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특별한 환자. Ⅰ (2)
“선생님, 조기 위암인데다 점막에만 국한된 암이에요. 위를 삼분의 이나 자르기에는 아깝지 않을까요?”
홍재순이 힐끗 째려보면서도 흥미를 보였다.
“부분 절제를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어디 보자. 근데 위치가 애매모호하다. 십이지장 입구와 가까워 보이는데 적당한 간격을 확보할 수 있겠어?”
“조기 위암이라고 해도 암 하부로 5센티미터는 확보해야 하는데 어려울 것 같죠?”
“솔직히 빠듯한 정도가 아니지. 고민하지 말고 속 편하게 원칙대로 수술해. 유문까지 잘라야 하는데 십이지장과 연결을 하려고? 안 돼. 이건 무리하는 정도가 아니다.”
고민하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위의 삼분의 이를 절제하는 것과 암 주변만을 절제하는 것은 위험도 자체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수술 후 환자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기에 선택은 분명해 보였지만 이 환자는 예외였다.
위나 장은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늘어날 여유가 있다. 하지만 반드시 피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연결 부분에 긴장 혹은 압력이 가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후복막에 단단히 박혀있고 절대 손상을 주어서는 안 되는 십이지장에서 불과 5센티미터 상방에서 암이 발생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부분 절제술을 한다고 해도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인 유문을 살릴 수가 없다. 결국 위와 십이지장을 직접 연결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식도와 연결된 위를 밑으로 끌어 내릴 수도 없다. 한계를 넘어가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뿐더러 십이지장에도 과도한 긴장이 가해질 것이다. 게다가 조직 구조가 달라 잘 붙지도 않는다.
결국에는 연결 부분이 터질 것이다.
만일 터지면 그 다음은?
십이지장으로 배출되는 지방을 녹이는 쓸개즙과 단백질을 녹이는 췌장액이 배 속으로 흘러나온다. 여기에 강산으로 이루어진 위액까지 더해지면 버틸 장기는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재수술을 넘어 치명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췌장, 간, 쓸개를 비롯해 굵직한 혈관까지 위험한 구조물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위와 십이지장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가능하다고 해도 금기 시 하는 일이었다.
‘역시 무리일까?’
“에휴! 2센티미터만 더 위에 생기지. 그러면 부분 절제가 가능했을 지도 모르잖아요,”
“유문을 살릴 수 있으면 이어 주려고? 십이지장과 연결하는 것 보다는 덜 하겠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야. 기술적으로도 보통 어려운 과정이 아닐 거다. 궤양으로 구멍 나서 봉합하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 잘 알잖아?”
비관적인 말만 이어졌다.
유문도 위의 일부지만 물리적인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연결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환자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택하고 싶다고 해도 사람의 몸이다. 좋은 방법이라고 무조건 시행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수술 방법에 따라 삶의 질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의국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급히 몸을 일으켰다.
교수들의 회진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4년차들이 빠져 인원이 부족해진 전공의들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렸다. 세 파트를 돌아야 하는 김지훈의 발은 아예 땀으로 젖었다.
‘6개월이 넘었는데 힘들긴 똑같네.’
마지막으로 모두 허경발 원장의 병실에 모였다.
때마침 내과 교수까지 왔다. 오후 검사 결과가 좋다며 김지훈과 상의를 한 끝에 내일부터 식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보호자는 물론 교수들도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한동안 대화가 오갔다.
더 이상 치료에 관한 말은 없었다.
슬며시 이혁원에게 눈짓을 한 김지훈이 내과 병동으로 향했다. 병실로 들어서는 순간까지 고민스러운 표정이었다.
“환자 분. 모든 검사를 검토했습니다. 일단 수술 날짜가 정해지면 병실을 옮기시면 됩니다. 그리고 수술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원칙적인 수술 방법을 설명했다.
위의 삼분의 이를 잘라야 한다는 소리를 이미 들었을 텐데도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진 않을 것이다.
부분 절제술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하지만 그에 수반하는 문제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무의미한 희망을 줄 수도 있었다.
‘가능성도 떨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더 위험할 텐데 말을 해야 하나?’
김지훈이 잠시 말을 멈췄다.
조기 위암이라 복부 CT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내시경으로 위치를 가늠할 수 있지만 개복했을 때 실제 위치와 반드시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왕왕 소견이 다른 경우도 보았다.
‘단 2-3센티미터만 위에 있어도 가능해.’
그러나 치료에 관한 문제였다. 더구나 이병석 환자의 질환은 암이다. 일단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길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환자를 위해서는 일말의 가능성도 포기할 수 없었다. 환자 또한 치료 방법을 알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의사만의 일이 아니기도 했다.
부분 절제술 설명을 했다.
환자가 마른 침을 삼키며 눈을 반짝였다.
“정말 일부만 잘라도 됩니까?”
“점막에만 국한된 것이 확실하면 이론적으로 재발의 위험성은 없습니다. 회복과 향후 치료에도 훨씬 유리합니다. 단 환자 분의 경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암의 위치와 그에 따른 문제들을 설명했다. 이점을 훨씬 뛰어넘는 위험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환자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환자에게 부담되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수술 전에 내시경을 한 번 더 해야 합니다. 조직 검사를 다시 해 점막에 국한된 것이 확실한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병변을 클립으로 표시해야 합니다.”
“표시라니요?”
“조기 위암의 경우에는 밖에서 만져지질 않아 병변의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위를 열어서도 안 되고요. 클립으로 표시를 해야 밖에서 만져보고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부분 절제만 귀에 들어올 뿐 나머지 과정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상의를 한다고 해도 수술 방법을 일차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의사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보다 쉽게 설명할 일을 너무 돌아갔다.
김지훈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방법을 권유해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삼분의 이를 자를 생각이 아니라면 최소한 시도는 해 볼 일이었다.
김지훈이 간단하게 정리했다.
“부분 절제술에 동의를 하시면 수술 전에 미리 준비하고 시도하겠습니다. 수술 중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수술을 확대하겠습니다.”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있습니까? 아까 부분 절제술도 상당히 위험하다고 하신 것 같은데 제 기억이 맞습니까?”
일순 말문이 막혔다.
솔직하게 말할 일이었다.
그것 또한 의사의 의무다.
“삼분의 이를 잘라야 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부분 절제술도 상당한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도 맞습니다.”
“그래도 조금 자르는 것이 나중에는 좋겠죠?”
환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축 처진 어깨가 더욱 짓눌려 보였다. 암이라는 질병이 부르는 두려움과는 또 다른 두려움까지 실려 있었다. 김지훈을 보며 머뭇거리던 환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선생님. 죄송한데 입원은 얼마나 해야 하고 치료비는 얼마나 들까요? 제가 기한 내에 복귀하지 못하면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가 없어서······.”
IMF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병석 환자 역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실직에 대한 공포와 암이라는 병은 그의 마음을 바위보다 더 무겁게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눈가가 퉁퉁 부은 채 듣고만 있던 아내의 울음이 터졌다. 참고 참았던 울음 속에 서러움과 안타까움만이 가득했다.
“여보! 제발 돈 문제는 신경 쓰지 말고 당신 걱정만 해요. 내가 다 알아서 할 게요. 당신이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어요. 선생님, 죄송해요. 우리 남편 살려만 주세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에요. 제발! 부탁드려요.”
조기 위암도 엄연히 암이다. 하기에 5년 생존률로 치료 결과를 평가한다. 또한 100명 중 5명은 암으로 인해 사망한다. 환자나 보호자에겐 진행된 암과 똑같이 무섭고 두려운 질환일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병실 밖으로 따라 나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보호자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일단 가능한지 판단을 해야 하고 부분 절제도 결코 쉽지 않지만 환자 분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혁원도 마음이 안 좋은지 병동으로 돌아오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돈! 중요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치료비는 문제가 아닐 지도 몰랐다.
일 년에 한두 번 야반도주를 하는 환자들을 보았지만 정말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탓이었다. 이병석 환자가 걱정하는 문제는 결국 퇴원 후의 일일 것이다.
실직과 장기간에 걸친 투병!
이처럼 암담한 상황은 없다.
위의 삼분의 이를 자르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의사는 환자의 치료에만 집중해야 하지만 육체적인 질환만이 병은 아니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런 방법이 있다면 밤새 고민해도 부족할 것이다.
다시 한 번 CT와 내시경 소견을 꼼꼼하게 살폈지만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부분 절제는 점점 더 어렵게 보였다.
‘일단 가능한지 판단하는 것이 먼저겠지. 어렵다 어려워. 방법이 없을까? 아! 혹시 현수라면 새로운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불현듯 신현수가 생각났다.
예전에 이미 한 차례 부분 절제술을 공부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새로운 시도를 할 수도 있었다.
“혁원아. 일단 조기 위암 수술 방법에 관한 논문들 싹 찾아. 그리고 현수에게 연락하자.”
국제 전화가 어렵지 않은 세상이었다.
뚜루루룩! 뚜루루룩!
‘현수야. 빨리 좀 받아.’
김지훈이 초조한 듯 손가락으로 톡톡 책상을 쳤다.
몇 번을 다시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자식이 이럴 때 전화를 안 받아.’
내일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은근히 초조해졌다. 간만의 긴 잠도 효과가 다 됐는지 피곤이 다시 몰려왔다. 걱정은 많은데 하품이 멈추질 않았다.
여기서 충전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연이틀 달고 긴 잠을 잤다. 고경아가 죽은 듯 잠에 빠진 김지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남편 힘들어서 어떻게 하지?’
살며시 따스한 체온을 전했다.
그 덕일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교수들과 커피 타임을 가졌다. 다른 교수들의 의견도 들을 겸 이혁민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수술 시간이 맞지 않아 김지훈은 참관하지 못했지만 이미 몇 건의 부분 절제술 경험이 있는 이혁민 교수였다.
역시 표정이 좋지 못했다.
“환자 사정은 이해하지만 이 경우에는 부분 절제가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 보겠지만 큰 기대는 걸지 마라. 그깟 몇 센티미터 차이로 사람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게 참 우습네.”
“쯧쯧! 이놈의 IMF가 여럿 잡네.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없게 해야지 말이야. 그래서 사람을 잘 뽑아야 돼. 사람을. 지훈아. 경석아. 안타깝다고 해도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다. 열심히 보자. 열심히. 그러면 환자도 알아준다. 암! 그렇고말고.”
이준영 교수와 신기동수는 묵묵히 자리만 지켰다.
‘지훈아. 네가 큰 스승님을 본 열정으로 환자들을 대하면 후회는 없을 거야.’
초조하다 못해 안타까워하는 김지훈을 보며 내심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송재덕 교수의 말처럼 그런 마음을 잊지 않는 한 의사가 얻어야 하는 결과를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건강한 삶을 말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 나는 대로 논문을 확인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신현수는 여전히 연락이 되질 않았다. 혹시 안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 자식 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외과 병동으로 옮겨진 이병석 환자를 볼 때마다 마음의 짐이 쌓여만 갔다. 남편 몰래 손수건이 푹 젖도록 눈가를 훔치는 아내와 아내 앞에서는 태연하려 애를 쓰는 남편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불과 1-2센티미터에 환자의 삶이 바뀐다는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앞선 의료를 배우고 있는 신현수에게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고민 끝에 신동철 이사장을 직접 찾았다.
친구 아버지이기 전에 이사장과 교직원이라는 관계를 잊지 않았다. 전공의 때보다 더욱 격식을 갖춰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신동철 이사장의 얼굴이 묘했다.
‘그동안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더니 환자 때문에 날 찾아왔어? 현수 핑계 대고 눈도장이라도 자주 찍으면 앞날에 도움이 된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말이야. 직원들 사이의 평판도 상당히 좋고 갈수록 마음에 드네.’
“허어! 현수가 집을 옮긴다고 했는데 그래서 연락이 안 되나? 나도 연락을 취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허경발 원장님께 보인 정성 고마워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길게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특별히 할 말도 없어 금방 어색해졌다.
“현수하고 연락이 되시면 전화 좀 꼭 해달라고 전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허허! 간만에 봤는데 벌써 일어나려고? IMF 때문에 병원 사정도 만만치 않은데 열심히 일 해줘서 내가 고마워요. 이사장으로서 기대가 큽니다.”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김지훈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이사장 실을 나갔다.
신동철 이사장이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직 커피도 식지 않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어떻게든 자신과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하는데 정말 예외적인 김지훈이었다. 펠로우라는 신분 혹은 숫기가 없거나 젊은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와 느낌이 비슷하네. 그래. 현수 곁에 김지훈 같은 친구가 한 명 정도는 있는 것도 좋겠지.’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본성은 어디가지 않는다고 해도 처세술 정도는 생길 수밖에 없다. 때 묻지 않은 사람보다는 적당히 때가 묻어야 세상 풍파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훈만은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진정한 친구이자 동료로 남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기에 더욱 그런 욕심이 났다.
‘내 아들만 생각하는 걸까?’
김지훈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도 어려운 것이 삶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