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환자는 사소한 방심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1)
병동으로 올라가는 김지훈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외과의에게 가장 고민스러운 일 중 하나가 수술 후 발생하는 열이다. 대개는 전신마취와 인공호흡으로 인한 무기폐, 소변 줄을 낀 경우 발생하는 요로 감염 혹은 절개창의 염증이 원인이다.
모두 적절한 처치를 하면 무난하게 해결된다. 문제는 수술 부위가 원인이 돼 발생하는 열과 감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어렵고 복잡한 수술을 했을 때 더욱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하필이면 이병석 환자다.
“검사 나갔지?”
“예. 흉부 사진과 소변 및 혈액 검사 내보냈습니다.”
“드레인하고 상처는 괜찮아?”
“드레인은 괜찮은데 절개 창은 조금 불안한 구석이 있습니다. 고름이 잡힌 건 아니고요.”
“그래? 주말에 오프지?”
“예. 저랑 종진이가 다 오프라서 강병옥 선생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그동안 수시로 했으니까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셋 다 오프야. 드레인 잘 보라고 해.”
워낙 수술을 어렵게 한데다 집담회 때 받은 일종의 부담감 때문인지 불안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1년차들도 상처 치료쯤은 눈 감고도 할 때가 됐다. 더욱이 강병옥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이병석 환자를 찾았다.
수술 후 4일 밖에 안 돼 코 줄을 뺄 수는 없다. 위를 자르고 이은 이상 최소 일주일 정도는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이 불편할 것이다. 그래도 수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환자의 의지도 강해 운동하는 다리에 벌써 힘이 실리고 있었다.
“운동 열심히 하시네요. 힘들진 않으시고요?”
“괜찮습니다. 수술 잘 해 주셨는데 저도 노력해야죠. 그리고 우리 집사람 성화가 보통이 아니라서 눈치가 보여 앉아 있을 수가 없네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회복이 순조롭다는 의미였다.
“열이 좀 나시던데 불편한 데는 없으십니까?”
“특별하게 아픈 곳은 없습니다.”
혹시나 몰라 직접 절개 창과 드레인을 확인했다.
이혁원의 말대로 상처는 가벼운 염증으로 발갛게 변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드레인이 깨끗해 수술 부위의 문제로 열이 날만한 소지는 없어 보였다.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보호자가 쪼르르 쫓아 나왔다.
눈가에 불안한 기색이 걸려 있었다.
“선생님. 별 일 없겠죠?”
“가끔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열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나간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면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일단 지켜보겠습니다.”
공연한 불안감을 줄 이유는 없었다.
오후 회진 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퇴근을 했다.
“혁원아. 병옥이에게 얘기 했지?”
“예. 확실하게 말해 놨습니다.”
수술을 잘하면 치료도 그만큼 잘하는 법이다.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여러 일로 바깥바람 한번 변변히 쐬지 못했다.
모처럼 고경아와 함께 양수리로 날랐다.
두물머리를 찾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며 시원하게 펼쳐진 강물을 보며 쌓인 피로를 풀었다. 이럴 땐 길거리에서 파는 믹스 커피와 핫도그가 제격이다.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도 하고 도란도란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것 같은데 무언가가 자꾸만 신경을 긁었다.
공연한 불안까지 느껴졌다.
‘후우! 검사 결과는 괜찮은가? 아직도 열이 나나? 시간상 절개 창에 고름이 잡히는 게 가장 흔한 원인인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확인해야 편할 것 같았다.
“경아 씨. 전화 한 통화만 할 게요.”
“누구한테요?”
“병원에요.”
김지훈은 잔뜩 신경을 쓰고 있지만 당직 치프까지 지켜보아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강병옥을 찾았다.
- 아직 미열이 있습니다만 검사 결과는 괜찮고 드레인도 깨끗합니다. 환자도 특별한 불편을 호소하지는 않습니다. -
“절개 창도 괜찮지?”
- 예. 괜찮습니다. -
“알았다. 환자 잘 봐. 수고해.”
고경아가 눈가에 주름을 만들었다.
“누구에요? 혹시 강병옥 선생님 아니에요?”
“응? 그걸 어떻게 알았지?”
“목소리가 딱 강병옥 선생님이네요. 알아 볼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인데?”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요.”
“궁금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요. 말 안 하면 오늘 밤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누구 무서워하기나 할 것 같아요? 내 옆에 얼씬도 거리지 말아요.”
본전도 못 찾았다.
하긴 목마른 놈이 우물을 찾는 법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듣겠지만 남자는 빠르고 여자는 늦게 무르익는다는 사실도 깜빡했다.
김지훈이 싹싹 빌자 고경아가 새침을 떨었다.
“다른 건 아니고 송진우 선생님도 잘 하시지만 1년차 선생님들 중에 제일 돋보이잖아요. 아무래도 눈이 한 번 더 가지 않겠어요? 잘난 게 다는 아니지만······.”
“그게 다에요? 나도 놀랄 정도로 수술을 잘하긴 해. 1년차면 모자란 게 많이 보여야 태우는 재미도 있는데 그럴 구석이 별로 없네.”
뒷말이 개운치 못했지만 말꼬리를 워낙 흐려 김지훈도 그냥 지나쳤다. 더구나 모처럼 추억의 장소까지 왔다. 불안하다고 해야 할 것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매운탕에 소주 한 잔 간단하게 걸쳤다.
달빛에 반짝거리는 강 물결을 보며 사랑을 속삭였다.
손도 잡고 눈빛도 교환하고 입술도 마주쳤다.
고경아는 김지훈의 불안마저 잠재웠다.
불타는 밤이었을까?
이유야 어찌됐든 목, 금, 토 내리 달리면 인간이 아니라 무쇠다. 다만 한잠 잘 자면 새벽에도 눈이 떠지는 법이다. 아직은 젊기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신호를 지나치지 않았다.
느지막이 일어난 김지훈이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옆에 천사가 자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단언컨대 세상에 행복한 일은 없다. 한동안 천사의 얼굴을 보던 김지훈이 슬그머니 휴대폰을 찾았다.
행복 속의 불안이었다.
- 열은 아직 안 떨어졌습니다. 드레인은 괜찮습니다. -
계속되는 전화에 강병옥도 신경이 쓰이겠지만 김지훈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다른 환자라면 그나마 신경을 덜 쓸 수 있지만 이병석 환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전공의 때보다 더 불안하네. 어휴! 양수리까지 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계속 전화했다가는 욕먹겠다. 우리 후배들을 믿고 맡기자.’
문제가 발생한 환자 혹은 그럴 소지가 다분한 환자가 있는 한 가슴을 졸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말이건 오프건 휴가건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당직이 있는 것이 아닌가?
1년차가 미숙하기에 2년차 그리고 3년차 치프도 당직을 선다. 전공의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연락이 올 것이다.
애써 불안감을 날려버린 김지훈이 고경아와 남은 시간을 즐겼다.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다음 일주일이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점심으로 택한 한정식이 이상하게 맛있다.
카르페 디엠!
일요일 밤 오프에서 돌아온 이혁원이 강병옥을 찾았다. 응급실은 한산한데 뭐하고 있는지 몰라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나종진도 돌아와 함께 회진을 돌았다.
마지막으로 이병석 환자를 보았다.
환자의 얼굴이 다소 창백했다.
깜짝 놀란 이혁원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환자 분. 어디가 불편하시죠?”
“저녁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춥고 떨리네요.”
“그래요? 당직 선생들에게 말씀은 하셨나요?”
“예. 치료하러 오신 선생님에게 말은 했는데 그때는 심하지 않았습니다. 별 일 아니죠?”
즉시 체온을 쟀다.
39도에 가까운 고열이었다.
어딘가 발생한 염증이 심해졌다는 말이었다. 수술 후 지난 시간을 따져볼 때 창상 감염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드레싱부터 확인했다.
드레인은 깨끗했다. 그런데 복부에 난 절개 창을 확인하던 이혁원이 눈가를 찌푸렸다. 나종진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종진아. 압세스(abscess : 농양)지?”
“불안하더니 여기가 문제였네.”
‘오더만 내려도 될 일을 일부러 부탁까지 했는데 드레싱하면서 뭐 본 거야? 1년차 후반이면 발견하고도 남아야 되는 거 아냐?’
얼굴을 굳힌 이혁원이 조심스럽게 상처를 살폈다.
수술 후 5일 정도면 상처가 제법 단단하게 붙기 시작한다. 하지만 염증이 생겨 고름이 잡히면 그 부분은 말랑말랑하게 만져진다. 당연히 피부도 성기게 붙는다.
포셉으로 살살 상처를 벌리던 이혁원이 약해진 곳을 찾았다. 살짝 힘을 주자 상처가 툭 벌어졌다. 노란 고름이 흘러나오며 살짝 역겨운 냄새가 퍼졌다.
열이 나는 원인을 찾았다.
불과 이틀도 안 되서 고름이 생겼다. 발갛게 부어올랐을 때 이미 미세하게 고름이 잡혔던 모양이었다. 제법 진행이 빨랐지만 배 속의 문제가 아닌데다 조기에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환자 분. 상처에 염증이 생겼습니다. 이것 때문에 열이 난 것 같습니다. 치료하면 곧 좋아질 겁니다. 일단 상처를 벌려 놓고 염증이 빠지면 그때 다시 봉합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밥을 풀고 절개 창을 벌렸다.
무식하게 보일 정도로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낸 후 소독약을 적신 거즈를 상처에 박았다. 특별한 처치가 필요하진 않았다. 자주 소독하고 그때마다 깨끗한 거즈로 갈아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병석 환자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치료할 때 꽤 아팠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사과를 한 이혁원이 의국으로 돌아와 강병옥을 찾았다. 잠시 후 의국으로 들러오던 강병옥이 입술에 침을 축였다.
이혁원과 나종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절개 창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잡힌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일반외과 수술 특성상 불가피한 면이 강했고 감염도 그리 드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김지훈이 유독 신경을 쓰는 환자였다.
1년차 후반이기에 실력이나 경험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예외적이라고 할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되긴 했지만 오후 드레싱을 할 때는 발견하고도 남아야 했다.
결국 부주의 혹은 무성의가 원인이라는 말이었다. 더구나 오프를 가기 전 오더만 내려도 되는 일을 두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강병옥 선생님. 오더대로 이병석 환자 오후 드레싱 선생님이 직접 하셨죠?”
목소리가 나직하게 깔렸다.
“왜 그러십니까?”
“상처에 고름이 잡혔는데 그걸 몰랐어요?”
‘고름이 잡혔다고? 점심 때까지도 괜찮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그깟 드레싱 때문에 정말 별 일이 다 일어나네. 괜히 독박 쓰는 거 아냐?’
고개를 갸웃거리던 강병옥이 돌연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사실 마지막 드레싱은 송진우에게 맡겼다. 점심 때 시행한 두 번째 드레싱 때는 절개 창에 소독약만 바르고 만져보지 않았다. 아침까지 괜찮았다는 방심으로 인한 부주의와 태만이었다.
‘2년차들이 나한테 직접 부탁을 했고 김지훈 선생님이 전화까지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전번에도 드레싱 때문에 난리를 쳤는데 진우가 했다고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솔직하게 말하고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강병옥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김지훈만큼 환자에 대해 엄격한 사람도 없다. 더구나 전적이 한 번 있기에 눈 딱 감고 자신이 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몰랐다. 2년차들은 아직 누가 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고 송진우의 입이야 막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드레싱을 하고도 발견을 못했다면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될 수도 있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이런 일이 쌓이면 훗날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진우 이 새끼는 상처 하나 못 보나? 에이! 이런 문제는 머리 돌려봐야 복잡해지기만 해.’
결론을 내렸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유리했다.
실수나 무성의보다는 차라리 오더를 어겼다고 인정하는 것이 뒤탈이 적을 것이다. 이혁원이 이준영 교수의 아들이란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야 전공의였다.
무조건 교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
김지훈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더 좋게 볼 것이다.
강병옥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좀 겹쳐서 진우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물론 점심에 했을 때도 분명히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혁원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강병옥을 보았다.
나종진 역시 눈만 멀뚱거렸다.
하루에 두 번이 기본인 드레싱을 점심때도 했다는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무섭고 어려운 사람이 바로 윗년차다.
그걸 떠나서 부탁까지 했는데 버젓이 오더를 어기다니 기가 찰 일이었다. 예전이었으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집합 소리가 떨어졌을 것이다.
‘후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2년차들의 눈빛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