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펠로우의 힘. Ⅲ (2)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다.
모스키토로 조직을 벌리고 필요한 부분은 타이를 해 출혈을 막으면 된다. 하지만 손놀림 하나하나에 실어야 하는 집중력과 신중함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조금씩 박리가 진행되며 실매듭이 늘어났다.
대동맥은 지금도 벌떡벌떡 숨 가쁘게 뛰고 있다.
박리를 하는 손과 타이를 하는 손에서 긴장이 줄어들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감각을 수술 부위에만 쏟아부었다.
암 덩어리가 침범한 후복막까지 접근했다.
돌처럼 딱딱하다.
모스키토에 조금만 힘을 주어도 찢어졌다.
타이를 하는 신현수의 손이 급속도로 느려졌다.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손과 눈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대동맥이 허연 살을 드러낸 채 더욱 강하게 뛰었다.
대장에서 발생해 후복막을 침범한 암 덩어리가 확실하게 만져졌다. 박리해야 할 부분이 아직 3센티미터 정도 남았다. 그토록 짧은 길이가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박리가 점점 어려워졌다.
타이는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피다!
가는 실로도 조직이 쭉쭉 찢어졌다.
신현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김지훈이 초조함을 억누르며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더 확실하게 할 수도 없다.
강한 신뢰와 믿음만이 필요했다.
‘조금만 더!’
암 덩어리 일부분이 손 안에 잡혔다.
후복막과 단단히 붙은 나머지 부분을 들어내야 한다.
목표는 오직 그것뿐이다.
이경석과 이혁원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 쉬기 어려운 긴장이 다가왔다.
피를 닦을 때는 물론 사소한 하나하나가 뜻하지 않은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집도의와 퍼스트는 물론 수술 팀 전체가 긴장으로 숨을 죽였다.
째깍! 째깍!
시간은 쉼 없이 흘렀다.
띠! 띠! 띠! 띠! 띠! 띠!
고령임에도 환자는 잘 버티고 있었다.
강한 삶의 의지일 것이다.
손안에 잡힌 암 덩어리가 제법 크게 느껴졌다.
거의 다 접근했다.
“타이! 컷!”
툭! 툭! 툭!
드디어 암 덩어리와 인접한 후복막이 대동맥에서 떨어져 나왔다. 맨살을 드러낸 대동맥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뻘겋게 물든 주변 조직은 언제든 피를 토해낼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된다.
잡생각은 금물이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암 하부의 에스 결장 일부까지 박리했다.
“장겸자!”
따르륵! 따가각!
장겸자로 잘라야 할 부분을 잡았다.
여기까지다.
김지훈이 이제야 허리를 폈다.
신현수가 목을 뒤로 재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극심한 피로가 다가왔다.
입안은 바짝 말라있었다.
반복적인 움직임에 손끝의 감각마저 무뎌진 것 같았다.
온몸에 진이 다 빠졌다.
이경석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마취과, 5분간 쉬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송재덕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제없다. 문제없어. 지훈아, 현수야, 고생했다. 잘했다. 잘했어. 이제 자르고 이으면 끝이다. 끝.”
김지훈과 신현수가 동시에 웃었다.
그 말로 족했다.
한 모금의 우유로 갈증을 푼 김지훈이 목과 어깨를 이리저리 돌렸다. 불과 몇 센티미터를 박리하는데 2시간 이상 걸렸다. 수술을 시작한지 도합 5시간이 지났지만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직 가야 할 길도 멀었다.
수술 팀이 각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경석이 에스 결장을 잘랐다.
암 덩어리와 잘린 대장을 통째로 들어냈다.
남은 평행 결장과 에스 결장 하부를 연결했다.
재수술이기에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워낙 힘든 과정을 거친 후인지 수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다. 실제로 수월했다.
바로 이경석의 실력이었다.
3개월 동안 박승준 교수의 수술을 들어가 불평 없이 퍼스트를 선 이유가 있었다. 빠른 손에 간결함까지 묻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확실한 기준을 갖고 수술에 들어갔던 것이다.
어렵지 않게 두 개의 대장이 하나로 이어졌다.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끝났다.
“컷!”
이경석의 목소리가 힘찼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으며 꿈틀거리는 환자를 보았다. 모든 수술이 그렇지만 특히 어려운 수술을 끝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조차 하기 힘들었다.
멍할 지경이었다.
‘우리가 이 수술을 어떻게 해냈을까?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 현수하고 경석이 형이 다 했나?’
신현수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금 우리가 암이 퍼지고 대동맥에 붙은 후복막을 박리해낸 건가? 얼마 전까지 생각할 수도 없는 수술이었는데 어떻게 했지? 가슴이 다 떨리네. 이런! 흥분하면 안 돼. 침착해야 돼. 지훈이 저 자식이 한 발이 아니라 몇 발을 앞서 있잖아. 긴장하자. 후우! 그런데 왜 이렇게 진정이 안 되지?’
이경석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만 삼켰다.
‘지훈아, 현수야, 정말 고맙다. 든든하다. 너희들과 함께라면 어떤 수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최선을 다 할게.’
눈이 마주쳤다.
마음속에 담긴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고의 라이벌 신현수, 평생 같이 하고 싶은 이경석과 함께 해냈다. 누가 집도를 했더라도 혼자 집도를 했으면 절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의사에게는 안타까움일 뿐이지만 환자에게는 절망과 끝 모를 나락인 인공항문 수술과 시한부 선고를 피했다. 펠로우들의 모든 능력과 열정의 결과물이었다.
환자의 숨구멍을 막고 있던 튜브가 제거됐다.
훅하는 숨소리와 함께 나직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가슴 떨리는 흥분과 벅찬 뿌듯함이 다가왔다.
숨이 가빠질 정도였다.
‘후우! 정말 우리가 해낸 건가? 최고의 수술 팀을 만들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거겠지? 일석이까지 함께 하면 우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호흡을 따라 마취제 냄새가 퍼졌다.
고령의 몸으로 장장 7시간이 훌쩍 넘는 수술을 버텼다. 그것도 암이 재발한 환자였다. 힘든 항암 치료가 남아있지만 남은 나날도 그럴 것이다.
이로써 환자의 예후가 완전히 달라졌다.
누군가 한 명쯤은 입을 열만도 한데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흐뭇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송재덕 교수가 허허 웃으며 수술실을 나갔다.
“박 교수, 지 교수, 가자. 나가자. 우리 펠로우들 수술 정말 잘하지? 그치? 지금은 말도 하기 힘들 거야. 허허! 저런 기분을 난 언제 느껴봤었지?”
뒤따르는 교수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저놈들 참 수술 잘해. 나도 깜짝 깜짝 놀란다니까. 지훈이하고 현수 손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경석이하고도 너무 잘 맞네. 박 교수, 그치? 자기도 그렇게 보이지? 우리 경석이하고 찰떡인 일석이는 언제 오나? 둘이 수술하면 어떨지 궁금하다. 궁금해.”
손일석은 또 누굴까?
의아한 순간도 잠시.
“박 교수, 수술 다 끝났으니까 하는 말인데 믿어야 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 나도 잘 알아. 하지만 그동안 본 게 있고 오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잖아. 믿자. 다른 사람 못 믿으면 자신도 믿음을 얻기 힘들다는 거 잘 알지? 믿고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좋은 세상.”
송재덕 교수의 서운함이 묻어났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슬쩍 고개를 돌린 박승준 교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선생님 마음은 알지만 수술 팀 구성은 집도의의 재량입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는 관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상황을 따져 보면 당연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도리어 지동훈 교수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일과를 끝낸 펠로우들이 하나둘 퇴근을 했다.
흥분과 뿌듯함이 너무 강한 탓일까?
큰 수술 후에는 습관처럼 해왔던 토론도 생략했다.
각자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외과 전문의가 된지 불과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떤 각오와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에 따라 미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집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미소를 머금었다.
‘최고의 써전이 모여야만 최고의 수술 팀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 최선을 다한다면 최고의 수술 팀을 만들 수 있어. 그것이 곧 최고의 써전이 되는 길이 아닐까?’
기분 좋은 생각이 이어지는 밤이었다.
손일석이 보고 싶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어! 김 교수, 이 밤에 웬일이신가. 내가 지금 공사가 다망해서 통화하기가 힘드네. 어후! 3일째 달리니까 앞이 안 보인다. 딸꾹! 내일 아침에 전화할게. 우리 경희 잘 부탁해. 딸꾹!)
코가 삐뚤어졌다.
(술 많이 마셨어?)
뚜뚜뚜뚜뚜!
내일 아침에 기억이나 할까?
군대 생활을 잘하는 모양이었다.
그날 밤 박승준 교수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펠로우들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수술은 가히 충격에 가까웠다.
김지훈은 가히 발군이었다. 신현수는 이사장 아들이 아니라 김지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 명의 일반외과 의사였다. 이경석은 수술 성공을 위해 자존심까지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스스로 실력만큼은 자부했는데 자신이 교수를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동맥에 붙은 후복막 박리를 김지훈에게 넘긴 이경석의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질 않았다. 수술 전에 보인 행동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참관까지 한 자신이었다.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암이 침범한 후복막을 대동맥 바로 위에서 박리했다는 말을 들은 하윤호 교수의 표정이 떠올랐다.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입도 제대로 열지 못했지만 당연한 반응이었다.
‘실력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놈.’
그보다 담담하기만 한 지동훈 교수의 얼굴이 더 신경 쓰였다. 마치 자신이 알지 못했던 펠로우들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느긋하게 생각할 때가 아니야. 펠로우들을 어떻게 할지 확실하게 정해야 돼. 지금쯤 우리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고 대처 방안을 말했어야 할 동훈이는 왜 말이 없을까? 이제라도 병원을 옮긴 진짜 이유를 말해야 할까? 그놈의 줄을 잘못선 덕에 부 교수 승진에서 물먹었다는 걸 알면 달라질까?’
아니다.
지동훈 교수가 이 사실을 안다면 도리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동안 자리나 직위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지동훈이었기에 자신 역시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박승준 교수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보란 듯이 성공해 자신을 배척한 선배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말겠다는 각오로 병원을 옮겼다. 다신 똑같은 실패를 겪고 싶지 않았다.
여러 이유로 초조하기는 했어도 지금까지 별 문제없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수술로 많은 것이 다르게 다가왔다. 펠로우들이 경쟁자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성급한 생각일까? 아니야. 난 외부인과 다름이 없어. 지금 틀을 잡지 못하면 질질 끌려다닐 수도 있어. 펠로우라고 해도 신현수는 이사장 아들이고 이경석은 나이가 있잖아.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야. 교수들보다 먼저 해결해야 돼.’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이 복잡해졌다.
실력은 이미 갖췄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테지만 그놈의 줄 때문에 수위를 다투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승진에서 밀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였다.
누구도 경시할 수 없는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주도할 수 있다면 이젠 파벌이라고 불리든 라인이라고 불리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늘 수술을 운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방심이자 자만이었다. 펠로우 세 명이 뭉쳐 앞으로 어떤 결과물을 낼 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속마음과 성격을 정확히 모른다면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존재가 펠로우들이었다.
‘이제는 누가 날 밀어내기 전에 내가 먼저 밀어낼 수 있어야 돼. 김지훈, 이경석. 내 사람이 안 된다면 철저하게 등을 돌려야 하나? 파벌을 만든다는 인상을 주면 교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제길!’
삼사 년 내에 과장이 되지 못하면 장래는 없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지동훈 교수의 판단이 절실한 밤이었지만 끝내 전화기를 들지 못했다.
스스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토요일 아침.
회진을 돌던 김지훈이 대장암 수술 환자를 찾았다.
수술 중에도 느꼈지만 예상외로 체력이 강했다. 아직은 거동 자체가 제한되는 때이기에 누워있었지만 발그스름한 혈색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선생님, 이거 하나 드세요. 매일 똑같은 것만 드려 죄송해서 어쩌나.”
볼 때마다 주스를 건네는 할머니의 얼굴은 걱정 반 기쁨 반이었다. 수술 다음 날인데도 아들 내외는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할아버님, 수술 잘 끝났으니까 빨리 일어나셔야 합니다. 할머니 말씀 잘 들으시고요.”
“걱정 말아요. 고마워요.”
힘들고 탁하게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희망이 담겨 있었다. 저마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으니 삶에 대한 미련만은 아닐 것이다.
마냥 고맙고 기뻤다.
그 때문인지 병실에 누워있는 모든 환자들이 새롭게 보였다. 웃음과 기쁨만이 아니라 불평과 불만도 환자들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특실 앞을 지나쳤다.
하윤호 교수, 이혁원, 강병옥과 함께 막 병실을 나오는 박승준 교수와 마주쳤다. 살짝 웃음을 보이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경 쓰이는 하윤호 교수를 엉뚱한 곳에서 본 탓일지도 몰랐다.
‘아주 특실에서 사네. 몇 명 안 되지만 자기 환자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
입맛을 다시며 의국으로 들어서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