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18화 (618/1,329)

6화. 의사의 마음은 아무리 불안해도 좋다. (1)

이혁원의 손은 마치 스승의 손을 보는 것 같았다. 강병옥의 자신감은 여전했고 들은 것 이상으로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에 밟히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솔직한 느낌이었다.

‘이런 후배들을 믿지 못한 누굴 믿을 수 있을까? 이렇게만 해 나가면 누구보다도 훌륭한 써전이 될 수 있을 거야.’

문득 이혁민 교수가 생각났다.

수술 중 혹은 지금쯤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했지만 얼굴 한번 비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도리어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드디어 수술이 모두 끝났다.

방심하지 않고 마무리까지 잘 끝냈다.

십이지장을 건드렸다. 어쩌면 수술 후 정말 우려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안은 의사들의 몫이다. 그래서 더욱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지도 몰랐다.

이병석 환자가 최선의 결과를 얻길 바랐다. 눈물이 마를 틈이 없었던 보호자의 웃는 얼굴을 반드시 보고 싶었다. 그럴 것이라 믿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

너무 기분이 좋은 탓일까?

“이혁원. 강병옥. 수고했어. 아직 눈에 보이는 건 많지만 어쨌든 마음에 든다.”

평소 하지 않았던 말까지 나왔다.

강병옥의 입이 찢어졌다.

김지훈이 힐끗 시선으로 주고는 곧바로 보호자를 만났다.

위의 삼분의 이를 자르는 수술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불안과 초조에 휩싸여 발을 동동 구르던 보호자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김지훈을 보면서도 안절부절 못했다.

입도 벙긋거리지 못하고 김지훈의 말만 기다렸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부분 절제에 성공했습니다.”

보호자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생님!”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눈물이 맺혔다.

작은 주먹만 꼭 쥔 채 울먹이기만 했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눈물과 울음 속에 담긴 마음만으로도 더 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수술 내내 가슴 깊은 곳에서 떠나지 않았던 불안과 초조함 그리고 긴장이 헛되지 않았다.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부분 절제술을 해냈다는 사실이 이제야 피부로 와 닿았다.

환자를 찾았다.

강병옥은 오더를 내고 있었고 이혁원은 조용히 환자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었다. 조금은 혼미한 정신과 수술 후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던 환자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말 못할 기쁨이자 감동이었다.

마치 수술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신기동 교수의 혈관 수술을 들어갔다. 그동안 허경발 원장의 치료 때문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었다. 힐끗 눈길 한 번 주고는 수술을 진행하던 신기동 교수가 툭 한 마디 던졌다.

“부분 절제술 했다며?”

“예. 현수 덕에 할 수 있었습니다.”

“신현수? 상황을 생각하면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러네. 다음 수술 제대로 준비 해. 내 말 잊진 않았겠지?”

혈관 수술을 받았다.

이미 여러 차례 한 수술이었지만 언제나 긴장이 됐다. 날카로운 비수도 무서웠지만 환자가 얼마나 어려운 존재인지 점점 확연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원칙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신기동 교수는 콧소리만 냈고 간만에 김지훈의 손을 본 나종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왠지 뒤통수가 따가워졌지만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김지훈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날 오후 회진을 올라온 교수들이 김지훈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과장. 부분 절제술이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확실하게 자르는 게 더 안전하고 쉽다고 했잖아. 아까 슬쩍 보는 것 같던데 어땠어? 괜찮았어?”

“제가 그랬나요? 그냥 지나가다 얼핏 본 것뿐입니다.”

“딴청은. 다 봤어. 이 사람아. 지훈이나 경석이나 참 잘 뽑았어. 우리 경석이도 오늘 상당히 어려운 수술 하나 제대로 해냈거든. 나도 하기 힘든 수술인데 기분이 너무 좋아. 너무.”

이준영 교수의 입이 씰룩거렸다.

“이 교수. 좋으면 좋다고 해. 신 교수. 자기도 혈관 수술까지 주면서 뭘 그렇게 얼굴을 굳히고 있어. 지훈이도 이제 교수야. 교수. 좀 웃자. 웃어.”

헛기침을 하며 바닥을 보던 신기동 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뽑은 것 같긴 합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현수 덕이라고 하는데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현수 덕? 아! 3센티미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네. 허허! 그래서 난 지훈이 저 놈이 좋아. 우리 경석이랑 둘 다 아주 진국이야. 진국.”

누구 한 명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김지훈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수술을 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에 못지않게 노력하는 이경석도 단단한 신뢰를 얻고 있었다.

전공의들이 회진 준비를 마쳤다.

막 병실로 향하려는 찰나 김지훈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는 이준영 교수, 이혁민 교수, 신기동 교수를 보며 잠깐 머뭇거렸다. 이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이준영 교수의 뒤를 따랐다.

“현수 이 노마는 언제 오는 거야.”

“이 과장. 일석이는 더 멀었어.”

입맛 다시는 소리만 들렸다.

오늘도 가장 늦게 오후 회진을 끝낸 김지훈이 퇴근하려다 말고 이혁원을 보았다.

“아 참! 드레싱은 어떻게 된 거야?”

이혁원과 나종진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왜 드레싱을 대신 했는지 듣긴 들었다. 일이 몰릴 때는 누구나 한 번 쯤은 윗 년차 모르게 드레싱을 맡길 수 있다. 그것도 가장 간단한 아뻬 드레싱이었다.

그런데 송진우의 눈치가 이상했다.

얼굴이 벌게지는 것으로 보아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다시 물어보아도 강병옥과 송진우는 절대 이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일단 구두 경고를 하고 지나쳤는데 김지훈이 잊지 않고 물은 것이다.

1년차 교육은 엄연히 전공의들의 몫이었다. 정말 큰 일이 아니면 펠로우인 김지훈까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혼내지는 않겠지만 기본을 강조하는 김지훈이기에 1년차들에게 좋을 일도 없었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맡겨달라는 말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선생님. 그게······.”

이혁원도 거짓말이 얼굴에 나타나는 타입이었다.

나종진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만 긁고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뭐가 더 있나?’

“정말 그것뿐이지?”

이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 순간 하필이면 강병옥과 송진우가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돌아간 김지훈의 시선이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혁원이 인상을 쓰며 눈짓을 했다.

멍한 얼굴로 이혁원을 보던 강병옥이 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 웬만한 일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낯빛이 꺼메졌다.

‘어휴! 그깟 드레싱 하나 대신 시켰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김지훈 선생님에게 얘기를 하냐. 2년차면 저번에 말한 걸로 끝내야 하는 거 아냐?’

강병옥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송진우의 얼굴은 시뻘게졌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긴 말은 필요 없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깊게 반성하는 후배들을 혼낼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김지훈의 환자는 이혁원이나 나종진이 드레싱을 하기 때문에 1년차가 드레싱하는 모습을 볼 기회도 없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환자에게 관련된 일은 철저하게 하자. 드레싱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환자 파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잊지 마.”

한 마디 말과 서늘한 시선만으로도 충분했다.

“혁원아. 종진아. 다시 이런 일 없게 하자.”

김지훈은 정말 처음일 것이라 믿었다.

송진우의 표정이 이상하긴 했지만 조그만 일로도 얼굴이 시뻘게지니 그럴 만도 했다. 강병옥의 굳은 표정은 깊은 반성이라고 여겼다.

윗 년차들에 이어 김지훈에게 또 한 번 단단히 경고를 먹은 강병옥이 고개를 흔들었다.

‘김지훈 선생님 성격 상 핑계 대야 혼만 더 나지. 그건 잘 한 것 같은데. 에이! 눈치 없는 새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지훈 선생님한테 그걸 들켜? 그래가지고 성공하겠냐?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만회하지? 허경발 원장님 일로 점수 딴 거 다 잃었겠네.’

강병옥이 송진우를 째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형, 이번에는 잘 넘어갔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솔직히 나도 힘들어요.”

“겨우 한 달에 두세 번 드레싱 맡겼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알았어. 인마. 나 때문에 혼나서 미안하다.”

송진우가 입을 열려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킨 놈과 일한 놈의 기억은 다른 모양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이 아니라 심할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이었다. 대부분 다른 과 병동에 있는 환자들을 치료했기 때문에 들키지 않았을 뿐이었다. 똑같이 일을 해야 하는 송진우에게는 더 힘든 일이었다.

‘미안하다고 하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어쨌든 다신 부탁하지 않겠지? 나도 잘못한 게 분명한데 김지훈 선생님을 어떻게 보지?’

같은 일을 두고 1년차들이 고민이 각각이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자리가 잡히는 모양이었다.

완만하게 증가하는 외래 환자에 수술도 연이어졌다.

이젠 복강경 수술에서도 퍼스트를 서겐 된 이혁원이 만세를 불렀다. 김지훈과 함께 신기동 교수 수술을 들어가야 하는 나종진 역시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종진아. 어땠어?”

“혈관 수술도 점점 재밌어진다. 신기동 선생님 칼날만 빼고는 바랄 게 없어. 라파로 퍼스트는 어때?”

“김지훈 선생님 수술 보고 있으면 나도 하고 싶어 죽겠어. 이준영 선생님 수술하고는 느낌이 또 달라. 참! 종진아. 수술 방에서 폐기할 라파로 기구 가져왔어. 심심하면 말해. 빌려줄게.”

‘이준영 선생님? 자식!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다니 우리 병원 홍길동이구나.’

나종진이 희죽 웃었다.

“따르륵 선생님 한번 돼보자고?”

감히 김지훈의 왕년 별명을 함부로 내뱉다니 2년차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잡담도 여기까지다.

오늘은 김지훈이 당직인 목요일이다.

밤을 아예 하얗게 불태웠다.

그동안 당직을 서지 않았던 대가를 치르는지 유난히도 환자가 많았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혀를 빼물었다. 하루 밤 사이에 김지훈 휘하 2년차 두 명의 몰골이 가관이 아니었다. 강병옥과 송진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건 아예 백 일 당직이야!

김지훈에게는 뿌듯함이었다.

펠로우가 전공의보다 힘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당직 때는 상당히 버거웠지만 그때를 빼고는 제법 여유를 갖고 매사에 임했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수술만큼이나 환자의 회복에도 신경을 써야 했고 특히 이병석 환자에게 집중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연결 부위가 새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배 속에 박힌 드레인을 따라 나오는 삼출물의 양상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환자 분. 코 줄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수술 부위가 제대로 붙으려면 위 속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일주일은 유지하셔야 됩니다. 이혁원 선생. 드레인은 어때? 괜찮아?”

김지훈이 대답도 하기 전에 드레인이 박힌 환자의 옆구리에 코를 박았다. 전공의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다분히 습관적인 일처럼 보였다.

킁킁!

소리까지 내가며 드레인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어때?”

이혁원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직접 치료를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종진이가 했어?”

“아니요. 강병옥 선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드레싱하고 난 거즈만 확인했는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냄새도 정상적입니다.”

“그래? 자기 파트 드레싱도 하기 힘들 텐데 우리 환자까지 치료를 해. 힘도 좋네.”

“안 그래도 그럴 필요 없다고 얘기했는데 이 환자 분만은 직접 치료를 하고 싶답니다. 수술 들어왔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대견했다. 환자를 위해 그 정도로 마음을 졸인다면 지난 일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노력에는 보답을 해 주는 것이 도리다.

마침 금요일 오전에 아뻬 두 개가 떴다.

이경석은 외래 환자를 보느라 바빴고 홍재순은 수술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김지훈 앞으로 수술 두 건이 뜬 것이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나종진과 강병옥에게 수술을 주었다.

이혁원이 어깨가 축 처졌다.

‘혁원아. 수술을 너만 줄 수는 없잖아.’

나종진, 열심히 한 티가 팍팍 났다.

“종진아. 동맥 처리할 때 보다 확실하게 해. 그래야 더 큰 수술을 제대로 하지. 아뻬라고 만만하게 보지 말고.”

강병옥, 놀랍다.

1년차의 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들리는 말 이상이었다.

정말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 정말 욕심나네. 이 상태로 열심히만 하면 나도 추월당하겠다. 대단해.’

태워야 할까?

칭찬해야 할까?

긴 고민 끝에 악수(惡手) 나온다고 했다.

느낀 대로 본 대로 말할 일이었다.

시간을 쪼개 드레싱을 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강병옥. 1년차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잘했어. 물론 2년차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건 알지? 종진이 수술하는 거 봤잖아. 아뻬도 어려운 경우에 걸리면 하루 종일 헤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 그리고 환자에 대한 마음도 항상 간직해.”

얼굴을 굳힌 채 듣고 있던 강병옥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김지훈이 나가자 힘차게 주먹을 치켜 올리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됐어. 만회하고도 남아. 그래. 실력이 우선이야.’

마지막 말을 흘려들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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