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신임 교수들. Ⅱ (2)
늦게 들어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할 줄 알았다. 최소한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설명해야 했다. 하윤호 교수의 표정은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것 같았다.
‘나를 전공의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전에 근무한 병원은 펠로우를 이렇게 대우했나?’
박승준 교수와 지동훈 교수를 생각하면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수술을 앞두고 감정이 동요되면 안 되지만 솔직히 짜증이 났다. 그런데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 들렸다.
“김지훈 선생, 라파로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미니 콜레시스텍토미를 하는 것도 아주 유용해.”
미니 콜레시스텍토미?
(Mini Cholecystectomy)
처음 듣는 수술법이었다.
작게 수술한다는 의미는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술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국 연수 때 배운 수술법인가?’
갑자기 궁금증이 폭발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신임 교수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하윤호 교수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합니다.”
“예. 시작하십시오.”
김진호 교수가 슬며시 일어나 하윤호 교수를 보았다.
어떻게 수술할지 자못 궁금한 얼굴이었다.
마취과 의사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써전의 실력에 따라 마취 시간이 달라진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연히 새로운 써전이 오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메스!”
집도의가 누구건 간에 은색 메스는 언제나 날카롭게 빛난다. 무영등 불빛을 받은 메스가 환자의 우상복부를 깊게 가르고 지나갔다.
새빨간 피가 배어 나왔다.
재빨리 피를 닦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절개 창이 8-9센티미터에 불과했다.
통상 12에서 13센티미터 이상 절개를 해야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3-4센티미터의 차이를 우습게 생각하기 쉽지만 상상 이상으로 수술의 난이도를 좌우한다. 이쯤이면 상당히 뚱뚱한 환자의 아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설마 요렇게 개복을 하고 담낭을 절개할 생각인가?’
아뻬는 배 밖으로 끄집어 내 제거한다고 하지만 담낭은 그럴 수 없다. 또한 담낭을 간에서 박리할 때 상당히 주의해야 할뿐더러 배 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당낭관과 동맥을 묶으려면 충분하고도 확실한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복벽을 열고 복막을 자를 때까지도 절개 창을 더 이상 늘리지 않았다.
“이 정도 열면 수술 후 통증이 상당히 줄어들어. 회복도 의외로 빨라.”
경험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배 속에서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은 절개 창의 크기보다 훨씬 작아진다. 어떻게 수술할지 기대가 되면서도 우려를 감출 수가 없었다.
‘내 자리에서도 잘 안 보이는데 괜찮을까?’
담낭 윗부분만 간신히 보였다.
“켈리!”
담낭을 잡은 하윤호 교수가 보비(전기소작기)로 간과 담낭 벽 사이 일부분을 과감하게 절개했다.
“켈리 하나 더.”
간 쪽에 남은 조직을 잡고는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선생, 간 쪽으로 살짝 당겨.”
우려한 대로 시야가 좋지 못했다.
손을 이리저리 돌리고서야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됐어. 그 상태 유지해.”
보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삐이익! 삐이익!
하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탓에 시야가 더욱 나빠졌다.
“김지훈 선생, 배 속으로 넣지 말고 겉에서 석션해. 나종진, 송진우,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세게 끌어.”
석션을 따라 연기가 빨려 들어갔다.
여전히 시야는 나빴지만 하윤호 교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퍼스트인 김지훈에게도 간신히 보이는 담낭이 툭툭 간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언뜻 빨간 피가 보였다.
웬만한 출혈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계속 이렇게 진행할 수는 없을 텐데 괜찮을까?’
아니나 다를까?
시뻘건 피가 확 퍼졌다.
“에이! 뭘 건드린 거야. 켈리!”
눈살을 찌푸리며 수술 부위를 확인하던 하윤호 교수가 출혈 부위를 잡았다.
“타이!”
고개를 들이밀고 켈리 끝을 확인하던 김지훈도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피로 박리하는 부분조차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간과 면한 쪽에서 발생한 출혈이었다. 빠르게 출혈 부위를 잡은 것이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절개 창이 작아 손이 들어갈 공간조차 만만치 않았다. 출혈이 발생한 조직를 잡고 있는 켈리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타이를 했다.
손끝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단단히 매듭을 조이는 순간 간의 감촉이 전해졌다.
‘이거 까딱하면 간이 찢어질 수도 있겠네.’
등짝이 서늘해졌다.
개복해 담낭을 절제하면서 타이가 어려울 줄은 생각도 못했다. 퍼스트는 긴장 속에 손을 놀리는데 정작 하윤호 교수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삐이익! 삐이익!
보비 소리가 이어졌다.
또 한 번의 출혈로 타이를 했다.
전보다 깊은 부위라 훨씬 더 힘들었다.
등짝이 축축해졌다.
하윤호 교수는 여전히 빠르게 손을 놀렸다.
“포셉, 켈리. 나종진. 송진우. 동맥하고 담낭관 잡을 거니까 확실하게 끌어.”
끙 소리가 날 정도로 힘을 줬지만 애초에 절개 창이 작아 시야는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집도할 공간도 간신히 확보된 상태였다. 당연히 퍼스트의 손이 움직일 여유는 거의 없었다.
박리를 하던 하윤호 교수가 손을 뺐다.
“피 난다.”
거즈로 피를 닦던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서 이렇게 피가 나지? 동맥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불안하지도 않나?’
과감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몰라도 하윤호 교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위험하고 중요한 과정인데 가장 깊숙한 부위라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따르륵!
따가각!
켈리 물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가위! 타이!”
동맥이다.
마치 깊은 동굴 바닥에 위치한 것처럼 보였다.
정말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타이를 했다.
조금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따르륵!
따가각!
담낭관이다.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등짝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것 같았다.
하윤호 교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 박리가 끝나고 담낭이 제거됐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터졌다.
‘한 3시간 수술한 것 같은데 담낭 제거하는 시간은 고작 30분 정도 걸린 건가? 이것도 손이 빠르다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담낭 제거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끝났다.
꼼꼼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과정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은 과정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가 미니 콜레시스텍토미란 수술의 진가 혹은 의미를 말해 줄 것이다.
‘마무리는 어떻게 하실까?’
담낭이 제거된 부위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과정이 결코 쉬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수술 부위를 지켜보던 하윤호 교수가 집도의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이 정도면 됐네. 김지훈 선생, 중요한 부분은 다 끝냈으니까 마무리해. 출혈 확실하게 잡아. 휴게실에 있을 테니까 수술 끝나면 연락해.”
대답도 듣지 않고 휙 수술실을 나갔다.
힐끗 시계를 보며 예상대로 빨리 끝냈다는 듯 만족스러운 웃음까지 보였다.
‘이거 뭐냐? 뭐가 이 정도면 됐다는 거야?’
잠시 멍한 얼굴로 하윤호 교수를 보던 김지훈이 서둘러 집도의 자리로 건너갔다. 감정은 뒤로 하고 지금은 환자에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여기저기서 피가 났다.
무영등 초점을 맞추고 가장 중요한 동맥부터 확인했다.
절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동맥을 자르고 묶을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주변 조직을 최대한 적게 포함시키는 것이다. 타이한 부분의 조직이 녹으면 자칫 매듭이 헐거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동맥 출혈이 유발될 수도 있다. 수술 후 출혈로 인한 재수술만큼 겁나고 부담되는 경우도 없다. 그렇다고 타이를 풀고 다시 묶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로 시야가 나빠 지혈부터 해야 했다. 보비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타이 밖에 방법이 없었다.
“타이!”
나종진이 바짝 긴장했다.
김지훈이 최대한 시야와 공간을 확보해 주었지만 작은 절개 창이 문제였다. 게다가 애초에 거칠게 처리된 부분이라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타이를 하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보는 사람도 힘들었다.
“종진아. 동맥과 담낭관 한 번 더 타이하자.”
최대한 깔끔하게 노출시켜야 한다.
이미 박리된 부분을 다시 박리하는 과정은 처음보다 배 이상 힘들다. 수술 중 건드린 조직들은 더욱 쉽게 찢어지기 때문이었다.
신중의 신중을 거듭해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잘린 동맥과 담낭관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종진이 극도의 긴장 속에 타이를 했다.
간신히 담낭 절제 부위를 모두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개복한 이상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들인데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드레인을 넣고 직접 복벽을 봉합했다.
절개 창 역시 거칠게 열려 손 댈 부분이 많아 나종진에게 줄 수가 없었다.
마지막 봉합이 끝났다.
하윤호 교수가 나간 지 1시간이 지난 후였다.
‘시야가 나빠도 차근차근 처리하면서 수술했으면 이럴 일이 없는데 도대체 뭐야? 적게 열고 빨리 떼면 끝인가?’
짜증이 마구 치솟았다.
무엇보다도 집도를 했으면 최소한 배를 닫기 직전까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손 가는 대로 수술해 놓고 중간에 나간 하윤호 교수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란다고 한 내가 병신인가 보네.’
얼굴 보는 것은 물론 말도 섞기 싫었다.
“종진아. 네가 수술 끝났다고 노티해.”
김지훈의 기분을 모를 리 없었다.
나종진도 다를 바가 없었지만 전공의의 일이다.
“예. 제가 노티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 휴게실이 아닌 전공의 탈의실로 간 김지훈이 소파에 몸을 던졌다.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가슴도 진정시키기 쉽지 않았다.
‘어후! 저번 수술하고 똑같은 상황이잖아.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선생님들과 왜 이렇게 달라? 예전의 전종훈을 보는 것 같네. 그땐 파트라도 피할 수 있었지.’
앞날이 답답했다.
같은 파트인데 평생 얼굴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퍼스트를 서 달라면 수술에 따라서 서 줄 수는 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한동안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나종진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이준영 선생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어디 계셔?”
“외래로 내려오시랍니다.”
“노티는 했어?”
“예. 지금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수술이 끝난 지 거의 30분 정도 지났다.
수술 방을 나가니 아직도 설명 중이었다. 보호자에게 쏟는 정성의 반이라도 수술과 수술 팀에게 쏟는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눈길만 주고 외래로 향하려는 순간 하윤호 교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퉁퉁한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김지훈 선생, 오늘 수고했어. 아까는 갑자기 배가 아파서 먼저 나왔어. 전공의하고 간호사까지 있는데 말하기가 좀 그렀더라고. 이해해 줘. 미안해. 고마워.”
병 주고 약 주는 건가?
미소 속에 미안한 기색이 실려 있긴 했다. 정말 배가 아픈 사람을 두고 오해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수술 전에 말했지만 미니 콜레시스텍토미 그거 의외로 괜찮은 수술법이야.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시도해 봐. 겸사겸사 이번 환자 회복되는 과정도 좀 보고.”
끝말이 묘했다.
그 탓인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하윤호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준영 교수를 볼 때까지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뻬 하나 있어.”
“예. 선생님. 준비되는 대로 수술하겠습니다.”
“하윤호 교수는 어때?”
응급실 환자 일도 있고, 오늘 수술까지 함께 했으니 당연히 궁금할 것이다. 어쩌면 전후 사정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러저런 생각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준영 교수의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문제가 되는 일을 묵히면 안 좋아.”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하윤호 교수에 대한 말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전공의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교수다. 그에 맞게 행동해야 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이젠 네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나가야지.’
제자를 보는 스승의 눈에 뿌듯함과 대견함이 서렸다.
눈가에 잡힌 잔주름이 또 다른 의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