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46화 (646/1,329)

10화. 임상 교수! (1)

수술 방이다.

마침 정규 수술을 모두 끝낸 박승준 교수 앞으로도 아뻬가 하나 있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강병옥이 발걸음에 힘이 넘쳤다.

‘자식! 수술이라도 받나? 뭐가 저렇게 좋을까? 그나저나 박승준 선생님은 오시자마자 펄펄 나시네. 확실히 내공이 있는 사람은 달라.’

피식 웃으며 나종진을 찾은 김지훈이 송진우를 가리켰다.

“종진아. 진우 준비시켜. 수요일 밤에 너희들만 수술 줬다고 성질내는 것 같더라.”

“그랬습니까? 알겠습니다. 선생님. 제가 단단히 주의 주겠습니다. 2년차 되더니 겁을 상실한 모양입니다.”

이젠 나종진도 스스럼없이 농담을 할 정도였다. 가까워진다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었다. 하윤호 교수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싹 사라졌다.

“살살 다뤄. 하하하!”

김지훈의 기분 좋은 웃음과는 반대로 2년차 두 명은 골머리를 싸맸다. 강병옥은 눈을 감은 채 수술 과정을 상기했고 송진우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너 수술 제대로 못하면 죽는다. 오늘 김지훈 선생님 입에서 단 한마디라도 지적 사항이 나오면 다시 소리 또 들을 줄 알아. 수술 달라고 무언의 시위를 했으면 그래야겠지?”

농담이 아니다.

송진우는 김지훈 파트다.

이제 막 2년차가 됐다고 해도 예외나 자비는 없다. 더구나 이혁원과 나종진이 가장 아끼는 후배기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정규 수술이 거의 다 끝난 관계로 양방이 벌어졌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됩니까?”

“예. 시작하세요.”

강병옥과 송진우가 동시에 수술을 시작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송진우의 눈가가 빨갛다.

2년차가 되도 변함없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목소리는 떨리지 않는다.

침착하게 피부를 절개했다.

다소 뚱뚱한 환자인데 생각보다 작게 열었다.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되는 변종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나종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젠 아뻬 경험이 꽤 쌓인 3년차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어 제법 놀란 모양이다.

복막까지 열었다.

어렵지 않게 아뻬를 찾았다.

여전히 안정적인 손이었지만 지금부터가 어렵다.

과연 손가락만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작은 절개 창을 통해 어떻게 수술할지 걱정되면서도 자못 흥미로웠다.

‘자신이 있으니까 이 정도만 열었겠지? 진우야. 잘하고 있으니까 침착하게 진행해.’

주변 장기를 최대한 확인한 송진우가 기구까지 다 넣고는 갑자기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좀처럼 아뻬를 잡지 못했다. 벌게진 눈가가 더욱 벌게졌다.

나종진이 눈가를 찌푸렸다.

써드를 자청한 탓에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벌써 5분 째 ‘끙끙’소리만 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은 아무 말 없이 퍼스트의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이 도리어 불안 불안했다.

‘이러다 수술 중에 터지겠다. 맹장 뒤로 숨은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아뻬를 못 잡아? 그러게 조금 더 열지.’

시간은 흐르는데 송진우는 여전히 고개만 박고 있었다.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어 슬며시 고개를 빼는 순간 김지훈이 조용히 말했다.

“진우야. 아뻬를 꺼내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맹장을 꺼낸다고 생각해.”

“그게 생각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겁내서 그래. 잡아끈다고 맹장 안 찢어진다. 혁원이나 종진이가 어떻게 했는지 다시 상기해 봐.”

나종진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후우! 다행이다. 자식이 나도 힘들어 하는 방법을 시도할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하든지.’

김지훈이 즐겨 쓰는 방법인 아뻬를 배 밖으로 꺼내려 한 것이다. 처음 몇 번은 당연히 어렵다. 방식을 깨닫는다면 손쉽게 할 수 있지만 송진우에게는 시기상조일 지도 몰랐다.

송진우의 욕심일까?

아니면 당연히 시도해야 할 시기일까?

나종진이 자신도 모르게 불편한 자세를 마다하지 않고 송진우의 손을 보려 애썼다. 맹장을 잡은 포셉 끝이 보일락 말락 했다.

‘힘내. 인마.’

송진우의 수술 모자가 땀으로 젖었다.

김지훈은 여전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백 번 보고 듣는 것 보다는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해 보는 것이 필요한 때였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실력이 된다. 아뻬 수술 경험 자체가 적다고 해도 송진우는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포셉의 위치가 바뀌었다.

송진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 순간 맹장이 스르르 움직이며 아뻬가 배 밖으로 툭 뛰쳐나왔다. 빨갛게 익은 아뻬가 송진우의 얼굴과 잘 어울렸다.

“켈리 주세요.”

동맥을 잡고 묶은 후 아뻬까지 잘랐다.

빠른 손은 아니었지만 일사천리다.

피부 봉합까지 깔끔하게 끝났다.

송진우의 실력과 노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정말 괜찮은 놈이야. 병옥이와 비교해도 뒤질 것이 하나도 없어. 도리어 이런 추세라면 더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어.’

그 때 수술실 밖에서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강병옥의 아뻬 수술이 끝나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고 있었다. 대략 40분 정도 흘렀다. 2년차 초반이라는 사실과 마취 거는 시간에 깨우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정말 빨리 끝났다.

‘저 환자도 살집이 제법 있던데 병옥이도 실력이 점점 느는구나. 자식이 손은 확실히 타고 났어.’

송진우가 귀를 쫑긋거리며 눈가를 찡그렸다.

라이벌 의식이었다.

김지훈이 씨익 웃고 말았다.

한때 신현수와 수술 시간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만큼 발전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송진우와 강병옥 역시 건전한 경쟁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 것이다.

‘진우, 너도 참 많이 늘었다. 얼굴 벌게져서 손까지 달달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침착하게 아주 잘했어. 아뻬를 끄집어내려 한 시도도 좋았다. 다음에는 훨씬 수월할 거야.’

문득 가르쳐야 할 것이 아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힘이 빠져 있을 송진우의 기운도 북돋아 줄 필요가 있었다. 이런저런 일로 이혁원이나 나종진 만큼 눈여겨보진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일은 많았다.

“진우야. 수술 빨리 한다고 능사가 아니야. 그것만이 실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아니잖아? 수술한 후에 환자를 얼마나 잘 치료하는 지가 더 중요해. 환자의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말이야. 지금처럼만 하자. 잘하고 있어.”

이런 칭찬을 언제 들었을까?

송진우가 고개를 푹 숙이며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어깨까지 들썩거렸다.

여기까지다.

처음이건 아니건 간에 미숙한 면은 지나칠 수 없다.

“그런데 준비는 충분히 한 거야? 아뻬 끄집어내는데 10분 이상 잡아먹었지? 이왕 시도할 거면 확실하게 하자. 확실하게. 어설프면 환자만 힘들다. 송진우, 어떻게 생각해?”

‘확실하게’와 ‘환자’라는 말로 충분했다.

나종진의 눈이 매서워졌고 송진우의 얼굴은 난로가 됐다. 이제 뒷짐 지고 지켜만 보면 된다. 3년차들이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예쁜 놈은 그만큼 더 혼이 나는 법이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송진우와 변종수의 목소리가 힘찼다.

휴게실로 향하던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발전한 송진우를 보며 불현듯 지난 1년이 떠올랐다.

‘난 얼마나 발전했을까?’

간암과 위암을 비롯해 혈관까지 수많은 수술을 했다. 이젠 기술적인 면도 많이 늘어 복강경 수술도 수월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큰 스승님과 오상익 교수 그리고 많은 환자들을 보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배웠다. 스승의 가르침과 장인어른의 끝없는 노력 또한 가슴 깊숙이 담았다.

동기와 후배들 역시 스승이었다. 부족함과 미숙함 속에도 배워야 할 것들이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의 열정과 의지는 가슴에 담아야 했다.

‘이 정도면 괜찮게 산 것 같네. 현수도 왔고 신임 교수님들까지 오셨는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자. 그나저나 속을 알 수 없는 하윤호 교수님이 문제네. 스승님께 걱정 안 끼쳐 드리려면 잘 헤쳐 나가는 수밖에 더 있겠어?’

휴게실로 들어가자 강병옥이 보였다.

박승준 교수가 활짝 웃으며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강병옥. 오늘 수술 정말 잘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기대가 커. 열심히 해서 제대로 배우면 그만큼 대가가 따라올 거야. 어려운 점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박승준 교수의 눈에 흡족함이 가득했다.

강병옥의 수술 실력이야 2년차 중 최고라고 공인받을 정도니 당연한 일일 수 있었다. 칭찬을 받는 모습에 김지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박승준 선생님. 병옥이가 수술은 잘하죠?”

“솔직히 조금 놀랐어. 아뻬하는 걸 보니까 다른 수술도 꽤 잘할 것 같아. 김지훈 선생은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잘할 겁니다. 강병옥.”

“예. 선생님.”

“네가 칭찬받으니까 내가 더 좋다.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 수술만 잘하는 건 반쪽이라는 것도 잊지 말고.”

교수들과 김지훈이 항상 강조하는 말이었다.

모든 외과 의사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기도 했다.

잠시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 강병옥이 인사를 하고는 회복실로 향했다. 자신이 수술한 환자는 이미 병실로 올라간 후였다. 반면 송진우가 수술한 환자는 이제야 옮겨지고 있었다.

휙 눈길만 준 강병옥이 병동으로 향했다.

‘환자 체격도 비슷한데 참 오래도 걸렸다. 역시 수술 실력이 관건이야. 박승준 선생님이 이렇게 좋아하실지 몰랐네. 에이! 그런데 김지훈 선생님은 분위기 깨지게 거기서 왜 그런 말을 해?’

한참 후 변종수가 올라왔다.

의국에 앉아 생각에 잠겼던 강병옥이 손짓을 했다.

“종수야. 곧 회진 돌 시간이니까 지금 바로 가서 내가 수술한 환자 드레싱하고 와. 깨끗하게 해라.”

“예. 선생님.”

드레싱 카를 끌고 나가던 변종수가 입맛을 다셨다. 백일 당직인데다 1년차 인원까지 부족해 죽을 맛이었다. 떡진 머리를 해결하지 못한지가 벌써 사흘째였다.

병실로 들어서자 송진우가 보였다.

막 올라온 환자를 살피며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 아뻬 수술을 한 환자 두 명이 같은 병실 바로 옆 침대였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졸음이 몰려왔는지 변종수가 선 채로 끄덕끄덕 졸았다. 누군가 툭 치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송진우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종수야. 이 환자 내가 드레싱할 테니까 너 머리 좀 감고 와. 아니다. 지금 할 일 있으면 내가 해줄 테니까 아예 샤워까지 하고 와.”

“아닙니다. 선생님.”

“냄새 때문에 환자 도망가겠다. 백일 당직 중이지만 너희는 사람이 부족해서 그래도 돼. 3년차 선생님들 눈에 띄기 전에 빨리 갔다 와.”

변종수가 고개를 흔들며 버텼다.

“오더야. 빨리 하고 와. 10분 준다.”

단호한 목소리다.

이미 강병옥이 수술한 환자 드레싱까지 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돌아서던 변종수가 흠칫 놀랐다.

김지훈이 떡하니 서있었다.

‘그래. 2년차가 1년차 챙겨줘야지. 자식! 보면 볼수록 참 괜찮아.’

“송진우 선생, 환자 괜찮아?”

“예. 잘 깨셨습니다.”

방금 전에 오간 대화를 못 들은 척 했지만 송진우의 얼굴이 벌겋다. 언제 봐도 희한한 놈이다. 온몸으로 피곤을 표현하고 있는 변종수도 머뭇거리기만 했다.

백일 당직 기간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변종수 선생, 10분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김지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다닥 소리가 들렸다.

환자에게 이것저것 묻는 김지훈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회진이 다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때까지도 말이다. 하윤호 교수가 뒷덜미를 잡고 있긴 했다.

너무 평탄하면 인생 재미없을 지도 모른다.

가끔은 덜컥 걸리는 일이 있어야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집에 도착한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서방님. 오셨어요.”

간드러진 고경아의 목소리가 뭔가 싸하다.

“오늘 메뉴는 삼계탕이에요.”

3월에 웬 보양식의 대명사?

인삼, 녹용, 당귀에 마늘과 대추까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식은땀이 흘렀다.

최근 당직이 겹쳐 신경을 많이 못 썼다. 신임 교수들 탓에 수술 서열까지 밀려 수술 방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치를 주더니 작전을 바꾼 모양이었다.

어라?

시원한 맥주도 있네.

닭 한 마리를 뚝딱 해치웠다.

적당한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힘과 의욕이 넘친다.

우워워워워!

서늘함이 화끈함으로 변했다.

울부짖는 늑대 울음소리가 탁하게 갈라졌다.

아! 좋은데 피곤하다.

헉! 뭔가를 빼먹은 것 같다.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고경아가 이렇게 편안한 얼굴로 코까지 골며 잠들었을 리가 없다.

오늘도 결론은?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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