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특별한 환자. Ⅱ (1)
병동으로 돌아가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현수, 이 자식은 도움이 안 돼요. 이혁민 선생님 파트까지 맡고 있는데 아무리 일이 있어도 내 전화 정도는 받아야 하는 거 아냐? 나쁜 놈. 오기만 해 봐라. 후우!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수술 방법에 따라 환자의 삶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겠지만 이상하리만치 이병석 환자가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인턴을 닦달해 논문을 있는 대로 찾고 이혁원과 머리를 맞대도 해결책은 보이질 않았다. 다음 주 화요일에 수술을 하기로 했는데 답답하기만 한 노릇이었다. 그나마 허경발 원장이 무척 순조로운 회복을 보여 다행이었다.
“혁원아. 연세가 있으시니까 마음 놓지 말고 잘 봐. 특히 밤에 주의하고. 회진 돌자.”
여느 때처럼 마지막으로 허경발 원장의 병실을 찾았다. 그런데 강병옥이 막 나오고 있었다. 외과 병동에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내과 환자다.
더구나 허경발 원장은 김지훈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젠 킵보다 안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3년차들조차 병실 출입을 조심하는데 다소 의외였다.
“강병옥,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불편하신 점이 있으신지 몰라서 잠깐 들렸습니다. 상태가 굉장히 좋으신 것 같습니다.”
전공의들에게 허경발 원장처럼 어려운 사람도 없다.
1년차의 패기일까?
목소리에 힘까지 팍팍 들어가 있었다.
어쨌든 피곤에 찌든 상황에서도 신경을 쓰다니 고마운 일이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데다 뛰어나다는 소리까지 자주 들린 탓에 대견하기만 했다.
“그래? 수고했다. 일 봐.”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에이! 이제야 보시네. 어쨌든 김지훈 선생님도 허경발 선생님 라인이 분명하니까 잘 됐어. 얼굴 보신 김에 이준영 선생님과 과장님께 내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일이 많이 밀렸다는 듯 강병옥이 부리나케 스테이션으로 달려갔다. 이혁원이 힐끔 돌아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강병옥 선생도 참 대단해요. 전 지금도 허경발 선생님이 어려워서 혼자는 못 들어가겠던데 아침저녁으로 꼭꼭 찾아뵙는답니다. 깡이 있어야 가능하겠죠?”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허경발 원장은 애송이 의사들에게 정말 어렵기만 한 존재였다. 결코 내세우지 않았지만 경험과 연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정한 권위 때문일 것이다.
“그러네. 사실 나도 어렵기만 해. 항상 웃어주시는데 이상하게 떨리지 않아?”
“선생님도 그러세요?”
당연한 말이다.
김지훈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노크를 했다.
허경발 원장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선생님. 오늘 검사 결과를 보니까 곧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내과 선생님과 상의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나도 집에 빨리 가고 싶구나.”
이제는 오래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꼭 필요한 치료가 없다면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서두르진 마십시오. 그럼 가보겠습니다.”
김지훈과 이혁원의 발걸음에 활기가 실렸다.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의 회복은 기쁨이었다.
모든 전공의들을 똑같이 아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예 차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일 년차 중에서는 강병옥과 송진우가 유독 눈에 들어왔었다.
허경발 원장까지 찾은 열성 때문인지 강병옥이 자꾸만 눈에 보였다. 그런데 의외의 일에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분명 강병옥 파트 환자인데 송진우가 드레싱을 하고 있었다. 드레싱이라고 해도 1년차인 이상 서로 대신 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혁원아. 저 환자 병옥이 파트 환자잖아?”
침대 맡에 붙은 명표를 본 이혁원도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때 눈이 마주 친 송진우가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그러네요. 근데 왜 진우가 하고 있지? 제가 알아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송진우. 이따 나 좀 보자.”
이혁원이 잘 처리할 것이다. 큰 잘못이 아닌 한 1년차 일을 두고 펠로우까지 나서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심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게다가 지금은 온 신경이 이병석 환자에게 쏠려 있었다. 속이 얹힌 것 같은 답답함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 주가 다 지났다.
세상은 공평한지 그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이 생겼다.
허경발 원장이 드디어 퇴원을 하게 됐다.
교수들은 물론 직원들까지 병실로 찾아와 축하했다. 오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김지훈이 스테이션 앞에 서서 조용히 허경발 원장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혁원이 힐끗 시선을 주며 말했다.
“선생님. 인사 안 드리세요? 제일 고생하셨잖아요.”
“니가 더 고생했지. 수고했어. 사람도 많은데 허경발 선생님 힘드시겠다. 우린 인사만 드리자.”
한참이 지나서야 허경발 원장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병실을 나왔다. 천천히 복도를 걸어왔다. 저절로 긴장이 된 김지훈과 이혁원이 자세를 바로 잡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스테이션 앞에 도착한 허경발 원장이 걸음을 멈췄다. 조용히 돌아서서 밝은 미소를 보이며 김지훈에게 다가왔다.
“지훈아. 혁원아. 고맙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
당연한 일일 뿐인데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당황한 김지훈이 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선생님. 조심해서 가십시오.”
이혁원도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내 옆을 지켰으면 제일 먼저 달려와도 되는데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래서 너희들이 더 믿음직스럽구나.’
허경발 원장이 웃었다.
엘리베이터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걸음을 떼지 않았다.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김 교수. 이혁원 선생. 내가 특별한 환자가 아니었기를 바라. 그렇게 할 수 있겠지? 믿는다.”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시선의 끝에 김지훈과 이혁원이 머물고 있었다.
김지훈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떻게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이혁원은 얼굴까지 벌게져 있었다. 한동안 흥분과 웃음을 참지 못하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빛을 굳혔다.
‘특별한 환자가 아니었기를 바라신다고 했나?’
의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신의 바람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귀중한 가르침이었다. 다른 환자들도 똑같이 대하고 치료했는지 돌아보는 계기였다.
‘감사합니다. 큰 스승님.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혁원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던 김지훈이 돌연 화들짝 놀랐다. 특별한 환자라는 말에 이병석 환자가 떠오르며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일 부분 절제가 가능하다면 유문과 위를 연결해야 할 수도 있잖아? 가능할까? 수술 중 주의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지금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 회진도 남았다.
“혁원아. 빨리 회진 돌자. 특별한 환자들 보러 가야지.”
“예. 선생님.”
이혁원도 느낀 것이 많은지 힘차게 대답을 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환자를 보았다. 왠지 오늘따라 더욱 알차게 회진을 돈 것 같았다. 의국으로 돌아와 한 주를 정리하며 마무리를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어떻게 수술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숙지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종진이 들어와 이혁원 옆에 앉았다.
허경발 원장의 치료 때문에 혈관 수술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탓에 나종진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홀로 신기동 교수의 비수를 감당하느라 많이 아팠을 것이다. 불쌍하지만 더 아프게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종진아. 혈관 파트 돌면 누구 파트까지 맡지?”
“예. 선생님 파트까지 맡습니다.”
“그동안 신경 못써서 미안하다. 혁원이하고 셋이서 잘 해 보자. 내 파트 돈다고 기존 파트 환자들 등한히 하지 말고. 참! 이번 주말 당직이 누군지는 알지?”
‘헉’ 소리가 쌍으로 터졌다.
얼마 후 ‘헉’ 소리 하나가 추가됐다.
김지훈이 주말 내내 응급실과 수술실 그리고 병실을 오갔다. 병원에 나온 김에 연구실에 들러 이병석 환자에 대해 고민했다.
역시 부분 절제술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비슷한 환자를 볼 수도 있었다. 내쳐 수술 책에 머리를 박던 김지훈이 입맛만 다셨다.
‘가능하다고 해도 수술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네. 유문에 연결하는 것도 문제고 십이지장과 위에 압력이 가해져도 안 되네. 어렵다. 정말 어렵다.’
첩첩산중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또 다른 이유로 초조해 한다. 집으로 가기 전 병실에 들렸다. 지나친 희망은 더 큰 절망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솔직하게 말할 일이었다.
“여러 방법을 알아봤습니다만 부분 절제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로서는 내시경에서 보인 위치보다 상부 쪽에 위치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단 내일 내시경 결과를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결국은 어렵다는 말이었다.
이병석 환자의 한숨이 깊어졌다.
아내의 손수건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환자에게 한 말과 달리 끝까지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위의 삼분의 이를 제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만이라도 잘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외래 환자를 보고 복강경 수술 두 건을 예약했다. 컨설트까지 나와 이번 주 정규 수술만 네 건이었다. 수술 예약을 확인하며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김지훈이 시계를 보고는 후다닥 달려 나갔다.
이병석 환자의 내시경이 시작됐다.
병변이 보였다.
작은 점 하나가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다니 암이란 질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스러웠다. 확실하게 수술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십이지장 경계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공기 때문에 위가 부풀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유문까지는 3-4센티미터 정도 밖에 안 될 거야. 수술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닙니다. 확실하게 표시만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조직을 떼어내고 수술 시 절제의 기준점인 클립 세 개를 병변 주위에 박았다. 곧바로 시행한 조직 검사에서 점막에만 국한됐다는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신동철 이사장까지 찾았는데 신현수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전히 연락이 되질 않았다.
답답한 가운데 하루가 지났다.
이병석 환자의 수술 날이다.
단독으로는 위암 수술을 처음 한다는 기대나 흥분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표정조차 보이지 않는 환자의 모습에 마음이 도리어 무거워졌다.
수술 방 앞에서 보호자를 만났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항상 듣는 말인데 유독 귓가를 떠나질 않았다. 말은 없었지만 아내의 눈에 부분 절제술에 대한 기대가 실려 있었다. 아무리 위험성을 설명해도 수술에 대한 부담은 결국 의사의 몫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도저히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내시경 소견도 경험일 뿐이야. 길이를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어. 여유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자.’
잠깐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수술 방법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 위암을 수술한다. 메이저 수술이지만 3년차가 치프인 시기인 탓에 이혁원이 퍼스트를 선다. 뛰어나다고 하지만 강병옥은 1년차 불과하다.
일반외과 사정을 환히 꿰뚫고 있는 고경아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혁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평소 여유롭기만 하던 김진호 교수까지 침묵을 지켰다.
수술이 시작됐다.
‘긴장할 거 없어. 배운 대로만 하면 돼.’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건장한 중년 남자의 배는 의외로 손쉽게 열렸다. 겉보기에는 암이 발생했으리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못할 위가 보였다.
단단하고 길쭉한 코 줄을 만지며 병변의 위치를 가늠했다. 조심스럽게 클립을 찾았다. 위 하부에서 미세한 감촉이 느껴졌다.
클립이다.
위 벽에 한 바늘을 떠 위치를 표시했다.
신중하게 십이지장과의 경계 부인 유문까지의 길이를 쟀다. 몇 번을 다시 재도 3센티미터가 조금 넘을 뿐이었다. 유문을 살릴 방법이 없었다.
답답한 한숨이 절로 터졌다.
이리저리 아무리 살펴보아도 더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혁원아. 안 되겠지?”
“예. 여유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살폈지만 도저히 살릴 방법이 없었다. 결국 부분 절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미 설명을 했기에 바로 진행해도 되지만 보호자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수술이 끝난 후 결과를 듣는 것보다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보호자를 불렀다.
“죄송합니다. 부분 절제는 불가능합니다.”
그 한 마디로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차마 남편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못하던 아내의 입에서 끅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슬픔이자 안타까움이자 두려움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떨리는 손끝에 아내의 마음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모두들 무거운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후우! 애초에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순간 후회가 됐지만 더 이상 수술 이외의 다른 부분에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수술에만 집중할 때였다.
‘아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여기까지다.’
수술 과정을 상기했다.
삼분의 이를 자르는 이상 임파선까지 확실하게 제거하는 편이 좋았다. 만에 하나 점막에 국한된 암이라는 조직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면 재발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시작하자. 켈리!”
켈리를 받아들고는 곧바로 위를 잡았다.
먼저 간, 비장, 대장과 연결된 구조물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혈관에 유의해야 한다. 첫 번째 혈관을 잡기 위해 켈리를 가져갔다.
혈관 주위 조직을 살살 벌렸다. 벌떡벌떡 뛰는 굵은 혈관이 노출됐다. 한쪽 편으로 켈리를 가져가자 이혁원이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췄다.
이제 켈리에 달린 톱니가 맞물리면 혈류가 차단된다.
돌이킬 수 없다.
눈빛을 굳힌 김지훈이 켈리에 막 힘을 주려는 순간 수술실 문이 벌컥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