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42화 (642/1,329)

8화. 신임 교수들. Ⅰ (1)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다.

(이혁원입니다.)

“응. 혁원이구나. 왜 전화했어?”

잠시 뜸을 들였다.

(응급실에 환자 한 명이 있는데 하윤호 교수님께서 연락하라고 하셔서요.)

“그래? 왜 연락을 하라고 하셨지? 아! 당직 때 신경 써 달라는 말이었나? 어떤 환잔데?”

잠결에도 한숨이 나왔다.

(혈복막이 의심됩니다. 아무래도 비장 파열 같습니다.)

“뭐? 어후! 잠깐만 기다려. 정신 좀 차리자.”

마음 푹 놓고 자다 깬 탓인지 머리가 꽤 아파 관자놀이를 주물러야 했다.

“하윤호 선생님은 나오셨어?”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노티하자마자 연락하라고 하셔서 바로 전화 드렸습니다.)

“환자 바이탈은?”

(혈압이 90 이하에서 잡히고 소변도 거의 나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할 상황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랴부랴 찬물에 세수를 하고 부리나케 응급실로 향했다. 환자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지 이혁원과 당직 전공의들이 처치 실에서 나오질 못했다.

띠띠띠띠띠!

모니터가 가뿐 비명을 질렀다.

뚝뚝뚝뚝뚝!

혈액이 무서운 속도로 주입되고 있었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환자였다.

상황은 급박한데 하윤호 교수는 보이지 않았다.

급히 검사 결과와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보호자를 먼저 만났다. 어쩔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가족들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상황을 설명했다.

“장기 손상을 받아 출혈이 발생한 상태입니다.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망설이는 보호자는 없다.

그들의 눈에도 환자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의사보다 더 다급해 단 일 초라도 빨리 치료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혈압이 잡히는 대로 바로 준비해서 수술하겠습니다.”

이혁원을 불렀다.

“혁원아, 마취과에 연락해. 간호사. 하 교수님 연결해요.”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신호 소리만 들렸다.

결국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보호자에게 수술과 마취의 위험성을 설명했다. 특히 장기 손상으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까지 발생한 경우에는 수술 중 사망까지 말해야 한다.

안색이 창백해진 보호자의 손이 덜덜 떨렸다.

김지훈도 초조하기만 했다.

‘왜 안 오시지?’

째깍! 째깍!

황금 같은 시간이 흘렀다.

환자를 올리라는 연락까지 왔다.

이미 상당한 양의 수액과 다섯 팩(pack)이 넘는 피까지 수혈했지만 여전히 바이탈은 안정되지 않았다. 모니터 경고음이 쉬지 않고 울렸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더 이상은 단 일 분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응급실에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보호자 분. 수술 이외에는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수술 중 사망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 바로 수술하겠습니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김지훈의 말을 듣던 보호자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덜덜 떨며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종진아.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갈 거니까 하 교수님 오시면 환자가 급해서 어쩔 수 없이 수술 시작했다고 말씀드려. 혁원아. 빨리 올라가자.”

간이침대에 옮겨지는 환자의 창백한 팔이 힘없이 흔들거렸다. 기관 내 삽관까지 해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짐작컨대 혼수상태 직전일 것이다.

“서둘러.”

다급한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전공의들의 다급한 발소리와 간이침대 바퀴 소리가 복도를 요란하게 울렸다.

누가 당직인지는 잊은 지 오래였다.

마취와 수술 준비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수술 시작하십시오. 환자 바이탈 흔들리니까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 주세요.”

배를 열었다.

혈압이 너무 떨어져 피 한 방울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복막을 열었다.

온몸의 피가 모두 배 속으로 빠져나온 것처럼 온통 피로 가득했다. 수천 번을 보아도 결코 적응하지 못할 섬뜩한 소견이었다.

“석션. 탭(수술용 천).”

석션 통으로 피가 줄줄 쏟아졌다.

시뻘겋게 물든 탭이 바닥에 수북하게 쌓여갔다.

띠띠띠띠띠!

경고 기준 점을 낮췄지만 모니터는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시야가 나쁘든 좋든.

다른 장기에 손상이 있든 없든.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비장부터 제거하자.”

지금도 배 속은 피로 차 있다.

탭을 비장과 장 사이에 구겨 넣었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비장이 보였다.

형체를 거의 잃었을 정도로 손상이 컸다.

울컥울컥 솟구쳐야 할 피가 줄줄 흐를 뿐이었다.

그만큼 혈압이 낮다는 의미였다.

입안에 바짝 말라왔다.

“켈리! 켈리! 계속 줘요. 계속.”

따르륵! 따가각!

따르륵! 따가각!

비장 동맥이 포함된 조직을 거침없이 잡았다.

주변 조직 손상을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타이를 하며 진행할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아니, 숨 쉴 여유도 없었다.

“가위.”

툭툭툭 비장 쪽 켈리에 잡힌 조직을 잘랐다.

조각난 비장이 제거됐다.

손으로 퍼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위장 쪽을 잡은 켈리에 잡힌 조직이 남아있다.

“타이! 제일 굵은 실로.”

어디에 동맥이 있을지 모른다.

일일이 확인할 시간은 없다.

결코 타이가 끊어지면 안 되기에 가장 굵은 실을 찾았다.

타이할 시간마저 아껴야 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혁원이었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타이를 했다.

김지훈과 이혁원의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야 할 순간이었다.

“컷! 컷! 컷!”

사고로 손상 받은 조직과 거친 손에 수술 부위가 지저분하게 보였다.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비장이 제거된 부위에 새 탭을 쑤셔 넣고 추가 손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남아 있는 피를 제거하고 내부 장기를 살폈다.

가장 무서운 장기인 간은 멀쩡했다.

위와 소장도 손상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대장만 남았다.

빠르게 대장을 확인하던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장간막이 터지며 혈관 하나가 끊어졌다. 여전히 바이탈은 잡히지 않은 상태인데 하행 결장 일부까지 꺼멓게 죽어 있었다.

‘환자가 버틸 수 있을까?’

생각과 동시에 손이 나갔다.

“켈리.”

재빨리 끊어진 혈관을 잡았다.

“타이! 마취과, 바이탈 어때요?”

“90 정도 나옵니다. 선생님. 대장 잘라야 합니까?”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바이탈 잡아 주세요.”

출혈 부위는 잡았지만 마취를 견디지 못할 수도 있었다. 바싹 마른입이 새카맣게 탔다. 환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심장이 뛰었다.

수술 팀의 긴장도 보통이 아니었다.

‘침착하자. 서두르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대장 자릅니다.”

따르륵!

따가각!

빠르게 손상된 장간막을 잘랐다.

확연하게 색이 변한 대장 양쪽을 장겸자로 잡았다.

저혈량성 쇼크까지 발생한 환자에게 감염은 치명적이다. 더구나 내용물이 세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대장이다. 급해지는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감염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했다.

이제 자르고 이어주면 된다.

서둘러야 한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과정이다.

“가위.”

막 대장을 자르려는 순간 수술실 문이 열렸다.

나종진과 하윤호 교수였다.

힐끗 눈길만 준 김지훈이 고개도 들지 않고 수술을 진행했다. 여유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설명할 시간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

살짝 눈가를 찌푸린 하윤호 교수가 스윽 바이탈을 알려 주는 모니터와 간호사 앞에 놓인 제거된 비장을 보았다. 한눈에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바이탈도 엉망이고 비장은 깨진 정도가 아니네. 이러다 환자 잡는 거 아냐?’

“김지훈 선생, 어떻게 된 거야?”

“오셨습니까? 비장은 잘랐고 대장 동맥 손상이 동반돼서 하행 결장 일부를 자르는 중입니다.”

여전히 고개도 들지 않은 채였다.

‘아무라 급해도 그렇지 얼굴은 보고 말해야지 생각보다 건방진 놈 같네. 그나저나 정말 만만치 않은 상황인데 이걸 어쩐다. 이 시점에서 손댔다가 잘못하면 독박 쓸 수도 있겠어. 그렇다고 안 들어가면 더 문제가 되겠지? 제길! 첫 당직부터 이게 무슨 일이야?’

“손 씻고 들어올 테니까 진행하고 있어. 에이! 교통사고가 나서 이 시간에 길이 그렇게 밀릴 줄은 몰랐네.”

투덜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린 김지훈이 수술에만 집중했다. 이준영 교수가 들어온다고 해도 지금은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수처!”

펠로우 중 가장 손이 빠른 김지훈이다.

이혁원 역시 전공의로서는 무척 빠른 편이었다.

과감하고 정확한 수처와 타이가 이어졌다.

지난 2년 동안 기울인 이혁원의 노력이 고스란히 보였다.

대장과 대장이 빠르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곧 하윤호 교수가 들어왔다.

슬쩍 진행 상황을 확인하더니 이혁원과 변종수 사이로 들어서려 했다.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순간이다.

이런 경우에 손을 바꾸는 것은 금물이다. 하윤호 교수가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혁원의 손이 멈칫거렸다.

그 순간 김지훈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혁원. 지금은 자리 바꿀 때가 아니야. 집중해.”

위아래를 떠나 집도의의 말이었다.

그대로 수술이 진행됐고 하윤호 교수는 대장 연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마스크에 가려진 표정이 어떨지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눈빛은 좋지 않았다. 눈가까지 벌게진 것 같았다.

대장이 연결됐다.

지금은 퍼스트가 아니라 집도의를 바꿀 때였다.

더구나 하윤호 교수의 환자다.

김지훈이 재빨리 빠져나오며 말했다.

“선생님. 시간이 없습니다.”

하윤호 교수가 눈가를 찌푸리며 집도의 자리에 섰다. 수술 부위를 확인하며 내뱉은 첫 마디부터 심상치 않았다.

“김지훈 선생, 이렇게 거칠게 해놓고 나가면 어떻게 해? 퍼스트 서. 이혁원, 세컨 자리로 가.”

일견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말투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근무를 시작한지 이제 일주일이 막 넘어 개인적으로 친해질 틈도 없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김지훈이 별말 없이 퍼스트 자리에 섰다. 환자 급한데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잡아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윤호 교수가 마무리를 시작했다.

미처 잡지 못한 출혈 부위와 거칠게 건드린 부분을 정리했다. 원래 손이 빠른 것인지 아니면 상황이 급박한 탓인지 상당히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다.

“마취과 선생, 바이탈 어떻습니까?”

“지금은 100 정도에서 잡힙니다.”

안심하긴 이르지만 혈압이 조금은 회복됐다니 천만 다행이었다. 조심스럽게 소변 줄을 확인한 나종진의 목소리도 반가웠다.

“소변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나종진, 확실해?”

“예. 시간 당 30cc 가까이 나올 것 같습니다.”

띠! 띠! 띠! 띠!

빠르기만 했던 박동 소리가 조금씩 느려졌다.

힐끗 김지훈을 본 하윤호 교수가 눈가를 좁혔다.

정확한 판단이 필요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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