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39화 (639/1,329)

6화. 노력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2)

자신도 모르게 시계에 눈을 주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생님. 수술 다 끝내신 건가요?”

“응. 왜? 환자 또 있어?”

‘와! 겨우 조만큼 열고 벌써 끝내셨어? 아무리 아뻬라지만 너무 하시네. 신현수 선생님까지 가세하니까 정말 난리도 아니구나.’

“뭘 그렇게 생각해? 환자 있어?”

“예? 예. 빤뻬리 환자 한 명 있습니다.”

“원인이 뭐야?”

“위궤양이 터진 것으로 의심됩니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펠로우 2년차 첫날, 첫 당직부터 서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볼 기회가 이어졌다. 희한할 정도로 잘 맞은 호흡이 우연인지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지는 것을 확인한 후 응급실로 내려갔다.

프리 에어(free air)가 확실하게 떴다.

위궤양이 터지며 위 속에 있던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횡경막을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관찰되는 프리 에어의 검은 음영이 꽤 커 보였다.

이제 막 의사가 된 초턴도 한눈에 진단을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 때문에 도리어 여러 생각이 드는 소견이었다.

“에어 양이 꽤 많네. 혁원아. 어느 쪽인 것 같아?”

“오늘 아침에 증상이 시작된 것 치고는 양이 많아서 천공 크기가 상당히 클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소화불량, 상복부의 불편함, 속 쓰림까지 지속돼 주변 염증도 심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궤양 천공으로 인한 수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위 절제 여부다. 병변의 위치 및 크기에 따라 절제가 불가피한 경우를 간간히 볼 수 있다.

눈가를 좁힌 채 사진을 보던 김지훈이 중얼거리며 환자를 찾았다.

“네 말대로 염증이 상당히 심하네. 전에도 이 정도 소견에서 위를 절제한 경우가 있었는데 일차 봉합이나 유문 성형술로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현수가 안경을 고쳐 썼다.

거의 동일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꼼꼼했는데 그새 더 꼼꼼해진 것 같고 혁원이도 노력 한 티가 많이 나네.’

환자가 상당한 고통을 호소했다.

명확한 압통과 반사통은 물론 복부가 마치 나무판자처럼 딱딱해진 채 힘을 빼지 못했다. 구멍을 따라 배 속으로 빠져나온 위액과 음식물이 강한 자극을 주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한 번만 경험하면 절대 잊지 않을 전형적인 복막염 소견이다. 신중하게 과거력과 병력을 확인하고 진찰을 마친 김지훈이 보호자를 만났다.

“보호자 분. 복막염이 발생했습니다. 위궤양이 원인으로 판단되고 반드시 수술해야 합니다. 대부분 터진 부위만 봉합하거나 위를 조금 열고 다시 봉합해 주는 수술을 합니다만 환자 분의 경우는 위를 절제해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위를 자른다고요?”

“상당히 드물지만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깜짝 놀란 보호자가 거듭 위를 잘라야 하는지 물었다.

김지훈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고 그 탓에 보호자의 의문과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의학적인 지식이 없기에 보호자의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급기야 다른 병원으로 간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어찌 보면 과도한 설명의 부작용일 수 있었고 보호자 입장에서는 지나친 방어 진료로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반복되는 질문에도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환자 분에게 가장 유리한 수술 방법을 택할 겁니다. 어느 병원으로 가시든 수술은 반드시 받으셔야 하니까 일단 수술 준비는 진행하겠습니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증상이 더 악화될 수도 있어서요. 그럼 빨리 결정해 주십시오.”

아뻬 환자가 병실로 올라가는 것까지 확인한 수술 팀이 내려왔다. 송진우가 코 줄과 소변 줄을 끼우는 변종수 옆에 붙어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이혁원과 나종진은 환자 상태와 검사 결과를 다시 확인하며 나직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신현수가 입술을 모았다.

수련 내내 보았던 모습이었다.

복막염은 시간을 다투는 수술도 아니었고 제법 보는 질환이다. 그런데 일이 년차는 물론 3년차들의 눈에도 상당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3년차면 여유가 생길 때도 됐는데.’

잠시 그 모습을 보던 신현수가 김지훈을 찾았다.

전공의들이 내려오자마자 눈길 한 번 주고는 당직실로 들어간 김지훈의 행동도 내심 의아했다. 펠로우라고 하지만 김지훈의 성격 상 조금 더 환자를 지켜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펠로우 된지 1년이 지나서 그런가?’

“지훈아. 환자 상태 안 궁금해?”

“혁원이하고 종진이가 있잖아. 너도 1년차 때 봐서 알겠지만 확실한 놈들이야. 진우도 마찬가지고. 전공의에게 맡겨야 할 일은 확실하게 믿고 맡기는 게 좋아.”

건성으로 말하는 것 같았지만 확고한 믿음이었다.

“그건 그렇고 보호자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겁 준 거 아니야? 저러다 다른 병원 갈지도 모르겠다. 위를 잘라야 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인데 언급만 하고 지나가도 되잖아. 솔직히 불안하지 않게 설명해야 우리 병원에서 수술할 거 아냐?”

“사실 그게 유리하고 편하긴 한데 이상하게 느낌이 안 좋아. 대충 언급했다가 수술실로 불러서 잘라야 한다고 설명하면 얼마나 당황하겠어? 보호자들이 마음 졸일 거 생각하면 차라리 먼저 말하는 나아.”

환자와 보호자에게 정성을 다 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수술 욕심이 많았던 김지훈이었다. 그런데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갈 상황까지 기꺼이 감수했다.

여러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겠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신현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물론 자세히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여유였다.

눈곱 만큼이랄까?

지금도 힐끔힐끔 문 쪽을 보며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딱 거기까지였다.

‘어후! 위를 잘라야 할 가능성이래야 얼마 되지도 않는데 현수 말대로 설명할 걸 그랬나? 왜 땀이 나지?’

‘환자 보는 모습은 하나도 안 변했는데 다른 면들은 제법 변한 것 같네.’

똑! 똑! 똑!

기다리던 소리다.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려던 김지훈이 헛기침을 하며 태연한 척 했다.

이혁원의 얼굴이 밝았다.

“선생님. 동의 받았습니다.”

절대 티를 내면 안 된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쫙 찢어지는 입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래? 그럼 수술 방 나오는 대로 시작하자. 응급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혁원이 네가 자리 지켜야겠어. 이번 수술은 종진이 들어오라고 해. 신현수 선생하고 같이 들어가니까 배울 게 많을 거야.”

밝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시꺼멓게 죽었다.

김지훈의 말은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신현수가 피식 웃었다.

여유가 있기 보다는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데만 근 한 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틀린 생각도 아닐 것이다.

맞다.

사람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혁원도 1년차 때나 지금이나 똑 같았다.

‘혁원이도 수술 욕심이 꽤 있었지? 들어와 봐야 퍼스트도 못 서는데 실망까지 할 정도였어?’

마지막으로 보호자를 만나 한 번 더 설명한 김지훈이 환자를 안심 시켰다. 손에 든 수술 동의서가 수술 방법에 관한 설명과 그림으로 새카맣게 보일 지경이었다.

김지훈과 이혁원 그리고 나종진의 글씨로 말이다.

수술 방이다.

손을 씻던 신현수가 입술을 모았다.

‘지훈이 일복 터졌다더니 첫날부터 수술이 이어지네. 그동안 몇 건이나 했을까?’

은근한 긴장에 어깨를 흔들며 수술실로 들어간 신현수가 멈칫거렸다.

3년차인 나종진이 세컨을 서는 것도 모자라 송진우와 이혁원까지 들어와 있었다. 일 년 만에 본 전공의들에게 믿음이 가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트레이닝을 어떻게 시켰기에 전공의들이 참관을 자청하지? 분명 지훈이 때문이겠지?’

김지훈이나 이혁원도 생각이 많았다.

‘아뻬는 기본이라고 치고 위장관 쪽은 어떨까? 복막염에도 새로운 관점이 있을까? 이번에도 손이 잘 맞을지 모르겠네.’

‘신현수 선생님은 어떻게 수술을 하실까? 1년차 때라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하긴 그때 본 게 지금하고 똑같이 보일 리가 없지.’

전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의 긴장과 기대 속에 수술이 시작됐다. 이혁원과 송진우가 발판 위에 서서 고개를 쭉 내밀며 수술이 시작되기를 기다려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지훈이 단번에 피부를 절개했다.

역시 과감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신현수가 재빨리 출혈에 대비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꼼꼼했다.

일 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수술 역시 단 한 마디의 말도 필요 없을 정도로 처음부터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갔다.

빠르게 배를 열었다.

나종진과 변종수가 리트랙터를 걸었다.

복벽이 벌어지며 배 속이 환히 드러났다.

위에서 흘러나온 음식물과 위액으로 지저분했다. 일단 눈에 확연히 보이는 것들을 제거하고 병변과 내부 장기부터 확인했다.

나직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예상대로 위 하부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런데 주변부가 돌처럼 딱딱했다. 상당히 심해 보인다고 해도 염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임파선 비대까지 관찰됐다.

양성 질환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소견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현수야. 캔서(cancer : 암)같지?”

“육안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네. 일단 배 속부터 깨끗이 닦고 확실하게 다시 확인하자.”

암이라면 이미 구멍이 났기에 물로 씻어내는 것조차 주의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 세포들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멍 난 부위를 조심스럽게 수술 용 천으로 감싼 후 배 속을 세척했다. 사방으로 퍼진 소화액과 음식물을 모두 제거하고 다시 확인했다.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딱딱한 부분으로 유추해 볼 때 병변 크기가 상당했다.

구멍이 났으니 암이 위벽 전체를 먹었다.

임파선 전이도 상당 부분 진행됐다.

누가 보아도 진행된 위암이었다.

그것도 최소 3기라고 판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심란하다.

“후우! 염증 소견이 심한 것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이래서 복부 CT도 전적으로 믿으면 안 돼. 종진아. 내가 암일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나?”

“예. 선생님. 혁원이하고 저도 추가로 설명했습니다.”

“다행이다. 마취과. 보호자 불러 주세요.”

수술실로 들어온 보호자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훈의 설명을 듣고는 충격을 못 이기고 비틀거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정말 암인가요?”

“조직 검사를 해야 확실하게 알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암에 준해 수술해야 합니다. 수술이 훨씬 커지겠지만 양성으로 생각하고 절제했다가는 재수술을 해야 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암이 더 퍼질 수도 있고요.”

이미 배는 열었고 조직 검사는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궤양 천공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한 절제가 필요하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보호자의 눈길이 김지훈에게로 향했다.

“만일 암이라고 해도 수술만 하면 괜찮은 거죠?”

말기에 가까운 암이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느 때보다도 객관적이어야 할 때였다.

“이미 진행이 많이 된 상태입니다. 다만 다른 장기에 전이된 소견이 없어 수술은 가능합니다. 원칙대로 절제하고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정말 수술해야 하나요?”

혼돈 상태에 빠진 보호자의 두서없이 반복되는 질문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일일이 대답을 했다.

째깍 째깍 초침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배를 연 상태에서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호자의 추가 동의였다.

“보호자 분. 결정을 해 주셔야 합니다.”

보호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암일 가능성을 포함해 위를 절제할 수도 있다는 설명은 이미 들었다. 김지훈의 눈빛에 불안감은 없었다.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겁이 났지만 믿을 수 있는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택은 없다.

동의를 구하는 것은 형식일 뿐이었다.

“부탁드려요. 최선을 다해 주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수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퍼스트는 정말 많이 섰어도 직접 위 암 수술을 해 본 경험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도 이혁민 교수의 지도하에 집도를 했을 뿐이었다. 더구나 상당히 진행된 위암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수술을 할 때마다 교수에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막상 보호자가 동의하자 일말의 불안감마저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신현수를 보았다.

수술을 거의 못해 봤다지만 자신감이 엿보였다. 전공의들의 눈빛에는 집도의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다.

‘지난 1년 동안 위장관 파트를 전공한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수술을 들어갔고 현수까지 있는데 불안해 할 이유가 없어. 자신감을 갖고 하자. 내가 최고의 써전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최고의 수술 팀이다.’

차분히 마음을 진정 시킨 후 과정을 그렸다.

위의 삼분의 이와 비대해 진 임파선이 포함된 조직들을 모두 확실하게 절제해야 한다. 이후 소장을 끌어올려 남은 위와 연결하면 수술은 끝난다.

모든 과정이 환하게 보였다.

어렵다고 해도 이제까지의 경험과 스스로의 손을 믿으면 결코 나쁜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실력도 쌓았다.

잡생각은 금물이다.

불안이야말로 절대 금물이다.

위장관을 전공하는 신현수까지 있다.

수술 팀을 믿고 오직 수술에만 집중해야 한다.

김지훈이 수술용 가위를 잡았다.

“현수야. 시작하자.”

펠로우 2년차 첫날.

신현수가 미국에서 돌아와 근무를 시작한 첫날.

위암 수술을 앞에 두었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눈빛을 굳혔다.

수술 팀은 물론 참관을 들어온 이혁원과 송진우까지 눈을 부릅떴다.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르는 수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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