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실수는 멀리 있지 않다. (1)
여전히 한 번에 많은 조직을 박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에 손아귀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뒤져 보아도 통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에 담낭관은 없었다.
김지훈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정말 어려운 케이스다. 설마 뒤 쪽에 있나?’
총수담관 옆면을 박리하는 과정도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시야를 확보하기조차 힘든 후면 박리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암담할 지경이었다.
잠깐 목과 어깨를 푼 뒤 수술을 진행했다.
나직한 기계음만이 수술실을 채웠다.
어렵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야 했다. 총수담관이 순간적으로 눌릴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불과 1-2센티미터를 박리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했다.
드디어 지방 조직과는 다른 뭔가가 보였다.
이혁원이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렇게 찾아 헤맨 담낭관이다.
적당한 부분에서 안전하게 처리한 후 묶기만 하면 되는 동맥과는 달리 담낭관은 총수담관에 바짝 붙여 묶어야 한다. 그 속에 담낭농증을 유발한 아주 작은 담석이나 진흙 같은 내용물이 차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클립.”
일단 담낭 쪽에서 한 곳을 잡았다.
총수담관 쪽으로는 두 곳을 더 잡아야 했다.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클립을 접근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총수담관 뒤로 밀어 넣었지만 정확한 위치에 놓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후복막에 단단히 붙어있는 총수담관의 주변을 모두 박리해 공간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켈리.”
췌장과 간 혈관이 인접한 부위다.
과도한 긴장에 눈이 뻑뻑해졌다.
마취과 간호사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전진했다. 켈리 끝이 살짝 빗나가기만 해도 섬뜩한 기운이 덮쳐왔다.
드디어 총수담관 반대쪽으로 켈리가 보였다.
천신만고 끝에 공간을 확보했다.
총수담관을 신중하게 민 후 클립을 집어넣었다. 원하는 위치에 들어갈 때까지는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은색 클립이 총수담관에 바짝 붙었다.
레버를 당겼다.
끼이익!
마침내 담낭관을 묶었다.
“가위. 후우!”
담낭 관을 자른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긴 숨을 내뱉었다. 실수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입안이 바짝 말라 침도 삼키기 어려웠다. 뻐근한 어깨와 목을 돌려 과도한 긴장을 풀고는 다시 기구를 잡았다.
이제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담낭 대신 잘린 동맥과 담낭 관을 잡아당길 수 있다. 상대적으로 충분한 시야와 공간을 확보한 덕에 한결 수월해졌다.
빠르게 박리가 진행됐고 곧 담낭이 제거됐다.
“담낭 나갑니다.”
콘돔에 담긴 담낭이 배 밖으로 빠져나왔다.
염증으로 거칠게 박리된 부분을 정리하고 깨끗이 씻어냈다. 담낭이 붙어있던 간 부위를 물고 있는 클립이 여러 개 보였다. 그만큼 심각한 출혈 부위가 많았다는 말이었다.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출혈 유무를 확실하게 확인해야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미세한 출혈이 보였다.
통상은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지만 염증이 너무 심한 상태이기에 절대 간과할 수 없었다.
“보비 주고 지혈제 준비해요.”
치이익! 치이익!
보비를 살짝만 대도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까맣게 탄 조직 위에 지혈제를 덮었다.
방심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 후 드레인을 넣었다.
온몸이 땀에 젖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지독하게 어려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복부 수처는 불과 다섯 바늘이었다. 손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간호사 앞에 놓인 담낭을 보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허탈한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12시가 넘었다.
담낭 하나 떼는데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맥이 탁 풀릴 정도로 극심한 긴장에 시달렸다. 수술 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취과 당직 치프와 간호사들의 눈에도 피곤이 잔뜩 걸려 있었다.
‘후우! 미안할 정도로 너무 오래 했네. 다음번에는 보다 빨리 할 수 있을까?’
고민에 잠긴 사이 환자가 깨어났다.
기도에 삽입된 튜브를 뺐지만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한동안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자극을 준 후에야 눈을 떴다.
‘잘 회복돼야 할 텐데.’
“마취과 선생. 간호사. 미안해요.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진이 빠진 수술 팀의 목소리에도 피로가 실려 있었다.
터벅터벅 탈의실로 향하던 김지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준영 교수도 선택적으로 수술하는 담낭농증을 너무 겁 없이 덤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술실에서 나오는 환자를 보고서야 걸음을 뗐다.
‘엠파이에마도 문제지만 담도 담석증은 또 어떻게 수술하지? 케이스가 생겨도 문제네.’
산 넘어 산이었다.
일단 땀으로 끈적거리는 몸부터 씻고 조금은 맑은 머리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탈의실 문을 열던 김지훈이 무심코 눈을 돌리다말고 화들짝 놀랐다.
100미터 밖에서 그림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람.
제자가 가는 길을 말없이 지켜봐주는 스승.
이준영 교수가 떡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시계 바늘은 밤 1시를 가리키기 직전이었다.
“스승님. 여긴 어쩐 일로.”
김지훈이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영 교수는 언제나 같은 얼굴이었다.
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
“끝났어?”
“수술이요? 예. 지금 막 끝냈습니다.”
“내가 하기에도 어려운 수술이야. 중간에 동맥 처리는 무모했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유는 알겠지? 다신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마. 수고했다.”
‘첫 엠파이에마 수술인데 정말 잘 했다. 내가 했어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 테지만 넌 어떤 어려운 점도 모두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이준영 교수가 벌떡 일어나 탈의실을 문을 열었다.
“스승님. 설마 저 때문에 지금까지 계셨던 겁니까?”
“환자 때문이야. 다음에는 보다 신중하게 결정해. 환자는 어때? 잘 깼어?”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집도의가 진짜 주치의야. 잊었어?”
펠로우가 된 지도 곧 일 년이 된다.
이제 찍 소리 정도는 낼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혁원이가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
대뜸 얼굴이 험악해졌다.
온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서늘한 기운이 쫙 퍼졌다.
아직은 역부족이다.
후다닥 회복실로 향하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뭉클한 무엇인가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언제나 무뚝뚝하게 마음을 돌려 말하지만 김지훈에게는 대단한 응원이었다.
축 쳐졌던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이 늦은 밤까지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던 스승을 생각하니 죄송스러운 마음 또한 금할 수 없었다.
뚜벅뚜벅 이준영 교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술 방을 나갔다. 오늘따라 스승의 등이 더 없이 넓고 단단해 보였다. 마침 환자가 깨어난 것을 확인한 이혁원과 나종진이 회복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정말 아끼는 후배들이다.
‘너희들에게 내 등도 스승님의 등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혁원아. 종진아. 환자 잘 깼어?”
“예.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다행이다. 근데 이준영 선생님이 탈의실에 계셨었네. 혹시 수술 전에 간호사에게 연락 받았었어?”
이혁원과 나종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간에 서너 번 정도 들어오셨었는데 모르셨어요?”
“정말?”
한두 번도 아니고 서너 번씩이나?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어렵기만 한 수술이 주는 긴장과 압박감에 단 한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제자를 보는 스승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것도 무려 5시간을 넘도록 말이다.
갑자기 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보답할 수 있는 길은 환자가 원활하게 회복되는 것뿐이었다. 얼굴을 굳힌 채 회복실로 들어가는 김지훈을 본 이혁원과 나종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종진아. 얼마나 집중을 하셨으면 이준영 선생님이 들어오신 것도 모르셨을까?”
“그러게 말이야. 어쨌든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수술이었네. 김지훈 선생님 실력에 5시간이나 걸려서 난 솔직히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나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어. 근데 중간에 보이지도 않는 동맥을 잡는 걸 보면서 이거 정말 어려운 수술이란 감이 팍 오더라. 나 같으면 환자고 뭐고 바로 열었다.”
“그랬어? 역시 이혁원이 한 수 위네. 근데 말이야. 난 네가 이준영 선생님을 이준영 선생님이라고 할 때마다 참 어색하다. 희한하지?”
“이 자식이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럼 뭐라고 불러?”
‘나도 가끔은 이상할 때가 있어. 인마.’
“미안하다. 길동아.”
“이 자식이 정말.”
실없는 농담이 오고갔다. 김지훈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여유였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희죽 웃으며 수술 방을 나가려다말고 다급하게 돌아섰다. 김지훈이 회복실에 있는데 감히 등을 보이다니 죽으려고 환장한 모양이다.
띠! 띠! 띠!
안정적인 심장 소리.
“눈 떠 보세요.”
신음 소리를 내면서도 바로 눈을 뜨는 환자.
아직도 입에서 풍기는 마취제 냄새에 미안하면서도 잘 깨어나 고마웠다. 오더를 내고 옆에 서 있던 강병옥이 힐끗 눈치를 보고는 드레인을 살폈다.
지금 당장은 깨끗했다.
“병옥이 너도 수고했어. 피곤할 텐데 빨리 올라가.”
“아닙니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자식!”
김지훈이 툭 어깨를 치며 회복실에서 나갔다.
강병옥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몸은 힘들어도 이런 게 확실한 투자지.’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환자가 병실로 올라갔다.
간호사들의 부산한 움직임 가운에 김지훈과 두 명의 전공의가 환자 상태를 살폈다. 파트 환자가 아니라고 해도 수술을 들어온 이상 당연히 있어야 할 한 놈이 보이지 않았다.
김지훈이 막 병실을 나왔을 때 강병옥이 부리나케 달려와 인사를 하고는 병실로 들어갔다. 힐끗 눈길을 준 김지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또 무슨 일이 있었나?’
이를 간과할 2년차들이 아니었다. 조용한 경고의 목소리가 한 차례 또 들렸다. 나종진이 없었다면 조용하게 끝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음 날 오후, 이준영 교수의 수술이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김지훈이 모처럼 여유를 즐기는 이혁원과 나종진을 연구실로 불렀다.
의아한 얼굴로 들어서던 이혁원이 눈을 껌벅였다. 구석에 놓인 티브이에서 어제 밤 수술한 담낭농증 환자의 수술 녹화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다. 김지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구를 다루는 요령이 아직도 부족하네. 수술 과정도 그렇고 예상되는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도 안 했으니 당연히 저럴 수밖에 없지. 이런 식으로 수술하다가는 분명히 문제가 생길 거야. 정신 차리자.’
5시간 동안의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다.
주요 부분과 특히 실수를 했던 부분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한동안 한숨을 내쉬며 자책을 하던 김지훈이 물었다.
“혁원아. 종진아.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담낭에서 고름을 제거해야 하는 타이밍이 얼마나 빨라야 했을까?”
꿀 먹은 벙어리다.
2년차로서는 함부로 의견을 말하기도 힘든 수술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집요했고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
불길과 비수가 동시에 날았다.
“수술만 하면 끝이야? 퍼스트나 세컨을 왜 서? 집도의가 무엇을 실수했는지 봤으면 당연히 고민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야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 아니야? 이럴 땐 내가 선배라는 생각 잊고 거꾸로 태워도 돼. 알았어?”
김지훈의 열린 마음이긴 하지만 이 대목에서 ‘예’라고 했다가는 바로 죽음이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그렇게 눈치가 없진 않다.
결국 5시간 넘게 수술에 참여한 이혁원과 나종진이 2시간 넘게 탔다. 한 수술로 도합 7시간을 고생한 것이다. 그래도 배운 것이 많았는지 병동으로 향하던 이혁원이 희죽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면이 있었네. 역시 집도와 어시스트는 보는 관점이 달라.”
고개를 끄덕이던 나종진이 갑자기 화들짝 놀랐다.
“혁원아. 내일 토요일이잖아?”
“어? 집담회?”
날마다 이러저런 일로 비상이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머리를 맞댔다. 김지훈에게 새카맣게 탄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교수들은 또 다른 벽이었다. 반성과 다짐 그리고 초조함이 뒤섞인 밤이 지났다.
토요일 오전 환자 상태와 드레인을 찬찬히 살핀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검사 결과가 좋은 것은 물론 의외일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수술을 오래 해서 걱정했는데 운도 좋네. 그래! 운도 좀 따라줘야 수술할 맛이 나지.’
“혁원아. 다 제거해도 되겠지?”
“예. 괜찮을 것 같습니다.”
환자의 코와 목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코 줄을 뺐다. 당연히 소변 줄도 필요 없었다. 몸을 괴롭히던 두 개의 줄이 사라지자 환자가 진저리를 쳤다.
“어후! 갑갑해서 죽는 줄 알았네.”
“환자 분. 어떠세요? 일어나 앉아 보시겠어요?”
“이제 하루 지났는데 벌써요?”
“지장 없으실 겁니다. 앉아 보시고 통증이 크게 느껴지지 않으시면 걸으셔도 됩니다. 해 보실까요?”
“생각보다 덜 아파서 좋긴 한데 걸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래도 되나?”
수술 직후 단 한 번 진통제를 맞았다.
크게 불편한 점도 없었지만 옛 기억에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답답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던 환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