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노력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Ⅱ (2)
김지훈은 귀를 의심했다.
“네 눈에 그렇게 보인다니 정말 다행이다. 감각 안 잃으려고 1년차 때보다 더 열심히 수처와 타이 연습을 했거든. 지훈이 네가 항상 강조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미국이 고기 값은 싸서 돈은 많이 안 들었다.”
“위나 소장의 수처와 타이는 좀 다르잖아.”
“구하기 어렵고 냄새 참기가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돼지 창자는 거의 공짜야.”
후배들이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처와 타이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천하의 신현수 자존심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전공의들은 아예 입을 열지 못했다.
정말 충격에 가까운 말이었다.
아직 앞뒤 못 가리는 1년차 변종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얼굴색이 변했다. 송진우는 벌게지고 이혁원은 하얘지고 나종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미국 연수를 다녀온 신현수와 따르륵 선생이자 수술 킴이라고 남몰래 불리는 김지훈이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열정을 갖고 돌아온 지도 몰랐다.
‘야! 긴장하는 정도로 끝날 상황이 아니네.’
눈도 깜박거리지 못하고 신현수를 보던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무리하고 빨리 끝냅시다.”
빠르게 마무리가 진행됐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았다.
“컷!”
마지막 피부 봉합이 끝났다.
환자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며 미소를 머금었다. 비록 응급 수술이지만 무려 다섯 시간에 걸친 노력 끝에 위암 수술을 해냈다.
그것도 인생 최대의 라이벌 신현수와 함께였다.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가슴이 벅찬 것 같기도 했다.
수많은 수술을 기억하고 있지만 오늘 수술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경석과 함께 수술했을 때와는 뭔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벅참과 동시에 무섭게 변한 라이벌의 모습에서 긴장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최고의 수술 팀을 만드는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생각이 끊이지 않는 밤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가 응급실 보고를 받았다.
신현수는 확실히 재원이다.
첫 보고를 완벽하게 하고는 교수들의 말을 기다렸다.
“아뻬 하나, 빤뻬리 하나 한 거야?”
“예. 선생님.”
“어떻게 했어?”
당직이 누구인지 모를 이준영 교수가 아니었다. 당연히 김지훈에게 물은 말이었는데 신현수가 대답을 했다.
“위암이 의심돼서 서브토탈(sub total)을 했습니다.”
“서브토탈?”
누구와 어떻게 했는지 묻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물으면 의도가 무엇인지 신현수는 알 수가 없다. 김지훈이 피식 웃으며 슬며시 끼어들었다. 이참에 점수까지 따게 하면 언젠가는 덕이 될 것이다.
“예. 현수가 퍼스트를 섰습니다.”
“퍼스트?”
“미국에서도 수처와 타이 연습을 1년차 때처럼 했답니다. 제게는 어려운 수술인데 현수 덕에 할 수 있었습니다.”
신현수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준영 교수는 힐끗 눈길만 주었고 송재덕 교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신현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반응이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응급인데 문제는 없었어?”
“수술 전에 보호자에게 충분히 얘기를 했고 동의하에 수술 시행했습니다.”
“환자는?”
“잘 깨어났고 아침 드레싱에서도 문제없었습니다.”
신현수가 흠칫 놀랐다.
지금도 빠른 시간인데 언제 환자까지 봤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긴 김지훈이기에 놀랄 일이 아니었다. 교수들의 무덤덤한 반응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수고했다.”
응급실 보고가 끝났다.
외래로 향하는 동안 송재덕 교수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현수야. 지훈이하고 같이 수술했구나. 잘했다. 잘했어. 예전에 같이 수술한 적 있지? 내가 수술 줬잖아. 기억나지? 그치? 그때 보니까 너희들 궁합이 보통이 아니더라. 모르긴 몰라도 손발이 척척 맞았을 거야. 아! 좋은 일이다. 좋은 일. 경석이는 일석이하고 찰떡이야. 찰떡. 이 교수. 내 말이 맞지? 그치?”
마치 실제로 본 것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웬일인지 이준영 교수가 고개까지 돌리며 말했다.
“너희 둘. 괜찮아. 좋아.”
이준영 교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동시에 웃었다.
아니 좋아 죽었다.
이경석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입맛이 좀 썼을 것이다.
과감하면서 자연스러운 손과 섬세하고 정확한 손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완벽하게 보완하는 것일까?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도 기본에 충실한 써전들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이제는 건강하기만 한 라이벌 의식도 한 몫 했다는 것 역시 불문가지의 일이었다.
커피 타임 내내 신현수가 입에 오르내렸다.
이혁민 교수가 특히 기뻐했다.
“신현수. 말 나온 김에 1년차부터 다시 시작할래? 내 타이하고 수처 많이 줄게.”
“김지훈. 요새 슬슬 긴장 풀리는 것 같던데 신현수가 내 파트 전담하게 하는 게 어떻겠어? 신현수. 다른 건 몰라도 수처하고 타이는 내가 고수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부드러운 농담에 비수 섞인 농담까지 나왔다.
즐거운 웃음이 터졌다.
박승준 교수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면서도 눈가를 좁혔다. 지동훈 교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묘한 눈빛으로 신현수를 보고 있었고 하윤호 교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직은 겉돌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박 교수. 어제 내가 치질 환자 둘 보냈으니까 이번 주에 수술 좀 해줘. 바빠서 미처 말을 못했네. 원장 일이 은근히 바쁘다. 바빠.”
“치질 환자요?”
“응. 한 명은 꽤 심해. 만만치 않을 거야. 일단 목요일로 수술 날짜 잡았으니까 부탁할게. 내 마음대로 정해서 미안한데 괜찮지? 그치?”
“예. 감사합니다. 이경석 선생하고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경석이하고? 그래. 그래. 같이 하면 서로 친해지고 좋지, 뭐. 열심히 하자. 열심히.”
이경석이 약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싫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곧 회진 시간이 돼 모두들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느 새 목요일이다.
화요일 당직을 선 신현수가 수요일에도 당직인 이경석과 수술을 했다. 내리 3일을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보낸 탓에 눈이 벌겠다. 전공의와 간호사들은 벌써부터 제 2의 김지훈이 나타났다고 수군거렸다.
“선생님. 신현수 선생님도 대단하시네요.”
김지훈이 나종진의 말에 피식 웃고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일에 온통 신경이 팔린 탓이었다.
오늘 드디어 박승준 교수가 수술을 한다.
모두들 내색은 안했지만 신임 교수들의 실력이 어떤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김지훈 역시 무척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오후에 연달아 하신단 말이지.’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솔직히 더 기대가 되는 일이었다.
신현수가 약속을 이행하는 첫 날이었다.
미국에서 복강경 수술에 적용되는 질환은 상대적으로 훨씬 다양했고 사용하는 기구도 처음 보는 것이 상당수였다. 수술 영상을 볼 때는 심각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상당히 매끄러운 진행에 가야할 길이 정말 멀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후우! 저렇게도 수술할 수 있다니 대단하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의료 쪽으로는 완전히 후진국 되겠다.”
“나도 처음에는 꽤 놀랐어.”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일단 손부터 확실하게 풀어야지. 급하게 시도해야 환자만 힘들 테니까 여유를 갖고 접근하려고. 비용 문제도 마음에 걸려.”
“하긴 라파로로는 탈장도 하기 힘든데 언감생심이네.”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또 다른 세상을 본 느낌이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박승준 교수의 수술을 보러 가면서도 그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수술실이다.
이경석이 무슨 일이 있냐는 눈빛을 보냈다.
참관하고 싶다는 말에 박승준 교수까지 살짝 놀라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 수술도 아니고 치질 수술을 참관해? 혹시 내 손을 보고 싶은 건가?’
“김지훈 선생 전공하고는 관련이 없잖아?”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배울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좋을 대로 해. 참! 이경석 선생, 나이가 많다는 거 알지만 어제 말한 것처럼 스스럼없이 대할 거니까 혹시 내 말이 험해지더라도 이해해.”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오케이! 잘해 보자.”
치질 수술이 시작됐다.
김지훈과 관련이 거의 없어서 그렇지 아뻬보다 더 자주 벌어지는 수술이 바로 치질이다. 전공의 때도 많이 보지 못했고 펠로우가 된 이후로는 아예 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홍재순 선생님하고 수술했을 때가 거의 유일한 기억이네. 잘 지내시나? 이따가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잠깐 샛길로 빠졌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며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박승준 교수의 수술을 지켜보았다.
빠르다.
간결하다.
이경석도 꽤나 놀라는 눈치였다.
전에 근무했던 병원에서 대장 항문을 모두 맡았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와전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경석 선생. 이 부분은 무리해서 자를 필요가 없어. 타이만 하고 끝내든지 필요하면 밴드나 경화제를 주입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아.”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첫 번째 수술이 끝났다.
다음 수술이 이어졌다.
항문 주위가 온통 치질 덩어리인 일명 해바라기였다.
“이 환자는 송재덕 선생님 말씀대로 꽤 심하네. 이런 경우 욕심 부리지 말고 핵심만 해결하는 게 좋아. 공연히 여기저기 건드려서 벌집 만들면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특히 출혈이 발생하면 해결하기 정말 힘들다.”
수술 내내 자세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홍재순과 수술했던 환자가 떠오른 김지훈도 귀를 기울이며 수술에 집중했다.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했던 오상익 교수와는 달리 새로운 방법들을 적극 적용하고 있었다. 송재덕 교수마저 만만치 않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손쉬워 보일 지경이었다.
‘수술 참 간결하게 하시네. 배울 게 많겠어.’
“잘 봤지? 당분간 항문 수술 다 들어오고 확실하게 눈에 익혔으면 좋겠어. 그래야. 혼자 할 수 있을 거 아냐. 마무리하고 끝내.”
김지훈이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장 쪽도 수술하려고 하시나? 하긴 경석이 형도 대장과 항문을 다 할 수 있으면 그게 가장 좋겠지.’
설령 박승준 교수가 대장 수술을 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실력이 뛰어나다면 썩힐 이유가 없고 이경석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단, 아무리 펠로우라도 대장을 전공하는 이상 이경석과의 원만한 조율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었고 박승준 교수의 말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달랑 치질 수술 두 건만으로 정확한 실력을 알기 어렵지만 상당한 고수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 수술은 어떻게 할지 자못 궁금했다.
3월 첫 주의 마지막 날이다.
주말 집담회가 무사히 끝났다.
이번 주는 느낌상 전과는 상당히 다른 주였다.
왠지 모르게 한가하달까?
화요일에 복강경 두 건, 목요일 오후에 혈관 수술 두 건을 해 일과가 한가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당직이 줄어서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몰랐다.
신현수와의 토론은 가슴에 불을 지폈다.
왠지 투지가 끓어오른다고 할까?
새로운 수술과 도약을 앞둔 라이벌은 강렬한 자극이자 뜨거운 열정이었다. 이제는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인 참관마저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신임 교수들을 보며 막연하게 느꼈던 우려도 많이 사라졌다. 이경석과 수술할 때 본 박승준 교수의 모습과 외래 간호사에게 전해들은 지동훈 교수의 자세는 교수들마저 안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화요일 복강경 수술 때 분명 얼굴을 비쳤다.
뭔가 할 말이 있을 법도 한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일주일 내내 거의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도리어 다른 교수들과 가진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김지훈 선생. 라파로가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건 한다며? 열심히 해 보자. 그리고 내가 전에 한 말 기억하지? 돌아오는 월요일에 내가 당직이니까 신경 써.”
집담회가 끝난 후 한 말이 다였다.
당직을 거론하는 것이 왠지 찜찜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서로를 배려하며 각자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복강경 수술을 전처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주말 당직을 맞이했다.
토요일 저녁부터 다른 과 환자들로 전쟁이 벌어졌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응급실에 신현수까지 나왔다. 응급실 보고를 맡은 펠로우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표정이 달랐다.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치료가 지연된다 싶으면 바로 달려가 손을 보탰다. 아마도 전공의 때와는 달라진 신현수의 마음과 입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너 일복 터진다더니 정말이었구나.”
“여기가 끝이면 좋겠다.”
결단코 그럴 리가 없다.
연이어지는 응급 수술에 파묻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월요일 아침이었고 주말 동안 수술을 다섯 건이나 했다. 가히 기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강력한 라이벌이 여러모로 놀란 시간이기도 했다.
‘못 본 사이에 얼마나 노력을 한 거야? 펄펄 나네.’
김지훈도 신경 쓸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신현수와 전공의를 번갈아 퍼스트로 세워가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만을 잠재웠다.
특히 3년차들이 문제였다.
‘자식들 눈빛이 정말 살벌했어. 그런데 내가 왜 혁원이, 종진이 눈치를 봐야 하지? 진우, 그 자식 얼굴은 왜 또 난로가 되는 거야?’
욕심 많은 동료와 후배들은 여간 힘든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첫 주가 지났다.
월요일부터 바빴다.
오래 간만에 두 자리 수 외래 환자를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인데 신현수가 복강경 테이프를 흔들었다.
여기에 이준영 교수가 오후에 담도 담석 수술을 복강경으로 시행했다.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한 질환이기도 해 결코 놓칠 수 없었다.
달리고, 숨 한번 쉬고 또 달려야 했다.
헉헉헉!
저녁이 돼서야 숨을 돌렸지만 월요병이 도졌는지 퇴근길이 힘들 정도였다.
고경아는 사랑이자 힘이다.
함께 식사를 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주말부터 쌓인 피로가 풀렸다.
한잠 잘 자야 한다.
그래야 내일 당직을 무난하게 설 것이다.
아직은 쌀쌀한 밤공기에 도톰한 이불 속이 너무도 편안했다. 부드럽게 다가오는 고경아의 살결은 천상의 숨결이었다. 절로 눈이 스르르 감겼다.
따르르릉!
이 밤에 전화벨이 왜 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