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노력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Ⅱ (1)

대망이라고 불리는 위와 대장 사이의 연결 조직부터 절제를 시작했다. 이미 임파선 전이가 진행됐기 때문에 대장에 최대한 바짝 붙여 잘랐다.

그물망처럼 분포하는 혈관을 일일이 묶었다. 암은 혈액을 통해서도 퍼지기 때문에 사소한 출혈까지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컷! 타이!”

가장 손쉬운 과정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망이 대장에서 분리됐다. 이제 비장과 연결된 조직을 박리해야 한다. 이번 역시 비장에 최대한 붙여 자르는 것이 원칙이다.

비장과 연결된 조직은 얼핏 장간막과 비슷해 보이지만 의외로 약한 구조물이다. 함부로 잡아당기거나 부주의하게 다루면 비장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상당히 드물지만 노련한 의사들조차 간혹 당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비장까지 제거해야 한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미 손상을 받은 비장을 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긴장이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연결 조직을 잡아갔다. 신현수 역시 더욱 신중해졌다.

무엇보다도 비장 동맥을 주의해야 한다.

수술 부위에 집중한 채 타이를 하던 신현수가 조용히 한 부분을 가리켰다.

“비장 동맥 같은데?”

“오케이! 메인 동맥 말고 부동맥이 있을 수 있으니까 주의해서 박리하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암 수술 시 조직 박리는 뼈만 남기고 살을 모두 발라내는 것처럼 해야 한다. 즉 동맥이 완전히 드러나도록 주변 조직을 최대한 박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장 동맥이 벌떡벌떡 뛰었다.

삐끗하는 순간 시뻘건 피를 토해낼 것 같았다.

긴장이 치솟았다.

“모스키토! 켈리! 타이! 컷!”

비장 쪽에 가까워질수록 긴장은 배가 되고 손은 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마치 간을 자를 때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동맥 주변 조직을 박리했다.

수술복이 서서히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이 부분 만큼은 전기소작기로 지질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출혈이라도 모두 타이를 해야 했다. 신현수 역시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마침내 동맥이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확연하게 드러났다. 다행히 비장 손상은 없었고 위와 연결된 조직도 박리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제거됐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동시에 긴 숨을 내뱉었다.

고조됐던 긴장감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간과 연결된 조직에는 특별한 구조물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크기도 크지 않아 간에 바짝 붙여 몇 번 타이하고 자르자 간과의 연결도 끊어졌다.

이로써 제거해야 할 주변 조직을 모두 박리해 냈다.

간과 비장 그리고 대장에서 박리된 채 아직도 위와 연결된 조직들을 최대한 아래쪽으로 밀어내려 위 상부 쪽의 시야를 확보했다.

“여기쯤에서 자르면 되겠지?”

“진행성 위암인데 조금 더 위에서 자르는 게 낫지 않을까? 이미 터진데다 암 사이즈까지 너무 커서 충분한 간격을 확보해야 할 것 같아.”

“그런가? 내가 말한 부분에서 자르면 안전한 간격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

퍼스트의 의견이 합당하다면 집도의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보다 상부 쪽에서 절제하기로 결정했다.

암 수술의 절대적 원칙이긴 하지만 문제는 수술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식도 쪽에 가까워질수록 기구 조작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남겨야 할 위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은 살려야 한다. 반면 임파선 전이를 막기 위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조직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식도와 연결되는 부분까지 말이다.

명치부터 복벽을 절개했지만 해부학적으로 좁아지는 부분이기에 시야를 확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조직을 박리하는 일부터 타이까지 쉬운 과정은 단 하나도 없다.

불과 일이 센티미터의 차이가 극도의 긴장을 유발했다.

살짝 어깨를 푼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롱(long) 켈리.”

나종진이 변종수에게 눈짓을 하며 있는 힘껏 복벽을 벌렸고 참관을 하던 이혁원이 무영등 초점을 맞췄다.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까지 숙여야 박리할 조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왼손을 깊숙이 집어넣어 동맥을 확인하며 박리를 시작했다. 가장 긴 켈리를 사용했지만 잡히는 조직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부분은 어떻게 해도 정말 어렵네.’

타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동기들 중 가장 신중한 신현수였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타이가 끊어지거나 혹은 조직을 잡아당겨 출혈이 발생하면 감당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르륵! 따가각!

“타이!”

몇 센티미터에 불과한 조직을 박리하는데 땀이 질펀하게 흘렀다. 조직을 잡을 때도, 타이를 하는 손이 보이지 않을 때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신현수의 수술 모자가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식도와의 경계부가 보였다.

이제 한 번만 더 박리하면 된다.

조직을 잡아가는 김지훈의 손이 극도로 신중해졌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조직이 찢어지면 식도 하부에서 출혈이 유발될 수도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숨을 내쉬기도 어려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진행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따르륵!

“타이!”

신현수의 손이 배 속으로 사라졌다.

켈리 끝으로 실이 감기는 감촉이 전해졌다.

신현수가 눈빛을 주고는 서서히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기구를 따라 전해지는 감촉이 미세하게 변했다.

타이하는 속도와 세기에 맞춰 켈리를 적절하게 풀어야 한다. 서로의 호흡이 안 맞으면 켈리 끝에 단단히 물린 조직이 조여지는 실에 잘린다. 그 속에 가느다란 동맥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침착하게.’

풀리는 켈리를 따라 실이 조여졌다.

첫 번째 매듭이 지어졌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켈리를 뺐다.

간당간당하게 실과 연결된 조직에 매듭을 두 번 더 만들어 확실하게 묶어야 한다. 집도의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다. 오로지 퍼스트의 실력에 맡겨야 하는 순간이었다.

최대한 시야를 확보한 신현수가 잔뜩 눈가에 힘을 준 채 타이를 했다. 두 번째 매듭을 짓고 마지막 매듭이 남았다. 연약한 조직을 강하게 묶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김지훈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초조했다.

교수들과 스승도 그랬을 것이다.

왜 퍼스트를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신현수의 손이 빠져나왔다.

마스크가 불룩해질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무영등 초점을 맞췄다.

연속된 세 개의 매듭이 조직을 단단히 물고 있었다.

손상된 부분은 없었다.

당연히 출혈도 없다.

마침내 동맥을 제외한 모든 연결 조직이 박리됐다.

‘후우! 현수를 믿는데도 이렇게 긴장될 줄은 몰랐네. 역시 현수야. 고맙다.’

이제 삼분의 일 정도 끝났을 뿐이었다.

앞으로의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지만 불현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현수는 물론 수술 팀도 마찬가지인지 내내 감돌던 긴장이 다소 누그러졌다.

김지훈이 힘차게 손을 내밀었다.

“장 겸자.”

두 개의 겸자로 잘라야 할 부분을 엇비슷하게 잡았다. 김지훈의 눈빛을 받은 신현수가 자신도 적정한 위치로 생각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멧잼(수술용 가위).”

위의 상부를 잘랐다.

이제 십이지장과의 연결만이 남았다.

신중하게 연결 부위를 박리했다.

이보다 더한 경험을 한 부위였지만 역시 힘들었다.

“장 겸자.”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부인 유문을 잡고 잘랐다.

드디어 한 덩어리로 절제된 위와 주변 조직을 모두 들어냈다. 수술 용 대야에 가득 찰 정도였다. 간과 비장 그리고 대장 사이가 휑하게 보였다.

“더 이상 제거할 부분은 없지?”

“다 제거된 것 같아.”

“진행하자. 수처.”

먼저 타원형의 입을 벌리고 있는 십이지장을 봉합해야 한다. 다른 장기를 이어 줄 이유도, 필요도 없는 부분이기에 입구를 막아 버리면 된다.

소장 봉합은 무수히 해 봤지만 십이지장은 언제나 긴장을 불러왔다. 초입을 봉합하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수술 후 터지면 결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 바늘 한 바늘 신중하게 떴다.

타이를 하는 신현수도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서서히 주름진 내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수처와 타이가 끝났다.

말끔했다.

‘이 정도면 터지는 일은 없겠지.’

이제 위와 소장의 연결만이 남았다.

완만한 ‘V'자 모양으로 잘린 위의 좌측은 봉합하고 우측은 소장과 연결해야 한다.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다.

좌측면은 시야가 나쁘고 우측면은 두 개의 다른 장기를 연결하기 때문에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연결할 수가 없다.

특히 절단된 위의 좌측면과 우측면 그리고 소장이 만나는 일종의 꼭지 점 부분은 정말 유의해야 한다.

“수처.”

식도에서 불과 5-6센티미터 떨어진 부분부터 봉합을 시작했다. 배 속 깊숙한 부위라 니들 홀더(바늘을 잡는 봉합용 기구)를 조작하기조차 쉽지 않는 부분이었다.

김지훈이 이혁민 교수와의 수술을 상기했다.

기다란 포셉을 이용해 남은 위를 허용되는 만큼 살짝 잡아끌었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시야가 좋아졌다. 당연히 손이 편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과감한 손놀림을 보던 신현수가 눈가를 좁혔다.

‘위암 수술을 집도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하지 않았나? 간단해 보이지만 딱 허용되는 만큼만 당긴다는 것은 경험이 적지 않아야 가능한 일인데 대단하네.’

그렇다면 신현수는?

김지훈이 확보한 약간의 여유를 충분하게 이용했다. 일 년 동안 손을 놓았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정확하게 타이를 했다. 무리하거나 불필요한 동작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식도 부분도 그렇고 지금 타이하는 걸 보면 결코 손을 놓았던 놈이 아니야. 거짓말을 할 현수도 아니고. 타고난 실력인가?’

내심 감탄을 주고받는 사이 좌측면 봉합이 끝났다.

김지훈이 십이지장과 이어진 공장 일부를 끌어올려 우측면에 이리저리 대보며 적절한 위치를 찾았다. 너무 여유가 없어도 안 되지만 지나친 여유 역시 허용되지 않기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적합한 위치를 찾은 김지훈이 공장의 주행 방향을 따라 5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흘러나오는 내용물을 깨끗하게 제거하고 위와 연결하기 시작했다.

탄탄한 기본기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신현수 역시 막힘이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것처럼 두 개의 손이 어울렸다. 빠르게 위와 공장이 연결됐다. 마침내 절단된 위의 좌측면과 우측면 그리고 공장이 만나는 부분만 남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중해졌다.

김지훈은 점막이 빠지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고 신현수는 퍼스트로서 빠진 점막이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확실하게 잡혔지?”

“빠진 부분 없어.”

“오케이! 타이!”

다른 부분은 최악의 경우 다시 봉합할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불가능하기에 절대 실을 끊어 먹으면 안 된다.

신현수가 눈가까지 좁히며 타이에 집중했다.

손이 떨릴까 두려워 숨도 쉬지 않았다.

느슨했던 매듭이 단단히 조여졌다.

위와 공장 점막이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세 개의 절단면이 단단히 밀착됐다.

성긴 부분이 없는지 확인한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 점검을 했다.

제거해야 할 부분은 모두 제거됐다.

위와 공장은 확실하게 연결됐다.

수술 부위는 컸지만 미미한 출혈만이 관찰됐다.

마무리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아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케이! 잠깐만 쉬고 마무리하자.”

이제야 어깨를 펴고 크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동시에 묘한 감흥과 흥분이 다가왔다.

‘이거 혼자 수술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네. 경석이 형하고 수술을 했을 때하고는 뭔가 기분도 다른 것 같고. 신현수. 너 정말 멋진 놈이다. 내 라이벌답다.’

신현수도 목을 휘휘 돌리며 굳었던 몸을 풀었다.

‘올해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노력해야겠어. 김지훈. 너 정말 수술 잘한다. 내가 인정한다.’

그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수야. 수술 몇 번 못해 봤다는 거 진짜야?”

“왜? 거짓말 같아?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연수 간 의사들 진짜 수술 몇 번 못해봐. 나만 그런 거 아니다.”

“그래? 근데 네 손은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신현수가 묘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