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49화 (649/1,329)

1화. 경험은 무섭다. (2)

복벽을 절개하는 손이 섬세했다.

서두르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새 복막이 열렸다. 깔끔한 절개 부위는 최소한의 손상을 의미했다. 출혈이라고는 거즈 몇 장에 묻은 피가 다였다.

이제야 시간을 낸 김지훈이 발소리를 죽이며 들어섰다. 급하게 달려왔는지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며 인사를 하고는 참관을 시작했다.

‘휴! 다행히 때맞춰 들어왔네.’

펠로우가 펠로우 수술을 보려고 허둥대는 모습에 이혁민 교수는 피식 웃었고 지동훈 교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광범위한 임파선 절제가 시작됐다. 대장과 비장 그리고 간과 연결된 구조물들이 차례로 분리됐다. 상당한 주의가 요구되는 비장 연결부의 박리도 순조롭게 끝냈다.

지금은 신현수가 집도의다.

퍼스트를 서며 김지훈과 응급수술을 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였다. 모든 과정을 섬세하고 깔끔한 손으로 정확하게 진행시켰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수술 팀의 과도한 긴장은 적절하게 제어했다.

‘집도의는 저래야 되는데 난 잘하고 있나? 한동안 응급실에서 살다시피 하더니 완전히 손이 풀렸네.’

가장 어렵고 위험한 식도 연결 부분이 박리가 시작됐다. 이마에 땀이 맺혔지만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기 자신과 수술 팀에게 확고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집도의가 명심해야 할 일이었다.

드디어 위를 절제했다.

한 덩어리가 된 임파선이 포함된 주변 조직과 위를 배 밖으로 들어냈다. 위가 있던 자리가 휑하다. 암 수술의 절대적 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

십이지장을 봉합하고 절단된 위와 소장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극도의 주의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도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정확했다.

무영등 환한 불빛 속에 규칙적으로 들리는 기계음만이 나직하게 들렸다. 함께 수술한 적이 몇 번 되지도 않는 수술 팀과의 호흡도 상당히 잘 맞았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참관했다.

마지막 피부 봉합이 끝났다.

‘컷(cut)’소리가 들리고서야 지동훈 교수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틈엔가 이혁민 교수가 보이지 않았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더 이상 참관하지 않아도 좋다는 판단일 것이다.

신현수의 긴장이 스르르 사라졌다.

김지훈의 긴장은 도리어 크게 치솟았다.

‘이 자식 수술 너무 잘하네. 다른 건 몰라도 수술만큼은 밀리면 안 되잖아. 이러다 내년에 정말 밑에 깔려서 살려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수고하셨습니다.”

수술 팀의 목소리가 힘찼다.

김지훈이 연구실로 향했다.

모든 수술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가슴이 떨릴 정도로 깔끔한 손놀림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 되새기며 깊은 생각에 빠졌던 김지훈이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신현수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자식! 어후! 이 자식 정말······.”

무슨 말인지 대충 알아들었다.

“네 반응을 보니까 기분은 좋은데 이번 수술은 5년 넘게 본 수술이야. 라파로는 아직 멀었어. 시작도 못했잖아.”

진행된 위암의 수술 방법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 됐다. 연수를 다녀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신현수에게는 자신의 노력과 실력을 보인 바로 오늘이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수술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환자와 질환의 정도에 따라 어떤 수술을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동시에 강한 긴장과 흥분이 다가왔다.

‘역시 너만큼 날 긴장하게 하는 놈도 없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당장 내일 있을 수술부터 확실하게 해내야 했다. 신현수가 첫 위암 수술을 한 것처럼 담도 담석 역시 처음 하는 수술이라 더욱 중요했다.

동료이자 라이벌이 주는 강렬한 자극에 바짝 정신을 차린 김지훈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수술은 결국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손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다.

따르륵! 따가각!

“우리 수술 킴 선생님 병이 또 도지셨네.”

이혁원이 중얼거리며 손에 들린 기구를 휘리릭 돌렸다. 나종진은 눈을 감은 채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집도의의 열정과 각오가 전공의들의 눈에서도 보였다.

드디어 새날이 밝았다.

김지훈이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수술실로 들어섰다.

나종진, 송진우, 변종수가 들어왔다. 때마침 수술이 없는 이혁원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지훈의 굳은 얼굴에 다들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수술실 창문 밖으로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보였다. 힐끗 눈길을 준 김진호 교수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지훈 선생, 이 수술은 처음이지?”

“예. 선생님.”

“담낭 제거는 무지하게 했고 추가로 담도에 T-tube만 넣으면 되니까 금방 끝나겠네. 넣고 수처하면 끝 아냐? 가장 노련한 사람까지 어시스트를 들어왔는데 걱정할 일이 뭐가 있어? 그렇게 알고 마취 진행한다. 종진아, 혁원아, 오늘도 너희들 얘기 아니다.”

항상 여유로운 김진호 교수다.

오늘도 집도의의 긴장을 풀어주며 마취과 의사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냈다. 모처럼 김지훈의 수술을 들어온 고경아도 편안한 웃음으로 응원했다.

‘김지훈 교수님, 파이팅!’

‘우리 과 주임 간호사 고경아 씨, 잘 부탁해요.’

수술이 시작됐다.

지난 1년간 담낭 절제까지는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

익숙한 손길로 담낭 벽을 박리하고 동맥과 담낭 관을 클립으로 묶고 잘랐다. 1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제거된 담낭이 고경아에게 건네졌다.

김진호 교수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1년 조금 더 지났는데 이준영 선생님과 거의 비슷하게 끝내네.’

경험 많은 마취과 의사의 판단은 외과 의사 못지않다. 그만큼 보고 듣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정확하면서도 빠르게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가볍게 어깨를 풀었다.

이제 총수담관을 노출시키고 T-tube를 삽입하는 과정만 남았다. 그에 맞는 라파로 기구를 건네받으며 눈가를 좁혔다.

박리 - 절개 - T-tube 삽입 - 봉합.

따로 떼어 놓으면 모두 경험한 과정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담낭이나 탈장이 아닌 담도일 뿐이었다. 상당한 어려움과 위험도를 동반하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실패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자신감을 갖고 준비한 대로 하자.’

조심스럽게 총수담관의 겉을 싸고 있는 조직을 잡고 살짝 끌어당겼다. 노란 지방조직 사이로 실핏줄이 보였다. 신중하게 보비를 가져갔다.

“보비 온(on).”

나종진이 풋 스위치(foot switch)를 가볍게 눌렀다.

삐이익!

조직이 타며 하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터진 실핏줄이 열기에 말라붙었다.

“이리게이션, 석션.”

수술 부위를 깨끗이 씻어 시야를 유지했다.

서서히 총수담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박리할 부분은 대략 2센티미터 정도다.

차근차근 출혈에 유의하며 조직을 박리해 나갔다.

어깨에 걸린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의외일 정도로 무난하게 진행됐다.

15분 정도 소요한 끝에 절개할 부분을 확보했다.

“메스.”

메스 끝으로 총수담관을 살짝 절개했다.

“맷잼.”

수술용 가위로 1.5센티미터 정도 길게 잘랐다.

갈색이어야 할 담즙이 검게 변한 채 흘러나왔다.

담도 내 담석으로 인해 담즙이 정체된 까닭이었다.

“석션. 이리게이션.”

염증이 발생한 담즙을 제거하고 총수담관 내부를 식염수로 세척했다. 조그만 담석 부스러기들이 쓸려 나왔다. 가능한 한 모두 제거하는 것이 환자에게 유리하다. 반복적으로 총수담관 내부를 씻어내 담석과 오염된 담즙을 최대한 제거했다.

갈색 담즙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담석 부스러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T-tube 주세요.”

T자 모양으로 생긴 투명한 플라스틱 관을 배 속으로 집어넣었다. T자의 머리 부분을 총수담관에 넣고 연결된 긴 관을 배 밖으로 끄집어내면 수술 목적을 달성한다.

절개한 부위로 T-tube의 머리 부분을 가져갔다.

부드러운 재질이라고 하지만 담관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튜브를 넣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어쩐지 무난하더라. 이것도 쉬운 게 아니네.’

손으로 넣으면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이다. 조그만 라파로 기구 끝으로 절개 부위를 벌리고 튜브를 넣으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튜브가 가진 탄력 때문에 한쪽을 집어넣으면 반대쪽이 튕겨 나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할 일인데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후우! 이러면 더 안 되지. 마음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시도하자.’

몇 번의 시도 끝에 튜브를 넣었다.

이제 삽입된 튜브와 총수담관의 절개 부위가 꽉 맞물리도록 봉합해야 한다. 만일 두 구조물 사이에 과도한 간격이 생기면 T-tube를 통해 배출되어야 할 담즙이 뱃속으로 샐 것이다.

반드시 방지해야 할 일이었지만 허용되는 간격이 1-2밀리미터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라파로 기구의 기다란 막대와 T-tube가 좁은 부위에서 뒤엉켜 있기 때문에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잠시 동안 스승의 수술 모습을 상기한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수처 주세요.”

어느 부분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는 고경아가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눈에 띄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수처를 시작했다.

담즙이 새지 않도록 조밀하게 봉합해야 한다.

튜브를 중심으로 위아래를 각각 세 바늘 정도 떠야 했다. 수처는 복강경을 이용한 탈장 수술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고경아의 응원까지 받은 덕에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위아래 첫 번째, 두 번째 수처는 무난했다.

쉽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치솟았다.

불과 1분도 가지 않았다.

튜브에 바짝 붙여 봉합해야 하는 마지막 바늘이 정말 쉽지 않았다. 튜브를 이리 밀고 저리 밀어도 방해가 됐다. 적정한 바늘 각도를 잡기가 정말 어려웠다.

한참을 씨름해 간신히 각도를 확보하면 기구를 움직일 공간이 없었다. 단 두 바늘만 꿰매면 끝인데 좀처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 수술이 쉬웠으면 모든 병원에서 다들 라파로로 했겠지. 스승님은 여기서 어떻게 처리하셨지?’

다시 한 번 이준영 교수의 수술을 상기하던 김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담도 담석 수술을 여러 차례 참관했다. 마지막 바늘을 뜨는 모습까지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런데 막상 주변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결코 사소한 동작이 아니었다.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이다.

순간 등짝이 서늘해졌다.

수없이 참관을 했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간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눈가에 힘을 주며 수술에 집중했지만 그 탓인지 시간이 사정없이 흐르는 것 같았다.

속으로 끙끙 대며 방법을 찾았다.

튜브를 미는 방향을 바꾸고 바늘의 적정한 각도도 보다 넓게 생각했다. 몇 번의 시도를 더한 끝에야 봉합할 수 있는 공간을 간신히 확보했다.

기회는 왔을 때 바로 잡아야 한다.

마지막 두 바늘 중 첫 번째 바늘을 떴다.

검은 실이 총수담관 한쪽을 뚫고 반대쪽으로 나왔다. 기구로 매듭을 짓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다. 바짝 말라오는 입술에 침을 축이고 땀 꽤나 쏟은 후에야 끝낼 수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남은 부분도 해결했다.

절로 긴 숨이 터졌다.

정말 운이 좋았다.

조금 더 과감하게 접근한 것이 효과를 본 지도 몰랐다. 이유가 무엇이든 분명한 사실은 수술에 관한 한 사소한 과정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스승의 준엄한 표정과 가르침과 신기동 교수가 가르쳐 준 교훈이 떠올랐다.

결론은 하나였다.

‘아직도 멀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접고 나머지 과정을 진행했다. 수술 부위를 확인한 후 T-tube를 배 밖으로 뺐다. 피부 봉합을 끝으로 수술이 끝났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온몸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꽤 걸렸겠지?’

후배들에게 수술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지만 교수인 자신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깔끔하고 정확하다는 전제 하에 얼마나 숙달됐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일 수 있었다.

2시간 30분이 흘렀다.

예정했던 시간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중간에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은 줄 알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김진호 교수와 고경아는 물론 전공의들 모두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취 시간을 딱 맞췄네. 내가 정확한 거야 아니면 김지훈 선생이 수술을 잘한 거야?”

‘나만 당황한 건가? 뭐지?’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고개를 돌리다 말고 살짝 숙였다. 신현수는 참관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옆에 하윤호 교수까지 보였다.

의외였다.

“선생님.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응? 신현수 선생하고 같이 들어왔어. 쉽지 않은 케이스인데 라파로로 참 잘하네. 역시 김지훈 선생 실력은 알아줘야겠어. 기회 되면 나도 좀 가르쳐 줘.”

뜻밖의 말까지 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아니야. 진심이야. 잘 봤어. 그럼 수고해.”

돌아서는 하윤호 교수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곧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지고 수술실은 뒷정리로 부산해졌다.

김지훈과 함께 휴게실로 들어선 신현수가 대화를 나누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지막 수처할 때 꽤 힘들었다고? 잠깐 튜브 때문에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보이지는 않던데.”

“그래? 난 무지하게 오래 한 줄 알았어. 굉장히 힘들었거든. 별 생각 없이 넘긴 과정들이 실제로는 상당히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 어떻게 가면 갈수록 부족한 게 더 많아지는지 몰라.”

집도의와 참관한 사람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렸다.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김지훈은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수술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신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결국 경험 차이였네. 지훈이는 어렵다고 하지만 많은 경험 덕에 보는 사람 눈에는 수월하게 보인 거겠지. 겸손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이게 진짜 실력이 아닐까?’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집도의는 어렵다고 호소하지만 정작 수술은 잘 끝나는 경우가 있다. 노련한 일반 외과 의사일수록 그런 빈도가 높아진다.

시쳇말로 외과 의사의 내공이다.

생각이 맞는지 모르지만 이제 펠로우에 불과한 김지훈이 그런 경향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신현수에게는 섬뜩하리만치 강렬한 자극이었다.

신현수의 긴장이 치솟았다.

냉정함의 대명사가 부르르 어깨까지 떨었다.

단 하루 만에 입장이 180도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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