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특별한 환자. Ⅱ (2)
나종진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얼마나 다급한지 숨을 헐떡거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수술실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김진호 교수가 눈을 찡그리며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종진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김지훈을 보았다.
이런 행동을 할 나종진이 아니었다.
화가 나더라도 이유는 듣고 혼을 내야 할 것이다.
“나종진. 무슨 일이야?”
살벌한 김지훈의 목소리에도 나종진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방금 전에 신현수 선생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뭐? 뭐라고 그래?”
“3센티미터까지 안전하다는 논문이 발표됐다고 하셨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늦게 연락해 미안하다시며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한숨 소리가 터졌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자 기쁨이었다.
김지훈도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어후! 자식, 빨리빨리 좀 전화하지.”
마치 허탈한 듯 피식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리던 김지훈이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보호자의 숨죽인 울음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희소식이긴 했다. 하지만 3센티미터라면 유문만 간신히 살릴 수 있는 간격이었다.
수술의 어려움이 뇌리를 스쳤다.
이미 예측했던 문제였지만 차라리 삼분의 이를 절제하는 것이 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할 수 있을까? 부분 절제를 실패하면 결국 삼분의 이를 잘라야 한다는 말인데 시간만 잡아먹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수술 후에 안심하고 볼 수 있을까?’
온갖 걱정과 불안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김지훈의 굳은 얼굴에 함께 수술 방법을 고민했던 이혁원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선생님. 3센티미터라고 해도 유문만 간신히 남길 수 있는 정도인데 시도하실 겁니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반문해 보았다.
비록 2년차지만 이혁원은 믿을 수 있는 전공의였다. 문제는 김지훈 자신이었다. 이보다 어렵다면 훨씬 더 어려울 간을 침범한 담낭암 수술까지 했다.
스스로를 믿고 시도해야 했다.
“유문과 연결된 위를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잖아. 시도하자. 종진아. 보호자 만나서 부분 절제술 시도한다고 말씀드려. 김진호 선생님.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나직했다.
1센티미터도 남지 않는 유문과 연결된 위 조직.
절대 손상을 주면 안 되는 십이지장.
절대 압력이 가해지면 안 되는 연결 부위.
단 한 바늘도 삐끗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혁원아. 시작하자.”
수술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암 주변만 도려내도 절제 길이가 6센티미터다. 연결 부위에 압력이 가해지지 않으려면 상부 쪽의 위를 6센티미터 이상 십이지장 쪽으로 당겨야만 한다.
먼저 위를 단단하게 잡고 있는 구조물들을 박리해 여유를 확보해야 했다. 결코 늘어나지 않는 혈관을 포함해서 말이다. 만일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혈관 손상을 주거나 과도한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결과는 치명적이다.
김지훈이 신중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켈리.”
위와 간 그리고 비장을 연결하고 있는 구조물들을 조심스럽게 박리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혈관에 손상을 입히면 끝장이었다.
따르륵! 따르륵!
서서히 구조물들이 본래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왔다.
매 순간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조심스럽기만 한 박리가 진행됐다.
위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조금씩 여유가 생겼지만 부족했다.
“비장 쪽 조금만 더 박리하자.”
이혁원이 바짝 긴장했다.
타이를 할 때 과도한 힘을 주거나 조금만 방향이 어긋나도 비장 손상을 입힐 수 있다. 자칫 비장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위를 절제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구를 조작하는 김지훈과 타이를 하는 이혁원의 이마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예정 부위의 박리가 모두 끝났다.
이혁원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타이하다 비장 찢어질까 봐 숨도 못 쉬었네. 중압감이 이 정도로 심할 줄 몰랐어.’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혁원아. 집중하자.”
흠칫 놀란 이혁원이 수술 부위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박리가 충분히 됐을까?
위 전체를 조금씩 끌어내렸다.
잘라야 할 부분이 유문에 여유 있게 닿아야 한다.
서서히 두 부분이 가까워졌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리며 이를 악물었다.
이혁원도 고개를 흔들며 김지훈을 보았다.
부족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위는 유문과 맞닿지 않았다.
더 이상 박리할 구조물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선택은 두 가지다.
포기하고 삼분의 이를 자른다.
아니면 결코 건드리고 싶지 않은 십이지장을 박리해 부분 절제를 해내는 것이다. 손상 없이 충분한 길이를 박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경험은 전공의 때 췌장암 수술에서 십이지장을 제거하는 것을 본 것이 다였다. 마치 동맥처럼 위험한 장기이기에 노련한 외과의조차 최대한 조작을 피하는 장기였다.
김지훈이 심각한 갈등에 휩싸였다.
너무 위험해 회피하고 싶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만일 환자가 허경발 원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답은 명확했다.
특별하지 않은 환자는 없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것이 환자에게 유리하다면 최선을 다해 수술해야 한다. 수술 중 혹은 후에 감당해야 하는 불안과 부담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실력을 믿을 수 있을까?’
실력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또한 누구나 처음 하는 수술이 있다.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더 이상 발전은 없을 것이다. 조용히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던 김지훈이 결정을 내렸다.
“십이지장 박리하자.”
집도의의 결정이었다.
이혁원이 훅 숨을 내뱉으며 바짝 긴장했다.
“켈리.”
가장 위험한 박리가 시작됐다.
후복막에 묻혀있는 십이지장은 상대적으로 연약했다. 조금씩 깊게 파내려 갈수록 긴장은 극에 달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따르륵! 따르륵!
“타이.”
이혁원은 눈도 깜박거리지 못했다.
오직 손으로 전해지는 실의 감촉에만 집중했다.
“타이. 당겨지지 않게 조심해.”
한 방울의 피에도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단 1밀리미터라도 찢어진다면 수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었다.
집도의와 퍼스트에겐 그야말로 사투였다.
마침내 유문과 연결된 십이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부 쪽으로 유문을 당겼다.
여전히 모자랐다.
김지훈과 이혁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후복막 깊은 곳에 위치한 십이지장을 조금 더 박리할 수밖에 없었다. 살얼음판을 지나는 것처럼 극도의 신중함을 기해야 했다.
수술 팀 전체가 팽팽한 긴장에 휩싸였다.
이마에 맺힌 땀이 언제 떨어질지 몰랐다. 수시로 땀을 닦아주는 마취과 간호사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자칫 집도의나 퍼스트의 몸을 건드리면 큰 실수를 유발시킬 수도 있었다.
기구를 조작하는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타이를 하는 이혁원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제는 정말 연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했다.
조심스럽게 유문을 당겼다.
절단해야 하는 부분의 위를 끌어 내렸다.
‘더 이상 박리할 수는 없어. 당겨지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면 안 된다. 이번에는!’
두 부분이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졌다.
마침내 잘라야 할 부분의 상부와 하부가 맞닿았다.
이혁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강병옥은 눈가를 찌푸린 채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연결할 수 있을까?
두 눈을 살짝 감고 위와 유문에서 전해지는 압력을 가늠해 본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도 되겠어.”
사방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수술을 계속 진행하기에는 과도한 긴장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 5분 간 휴식을 취하며 뻣뻣해진 목과 어깨를 풀었다.
‘이제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마취과. 수술 진행합니다.”
다시 긴장이 솟구쳤다.
병변을 중심으로 위를 잘랐다.
지혈을 하고 신중하게 위아래 절단면을 당겼다. 눈대중으로는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부족할 지도 몰랐다. 조금씩 가까워지던 양측 절단면이 붙었다.
위아래에서 잡아당기는 압력이 거의 느껴지질 않았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 남았다.
유문 쪽에 남은 위 조직이 너무 적었다.
어쩌면 지금이 더 어려울 지도 모른다.
눈빛을 굳히며 긴장을 끌어올린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니들 홀더(Needle holder).”
연결이 시작됐다.
상부 쪽은 상대적으로 넉넉하게 떠도 됐지만 유문 쪽에 남은 위는 1센티미터에 훨씬 못 미쳤다. 포셉으로 잡으면 바늘을 찔러야 할 자리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점막이 연결되지 않으면 100퍼센트 터진다.
한 바늘씩 진행시켰다.
점막이 십이지장 쪽으로 자꾸만 끌려 들어갔다.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자칫 놓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다가왔다.
“마취과. 무영등 초점 맞춰 주세요.”
연결 부위가 좁아질수록 수처도 점점 힘들어졌다. 그렇게 많이 해 온 수처였건만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이혁원도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타이에 능숙해질 때도 됐지만 지금 이 순간 수처만큼 중요한 것이 타이였다. 실수 하나로 지금까지의 모든 수고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이혁원의 과도한 긴장이 전해졌다. 김지훈 역시 긴장을 하고 있었지만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집도의로서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지금처럼만 해. 잘하고 있어.”
더 이상의 도움은 필요치 않았다.
선배들처럼 스스로 극복해 낼 것이다.
한 바늘의 수처와 한 번의 타이가 반복됐다.
이혁원에게는 마치 하루처럼 긴 시간이었다.
마지막 바늘이 남았다.
점막이 가장 빠지기 쉬운 부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수처를 한 김지훈이 이혁원의 타이를 지켜보았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끝까지 실수하지 않고 잘해냈다.
이로써 절단면이 모두 봉합됐다.
깔끔했다.
연결 부위에 가해지는 압력도 적절했다.
순간 힘이 쫙 풀렸다.
이혁원도 길게 숨을 내쉬며 마른 침을 삼켰다.
연결된 위와 박리된 부분까지 최종 점검을 했다.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혁원의 퍼스트는 훌륭했고 강병옥 또한 세컨으로서의 제 몫을 해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겠지?”
이혁원이 조용히 다음 과정을 기다렸다.
아직은 자신의 판단을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닫자.”
드레인을 넣고 복부 봉합을 시작하려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이혁원도 곧 3년차가 된다. 3년차 치프가 되면 교수들 파트만 전담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자신의 파트까지 맡아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혁원이도 그렇고 종진이도 이젠 조금 더 많은 걸 맡을 때가 됐어. 지금 확실하게 만들어 놔야 선생님들께도 인정을 받겠지.’
“혁원아. 병옥이랑 마무리 해.”
이혁원이 눈을 크게 떴다.
마무리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느낌이 달랐다. 김지훈의 눈빛과 목소리는 분명하게 전과 다름을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 수술은 네가 마무리 해.’
훅 숨을 내뱉은 이혁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강병옥 선생님. 준비하세요.”
잘한다.
그동안 열심히 해온 것이 눈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