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큰 스승님! Ⅱ (1)
휴가에 정신이 팔리고 오늘 일에 당황해 4년차들 수련이 끝났다는 것을 잊었다. 휴가 직전 미리 인사한 일까지 까맣게 까먹었다.
“어휴! 그럼 한 명도 없겠네요.”
“어제 다 집에 갔지. 다음 주나 돼야 오지 않겠어?”
가장 경험 많고 노련한 전공의들이 손을 놓았다. 3년차들이 있긴 하지만 부족해진 인력 때문에 외과 환자만도 벅찰 것이다. 1,2년차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문제네.’
이경석도 고민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내내 이어진 수술로 꽤 피곤한 모양이었다.
“오늘 여기 있을 거야? 일단 혁원이한테 맡기고 퇴근하자. 하루 이틀 내에 해결될 상황도 아닌데 킵을 어떻게 설 지는 내일 상의하면 되지 않겠어?”
“오늘 밤은 제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이혁원이 급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킵(keep)하겠습니다. 내과 전공의들도 있고 필요하면 종진이랑 번갈아 하면 됩니다.”
“아니야. 4년차 빠진 자리가 작지 않아. 손이 많이 딸릴 테니까 당직이나 잘 서.”
당장은 킵을 누가할 지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한동안 자리를 지키던 이경석과 이혁원이 또 응급실 콜을 받았다. 홀로 남은 김지훈이 허경발 원장이 눈을 뜰 때마다 등을 두드리며 기침을 유발시켰다. 누런 가래가 옅어질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새벽녘 졸린 눈을 비비던 김지훈이 허경발 원장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이제 하룻밤도 지나지 않았는데 점점 초조해졌다. 거친 호흡 소리와 널뛰는 바이탈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큰 스승님. 힘내셔야 합니다. 제가 끝까지 스승님 곁을 지키겠습니다.’
감기로 시작된 병에 질 수는 없었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했기에 더욱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깜빡 졸다가도 가슴 속에 스미는 서늘한 기운에 화들짝 눈을 떠야 했다.
거의 잠도 못자고 월요일 아침 바쁜 일과를 끝낸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와 함께 중환자실로 향했다. 고성문이 보호자와 함께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예전부터 안면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 병원은 어떻게 하시고요?”
“외과 과장 있잖아. 얼굴만 뵙고 갈 거야. 미안하지만 나도 같이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시죠. 스승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이 교수, 고마워. 김 교수. 빨리 들어가지 않고 뭐해? 오늘 아침에 사진 찍었지?”
“예. 아버님. 사진 나왔을 겁니다.”
검사 결과가 조금이라도 좋아졌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원 당시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고 증상도 여전했다. 김지훈이 자기 탓인 양 고개를 들지 못했다.
“스승님. 어떠십니까?”
“난 괜찮아. 후우! 어서 가 환자 봐. 고 원장. 자네는 왜 지금도······.”
짧은 말을 하는 동안 몇 번이나 숨을 몰아쉬었다. 청진을 하지 않아도 거친 호흡 소리와 함께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열까지 떨어지지 않아 그나마 남은 체력마저 급격하게 갉아먹고 있었다.
이준영 교수가 침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 수술 끝내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 자네들도 어서 가 봐.”
그때 신동철 이사장과 윤재철이 교수들과 함께 모습을 보였다. 아침이 되자마자 곧바로 또 면회를 오다니 의아한 일이었지만 오랜 시간 면회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허경발 원장과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어젯밤에 이어 오늘도 잠시 얼굴 본 것으로 만족하고 면회를 끝내야 했다. 신동철 이사장의 요청에 김지훈과 내과 교수가 상태를 설명했다.
궁금한 것이 많은 눈치였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김지훈은 외래로, 이준영 교수는 수술실로 향했다. 신동철 이사장이 있는 상황이라 입장이 곤란해진 고성문도 김지훈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원주로 향했다.
중환자실을 나서던 이준영 교수가 물었다.
“외래 환자 많아?”
“아닙니다. 한 시간 내에 끝납니다.”
“알았다.”
조금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들 자리를 뜨고 송재덕 교수와 이혁민 교수만이 남았다. 각자 외과 센터 센터장과 과장이라는 직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사장과의 자리를 피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송 교수님. 괜찮으실까요?”
신동철 이사장의 말에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 전부터 몸이 안 좋다고 중앙 의료원 원장 직에서 물러났으면 하셨는데 아직은 더 계셔야 한다고 제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고령인 분들은 이런 경우가 왕왕 있고 저희가 신경을 쓰지 못한 탓입니다. 다만 회복되시고 나면 병원 일은 더 이상 맡기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송재덕 교수가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료진 인사관리를 포함해 몇몇 중요한 사항들을 남았는데 어쩔 수가 없겠군요. 어쨌든 쾌차하셔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윤재철이 콧등을 찡그렸다.
“이사장님. 그 문제들은 거의 다 마무리가 됐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될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것들이 바로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허경발 원장님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지요. 윤 이사님 말씀대로 경영은 우리가 맡고 의료 부분은 의료진이 책임지는 시스템이 잘 돌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송재덕 교수님.”
“왜 그러십니까?”
“퇴원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요?”
“그럴 것 같습니다.”
“매정한 말로 들리실지 모릅니다만 중앙 의료원 원장 자리를 계속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신상민 부원장님과 상의하셔서 가까운 시일 내에 바로 인사 위원회를 열었으면 합니다. 이 과장님께도 부탁드립니다.”
한 사람의 공석이 병원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중앙 의료원 원장에 의료진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허경발 원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선은 하루빨리 툭툭 털고 일어나 복귀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불가능에 손을 들고 있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제자들이 나서서 막을 판이었다.
송재덕 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외과 센터 센터장으로서 이혁민 과장과 함께 허경발 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꼭꼭 참석을 했다. 병원 발전을 위한 일이었지만 무리한 일정에 신경이 쓰였었다.
가끔은 피곤을 못 이기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말을 하지 못했다. 스승의 건강보다 병원 일을 더 중요시했다는 자책 길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심난한 모양이었다.
‘그때 충분히 휴식을 취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야 했어. 이게 다 내 잘못이네. 후우! 이번 기회에 새로운 의료원장을 추대하는 것이 스승님을 위한 길이겠지.’
빨리 마무리할수록 허경발 원장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럼 그동안 계획한 대로 최종 승인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말 따로 추천을 할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제가 관여해 발생했던 문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의사들만이 아니라 병원 직원 모두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분을 추대하시라라 믿습니다.”
금경태를 말하고 있었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순간 복잡한 표정을 지은 송재덕 교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미워도 한 스승에게 배운 인연은 쉽게 가시질 않은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행정에 관한 말들이 오고갔다. 외과 센터를 맡고 있는 송재덕 교수나 과장인 이혁민 교수로서는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허경발 원장의 빈자리가 점점 크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에 걸음을 서두르던 이혁민 교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오늘 아침에 들은 중환자실 간호사의 말이 마음에 걸인 것이다.
‘우리가 가고 난 뒤에 교수들이 적지 않게 왔었다고? 김지훈이 면회가 불가하다고 했는데도 고집을 부렸단 말이지? 중앙 의료원 원장님이 아니라 스승님을 보기 위해서 왔으면 좋겠군.’
“이 교수. 다들 스승님이 걱정돼서 왔겠지? 그럴 거야. 그래야지. 그래야만 돼.”
송재덕 교수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외래로 들어선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당연히 직위와 명예를 추구한다. 욕할 일도, 손가락질 할 일도 아니었다. 다만 본분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환자 봅시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랐다.
어떤 말이 오가든 김지훈에게는 다른 나라 일이었다.
환자와 수술에 집중하는 한편 시간 나는 대로 중환자실을 찾았다. 등을 두드려 기침을 유도하고 내과 전공의와 함께 빠진 치료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4년차들이 손을 놓은 탓에 확연할 정도로 손이 딸렸지만 전공의들도 수시로 허경발 원장을 살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혁원이 자주 얼굴을 보였다. 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수술실에서 살아야 하는 박순용은 물론 나종진과 강병옥 그리고 도진우까지 최선을 다했다. 피곤을 못 이겨 고개를 툭툭 떨어트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고맙기만 했다.
‘박순용 선생님. 혁원아. 종진아. 병옥아. 진우야. 모두들 고맙다.’
저녁이면 어김없이 고성문에게 전화가 왔다.
차도가 없다는 말을 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김 서방,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조금 더 신경을 써줘. 필요하면 내과에 달려가서 늦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돼. 잘 알고 있지?)
“예.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좋아지실 겁니다.”
수술은 꾸준히 이어졌고 외래 환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지만 기뻐할 기분이 아니었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매사가 귀찮아 질 수도 있었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매시간 환자에게 집중하려 더욱 애를 썼다.
어느 새 나흘이 지났다.
의국과 외래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허경발 원장의 증세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검사 결과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고 흉부 사진은 아예 하얀 색만 보일 지경이었다.
최소한 90퍼센트 이상 유지돼야 하는 동맥혈 내 산소 포화도는 여전히 85퍼센트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분당 10리터에 달하는 산소 투입도 호흡 자체가 나쁘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들리는 그르렁 소리.
시도 때도 없이 오르는 고열.
눈에 보이게 떨어진 체력.
이제는 기침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오후 회진이 끝나고 관련된 교수들이 모두 모였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흡인성 폐렴이 확실했다.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했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김지훈은 눈이 시뻘게진 채 인상만 쓰고 있었다. 이혁원 역시 똑같은 모습이었다.
‘지훈아. 혁원아. 비록 차도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 스승님도 고마워하실 거야.’
이준영 교수가 등을 두드려주었지만 김지훈은 입을 열지 못했다. 스승의 두 눈 속에 박힌 슬픔과 안타까움이 시리도록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어제와 오늘이 달랐다.
내일은 얼마나 더 나빠질지 모를 일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만일 이물이 기관지 속에 박혀 있다면 이런 식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며칠 안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다행히 의식은 눈에 띄게 나빠지지 않았지만 흐려지는 순간 끝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어느 누구도 차마 입에 담지 못했지만 엄연한 경험과 현실이었다.
중환자실을 떠날 수가 없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오늘도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이삼 일에 한 번은 벌어지는 일이었다.
“어레스트(Arrest : 심정지). 어레스트.”
간호사의 다급한 소리와 함께 의료진들이 달라붙었다.
“비본, 에피네프린 주고 전기 충격기 준비해요.”
“슛! 250줄(joul)로 올려요.”
침대라 출렁일 정도로 환자의 몸이 튀어 올랐다.
전공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인턴과 간호사들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띠이이이이이!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또 한 명의 환자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숨죽인 가족들의 울음소리.
얼굴을 굳힌 채 입도 열지 못하는 의료진.
묵묵히 손을 보탰던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의사의 한계와 무력함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문인지 허경발 원장이 더욱 걱정됐다.
문득 한 가지 방법이 뇌리를 스쳤다.
‘이 상태로는 회복이 어려울 수 있어. 극단적이라고 해도 흡인성 폐렴이 확실하다면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분비물이라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나빠지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클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잔뜩 얼굴을 찌푸리던 김지훈이 고민을 거듭했다.
피로가 너무 쌓였다.
김지훈의 고개가 뚝 떨어졌다.
삐익! 삐익! 삐익!
그때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또 어레스트?