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611화 (611/1,329)

제2화. 큰 스승님! Ⅱ (2)

아니다.

경고음이 다르다.

멍한 눈으로 주변을 보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라며 모니터를 보았다. 중환자실 인턴과 간호사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83% - 81% - 79%

삐이익! 삐이익!

경고음이 달라졌다.

산소 포화도가 위험 수준까지 떨어졌다.

허경발 원장의 호흡이 가빠졌다.

창백한 얼굴에 땀이 맺혔다.

급히 청진을 한 김지훈이 소리쳤다.

당장 호흡 통로를 확보해야 했다.

“석션!”

목과 콧속에 찬 분비물만 제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석션 줄이 기도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시도했다.

들어갔다.

허경발 원장이 격렬하게 몸을 뒤틀었다.

“인턴 선생. 꽉 잡아.”

찌이익! 찌이익!

끈적끈적하고 누런 분비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산소 포화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마침내 경고음이 사라지면서 허경발 원장의 안색도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심각한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인턴 선생. 비지에이 해. 간호사. 포터블(이동식 방사선 촬영 장치)부르고 교수님들께 바로 연락해요.”

그 사이에 한차례 또 경고음이 울렸다.

필사적으로 기도에 석션 줄을 집어넣었고 허경발 원장의 괴로움은 극에 달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다급하게 달려 나온 교수들이 한숨만 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지훈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허경발 원장의 상태를 설명할 때를 빼고는 교수들의 말을 듣기만 했던 김지훈이었다. 다들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영 교수만이 김지훈의 마음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혹은 일말의 기대를 하는 지도 몰랐다.

“기관 내 삽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기관 내 삽관?”

“예. 설혹 흡인성 폐렴이 아니라고 해도 이 상태에서는 기관지와 폐에 찬 분비물을 제거하지 못하면 호전될 수 없다는 판단이 듭니다. 이제는 기침도 제대로 하지 못하십니다. 의식이 있으셔서 힘드시겠지만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삽관 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폐렴을 치료하는 통상적인 방식도 아니었다.

의식이 있기에 도리어 환자를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기관지를 꽉 채운 가래 소리가 똑똑하게 들리고 있었다.

호흡기 내과 교수가 눈가를 좁히며 고민에 잠겼다.

이해득실을 따져야 한다.

기관 내 삽관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줄 것이다. 가뜩이나 환자들을 강하게 압박하는 곳이 중환자실 환경이었다. 의식과 자발 호흡이 있기 때문에 도리어 심폐 기능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강제로 재우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위험을 수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의견이 분분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송재덕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지훈아. 만일 삽관을 한다고 해도 오래 끌 수는 없어. 게다가 낮에는 몰라도 밤에는 누군가 한 명이 꼬박 자리를 지켜야 할 텐데 가능하겠니?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해야 돼. 그러기에는 너무 힘들고 손도 부족하잖아.”

지금은 위기를 모면했지만 치료 효과는 미지수다.

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김지훈은 강철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지적이었다.

지난 나흘 간 김지훈과 전공의들은 조각 잠으로 버티며 허경발 원장의 곁을 지켰다. 하기에 교수들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큰 스승님의 목숨이 경각에 달릴 지도 모르는데 절대 피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교수들 눈빛에 서린 우려와 기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혼자가 아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환자를 치료해 왔다.

“전공의들과 함께 책임지고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결정만 내려 주십시오.”

김지훈의 목소리에 강한 각오가 실렸다.

한동안 나직한 목소리가 오고갔다.

더 이상 취할 수 있는 치료는 없었다. 허경발 원장이 회복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었다. 극단적이든, 시도해 보지 않았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호흡기 내과 교수가 최종 결정을 했다.

보호자와 상의 끝에 동의를 받았다.

기관 내 삽관 준비가 끝났다.

그때 가쁜 숨을 내쉬며 얕은 잠에 빠져있던 허경발 원장이 눈을 떴다. 상황을 이해했는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지훈을 보았다.

직접 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김지훈이 허경발 원장이 손을 잡았다.

“선생님. 시작하겠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허경발 원장은 웃으려 애를 썼다.

입가만 간신히 움직일 뿐이었다.

큰 스승의 웃음을 보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신뢰를 받는다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과 슬픔이었다.

‘큰 스승님. 제가 반드시 일어나시게 할 겁니다.’

“간호사. 바륨(Barium : 진정제) 하나 투여하세요.”

허경발 원장이 서서히 잠에 빠져 들었다.

인후경을 입안으로 집어넣자 본능적인 저항이 느껴졌다. 신중하게 힘을 가해 턱을 들어 올렸다. 성대 주변에 누렇다 못해 초록빛이 감도는 가래들이 가득했다.

숨을 쉴 때마다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기관지가 아니라 목에 찬 가래만으로도 호흡이 곤란했을 것이다.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했다니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했다.

“석션.”

가래 빨아들이는 소리가 지속됐다.

한참만에야 성대를 확보한 후 튜브를 삽입했다.

쿨럭! 쿨럭!

강한 자극에 가슴이 출렁일 정도로 기침을 했다.

재빨리 튜브를 고정한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샐라인(saline : 생리식염수).”

맑은 식염수가 튜브를 따라 기관지로 흘러들자 더욱 강한 기침이 유발됐다. 압력을 못 이기고 튜브 밖으로 누렇고 끈적이는 가래가 마구 튀어나왔다.

이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석션.”

튜브 속으로 가느다란 석션 줄을 넣고 가래를 빼냈다. 허경발 원장이 격렬한 통증과 숨쉬기조차 어려운 갑갑함에 몸을 마구 비틀었다. 바륨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되는 때였다.

“석션.”

창백했던 얼굴이 시뻘게졌다. 생기를 잃은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심장박동이 치솟으며 모니터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기관지 속 공기까지 빨아들인 탓에 산소 포화도마저 뚝뚝 떨어졌다.

이 모두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큰 스승님. 참으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김지훈은 멈추지 않았다.

석션 통으로 가래 섞인 물이 줄줄 떨어졌다.

최대한 가래를 제거한 후 청진을 했다.

심장박동은 돌아왔지만 호흡은 여전히 거칠었다. 반짝 90퍼센트를 넘었던 산소 포화도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앞으로 똑같은 일을 무수히 반복해야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30분마다 석션 할 생각입니다. 힘드셔도 참으셔야 합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말해도 듣지 못할 것이다.

쇠약해진 몸에 바륨이 들어가고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석션을 했다. 기력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중환자실을 가득 채운 기계음만 들려왔다.

묵묵히 침묵만 지키던 교수들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뗐다. 무겁게만 보이는 어깨에 불안과 두려움이 잔뜩 실려 있었다. 끝까지 남아있던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과 이혁원을 보았다.

“혁원이 너는 올라가서 일하고 김지훈 선생과 교대해. 한시라도 눈을 떼면 안 돼. 김지훈. 아침에 수술 있잖아. 내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눈 붙여.”

밤이 늦었다.

교수까지 킵을 할 수는 없다.

체력도 문제지만 다음 날 진료와 수술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혁원이 머뭇거리자 김지훈이 조용히 고개 짓을 했다. 스승의 곁을 지키고 싶은 이준영 교수의 마음이 보인 까닭이었다.

“선생님. 한 시간 후에 오겠습니다.”

“더 있다 와.”

중환자실을 나온 김지훈이 고경아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 퇴근 전에 꼭 면회를 한 고경아였다.

허경발 원장이 김지훈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더구나 결혼식 때 주례를 서며 앞날을 축복해 준 큰 스승이었다.

(지훈 씨. 꼭 일어나시게 해야 돼요. 다만 지훈 씨 몸도 살폈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요.)

“혁원이하고 교대하기로 했으니까 걱정 말아요. 오늘도 좀 늦을 것 같네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요.”

(지훈 씨, 사랑해요. 힘내요.)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는 말인데 가슴이 무겁기만 했다. 연구실 구석에 놓여있는 침대에 몸을 눕혔지만 잠은 안 오고 머리만 깨질 듯이 아팠다.

한참을 뒤척여야 했다.

그 시간 이준영 교수는 30분마다 석션을 하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스승을 보며 남몰래 눈가를 붉혔다. 후회와 회한이 가득했다.

‘스승님. 이런 줄도 모르고 제 앞가림에만 신경 써서 죄송합니다. 제발 일어나셔서 예전처럼 절 꾸짖어 주십시오. 이대로는 못 보내드립니다.’

호랑이 같았던 스승에게 죽도록 혼났던 젊은 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음성에서 십 년간 연락도 끊고 살았던 기억은 악몽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스승의 눈에 서린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지훈이 돌아왔다.

그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던 이준영 교수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며 일어났다. 젖은 눈가를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스승의 눈물은 보지 못했지만 너무도 무거워 보이는 모습에 김지훈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방금 전에 석션했으니까 30분 후에 하면 돼.”

이준영 교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허경발 원장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질식이다. 숨은 쉬지만 결코 숨이라고 할 수 없는 호흡 상태였다. 갑갑하기 짝이 없는 튜브까지 목구멍에 박힌 채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왔다.

완전히 표정을 잃은 이준영 교수가 막 중환자실을 나설 때 간호사가 찾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했다. 조금 있으면 새벽인데 의아한 일이었다. 이준영 교수와 함께 중환자실 밖으로 나온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고성문이 고경아와 함께 서 있었다.

“김지훈. 이준영. 너희들 뭐야? 그동안 뭐 했어? 삽관까지 해야 할 정도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준영, 스승님을 이렇게 보낼 거야?”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무의미했다.

김지훈도 이준영 교수도 입을 열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선생님.”

고성문이 눈을 부릅뜨며 입을 열려는 순간 고경아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아빠. 선생님과 지훈 씨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벌써 며칠째 잠도 못자고 매달렸단 말이에요. 잘 아시잖아요?”

고경아가 울먹거렸다.

시뻘게진 눈과 온몸에 달라붙은 피로.

하루 이틀 못 잔 모습이 아니었다.

고성문이 눈가를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스승님은 어떠셔? 지금 뵐 수 있겠어?”

이준영 교수가 조용히 몸을 돌렸다.

“스승님도 보고 싶어 하실 겁니다.”

허경발 원장의 모습을 본 고성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튜브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쉬는 스승의 모습에 말을 잃었다.

“스승님!”

기관 내 삽관이 주는 부담을 덜기 위해 계속 잠을 유도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허경발 원장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마치 자신의 제자 고성문이 온 사실을 안다는 것 같았다. 걱정 말라고 말하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산소 포화도는 여전히 85% 전후를 오르내렸다.

이를 악물던 고성문이 청진기를 달라고 했다.

그르렁! 쌔액!

자신을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해준 스승인데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스승의 힘겨운 숨소리를 들으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다였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중년을 넘어 장년이 된 제자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김지훈도 고경아도 이준영 교수도 먹먹한 가슴에 눈가를 붉히고 말았다.

면회는 길지 않았다.

차마 발을 떼지 못하던 고성문이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감췄다. 누구도 탓 할 수 없었다. 도리어 곁을 지키지 못하는 처지와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김 서방. 우리 스승님이시고 자네에겐 큰 스승님이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부탁해.”

마지막 말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아버님. 반드시 훌훌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고맙다. 김 서방. 고맙다. 이 교수. 우리 스승님 웃는 얼굴 꼭 다시 보자. 그동안 소홀히 했던 거 다 혼나야지.”

“선생님.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눈가가 벌게진 고성문이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고는 원주로 돌아갔다. 스승과 제자의 깊고 깊은 정을 느낀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허경발 원장을 회복시키는 방법은 노력뿐이었다.

석션을 포함해 미세한 변화도 지나치지 않으려 바짝 긴장했다. 바이탈이 흔들리면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해 안정시켰다.

허경발 원장의 의지는 강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도 그를 얽매지 못했다. 가끔 잠에서 깨면 물끄러미 김지훈을 보았다. 성대를 막고 있는 튜브에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흐릿하기만 한 눈빛으로 말이다.

‘지훈아. 고맙다.’

왈칵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밤이었다.

이혁원과 교대를 하고 퇴근을 했다.

불안감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잠깐 눈을 붙였지만 쉽게 사라질 피곤이 아니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더 큰 원인이었다.

지독히도 긴 하루가 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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