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때론 주변이 삶을 좌우하기도 한다. Ⅱ (2)
홍재순이 인사를 하고는 수술 방으로 들어갔다.
“지훈아. 우리가 대학 병원에 있어서 그렇지 로칼(local : 개인 병원 혹은 의원)은 살얼음판이야.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난리가 난다.”
김지훈도 모르진 않았지만 홍재순은 아버지가 개인 병원을 하기에 더욱 잘 알 것이다. 하필이면 항문 수술 후 발생한 합병증이었다. 어쩌면 같은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탓인지 이상하게 얼굴이 안 좋았다.
문득 최근 들어 김지훈도 놀랄 정도로 열심히 일한 홍재순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던 걸까?
어째 남의 같지 않을 것이다.
마취가 시작됐다.
항문 주변만 마취하는 척추 마취다.
옆으로 누워 새우 등을 만든 환자의 척추 사이로 길고 굵은 바늘이 들어갔다. 미리 국소마취를 했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 환자에게 이마저도 상당한 고통이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곧 안 아파지실 겁니다.”
잠시 마취가 되기를 기다린 후 자세를 잡았다.
한 방울 한 방울 환자의 몸속으로 수혈되는 피.
여전히 창백한 안색.
‘치질 수술하고 사람이 이렇게 될 수도 있네.’
낭패한 기색의 의사와 험악한 보호자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오직 환자에게만 집중해 출혈을 확실하게 잡아야 할 때였다.
환자의 다리 사이에 앉은 홍재순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조심스럽게 마취가 됐는지 확인했다. 힘을 잃은 괄약근 사이로 손가락 두 개가 쉽게 들어갔다.
홍재순이 손을 내밀었다.
“리트랙터(retractor : 수술 용 끌개).”
항문을 벌렸다.
핏덩이가 섞인 핏물이 주루룩 흘러나왔다.
“이혁원. 수술 부위 찢어진다. 절대 움직이지 마.”
이혁원이 바짝 긴장했다.
치질을 제거한 부위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 세척). 석션(suction : 흡입)”
커다란 스포이드로 항문 속을 씻어냈다.
홍재순이 물로 제거되지 않는 핏덩이를 살짝 살짝 손으로 제거했다. 더없이 신중하기만 했다. 김지훈 역시 석션 팁이 항문 속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했다.
생각보다 많은 피가 고였다.
한동안 세척을 한 끝에야 치질을 제거한 자리를 봉합한 실이 보였다. 지금도 출혈이 지속돼 모두 세 곳이란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거즈.”
거즈를 항문 속에 넣었다.
“왼쪽부터 확인하자.”
홍재순이 좌측에 넣은 거즈를 살짝 밀어냈다. 허리를 구부린 채 지켜보던 김지훈이 재빨리 새로운 거즈로 상처를 닦았다. 순간적으로 수술 부위가 드러났다 이내 벌건 피로 뒤덮였다.
“여긴 아닌 것 같지?”
“다시 한 번 확인하시죠.”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가뜩이나 좁은 부위를 재빨리 닦아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서두르다 기구로 다른 부위를 건드리면 자칫 출혈을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은근한 긴장으로 땀이 났다.
“여긴 확실히 아니야. 아래쪽 확인하자.”
항문에 넣었던 거즈를 새 거즈를 갈았다.
리크랙터를 다시 걸고 아래쪽을 확인했다.
어느 새 거즈를 적신 피가 아래쪽으로 흘러내렸다.
쉽지 않았다.
출혈인지 흘러들어 온 피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홍재순이 눈가를 찌푸렸다.
치질을 제거한 자리는 양측 점막을 당겨 봉합한다. 점막은 기본적으로 약한 조직이다. 출혈과 부종으로 더욱 약해진 탓에 석션의 압력만으로도 찢어질 수 있었다.
“지훈아. 거즈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석션할 수 있겠어?”
정말 신중한 손이 필요했다.
다른 방법도 없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거즈를 치우면 바로 석션 들어와. 봉합한 자리는 절대 건드리면 안 돼. 여기까지 찢어지면 더 이상 남아날 조직이 없을 것 같다. 혁원아. 절대 움직이지 마.”
홍재순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점점 긴장이 진해졌다.
거즈를 옆으로 밀었다.
“석션.”
동시에 김지훈이 석션기를 가져갔다.
찌이익!
흘러들어 오던 피가 석션기로 빨려들며 순간적으로 수술 부위가 보였다. 홍재순과 김지훈이 눈을 부릅뜨며 출혈을 확인했다.
“여기도 아니지?”
“그런 것 같습니다.”
바짝 긴장했던 김지훈이 빠르게 석션기를 빼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 점막을 건드리지 않았다. 항문 쪽 수술로 이렇게 땀이 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훨씬 어렵네.’
이제 남은 부위는 단 한 곳이다.
수술 중 엉뚱한 곳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출혈 부위가 확실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아니라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었다.
홍재순이 신중하게 수술 부위를 압박했다.
하얀 거즈가 검붉게 물들었다.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리던 홍재순이 손가락을 뗐다.
반드시 피가 나야 한다.
압박이 사라지자마자 피가 줄줄 흘렀다.
다행히도 출혈 부위가 맞았다.
홍재순과 김지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치질 덩어리를 제거한 자리 중 가장 깊숙한 곳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출혈량이 적지 않아 정확한 출혈 점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마치 뭔가가 강하게 밀고 나간 것처럼 수술 부위가 엉망이었다. 질긴 봉합한 실이 밀리며 주변 점막까지 마구 찢어발긴 것이다.
홍재순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이 정도 건드리면 통증 때문에 소변도 보기 힘들어 하는데 수술한 후에 변을 본 것 같다. 손상 정도로 봐서는 변이 상당히 딱딱했을 거야. 평소에 변비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은데 변을 보다니 희한하네.”
원인이 뭐가 됐든 문제는 출혈이다.
홍재순이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답답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홍재순이 헛기침을 했다.
찢어진 점막을 무리하게 봉합할 수는 없었다. 그대로 놔두고 자연적으로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이 도리어 추가 손상을 줄이는 방법이었다.
손을 대면 댈수록 결과가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정확한 출혈 지점을 찾아 원인이 되는 혈관만 묶고 빨리 끝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정을 내린 홍재순이 막 손을 내미는 순간 오상익 교수가 수술실로 들어왔다.
항문 쪽 수술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의사다.
안도의 기운이 감돌았다.
“홍 선생. 어때? 심각해?”
“예. 선생님. 한 번 보시죠.”
오상익 교수가 수술 부위를 보며 현재 상태와 어떻게 수술할 지에 대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순 눈가가 어두워졌다.
그 모습에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수술의 어려움과 위험성 때문이라고 여겼다.
“홍 선생 판단대로 진행해.”
“안 들어오십니까?”
“김 교수까지 있는데 내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어? 손상된 혈관을 찾는 것도 문제지만 타이가 정말 만만치 않을 거야.”
김지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평소 보지 못하는 수술이지만 다를 바는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상익 교수의 말을 듣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홍재순이 김지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부탁한다는 것 같았다.
“시작하자. 혁원아. 절대 움직이지 마.”
이혁원이 위아래로 리트랙터를 끌어 시야를 최대한 확보했다. 너덜거리는 점막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출혈 부위는 1센티미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항문 깊숙한 곳이다.
집도의와 퍼스트가 동시에 시야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부위였다. 함부로 끌어당길 수도 없다. 그 상황에서 손상된 혈관을 확인하고 확실하게 묶어야 하는 것이다.
‘후우! 항문 쪽 수술이 이렇게 어려웠나?’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홍재순이 신중하게 손을 가져갔다.
피가 주루룩 주루룩 흘러나왔다.
마치 심장 박동을 따라 출혈하는 것 같았다.
동맥일까?
홍재순이 신중하게 출혈 양상을 살폈다.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동맥은 아니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수술의 어려움이 달라지진 않는다. 항문 조직 속 깊이 숨어 있는 혈관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치질을 유발시킨 정맥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을 것이다. 그 중 한 곳만 손상 받았을 리가 없다. 더구나 심하게 확장돼 종이짝처럼 얇아진 정맥은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쉽게 찢어질 수 있다.
손상된 혈관을 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거즈. 석션.”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피는 가뜩이나 좁은 시야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어시스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했지만 어려움은 다르지 않았다.
환자의 자세 때문이었다.
집도의는 정면으로 수술 부위를 볼 수 있지만 퍼스트나 세컨은 다리를 가슴 앞에 두고 서야 한다. 수술 부위를 보기 위해서는 허리와 머리를 옆으로 거의 90도 가까이 기울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짧은 시간이라고 해도 무척 힘들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완전히 비틀린 자세로 리트랙터를 끌던 이혁원이 자신도 모르게 ‘끙’소리를 냈다.
“혁원아. 조금만 참아.”
피가 나오는 부분이 언뜻 언뜻 보인다. 그러나 정확한 지점을 확인하긴 힘들었다. 혈관을 잡으려던 홍재순이 쉽게 손을 뻗지 못했다. 손상되지 않는 혈관까지 잡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은 도울 수 없다.
항문 수술에 관한 한 홍재순의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다. 좁은 시야라도 온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집도의뿐이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홍재순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오상익 교수는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손을 바꾸는 것이 의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긴장이 가중된 상태에서는 무리한 조작이 나오기 십상이었다. 수차례 손을 내밀던 홍재순이 눈가를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거즈. 잠시 쉬자.”
한동안 출혈 부위를 압박하며 긴장을 완화시켰다.
손을 빼자 곧바로 피가 흘렀다.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압박을 해도 소용이 없네.’
답답하기만 한 순간이었다.
길게 숨을 내쉰 홍재순이 다시 시도를 했다.
멈칫 멈칫!
여전히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원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마치 펌핑(pumping)하는 것처럼 뿜어져 나오던 피가 일순 약해졌다.
홍재순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고 정확하게 첫 번째 출혈 부위를 잡았다.
“석션.”
주변에 고인 피를 제거했다.
피가 흐르는 속도가 둔화된 것 같았다.
“타이!”
실을 받아든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갔다.
홍재순이 최대한 옆으로 비키며 침을 꿀꺽 삼켰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세다.
혈관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다.
타이할 부분은 보이지도 않는다.
실이든 혈관이든 끊어지면 이후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악조건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김지훈이 아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접 타이를 했을 것이다.
가능한 한 편안한 자세를 만들었다.
손가락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약간의 저항이 느껴졌다.
연약하기만 한 혈관이 전하는 느낌일까?
조금씩 매듭을 밀었다.
느슨하기만 한 매듭이 꽉 조여졌다.
혈관을 묶었다면 응당 전해져야 할 느낌이 없다.
불안했다.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제와 돌이킬 수는 없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손을 뺐다.
홍재순이 직접 리트랙터를 잡고 타이한 부분을 살폈다. 눈가를 찡그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 김지훈이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거즈로 피를 닦았다.
이제야 제대로 보인 모양이었다.
눈가에 잡혔던 주름이 사라졌다.
“후우! 됐다. 컷(cut).”
첫 번째 타이를 무사히 해냈다.
흐르는 피가 줄었다.
출혈 부위를 확인하는 일은 확실히 수월해졌다. 그러나 타이의 어려움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홍재순의 손은 빨라졌지만 김지훈의 손은 더욱 느려졌다.
마치 처음 하는 타이처럼 어렵기만 했다.
“타이!”
김지훈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컷.”
신중함과 경험 이외에는 믿을 것이 없었다.
두 곳을 추가로 타이했다.
더 이상 출혈은 없었다. 손상된 조직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피가 다였다.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씻어내고 외부에서 할 수 있는 지혈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수고했어.”
홍재순의 말이 나오자마자 김지훈과 이혁원이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오상익 교수가 툭툭 등을 두드렸다.
“홍 선생. 잘했다. 김 교수. 이혁원. 수고했어.”
홍재순과 오상익 교수가 보호자를 만나러 나갔다. 수술 과정을 되새기던 김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항문 수술이 이렇게 어려울지는 몰랐다. 아직도 창백한 환자의 얼굴은 극도의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이혁원 역시 생각이 많은 눈치였다.
“혁원아. 역시 쉬운 수술은 없지?”
“예. 항문 쪽은 바이탈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타이할 때 어떠셨어요?”
“뭐가?”
“이런 경우에는 조금만 힘을 줘도 혈관이 쉽게 찢어지지 않나요?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으세요?”
“그런 방법이 있으면 나한테도 좀 알려줘. 집중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어이구! 어떻게 갈수록 타이는 어렵게만 느껴지는지 몰라”
이혁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후우! 김지훈 선생님도 타이가 어려울 때가 있으시네. 난 아직 멀었어. 어떤 수술이라고 해도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문득 요즘 들어 기구 연습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만큼 중요한 것이 없지만 그만큼 지나치기 쉬운 것 또한 기본이었다.
평생을 두고 잊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