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첫 강의와 실전. (2)
감별해야 할 질환은?
응급실에서 해야 할 검사는?
적절한 치료와 수술 후 유의해야 할 점은?
책으로만 본 질환은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딱 한 번 강의를 들었으니 지금쯤이면 머릿속이 텅 비기 마련이다. 게다가 질문마저 매우 실전적이다. 떠듬떠듬 대답을 하긴 했지만 듣는 김지훈도 어지러울 판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해하고도 남았다. 과목이 한두 개도 아니고 분량마저 어마어마해 진도를 따라가기도 벅찬 학년이다. 당연히 복습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한숨을 쉬었을 뿐이었다.
후배들의 얼굴색이 조금씩 변해갔다.
“이놈들아, 일반외과는 기본 중의 기본이야.”
걱정돼서 한마디 던졌다.
고개가 땅에 처박힐 것처럼 푹 떨어졌다.
어째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격한 반응이었다.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나종진과 송진우가 등 뒤에 서있긴 했다. 온 얼굴에 후배를 향한 애정이 가득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가르칠 날은 많다.
이제 본과 2학년이다.
“경철아. 훈아. 배운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다 까먹었어? 강의 끝나고 내가 열심히 하라고 했는데 혹시 복습 같은 건 안 했니?”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는데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하도 고개를 숙여 저러다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설마 내가 무섭나?’
김지훈이 갸웃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의대 특성상 그럴 수도 있었다.
“안 했구나. 나중에 어떤 과를 하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니까 열심히 해. 똑바로 하자.”
내용을 떠나 이보다 부드럽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땀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정말 의아한 일이었지만 이유까지 물어볼 일은 아니었다.
‘얼래? 경철이 저 자식도 사우나를 하고 앉았네. 왜들 이래? 내가 뭐 잘못 말했나?’
후배 중 한 명이 환자고 급한 일은 수술이다.
“나종진 선생, 준비 다 됐어? 보호자는 오셨나?”
“아직 안 오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눈길 한 번 주고는 당직실로 들어갔다. 나종진과 송진우도 시야에서 사라지자 고경철이 와이셔츠 단추를 풀며 헉헉거렸다.
“우와!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내가 왜 이러지?”
“경철아, 매형이라며? 도대체 이준영 선생님은 얼마나 무섭다는 거야? 그리고 불타는 고구마 선생님 맞지?”
“조용히 해. 인마. 들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최훈까지 목소리를 높이다 말고 얼굴을 찡그렸다.
배에 힘주다 복통이 도진 모양이었다.
‘누나한테 괜히 뭐라고 했나?’
미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고경철의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김지훈이 당직실에서 나온 것이다. 송진우의 눈짓에 고경철이 급히 달려가 옆에 섰다.
“선생님. 수술 준비 다됐고 보호자 분은 곧 도착하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수술 방은?”
“정규 수술이 거의 다 끝나서 정리 되는 대로 수술실 배정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차질 없이 준비해.”
몇 마디뿐이었다.
환자를 보며 무수히 해온 말일 것이다. 그런데 마치 처음인 것처럼 말투는 물론 눈빛까지 달라졌다. 단 하나의 미비점이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김지훈과 전공의 모두 더없이 진지했다.
그랬던 김지훈이 돌변했다.
“최훈. 많이 아프면 말해. 어차피 수술할 거니까 진통제 맞아도 상관없어. 너희 둘은 부모님 오실 때까지 옆에서 지켜.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으면 송진우 선생한테 바로 말하면 돼. 알았어?”
“예. 선생님.”
‘매형이 조금 달라 보이네. 훈이가 지금은 환자라?’
그 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응급실 문이 벌컥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환자 한 명이 들어왔다. 간이침대가 흔들릴 때마다 두 팔이 힘없이 흔들렸다. 간호사들이 우르르 달려 나갔고 나종진과 송진우은 어느새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고경철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응급실 분위기가 돌변했다.
나종진의 목소리가 급박해졌다.
“바이탈 어때요?”
“90에서 잡히고 박동 수는 120회에요.”
“라인 빨리 잡고 수액 달아요. 모니터 연결 안 됐나? 인턴 선생, 소변 줄 꼽아. 진우야. 의식 상태 어때?”
“기면(졸음) 상태입니다.”
띠띠띠띠띠!
귀를 자극하는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모든 의료진들이 단 한 명의 환자에게 달라붙었다.
“복부 CT 접수하고 흉부 사진은 포터블(이동식 방사선 촬영 장치) 빨리 부릅시다. 수혈할 거니까 지금 바로 피 신청하고 나오는 대로 달아요.”
커튼 사이로 언뜻 보이는 환자의 팔이 아직도 축 늘어져 있었다. 모니터 소리가 아니라면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보호자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그사이를 비집고 들려왔다.
처음 보는 상황에 덜컥 겁이 난 고경철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와중에도 이상스럽게 가슴이 아팠다.
‘어디를 얼마나 다친 걸까? 살 수 있을까?’
지금도 정신이 없는데 사이렌 소리가 또 들렸다. 새로운 환자 역시 바로 처치실로 옮겨졌다. 부족한 손을 나눠야 하는 통에 의료진들이 더욱 급박하게 움직였다.
신음 소리, 고함 소리, 울먹이는 소리.
상상 속에 존재했던 응급실은 더 이상 없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곳이었고 선배들은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인턴 선생, 골반하고 대퇴골 골절이 의심되니까 정형외과에 빨리 연락해.”
땀과 피로 범벅이 된 인턴이 부리나케 전화기를 들었다. 피 묻은 손은 아랑곳하지고 않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매형은 어디 가셨지?’
그 때 김지훈이 처치실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하얀 가운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주변을 휙 둘러보고는 급히 손짓을 했다.
“경철아. 빨리 들어와.”
처치실 안이 난리도 아니었다.
모니터 소리와 오더 내는 목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환자들의 안색은 창백했고 활짝 드러난 상체는 가쁜 호흡으로 힘들게 움직였다.
고경철이 주춤거렸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견디기 힘든 긴장감에 가슴이 심하게 떨렸다. 김지훈이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폴(pole)대에 걸린 수혈 팩을 건네며 소리쳤다.
“있는 힘껏 짜. 그래야 환자가 산다.”
김지훈의 이마에는 이미 땀이 맺혀 있었고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가락은 하얗게 변한 채였다. 얼떨결에 받아 들고는 정신없이 피를 짜던 고경철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긴장은 가시지 않았지만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이제야 주변이 제대로 보이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전공의 선생님들이 지시하고 교수인 매형은 인턴 선생님들과 피를 짜시네. 이거 거꾸로 된 거 아닌가?’
이상한 일이었지만 입 밖으로 낼 의문이 아니었다.
어느 틈엔가 이혁원까지 내려와 있었다.
눈길도 주지 않고 환자 처치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후 복부 CT가 나왔다는 소리에 김지훈과 나종진이 부리나케 사진을 확인했다. 가뜩이나 심각했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종진아. 간 깨진 것 같지? 바로 수술 들어가야겠다. 빨리 준비해. 간호사, 보호자 분 어디 계시죠?”
설명을 듣던 보호자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호자를 최대한 안심시키며 설명을 마친 김지훈이 최훈을 찾았다. 때마침 부모가 도착한 상태였다.
“부모님 되십니까? 일반외과 김지훈입니다. 흔히 맹장이라고 하는 급성 충수돌기염이 의심돼 수술을 해야 합니다만,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먼저 수술하고 훈이는 그 다음에 수술하겠습니다.”
“늦어도 괜찮을까요?”
“항생제를 쓰면 일시적으로 진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때 나종진이 달려와 노티를 했다.
“선생님. 환자 올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바로 옮기겠습니다.”
“바이탈 어때?”
“간신히 100정도 유지되고 있고 의식은 여전히 기면 상태입니다.”
“최대한 빨리 옮겨. 아버님, 어머님, 그럼 수술 끝나고 다시 뵙겠습니다.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점 양해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그사이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나종진과 송진우가 먼저 달려갔다. 고경철이 이혁원과 함께 환자 옆에 붙어 피를 짜며 따라갔다.
“고경철, 힘껏 짜. 수혈 팩 안 터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김지훈이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며 소리쳤다. 수술 방 앞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들이 빠르게 환자를 안으로 옮겼다.
고경철이 멀뚱멀뚱 피 묻은 손을 보았다.
한 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매달렸다. 교수인 김지훈은 직접 피를 짤 정도로 전공의와 모든 면에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큼 다급한 환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간이 파열된 환자라고 하셨는데 살리시겠지? 매형, 힘내세요.’
이혁원이 피 묻은 가운을 툭툭 치며 말했다.
“너 고경철이지?”
“예. 선생님.”
“김지훈 선생님께 똑바로 하라는 소리 들었다며?”
이 와중에 어떻게 알았을까?
“고경철, 똑바로 해. 나 치프 때 너 인턴이다.”
섬뜩한 기운이 스쳤다.
부르르 어깨를 떤 고경철이 부리나케 응급실로 달려갔다. 최훈의 옆을 지키며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환자와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의 모습이 가슴속에 박혀 들었다.
김지훈, 이혁원, 나종진, 송진우.
네 명의 일반외과 의사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째깍! 째깍!
거의 5시간이 지나서야 최훈이 수술 방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중간에 밥도 먹고 잠시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였는데도 보통 뻐근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술하신 거야? 정말 힘드시겠다.’
수술 방 앞에 도착했다.
그 때 유리문이 스르륵 열렸다.
고경철이 흠칫 놀랐다.
김지훈이 입고 있는 하얀 수술용 덧 가운이 온통 핏물로 물들어 벌겋게 보였다. 파란 수술용 모자를 벗자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이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보호자들이 우르르 달려가 앞에 섰다.
“우측 간 4분의 1 정도가 완전히 파열돼 모두 제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의 출혈은 없고 혈압도 정상적으로 잡히지만 재출혈 때문에 이삼 일 정도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간을 그렇게 많이 잘라도 괜찮은가요?”
“무사히 회복되시면 생활하는데 지장은 전혀 없습니다.”
“선생님. 목숨에는 지장이 없겠죠?”
“출혈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려하시는 문제는 없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잠시 후 최훈이 들어가고 수술 받은 환자가 나왔다.
입에 물린 튜브,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과 피가 섬뜩했지만 창백했던 얼굴에 붉은 빛이 도는 것 같았다. 환자를 따라 급히 중환자실을 다녀온 김지훈이 최훈의 부모를 찾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바로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떡진 머리 그대로였다. 피에 물든 덧 가운은 벗었지만 파란 수술복까지 온통 피와 물로 젖어있었다. 5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치고 잠시도 쉬지 못한 채 다음 수술을 들어갔다.
고경철이 콧등을 찡그리며 긴 숨을 내쉬었다.
‘식사도 못하셨잖아?’
개인 병원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일반외과 의사에 대해 느꼈던 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
모든 과가 그렇겠지만 외과 의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매형인 김지훈과 일반외과 전공의 선배들을 보며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동까지 받았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일반외과 의사가 되셨겠지?’
그 때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최훈이다!
‘어? 벌써 끝난 거야?’
그냥 들어갔다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빨리 끝났다. 진지하고 친절한 설명을 끝낸 김지훈이 병실까지 올라와 최훈의 상태를 확인했다.
나종진과 송진우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고경철이 나직한 숨을 내뱉었다.
의대를 다니고 아버지 또한 의사지만 하얀 가운과 청진기에 담긴 의미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매형인 김지훈과 전공의 선배들에게서 일반외과 의사 아니 의사를 보았다.
‘후우! 왜 이렇게 숨 쉬기가 힘들지?’
“경철아, 밥 못 먹었지? 가자. 매형이 밥 사줄게.”
밥 소리에 배가 저절로 반응했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픈 건 또 뭐야?’
고경철이 어색한 마음에 머리만 벅벅 긁었다. 잠시 후 민망한 마음까지 들었다. 잠깐 기다리라며 김지훈이 중환자실로 들어간 것이다.
꽤 시간이 흘렀다.
김지훈이 보호자에게 추가 설명까지 한 탓에 시간이 더욱 늦었다. 대단한 정성에 놀랐지만 이 밤에 밥 먹을 곳이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역시 없다.
대신 골뱅이에 소주다.
여기에 용돈까지!
매형이 매형으로 돌아왔다.
6시간 넘게 수술을 한 김지훈이 소주 한 병을 깔끔하게 비웠다. 술기운이 올라올 법도 한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병원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긴 했다.
‘에휴! 오늘 누가 당직이었지? 어쩌다 당직도 아닌 내가 수술을 하게 됐을까? 환자 참 절묘한 시간에 오네.’
고경철이 입술을 모았다.
‘우리 매형, 체력까지 정말 끝내준다.’
전공 선택은 먼 훗날 일이지만 일반외과의 매력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매형과 같은 의사들과 함께 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따르륵 선생님.
수술 킴.
리틀 이준영.
쓰리 X.
불타는 고구마.
‘내년에 실습 어떻게 돌지?’
왠지 병원이 지뢰밭이라는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