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또 하나의 빈자리. (2)
신기동 교수가 퍼스트를, 김지훈이 세컨을, 흉부외과 치프가 써드 자리에 섰다. 홍재순이 초조한 표정으로 수술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명치부터 골반 위까지 열었다.
절개 창의 크기만으로도 대동맥류 수술이 얼마나 크고 힘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기도 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소장과 대장을 밀어내고 복부 대동맥 상부에 위치한 장간막을 박리했다. 일반외과 교수 두 명의 도움을 받은 변성훈 교수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주저할 시간은 조금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후복막이 노출되는 순간 신음 소리가 터졌다.
대동맥류가 발생한 부분이 검붉은 색으로 변한 채 부풀어 올라 있었다. 명백한 출혈 징후였다. 출혈 부위를 노출시키는 것은 자살행위다. 느슨하더라도 후복막 조직이 가하는 자연적인 압박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 바로 대동맥 묶겠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상장간막 동맥 하부에서 대퇴 동맥이 갈라지는 부분 직상방에 걸쳐 대동맥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만일 상부나 하부를 조금만 더 침범했으면 수술이 보통 커지는 것이 아니다.
변상훈 교수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인 신기동 교수가 빠르게 내부 장기들의 위치를 가늠하며 한 곳을 짚었다. 상장간막 동맥이 나오는 부위다.
“켈리.”
후복막 박리가 시작됐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언제든 파열 부위가 확장될 수 있었다.
중요하지 않은 혈관은 바로 묶었다.
소소한 출혈은 무시했다.
거침없는 변상훈 교수의 손과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신기동 교수의 손이 어울렸다. 김지훈 역시 정확하면서도 적절한 어시스트를 섰다.
직경이 2.5센티미터에 달하는 복부 대동맥의 일부가 드러났다. 좌우측 상장간막 동맥을 확인한 후 대동맥 주변을 모두 박리했다.
“혈관 겸자.”
손목을 수술할 때와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혈관 겸자로 대동맥을 잡았다. 따르륵 소리와 함께 하부로 가는 혈류가 완전히 차단됐다.
파열된 부분의 출혈은 멈췄겠지만 두 다리를 포함해 신체의 삼분의 일 이상이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다.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람의 몸이 가진 힘은 실로 대단해 몇 시간 이상 혈류가 차단돼도 하체 쪽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바이탈이 흔들리고 의식에 영향을 줄 정도의 출혈이 발생한 상태였다.
그런 여유는 고려할 계제가 아니었다.
변상훈 교수가 지체 없이 대퇴 동맥이 갈라지는 부위의 상방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신기동 교수와 김지훈은 수술에만 집중했다.
웬만한 출혈은 모두 무시했다.
가느다란 혈관은 보이는 대로 묶었다.
파열 부위에서 새나오는 피와 수술 중 발생한 출혈로 수술 부위가 온통 시뻘겋게 보였다. 필요한 만큼만 시야를 확보하며 하부 대동맥 주변을 완전히 박리했다.
“혈관 겸자.”
두 번째 따르륵 소리와 함께 대동맥 하부가 묶였다.
“마취과. 바이탈 어떻습니까?”
“불안정합니다. 최대한 빨리 진행해 주세요.”
띠띠띠띠띠!
출혈 부위의 혈류는 완벽하게 차단됐지만 심장박동 소리는 여전히 급박했다. 소변량을 점검하는 홍재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소변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두려움이 수술실을 휩쓸고 지나갔다.
혈관 겸자를 제대로 잡았는지 확인한 변상훈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멧젬(수술 용 가위).”
대동맥류가 발생한 동맥 상부를 단번에 잘랐다.
검붉게 변한 피가 가득했다.
“이리게이션. 석션.”
피를 제거하자 얇아질 대로 얇아진 대동맥 벽이 관찰됐다. 파열된 부분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파열됐을 상황이었다.
복원은 의미가 없다.
가능하지도 않다.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주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대동맥을 포함해 주요 동맥들이 노출된 상태다. 내부 장기들이 손상 받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 조치를 취했다. 하얀 수술용 천 사이로 대동맥만 보였다.
“인조 혈관.”
대동맥을 대체할 인조 혈관을 받아든 변상훈 교수가 힐끗 김지훈에게 시선을 주었다.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흉부외과 전공의들이 대신할 때였다.
재빨리 자리 교체가 이루어졌다.
홍재순이 고생했다는 듯 수술용 덧 가운을 벗는 김지훈의 등을 툭 쳤다. 축축했다. 세컨을 섰는데도 상당히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대동맥류는 처음 보았다. 직접 눈으로 보니 막연하게 생각됐던 질환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실감이 났다.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증상이 없었을까? 있었을 거야. 오상익 선생님이 무시하셨겠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연결이 시작됐다. 루뻬(수술 용 돋보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굵은 대동맥과 인조 혈관이 가는 실로 이어졌다.
눈에 환히 보인다지만 손목 동정맥을 연결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조금이라도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대동맥에 가해지는 혈액의 강한 압력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역시 노련한 의사들이었다.
빠르고 정확했다.
순식간에 상부를 연결하고 하부로 손이 갔다.
과감한 수처.
정확한 타이.
결코 주저하지 않는 손.
혈관 봉합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봉합이 끝났다. 변상훈 교수가 길게 숨을 내쉬며 신기동 교수를 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혈관 겸자를 풀었다.
심장이 수축하며 강한 혈류를 인조 혈관으로 내뿜었다.
봉합한 자리로 스멀스멀 피가 새나왔다.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는 출혈이자 혈액 응고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된다면 멈출 피였다.
변상훈 교수가 압박을 가하며 물었다.
“마취과. 바이탈 어떻습니까?”
“현재 100에 70정도 유지되고 있습니다만 불안합니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 해 주십시오.”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산소 결핍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다지만 혈류가 차단됐던 하체의 손상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수술 도중 떨어져 나간 혈전이 어딘가를 막았을 지도 몰랐다. 특히 가장 말단인 발이 문제였다.
“김지훈 선생. 발쪽 혈류 확인해 봐.”
발끝까지 덮은 천을 치웠다.
창백한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발목을 지나가는 동맥을 찾았다.
미세하지만 손끝으로 툭툭 뛰는 느낌이 전해졌다.
엄지발톱을 꾹 눌렀다 뗐다.
파랗게 보일 정도로 창백해진 발톱에 붉은 기가 슬쩍 맺혔다 사라졌다. 일단 말초 혈류는 유지되고 있었다.
“혈류 확인됩니다.”
변상훈 교수와 신기동 교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였다. 이미 인조 혈관 위로 크게 확장된 대동맥 벽을 덮으며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시간은 생명이었다.
흐려진 의식과 흔들리는 바이탈로는 오랜 마취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김지훈 선생. 배 닫을 때 다시 들어와. 일 분이라도 시간을 줄여야겠어. 신기동 선생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술 부위 마무리가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에 섰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배를 닫았다.
불필요한 동작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컷.”
마지막 수처가 끝났다.
배를 닫기 시작할 때 이미 마취제 투여가 중단됐다. 회복을 돕는 약제들까지 주사한 상태였다. 그런데 마취과 교수가 좀처럼 기관에 삽관된 튜브를 빼지 못했다.
“마취과.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한동안 상태를 점검하고는 눈가를 찡그렸다.
“동공 반사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아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중환자실로 옮긴 후 상황을 봤으면 합니다.”
마취와 바이탈을 다루는 마취과의 의견이었다.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겼다.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바이탈을 다시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흉부외과 전공의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수술 팀 모두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상황을 주시했다. 홍재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띠! 띠! 띠! 띠!
심장박동이 상당히 빨랐다.
혈압과 호흡 역시 불안정했다.
바이탈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손전등 불빛에 빠르게 축소되어야 할 눈동자의 변화가 없었다. 팔을 들어 얼굴로 떨어트리자 맥없이 떨어져 얼굴을 쳤다. 가장 큰 통증을 느끼는 발톱을 강하게 눌렀지만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혼수상태다.
김지훈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홍재순은 차마 스승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했다.
최악의 결과였다.
대동맥류 파열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와 의식 저하가 동반된 환자를 수술한 경우 삼분의 일이 넘게 사망한다. 이런 경우 수술 후 혼수상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과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하나 둘 모습을 보인 교수들 역시 뜻밖의 상황에 한숨만 쉬었다.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허경발 원장이 입원했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스승님 퇴원하신지 얼마나 됐다고 이게 무슨 일이니. 변 교수. 수술은 잘 된 거지? 그럼 문제없을 거다. 문제없을 거야.”
암울한 가운데 보호자를 만났다.
경과를 들은 보호자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홍재순이 이를 악물었다.
“사모님. 제가 곁을 지킬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깨어나실 겁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오상익 교수의 얼굴이 유난히도 창백해 보였다. 흉부외과 전공의와 나란히 앉아 상태를 살피는 홍재순의 어깨가 떨렸다.
“지훈아. 미안하지만 당직 좀 부탁할게. 이경석 선생. 혹시 내가 빠트리는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줘.”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다였다.
환자도 질환도 달랐지만 허경발 원장이 입원했을 때와 상황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연구실로 올라간 김지훈이 착잡한 마음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오상익 교수가 회복될 때까지 홍재순은 중환자실을 떠나지 않을 태세였다. 이경석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좋아지실 거야. 그렇게 믿고 나라도 마음을 다잡자.’
찬찬히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던 김지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큰 스승님에 이어 서울 병원 원장인 오상익 교수까지 병상에 누웠다.
가슴 속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하데 문득 인사이동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 생각났다.
알지 못 할 불안감이 엄습했다.
“에휴! 이 와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심란한 가운데 일과를 마친 김지훈이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오상익 교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동시에 수술 과정이 떠올랐다.
생각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흔들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홍재순의 스승이라면 김지훈에게도 스승이다. 누군가는 매정하다고 하겠지만 그러한 존재가 준 소중한 기회였다. 만일 대동맥까지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오늘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신동철 이사장과 윤재철을 비롯해 직위를 갖고 있는 의사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했다.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다양한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5일 째 혼수상태가 지속됐다. 필요한 조치는 모두 취했지만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모든 검사 결과는 원인 불명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술 전 의식이 흐려졌을 때 이미 눈에 안 보이는 뇌손상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 오갔다. 그마저도 추측에 불과했다. 의사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홍재순이 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했다.
“곧 깨어나실 거예요. 오늘 밤은 제가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주무세요.”
“난 괜찮아. 다들 시간 나면 교대해 주고 있어. 이틀마다 당직을 서는 김지훈 선생이 힘들지. 미안하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그러다 선생님까지 쓰러지면 누가 오상익 선생님을 지켜요?”
당직 때마다 억지로 눈을 붙이게 해야 할 정도였다.
홍재순의 말마따나 이경석과 당직을 번갈아 서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힘들고 아픈 사람은 홍재순이다. 이미 경험한 일이었기에 그 마음이 어떨지 알고도 남았다.
일반외과 구성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였다. 오상익 교수가 서울 병원 원장이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중앙 의료원 신임 원장인 하성원 교수가 근사한 일식집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박승준 교수, 오래 간만이야.”
“예. 선생님. 아! 지금은 원장님이시네요. 별일 없으셨습니까? 많이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자네 볼 시간 없겠어? 한 잔 받아.”
가벼운 술기운이 긴장을 풀어줄 때쯤 박승준 교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원장님. 일전에 제게 하신 말씀 아직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진행이 잘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결정은 했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원장님도 뵐 겸 약소하지만 오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하성원 원장의 입가가 말렸다.
‘확실한 답을 달라는 거야? 그럼 주지.’
“자리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평교수로 은퇴할 수는 없잖아? 물론 자네 정도면 과장이 되고도 남겠지만 그게 언제냐가 중요하지 않겠어? 때를 놓치면 아무리 잘나도 과장으로 끝이야.”
“잘 알고 있습니다만 워낙 쟁쟁한 사람들이 많아서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허어! 욕심을 내야 할 때는 내야 성공하는 거야.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우리 병원으로 옮겨.”
박승준 교수가 눈을 반짝이면서도 콧등을 찡그렸다.
“이미 확실하게 자리 잡은 선생님들이 계신데 제가 가서 움직일 공간이 있겠습니까? 나이도 이제 삼십대 후반이라 제약 조건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성원 원장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