전임 교수로 임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회의가 거의 끝날 때쯤 내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양승철 교수가 의외의 말을 했다.

“평가서를 보니까 몇몇이 눈에 확 뜨입니다. 그중에서도 일반외과 김지훈 선생이 단연 돋보이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공의 때도 뛰어나다는 하마평이 무수했는데 역시 능력은 어디 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혁민 과장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신현수 선생과 이경석 선생에게도 기대가 큽니다.”

“겸손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번에도 같은 펠로우인 이경석 선생, 신현수 선생과 함께 굉장히 어려운 수술 하나 했다죠? 수술 자체가 힘들지 않을까 염려 많이 했다는데 아주 잘 끝났다면서요? 부럽습니다.”

송재덕 교수가 스윽 입을 열었다.

“재발한 대장암이 후복막을 침범했는데 대동맥 근처라 웬만해서는 건드릴 엄두조차 안 나는 환자였습니다. 그걸 우리 펠로우 선생들이 머리 맞대고 해냈습니다. 대단하죠. 대단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수술이냐면······.”

줄줄이 이어지는 설명에 교수들의 입에서 감탄사까지 나았다. 이혁민 교수가 웃으며 슬쩍 끼어들었다. 조금도 가감 없는 사실이었지만 자기 과 자랑은 민망한 일이었다.

“원장님, 그만하시죠. 양승철 선생님, 내과에는 더 뛰어난 선생들이 많은데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송 원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수술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지훈 선생은 이제 펠로우 2년차인데 라파로를 상당히 많이 했더군요. 이준영 교수님, 이러다 얼마 안 돼 교수님을 뛰어넘는 것 아닙니까?”

이준영 교수는 입가만 씰룩거렸고 송재덕 교수가 도리어 너털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다른 과 교수들에게까지 인정받는 제자를 두었다는 사실은 스승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부심이었다.

“본인이 열심히 한 덕입니다.”

“허허! 여전하시군요. 굉장한 칭찬이 맞죠? 그건 그렇고 내과와 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있고 해서 제가 한 가지 건의를 하고 싶습니다. 부원장님 그래도 되겠습니까?”

신상민 교수도 관심을 보였다.

“해 보세요.”

“요즘 라파로가 많은 병원에서 도입되고 활발하게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 환자들은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홍보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우리 과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치료법이고요.”

“홍보라니요?”

“방송에도 나오고 하면 좋겠지만 일단 현수막과 포스터부터 작성해서 병원 곳곳에 거는 겁니다. 협력 병원과 우리 병원 출신 선생들이 하는 개인 의원에도 자료를 배포하고요. 그동안 해온 수술 건수와 라파로의 장점을 홍보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좋은 의견이십니다. 우리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적지 않으니까 효과가 있을 것 같네요. 모두 동의하시면 실무진에게 바로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하성원 원장님, 시행해도 되겠습니까?”

하성원 원장이 입술을 내밀었다.

일반외과 교수만 세 명이 참석했다.

박승준 교수와 지동훈 교수는 잠시 언급이 됐지만 하윤호 교수는 아예 관심 밖이었다. 미국 연수를 다녀와 실력은 보증한다는 말까지 한 마당이었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러다 내년에 창피 단단히 당할 지도 모르겠군. 요즘 미니콜렌지 뭔지가 슬슬 늘고 있다는데 이참에 홍보에 끼워 넣으면 만회가 될까?’

“시간도 꽤 지났는데 5분간 쉬고 다시 논의합시다.”

다들 화장실에 갈 시간도 됐다.

우르르 몰려나가는 교수들을 보며 하성원 원장이 슬며시 전화기를 꺼냈다.

(하 교수, 나야.)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홍보물에 미니콜레를 넣어주면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원장님, 제게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하윤호 교수의 목소리가 들떴다.

(김지훈과는 얘기 잘 된 거야?)

(원장님께 한 마디 들은 이후로 꽤 협조적입니다. 그놈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저도 환자가 늘어야 원장님께 도움을 드릴 위치가 되지 않겠습니까?)

(알았어. 오늘 하 교수 얘기는 하나도 안 나왔어. 이거 창피해서 내 조카라고 말이나 할 수 있겠어? 내가 신경 써 줄 때 성과 제대로 내.)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회의가 속개됐다.

하성원 원장까지 동의했고 홍보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미니콜레도 홍보 항목에 넣자는 하성원 원장의 제안에 이준영 교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어떤 수를 써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이틀 후 출근하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병원 외벽에 크게 걸린 현수막을 본 것이다.

- 일반외과 복강경 수술 1,000예 돌파! -

포스터를 보고는 더 놀랐다.

- 담석으로 인한 각종 질환 이제 통증 없이 빠르게 퇴원할 수 있는 복강경 수술로 치료하세요. 탈장, 급성 충수돌기염(맹장염) 등도 가능합니다. 문의는 일반외과 교수님을 찾으시면 됩니다. -

간략하게 이런 내용이었다.

말미에 의외의 글귀가 있었다.

- 복강경 수술에도 제약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작게 열어 수술 후 통증과 합병증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는 미니(Mini) 수술법을 권합니다. -

김지훈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라파로는 스승님이 계시지만 미니콜레를 왜 홍보까지 하지? 이거 하윤호 선생님을 위한 홍보 아니야? 죽겠네. 환자 몰리면 어떻게 하지?’

분명 좋은 일인데 마지막 글귀에 찜찜했다.

다들 좋아하면서도 미니콜레에 관한 말이 나오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하윤호 교수에 대한 신뢰는 두말 없이 빵점이었다.

“현수야, 미니콜레는 빼야 하는 거 아니야? 경석이 형, 그래야 맞죠?”

“옥에 티네. 어쨌든 부럽다.”

“에이! 이준영 선생님 때문에 붙은 홍보물인데 뭐가 부러워요? 난 이제야 150예 조금 넘었는데 언제 따라가지?”

신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일 년 반 동안 복강경만 150예가 넘는데 적어? 너 우리하고 같은 펠로우야. 하윤호 선생님과 미니콜레 하면서 고생 많이 해라.”

“차라리 악담을 해. 인마. 아니지. 악담 맞네.”

좋은 일 50에 나쁜 일 50이었다.

그만큼 하윤호 교수의 수술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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