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63화 (663/1,329)

8화. 배울 것은 배우자. (2)

그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다.

손을 보지 말고 환자만 보라는 스승의 말이 귓가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무작정 그런 말을 할 스승이 아니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일까?

작게 연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이점도 없었다.

통상적으로 개복하고 담낭을 절제하는 시간이 도리어 더 빠를 정도였다. 이런 식이면 수술 후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만 높이는 꼴이었다.

“다른 병원에서도 한다고 하셨는데.”

이득은 적고 불리한 점이 많은 수술은 자연적으로 폐기된다.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면 당연히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윤호 교수의 손이 문제였다.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실력.

마이너 수술만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손.

갑갑한 시간이 이어졌다.

다음 수술은 복강경을 이용한 담낭 절제술이다.

‘미니콜레처럼 하면 무조건 배 열어야 하는데 정말 조심스럽게 하겠지?’

환자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마취과 끝날 때까지 하윤호 교수는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시간이 난다고 참관을 들어온 송진우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하려는 순간 마취과 간호사가 들어왔다.

“시작하고 계시래요.”

김지훈이 혀를 차고 말았다.

‘뭐지? 주요 과정만 수술하겠다는 말인가?’

전공의였으면 좋다고 시작했겠지만 교수다.

가장 연배가 높은 송재덕 교수도 이런 적은 없었다. 은퇴를 앞둔 원로 교수거나 혹은 수술 스케줄에 쫓길 때나 볼 수 있는 행동이었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아래 사람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까지 나왔다.

배 속에 카메라까지 넣은 후에야 들어왔다.

수술 장갑을 끼며 손뼉을 딱딱 쳐 소독 가루가 하얗게 흩날렸다.

언젠가 본 모습이다.

‘저거 금경태 버릇 아니었나? 정말 기분 더럽게 안 좋네. 후우! 뭘 해도 괜찮으니까 제발 서두르지 말고 수술만 제대로 끝내 주세요.’

복강경만큼은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천천히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기구를 조작하긴 했다. 그런데 느린 정도가 아니라 굼벵이다. 복강경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눈에 딱 보일 정도였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퍼스트의 한계가 가장 명확한 수술이 바로 복강경 수술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써전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카메라를 정확하게 조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기구 조작이 확실히 어설프다.

담낭을 박리하는 내내 깜짝깜짝 놀랐다. 동맥과 담낭관을 잡을 때까지 온 몸에서 힘을 뺄 수가 없었다. 불안, 초조, 짜증이 동시에 느껴졌다.

짜증이나 내지 않았으면.

“나종진, 간 확실히 밀어. 김지훈 선생, 카메라 좀 제대로 비쳐 봐. 박리하는 부분이 잘 안 보이잖아.”

“에이! 피 나네. 이거 열지 않아도 되지? 간호사, 빨리 보비 주지 않고 뭐해? 나종진, 흔들리잖아. 제대로 잡고 있어.”

“송진우, 너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뒤로 물러나. 참관도 요령 있게 해야지 방해를 하면 어떻게 해?”

수술실이 난장판에 쑥대밭이다.

두 시간이 넘어서야 담낭이 제거됐다.

아직도 건드려야 할 부분은 많았다.

하윤호 교수가 어깨를 돌리며 자리에서 나왔다.

“어후! 너무 오래 간만에 했나? 김지훈 선생, 나종진, 수고했어. 수술 중에 내가 짜증 낸 거 이해해 줘. 잘 안되면 누구나 그렇잖아.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올게.”

언제 그랬냐싶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수술 팀의 피로가 눈에 보였다.

김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도의 자리에 서서 확실하게 마무리를 했다. 담낭 절제 두 건이 거의 여섯 시간 가깝게 걸렸다. 소요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마음에 드는 구석을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써전이 보일 수 있는 모든 단점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아니, 그것이 사실이었다.

오늘도 보호자에게 설명은 참 열심히 하는 하윤호 교수였다. 몇 안 되는 수술이었지만 보호자나 환자와의 관계는 김지훈 이상으로 좋았다.

그나마 다행일까?

아니다.

문제가 생겨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억측일지 모르지만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었다.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이러다 큰 사고 터진다. 어떻게 저런 실력으로 교수가 될 수 있지? 미국 연수를 2년이나 다녀왔다면서 도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 혹시 하성원 원장님 힘으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환자를 위해서라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김지훈이 연구실에 홀로 앉아 고민에 잠겼다.

지금까지 오로지 의사의 본분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금경태, 전종훈, 강기웅, 정갑수, 악어를 보며 그들처럼 행동하고 사고하지 않으면 된다고 여겼다.

도리어 스스로를 다잡는 기회이기도 했다.

전공의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펠로우 1년차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신임 교수들이 오며 생각지도 못한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자격이 되는지는 더더욱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하윤호 교수의 능력과 의사로서의 자질은 확실히 의심스러웠다. 오늘 수술을 보며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박승준 교수와 지동훈 교수는 어떤 사람일까?

어느 정도 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안개처럼 흐릿했다. 이경석과의 일이 도화선이 된 모양이었다.

문득 강병옥까지 뇌리 속을 스쳤다.

함께 고생했던 선후배들에게서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기분을 느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기만 했다.

‘후우! 정리가 안 되네. 하윤호 선생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불안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상의할 사람이 필요했다.

스승과 교수들. 고경아와 신현수, 이경석이 있다.

만에 하나 잘못된 생각이 있다고 해도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일하는 와중의 충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평가다.

때문에 도리어 신중해야 했다.

마음이 편치 못했다.

‘나도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평가할 수는 없겠지. 어떤 의사인지만 생각하자. 어쩌면 이번 주 수술이 도움 될 지도 모르겠네.’

지금도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환자와 동료만 보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니다. 더구나 전공의라면 혹시 모르지만 교육까지 책임져야 하는 교수다.

나이에 따라, 직위에 따라 책임져야 하는 일이 더욱 많아진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세상은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한동안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다시는 하윤호 선생님 수술을 안 들어가는 것이 해결 방법 중의 하나야. 그러다 문제 생기면 환자는 어떻게 하지? 후배들까지 걸릴 수 있잖아. 후우! 죽겠네.’

“에이! 일단 일부터 하자.”

먼저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만 지금까지의 고민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격도 안 되는 놈이 설치면 비웃음과 손가락질 이외에 남는 것은 없다.

파이팅!

애써 기분을 전환시키며 병동으로 향했다.

가장 걱정되는 일은 오늘 하윤호 교수가 수술한 환자들의 상태였다. 회진 전이라 그런지 전공의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바쁠 텐데 굳이 부를 이유도 없었다.

미니콜레를 한 환자의 병실부터 들렸다.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나종진이 신중한 얼굴로 드레싱을 하는 송진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1년차가 부족하면 2년차가 대신할 수밖에 없지만 손이 부족할 때나 통하는 얘기였다. 더구나 지금은 오후 드레싱을 하는 시간도 아니었다.

‘자식들! 참 열심히 하네.’

그냥 기분 좋고 마냥 즐겁다.

“나종진 선생, 환자 분 어때?”

“어? 선생님, 언제 오셨습니까? 다행히 큰 통증은 호소하지 않으시고 드레인에서 피가 살짝 묻어 나오지만 문제없어 보입니다. 송진우 선생, 드레싱한 거 보여드려.”

“됐어. 너희들이 괜찮다는데 나까지 볼 필요 있어? 환자 분, 어떠세요? 괜찮으시죠?”

송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희한한 놈!

보호자가 환하게 웃으며 주스 하나를 건넸다.

“이거 하나 드세요. 수술 전에도 오시더니 또 오셨네요. 조금 전에 하윤호 교수님도 다녀가셨어요. 신경 많이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 않네요.”

환자의 말에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사실 수술도 문제지만 너무 엉망이었던 탓에 마무리를 제대로 했는지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내심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문득 코 줄 때문에 갈라지긴 했지만 개복한 사람치고는 목소리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 좀 볼까요?”

찬찬히 절개 창을 살피던 김지훈이 입술을 내밀었다.

그동안 왜 보지 못했을까?

미니콜레라는 말을 귓등으로 흘린 걸까?

보통 개복했을 때보다 절개창의 크기가 삼분의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참을성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 적은 이유였다. 하윤호 교수에 대한 감정 때문에 중요한 사실을 놓친 것이다.

‘라파로를 하기 힘든 경우에는 상당히 유용한 방법이겠네. 이런 식으로 수술하면 위험성이 너무 크지만 집도의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지겠지?’

같은 질환도 다양한 방법으로 수술할 수 있다.

각자 가장 선호하는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평생 고수할 일은 아니었다. 환자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깊게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병실을 나왔다.

복도 반대편 특실에서 나오는 하윤호 교수와 강병옥이 보였다. 내일 수술이 예정된 환자를 만난 모양이었다.

‘얼마나 각별한 사이인지 몰라도 참 대단하다.’

그 때문인지 대장암 재발 환자가 떠올랐다.

마침 바로 옆 다인실에 입원했다.

문을 열던 김지훈이 조용히 돌아섰다.

“선생님, 안 들어가세요?”

나종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힐끗 눈길을 주는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혁원이가 있네. 내가 끼면 할 말 못한다. 가자.”

파트 전공의가 환자를 보고 있다.

교수라고 해도 파트가 다른 이상 존중해 주는 것이 마땅했다. 환자와 가장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이경석과 이혁원이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일 수술할 환자들과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라파로를 받을 환자나 개복을 선택한 환자나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뚜렷한 차이가 보였다. 같은 질환을 두고 다른 수술을 택할 수밖에 없는 환자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놈의 돈이 뭔지 모를 일이었다.

또 다른 고민이 다가왔다.

아니, 생각하면 할수록 다른 고민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찬찬히 지난 수술을 되새겼다.

목요일 오전.

아침부터 특실 쪽 복도가 부산했다.

대장 파트 전공의들은 물론 지동훈 교수와 하윤호 교수까지 서성이고 있었다. 잠시 후 보호자와 함께 병실에서 나온 박승준 교수가 한동안 대화를 주고받았다.

회진을 돌며 힐끗 눈길을 준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지동훈 선생님과 4년차에 혁원이까지 들어가면 수술 잘 끝나겠지? 최고의 수술 팀이네. 오늘 라파로 한 건에 개복한 건인데 볼 수 있을까?’

수술할 환자들을 본 후 생각난 김에 대장암 환자를 만났다. 환자 성격이 긍정적이라고 했지만 수술을 앞 둔 탓인지 무척 초조한 얼굴이었다.

마침 이경석이 들어와 환자를 안심시켰다.

“할아버님, 할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같이 할 우리 김지훈 선생 얼굴 아시죠? 수술 잘될 겁니다.”

“교수님들 잘 부탁드려요.”

할머니가 주스 하나씩 손에 쥐어 주었다.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한 김지훈이 병실을 나가다 말고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여섯 명이 사용하는 다인실이다.

보호자라고는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명 뿐이었다. 자식들은 일 때문에 밤이 늦어야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수술 당일은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침대 옆에 조그만 수납 장 위에 달랑 놓인 주스 몇 개가 눈에 밟혔다. 손에 들린 것이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

수술 방에 도착해서 한 모금 마셨다.

미적지근한 주스가 이렇게 시원하고 달 줄은 몰랐다.

확실히 의사는 환자의 마음에서 힘을 얻는 모양이다.

첫 번째 수술이 시작됐다.

일주일에 서너 건씩 하는 복강경 수술인데다 오늘따라 거치적거리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담낭을 박리할 때도.

동맥과 담낭관을 잡을 때도.

마치 손으로 직접 하는 것처럼 말끔하게 끝났다.

빨랐다.

담낭 절제술에 국한된 일이겠지만 이제는 이준영 교수와 비견될 정도였다.

마취과 교수가 감탄을 터트렸다.

“김진호 선생님이 칭찬하신 이유가 있었네. 김지훈 선생, 올해가 펠로우 2년차지? 내년에 전임은 걱정할 게 하나도 없겠어.”

“아직 멀었습니다.”

왠지 칭찬이 너무 과했다.

“겸손하기는. 아참! 갑자기 신경외과 응급이 하나 떴어. 방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모자라서 바로 이어하기 힘들 것 같아. 다음 환자는 두 시간 정도 미뤘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환자 분에게 양해 좀 구해줘.”

“상당히 심한 모양입니다.”

“뇌출혈이 다 그렇지 뭐. 점심시간이 애매모호해서 아예 오후에 주려고 했는데 김지훈 선생 손이 빨라서 오전에 주는 거니까 신경 써 줘.”

수술실 배정은 마취과가 전권을 갖고 있다.

담낭 절제가 뇌출혈 수술보다 급할 수는 없다. 그마나 수술 방을 최대한 빨리 준다니 다행이었다. 환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환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코 줄에 소변 줄까지 모두 끼운 상태라 더욱 미안했다. 보호자가 속상한 얼굴로 눈가만 찌푸렸다. 거푸 사과를 했지만 수술실로 향하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수술이 뒤로 밀린 탓에 얻은 것도 있었다.

박승준 교수의 직장암 수술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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