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28화 (628/1,329)

1화. 도전! (1)

Gall bladder Empyema (담낭농증).

엠파이에마(Empyema)는 농양 즉 고름집을 의미하는 압세스(Abscess)와 같은 개념이다. 단 빈 공간이 없는 곳에 고름이 차면 압세스라 하고 공간이 있는 부분이면 엠파이에마라고 한다. 예를 들어 팔에 고름이 잡히면 압세스, 담낭이나 흉강이면 엠파에마라고 진단한다.

결국 두 용어 다 고름집을 의미하지만 장기에 발생하는 엠파이에마가 훨씬 위험할 수밖에 없다. 특히 담낭 같은 경우 장기 자체의 심한 염증 때문에 패혈증 등을 훨씬 유발하기 쉽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복부 CT 소견이 심상치 않았다.

내부는 지저분한 삼출물로 가득 차 있었고 담낭 벽은 퉁퉁 부어올라 터지기 직전처럼 보였다.

“환자는?”

“저쪽에 있습니다. 5년 전에 이미 담낭에 담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 이 정도 되려면 그동안 증상이 여러 번 나타났을 텐데 왜 수술을 안 했지?”

“다른 병원에서 여러 차례 입원해 치료한 병력이 있습니다. 입원할 때마다 수술 권유를 받았고 이번에는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답니다.”

“그런데 왜 우리 병원으로 왔어?”

“환자가 수술을 거부해서 치료 못한다고 겁을 줬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안 봐도 빤한 일이었다.

가끔은 환자의 완강한 치료 거부를 막아 보려는 의사의 말이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 최악의 경우 지금처럼 아예 병원을 옮기는 환자도 볼 수 있었다.

“CT만 봐도 보통 아픈 게 아닐 텐데 수술을 거부한 이유가 뭐야?”

“보호자 말로는 10년 전에 척추 수술을 했는데 재수술을 몇 차례 하고 감염까지 발생해 굉장히 고생한 모양입니다. 특히 수술 후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습니다.”

합병증으로 고생한 환자는 종종 일종의 정신적 트라우마 혹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갖는 수가 있다. 이해가 되긴 했지만 이번은 경우가 달랐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기에 수술만이 살 길이었다.

“바이탈은?”

“심박동수가 110회에 혈압은 110에 70입니다. 체온은 39도가 넘습니다. 다행히 백혈구 수치는 8,000으로 아직 패혈증까지 진행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환자를 진찰했다.

상당히 심한 통증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우상복부를 누르자마자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손을 밀어낼 정도로 압통이 심했다. 손을 뗄 때 나타나는 반사통 역시 상당히 심해 복막염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환자 분. 여기가 어딘지는 아시죠?”

“병원까지 옮겼는데 그걸 모르겠어요?”

의식은 명료했지만 목소리가 좋지 못했다.

치료 중 합병증으로 고생한 환자들이 갖는 전형적인 불신이었다. 다른 병원에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전신 상태가 상당히 불량해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언제든 패혈증이 진행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담낭에 천공이라도 발생하면 어떤 진행을 보일지 몰랐다.

“환자 분. 담석이 있다는 건 아시고 계셨죠?”

“예. 알고 있습니다.”

“담석이 말썽을 심하게 부렸습니다. 지금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쓸개 안에 고름이 꽉 차서 잘못하면 터질 수도 있습니다.”

“전 죽어도 수술 못합니다. 내가 전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아요? 내과에 입원만 시켜 주세요. 전에도 잘 나았으니까 이번에도 잘 나을 겁니다.”

말하기도 힘들 텐데 고개까지 강하게 흔들었다.

아예 돌아누우며 눈길까지 외면했다.

너무도 완강한 태도에 독한 말이 필요했다.

“약으로 치료할 단계는 이미 지났습니다. 당장 쓸개를 제거하지 않으면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환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두려움이 확실했지만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초조해진 보호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웠다.

“여보. 도대체 왜 고집을 부려요? 보는 선생님들마다 다 수술 안 하면 죽는다고 하시잖아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화까지 냈지만 환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지금이 그때보다 덜 아픈데 죽긴 왜 죽어? 또 한 번 그런 일이 생기면 병이 아니라 수술 때문에 죽는 거야.”

덜 아플 리가 없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과 표정만 보아도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빤했다. 참는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환자 분. 내과 선생님에게 들으셨죠? 약으로는 도저히 치료될 상황이 아니에요. 수술 후에 통증은 충분히 조절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아예 귀를 닫고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 두려움이 큰 환자는 처음 보았다.

‘도대체 얼마나 고생을 했기에 이러지?’

갑갑한 눈으로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양해를 구하고 허리에 난 수술 상처를 살폈다. 숱하게 보아온 수술 자국인데 얼마나 험악한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눈에도 고생을 보통 한 것이 아니었다.

답답한 일이었다.

‘후우! 이걸 어떻게 한다.’

그 때 이혁원이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통증이 문제라면 라파로로 하면 되지 않나요? 그래서 준비까지 이미 하셨잖아요.”

“라파로?”

생각을 안 했을 리 없다.

병명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복강경이었다. 하지만 복부 CT를 보는 순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복강경으로 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내가 너무 빨리 판단했나?’

“CT 다시 한 번 보자.”

김지훈이 팔짱을 낀 채 눈가만 찡그렸다.

역시 어렵다.

아무리 보아도 어려웠다.

담낭 안이 온통 고름뿐이다.

담낭 벽이 너무 붓고 약해져 있어 조금만 실수해도 박리하는 도중 찢어질 수 있었다. 가장 위험한 구조물인 동맥과 담낭관을 묶는 과정은 생각만으로도 긴장될 지경이었다.

‘이 정도까지 예상하고 준비한 것은 아닌데.’

복강경을 이용한 담도 내 담석과 담낭농증을 논문 주제로 삼았다. 상당한 난이도와 위험성 때문에 흔히 시행되는 수술이 아니었지만 도전할 가치는 충분했다.

일차적인 문제는 병의 경중에 따른 수술 난이도였다.

굳이 상중하로 나눈다면 중 정도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이 환자는 그 이상이었고 전통적인 수술 방법인 튜브만 삽입하고 끝내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스승님은 이런 경우 어떤 선택을 하실까? 튜브만 넣는다고 해도 절개 창을 작게 열 수는 없고 통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라파로 뿐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보면 답은 빤했다.

세상에 100% 해낼 수 있는 수술은 없다. 일반적인 담낭 절제술도 복강경을 권유할 때 반드시 개복의 가능성을 함께 설명한다.

지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문득 지나치게 겁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라파로로 시도하고 안 되면 개복을 하자.”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문제와 동시에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사실이었다. 보호자에겐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상황이지만 환자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환자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결정만 된다면 스승의 도움이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 전에 어떻게든 수술을 해야 한다.

먼저 보호자를 만나 수술 방법과 위험성을 설명했다.

“보호자 분. 수술은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담낭에 튜브만 박고 끝내는 겁니다. 최대한 적게 열지만 개복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수술 후 통증 때문에 환자 분과 의료진 간의 심각한 마찰이 발생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치료에도 도움이 되질 않겠죠.”

“다른 방법은요?”

“복강경으로 하는 겁니다. 1센티미터 정도의 구멍 세 개만 뚫고 하니까 우려하는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성공 가능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그럴 경우 앞서 말씀 드린 방법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는 극구 수술을 거부하는데 난데없이 수술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자 보호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수술만이 환자 분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때를 놓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 분에게는 복강경 수술만을 말씀드리고 설득했으면 합니다.”

“실패하면요?”

“어떤 일이 생기든 돌아가시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성공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고요.”

잠시 고민하던 보호자가 동의를 했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즉시 환자를 만나 복강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요만큼씩 세 군데만 상처가 난다는 말입니까?”

관심을 보이다니 조짐이 좋았다.

“맞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후 통증을 호소하시는 분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통증 때문에 그러시면 이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왜 말 안 했죠?”

훗날 복강경이 대중화된다면 모르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었다.

“개인 병원은 규모가 크다고 해도 복강경 수술을 도입하지 않은 병원이 굉장히 많습니다. 배를 여는 것보다는 비용도 제법 들고요.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렸으니까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만일 수술을 거부하시면 또 다른 병원으로 가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적인 어려움은 뺄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도 없는 엄포까지 놓았다.

환자가 눈가를 찡그리며 고민했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보호자와도 머리를 맞댔다. 때마침 복통이 다시 찾아왔는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결국 끝까지 주저하던 환자가 결정을 내렸다.

“복강경으로 해 주십시오. 그거 아니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코 줄과 소변 줄을 끼워야 하는데 그 정도는 참아주셔야 합니다.”

“그건 전에 있던 병원에서도 다 했던 겁니다.”

대수롭지 않은 투였다.

꽤나 고통스러운 일인데 희한한 일이었다.

역시 개복에 대한 공포가 문제였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할 수 있을까?’

환자의 긴장이 고스란히 김지훈에게 옮겨졌다.

어느새 7시가 다됐다.

바쁘게 준비를 하는 이혁원을 보던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부리나케 외래로 달렸다.

이전과는 수준이 다른 복강경 수술이다. 이준영 교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내심 함께 수술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방금 전에 퇴근하셨어요. 왜 그러세요?”

손만 흔들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가끔씩 퇴근할 때 들리곤 했는데 오늘은 아닌 모양이었다. 백 듀티가 아닌데다 무슨 일인지 전화 연락도 되지 않았다.

꼼짝없이 혼자 수술해야 할 판이었다.

곧 환자를 수술 방으로 올리라는 연락이 왔다.

“혹시 응급실에 오시면 엠파이에마 라파로로 한다고 말씀 좀 전해 줘요.”

신신당부를 하고 수술실로 향했다.

잠시 후 이준영 교수가 응급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간호사의 말을 듣고는 고개만 끄덕였다.

수술실이다.

환자를 옮긴 이혁원, 나종진과 강병옥이 긴장된 얼굴로 대기했다. 마취과 당직 치프가 담낭농증을 복강경으로 한다는 사실에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혁원아. 엠파이에마라면서 라파로로 한다고? 이준영 선생님도 가려서 하시는 수술 아니야?”

이혁원이 머뭇거렸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마취과 당직의 말대로 이준영 교수도 신중하게 복강경을 적용하는 질환이었다. 김지훈 역시 수술이 결정된 이후에도 고민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 말 때문에 결정하신 건 아니겠지만 너무 성급하게 말씀드렸나? 종진이 말대로 우린 선생님의 결정을 믿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걸까?’

그 때 김지훈이 들어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했다.

“마취과 선생. 빨리 시작하자.”

마취가 시작됐다.

환자가 의식을 잃자 김지훈이 묘한 콧소리를 냈다.

“오늘 수술 오래 걸릴 수 있으니까 감안해서 마취했으면 좋겠어. 당직 교수님께도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수술실이 조용해졌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준영 교수의 연락은 없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미리부터 겁먹거나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지금은 최선을 다해 수술에 임해야 한다.

어려운 수술이다.

실패했다고 우울할 이유도 없었고 성공했다고 자만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실력이 최우선이겠지만 조금의 운이 따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따라 줘야 성공할 것 같다. 스승님은 아직도 연락을 못 받으셨나?’

자신도 모르게 수술실 문을 바라보던 김지훈이 짧고 깊은 숨을 훅 내쉬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예. 시작하십시오.”

“메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 속으로 카메라가 삽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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